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호

美 대북 압박, 이번엔 마약이다!

“유엔 마약통제기구, 북한 현장실사 추진 중”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6-03-03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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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대북 압박, 이번엔 마약이다!

    2003년 5월 헤로인 125kg의 호주 밀반입 과정에 개입돼 조사를 받고 있는 북한선박 봉수호가 시드니 항구에 강제 정박해 있다. 이 사건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며 북한 당국의 개입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2월월 초순, 복수의 정부 당국자들은 “마약 관련 국제기구가 북한에 대한 현장방문 및 실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안보부처 간부는 “이러한 방침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검토되기 시작했으며 2005년 겨울에 이르러 2006년 초 실시를 목표로 구체적인 준비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며 “관련 정보는 국가정보원을 통해 수집되어 지난해 12월 관계부처에 전달된 상태”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마약 문제와 관련해 북한에 대한 실사 임무를 준비하고 있는 기구는 유엔 산하 국제마약통제위원회(INCB·International Narcotics Control Board)로 알고 있으며, 북한 당국과 방문일정 등을 협의하는 단계라고 들었다”고 전했다. 당초에는 1월 중순 방북할 계획이었지만 북한 내부 사정으로 연기됐으며, 늦어도 상반기 안을 목표로 추진 중인 것으로 안다는 설명이었다. 한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미국이 대북 압박의 다음 단계로 마약 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음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북한에 대한 국제기구의 마약관련 실사는 이를 현실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동아’는 이 같은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빈에 본부를 둔 INCB 사무국에 질의서를 보냈다. 이에 대해 INCB의 아시아담당 마약통제관은 “2006년 1월중에는 북한에 대한 실사 임무가 실시되지 않았으며, 향후 일정에 대해서는 사전에 공개할 수 없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INCB의 관련 임무는 수행된 이후에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INCB, “북한은 히로뽕 원료 주생산지”

    INCB는 각 회원국이 유엔에서 정한 마약협약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감시하기 위해 설립된 준(準)사법 독립기관이다. 기본적으로는 마약성분이 들어 있는 약품의 합법적인 제조와 거래, 판매와 관련해 의료용 및 과학용 마약류의 공급량을 파악하는 것이 주요 임무. 마약류 의약품이 국제적으로 어떻게 거래되는지 동향을 파악하고 유출을 막는 한편, 마약류 원료물질의 불법 전용을 막기 위해 각 회원국을 지원하기도 한다.



    불법적으로 제조되는 마약류의 유통과 관련해서는 국제법이나 각국 국내법상의 취약점을 파악해 이에 대한 수정을 권고한다. 각 회원국의 정책이나 법령, 정부체계 등에 마약을 단속하고 처리하는 데 한계가 있는지 실사하고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특히 마약류의 불법제조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의 이동을 감시하는 임무를 수행할 때는 준사법기구로서의 권한을 사용하기도 한다. 한국의 경우 대검찰청 마약수사과가 INCB의 업무 파트너다.

    북한에 대한 INCB의 현장실사는 북한을 유엔이 정한 국제협약에 가입시키기 위한 실무교섭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근간이 되는 것은 1961년 제정된 ‘마약단일협약(Single Conven-tion on Narcotic Drugs)’ 등 세 개의 국제협약. 이들 다자간 협약에 서명한 국가는 자국 내 마약류 관리실태와 유통상황, 국경반입 및 반출상황을 확인해 통계를 내고 INCB에 신고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2006년 현재 이들 협약에 하나도 가입하지 않은 상태이며 통계자료도 제대로 제출하지 않고 있다. INCB는 그간 연례보고서를 통해 북한에 수차례 가입을 촉구하고, 한편으로 국제사회의 압력을 호소해왔다.

    특히 INCB가 북한의 마약 실태와 관련해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부분은 히로뽕의 원료인 메스암페타민이다. 2001년 2월 서울에서 개최된 INCB 연례총회에서는 북한을 중국, 필리핀, 미국 등과 함께 메스암페타민의 주요 생산지로 지목한 바 있다. 야쿠자 조직 등을 통해 일본으로 유입되는 메스암페타민 일부가 북한에서 생산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 이때 발표된 마약 실태 보고서는 일본으로 운반되는 그외의 마약도 북한 영해에서 보트로 옮겨지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그동안 이러한 국제기구의 압력에 대해 매우 곤혹스러워한 것으로 전해졌다. 관련 협약에 가입하지 않아 치료용 향정신성의약품 수입에 제한을 받기 때문에 의료상황이 악화됐다는 관측도 있다. 이 때문에 수년 전부터 협약가입을 위한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는 것. 한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이미 2003년 8월 최고인민회의 차원에서 마약 통제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시행에 들어갔다는 보고가 있었다”며 “이 법이 북한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마약관련 법률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INCB는 2004년 3월 발표된 연례보고서를 통해 “북한 당국이 INCB에 마약통제 국내법 시행에 관한 법률적 지원을 요청했다”고 밝힌 바 있다.

    INCB의 북한 현장실사 움직임은 그간 진행돼온 이같은 논의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INCB가 마약관련 3대 협약에 대한 구체적인 가입절차를 협상하고 이를 위해 북한의 마약상황을 파악하려는 움직임이라는 관측이다.

    북한이 이들 협약에 가입하려면 우선 자국 내 마약관리 실태와 통계를 유엔에 보고하고 그 내용에 대해 INCB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또한 마약단속 및 관리기구는 물론 불법거래를 통해 얻은 자금의 동향을 감시하기 위한 법령을 만들어 운영상황을 매년 보고해야 한다. 필요한 경우 관계자들로 하여금 INCB의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실사와 준비를 통해 국제 마약통제 시스템이 부과하는 의무를 충실히 따르겠다는 북한의 의사를 INCB가 확인해야 가입이 가능해진다.

    INCB는 1월 한 달 동안 아프리카의 지부티와 중동의 예멘을 방문해 실사임무를 수행했다. INCB 관계자들은 두 나라의 내무·외무·법제·보건·경찰·통관 등 다양한 기관과 협의하고, 유력한 마약관련 후보지역을 방문해 현황을 점검했다. 두 나라는 INCB 현장임무가 처음으로 수행된 나라였으므로, 상반기 중 실시될 것으로 전해진 북한 관련 임무도 이와 비슷한 형태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위조지폐말고도 난관은 많다

    한편 이러한 움직임을 최근 다양한 경로를 통해 진행되고 있는 미국의 대북 압박과 연결해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정부의 한 마약관련 업무 담당자는 “유엔 산하 기구가 대부분 그렇듯 INCB에도 워싱턴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한다. 지금은 위조지폐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미국이 북한을 ‘범죄국가(criminal regime)’로 표현한 이상 마약문제 또한 어떻게든 짚고 넘어가리라는 점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라고 평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INCB 이사회는 세계보건기구(WHO)에 가입한 각국 정부의 추천을 받아 유엔경제사회이사회(UNESC)에서 선출하는 13명의 전문위원으로 구성되는데, 2007년 3월 임기가 끝나는 미국측 전문위원은 국무부 인권담당파트 부차관보를 지낸 35년 경력의 외교관 출신”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이 그간 국무부를 중심으로 의회조사국(CRS), 마약단속국(DEA), 연방수사국(FBI) 등 각급 기관의 의회 증언이나 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마약 문제를 강도 높게 비판해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 국무부는 2002년부터 ‘북한실무그룹’이라는 전담팀을 구성하고 대량살상무기방지구상(PSI)에 비견되는 ‘불법활동저지구상(IAI·Illicit Activities Initiative)’을 수립해 위조지폐와 마약 등을 중점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최근 위조지폐 문제의 해결 흐름이 가시화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2월9일 북한은 외무성 담화를 통해 “우리는 미국이 자기의 국익과 화폐를 보호하려는 데 개의치 않는다”고 밝혔고, 미국측 당국자들은 이러한 언급에 대해 “긍정적인 신호”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언론에서는 6자회담 재개의 청신호가 켜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마약관련 국제기구의 최근 움직임은 위조지폐 문제가 봉합된다 해도 여전히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성급한 낙관론의 함정

    미국이 ‘불법행위’에 대한 다양한 이슈를 제기해 6자회담과 북핵 문제 해결의 ‘속도조절’에 사용할 것이라는 분석은 이전에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그러나 2005년 9·19 공동성명 이후 정부는 “문제 해결의 큰 고비를 넘겼다”는 낙관적인 전망 아래 이러한 미국측 움직임을 사전에 대비하는 전략을 마련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위조지폐 관련 대북금융제재 문제가 불거진 직후 한미 간에는 물론 한국 정부 내부에서조차 손발이 안 맞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국제적으로 마약은 위조지폐보다 더 ‘죄질이 나쁜’ 범죄다. 또 북한 마약과 관련된 조사는 위폐보다 더 광범위하게 진행돼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INCB의 현장실사는 북한의 마약생산 문제를 수면으로 떠오르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과연 이에 충실히 협조하고 대책을 내놓음으로써 매끄럽게 넘어갈 수 있을지, 아니면 이 문제가 북미 간의 새로운 갈등요소가 되어 6자회담에 걸림돌로 작용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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