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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중산층의 배타적 공간, 아파트

  • 이승협│노동행정연수원 교수 solnamu@gmail.com│

중산층의 배타적 공간,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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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의 배타적 공간, 아파트

‘아파트에 미치다’전상인 지음/ 이숲/ 199쪽/ 1만2000원

인간의 삶에서 주거는 가장 원초적인 문제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주거란 단순히 잠을 자는 공간이 아니라 집단적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사적 공간이다. 1990년대 이후 급격하게 늘어난 자가용을 단순한 운송수단이 아니라 사적 공간의 확장으로 보는 것도 동일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주거의 문화적 양식이 한국사회에서는 언젠가부터 아파트라고 하는 기괴한 괴물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전체 주택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은 52.7%에 달한다. 특히 대도시의 경우 아파트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도대체 왜 그리고 어떻게 아파트가 한국의 대표적인 주거양식이 된 것일까? 전상인 교수가 쓴 ‘아파트에 미치다’는 바로 이러한 의문에 흥미로운 대답을 제시하고 있다. 굳이‘현대한국의 주거사회학’이란 부제를 붙인 것도 아파트가 갖는 사회문화적 의미를 다양한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제시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리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이 책은 아파트에 관한 사회학이자 문화인류학이다. 일반 독자가 자신의 일상에 널브러져 무심히 지나치던 중요한 사회적 현상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도록 알기 쉽게 서술되어 있다.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추상적이고 난해한 학술적 개념으로 도배해 일반 독자와의 거리두기를 즐겨 하는 대부분의 사회과학자와는 달리 오히려 적극적으로 대중과 호흡하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한국의 사회과학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동시에 제시하고 있다. 국가, 이데올로기, 권력, 민족, 통일, 운동 등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개념의 사회과학에서 벗어나 일상과 주변세계의 소소한 현상을 대중이 알기 쉽게 풀어줌으로써 사회과학을 대중화하는 대담한 시도를 한 것이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세계의 비참’이라는 책에서 개인의 구체적 삶과 자본주의 사회의 권력이라는 추상성을 르포 형식을 통해 시각적 및 정서적으로 제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아파트에 미치다’는 건축양식으로서의 아파트가 아니라 주거양식으로서의 아파트를 역사적으로 고찰하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아파트문화의 계보학을 정립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아파트란 한국사회를 총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일종의 내시경이다. 달리 말하면 한국사회에서 아파트란 광복 이후 한국사회의 성장과 근대화를 압축적으로 상징하는 시대의 아이콘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신분의 상징

한수영은 자신의 소설 ‘공허의 1/4’에서 아파트를 “잔뜩 발기한 것처럼 여기저기 솟아 있는 난수표”라고 묘사했다. 이 말은 한국의 아파트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정서를 그대로 드러낸다. 아파트란 개인과 가족을 규격화된 공간 속에 획일적으로 배치함으로써 개인의 삶을 균질화된 사회적 삶으로 전환시키는 규칙성을 갖지만, 아파트 자체는 주변 환경과 결코 어우러지지 않는 어지러움으로 존재한다. 일정한 규모의 공간만 존재하면 불쑥불쑥 하늘을 헤치고 뻗어 오르는 탈선적 괴물과 같은 존재다. 저자의 표현대로 산은 아파트에 자리를 내주고, 논두렁 아파트와 밭두렁 아파트가 허허벌판에 들어서 있다.

그럼에도 아파트는 동시에 한국인의 꿈과 로망이다. 아파트에 산다는 말은 곧 중산층의 최소 요건을 갖추었다는 말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중산층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금전적으로 부를 축적한다는 경제적 의미에 사회적 양식, 즉 사회자본의 소유라는 사회적 의미가 더해져야 한다. 아파트는 이러한 사회자본의 소유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한국사회가 지난 60년 동안 추구해온 발전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단순한 경제성장과 등치된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경제성장은 서구적 생활양식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중요한 수단이었다. 한국인에게 근대성은 서구적, 더 정확하게는 미국식 생활양식으로 받아들여졌고, 발전은 미국사람들이 사는 방식과 유사해지는 것을 의미했다. 사람들은 안방에 놓인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미국 드라마를 보고 발전한 미국을 뉴욕 맨해튼의 고층 빌딩과 고급 펜션아파트와 동일시하게 되었다. 즉 발전이란 도시인이 되고 고층빌딩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인지된 것이다.

물론 저자가 지적하듯이 서구에서 고층 다세대 주거양식은 대도시 최고급 펜션아파트를 제외하면 대부분 도시빈민이나 서민층을 위한 집단거주시설에 지나지 않는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듯 서민을 위한 집단거주시설이 한국사회에서는 중산층의 상징적 생활양식이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파트에 산다는 서구적 근대성을 일상에서 공유하는 사회적 신분의 상징이 된 것이다. ‘맥도날드에 간다’가 미국에서는 바쁜 샐러리맨이 쉽게 점심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햄버거를 먹는다는 의미이지만, 한국사회에서는 미국 샐러리맨의 생활양식을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사회적 신분이 되었음을 과시하는 전혀 다른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저자가 언급한 “우리가 시골에 산다고 아파트에서 살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느냐”는 시골사람들의 항변에는 바로 이러한 아파트의 사회문화적 기호가 숨어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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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협│노동행정연수원 교수 solnam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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