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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화제의 독립다큐영화‘워낭소리’이충렬 감독

“내 아버지에게 반성문 쓰듯 만든 영화”

  • 구가인│기자 comedy9@donga.com│

화제의 독립다큐영화‘워낭소리’이충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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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중장년층 사이에 ‘그 영화’가 화제다. “그 영화 봤어요? 아휴, 꼭 보세요. 정말요.” 예술영화전용관에 아줌마 아저씨 부대가 찾아들기 시작하더니, 대통령까지 방문했다. 그 영화, ‘워낭소리’는 온전히 입소문만으로 뜬 다큐멘터리다. 마흔 살 소와 여든의 노인이 등장하는 이 ‘작은’ 영화가 요즘 세상을 들썩이게 하고 있다.
화제의 독립다큐영화‘워낭소리’이충렬 감독
예술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서울 광화문의 한 극장 앞에 ‘워낭소리’의 포스터가 붙은 것은 한 달 전쯤 일이다. 소의 턱 밑에 다는 방울이란 뜻의 ‘워낭’이라는 말도 낯설었지만 배경이 된 농촌 풍경은 좀 진부해 보였다. 오롯이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을 스크린 앞에 앉아 있기에 늙은 소와 노인은 그다지 매력적인 주인공이 아니었다.

다른 예술영화들이 그렇듯 한 달을 못 넘기고 금세 사라지려니 했다. 사실 대중에게 생소한 장르인 다큐멘터리독립영화가 상영 기간을 보름이나 넘기면 다행이었다. 그런데 극장 구석에 위치한 80석짜리 상영관에서 시작한 이 영화는 얼마 지나지 않아 300석의 본(本) 상영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혼자 두서너 석씩 차지하며 한가로이 영화 보기 좋았던 이 극장에 ‘낯선’ 관객들이 찾아왔다. 여고 동창쯤으로 보이는 중장년 이상의 아주머니 무리가 영화관을 장악했고 엄마 손을 잡고 극장을 찾은 예닐곱 살짜리 아이들이 극장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예술영화관 장악한 중장년층

1월15일 개봉한 ‘워낭소리’는 개봉 1주차엔 1만명을 갓 넘기더니 이어 2주차에 4만7000명, 3주차엔 10만명을 모았고 한 달이 지난 현재 60만 관객을 돌파했다(2월15일 기준). 심지어 포털사이트 인기인 검색순위에 ‘최 노인의 소’가 올랐을 정도. 물론 1000만 관객 신화에 익숙한 한국영화계에서 그깟 60만명은 대단치 않은 숫자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개봉 당시 겨우 7개 상영관에서 시작한, 순수 제작비 1억원짜리 초저예산 독립영화가 상업영화를 제치고 전국 100여 개 극장에서 상영하게 됐다는 사실은 충분히 ‘이변’이다.

이 영화를 만든 이충렬(44) 감독은 외주방송프로덕션 PD 출신이다. “‘VJ 특공대’ ‘6시내고향’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부터 정부기관 홍보용 영화까지 안 해본 게 없다”는 그에게 ‘워낭소리’는 “마지막 승부수라고 생각하고 만든” 첫 번째 극장용 다큐영화다.

▼ 한국에선 중장년층과 아이들만 확실히 잡으면 히트친다던데 ‘워낭소리’는 둘 다 잡았다.

“젊은 사람들이 보고 부모에게 소개하기도 하고 부모가 자녀를 데리고 오기도 한다. 그렇게 입소문이 나서 나중엔 한 가족이 두세 번씩 보는 경우도 많다고 하더라. 대중성을 의식하고 만든 다큐라 어느 정도 흥행은 예상했는데 이 정도일 거라고 생각 못했다. 영화판에 있었던 게 아니라 흥행 스코어 대한 개념이 없다. 1000만 관객이나 되어야 대단한 건 줄 알았는데 한편으로는 독립영화 상황이 그만큼 어렵다는 걸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개인적으론 너무 갑작스럽게 관심을 받게 되니까 얼떨떨하고 이래도 되는 건지 두렵다.”

화제의 독립다큐영화‘워낭소리’이충렬 감독
▼ ‘워낭소리’가 왜 인기를 얻는다고 보는가.

“주인공 할아버지의 삶이 현대인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것 같다. 예컨대 자식은 부모에게 시선을 돌리게 되고, 빠르게만 사는 현대인은 자기성찰을 하는 듯하다. 형식 면에서는 사실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 다큐와는 조금 다르게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편집방식을 취했다. 영화 끝난 뒤에도 잔영이 뇌리에 남아 있도록 기승전결 구조로 전개되는데 그것이 주효하게 작용했다.”

여든 노인과 마흔 살 소의 우정

‘워낭소리’의 주인공은 경상북도 봉화 산골에 사는 여든 살 된 촌부 최원균씨와 평균 수명보다 곱절을 더 산 마흔 살 된 일소다. ‘Old Partner’라는 영어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영화는 30년 지기 동료인 노인과 소의 관계를 담았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 노인을 위해 30여 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달구지를 끌고 경작을 도운 소 덕분에, 노부부는 9남매를 가르치고 키울 수 있었다. 노인은 그런 소를 위해 꼴을 베고 쇠죽을 끓인다. 평생 육체노동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노인과 소는 생의 끝자락에도 노동으로서의 삶, 삶으로서의 노동을 천천히 이어간다. 영화에는 2005년부터 소가 죽는 2007년 1월까지 촬영된 화면이 담겨 있다. 기획단계에서부터 촬영, 편집에 이르기까지 순수 제작기간만 3년이 걸렸다. 우여곡절도 많아 처음엔 텔레비전 다큐로 기획됐다가 제작사가 바뀌며 영화로 만들어졌다.

▼ 방송용에서 영화로 바뀌면서 달라진 게 있나.

“작품이 마무리되어갈 무렵 제작사도 바뀌고 방송국에서 퇴짜를 놨다. ‘이런 게 재미가 있겠느냐, 의미는 좀 있겠다’ 식이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다큐멘터리영화‘우리 학교’를 제작한 고영재 PD를 만나면서 영화로 탄생했다.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바뀐 건 시간이 줄어든 것 빼곤 거의 없다. 예상컨대 방송이었다면 방송사 쪽 요구로 마지막 장면에 ‘할아버지의 삶은 다시 소로 이어진다’ 유의 희망적이면서도 도식적인 결말을 내놓았을 것 같다. 결론적으로 영화로 만든 게 잘한 것 같다.”

▼ 이 작품에 오랫동안 매달린 이유는?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 당시 아버지를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소와 노인을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한번 작품을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최소한 3년 이상 길게 간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노인과 늙은 소를 찾으러 전국 안 다닌 곳이 없다. 2005년 촬영에 들어갔지만 할아버지가 카메라만 다가가면 사진을 찍는 줄 알고 동작을 멈춰 촬영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카메라에 익숙해지고 내가 할아버지의 동선과 할아버지, 할머니, 소의 관계를 파악할 때까지 6개월을 더 기다렸다. 사실 처음엔 소가 1년 안에 죽을 거라 예상했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아들도 계약서 쓴 거다. 그런데 두 해가 지나도 소가 죽지 않아서 왜 소가 죽지 않냐고 제작자에게 욕을 먹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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