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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崔·朴의 그림자

“지금 떠도는 블랙리스트는 1차 자료, 진짜는 따로 있을 것”

Interview | 박근혜 정부 문화계 블랙리스트 1호 이윤택

  • 권재현 기자 | confetti@donga.com

“지금 떠도는 블랙리스트는 1차 자료, 진짜는 따로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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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문화 게릴라’가 현장에서 겪은 예술 검열 실태
  • ● “유진룡이 물러나고 김종덕이 오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 ● “광장의 촛불은 1987년 이후가 아니라 1960년 이후 대변혁”
  • ● “이제 블랙리스트 이후를 논의해야 할 때”
“지금 떠도는 블랙리스트는 1차 자료, 진짜는 따로 있을 것”

[조영철 기자]

‘문화 게릴라’로 유명한 극작가이자 연출가 이윤택(65)은 진보일까 보수일까. 이런 일도양단 식의 질문은 무례하다. 그럼에도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그가 겉으론 ‘문화융성’을 내세우면서 뒤에선 블랙리스트로 문화계를 통제하고 억압하려 했던 박근혜 정부 문화정책의 허구성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또 경고한 ‘카나리아’였기 때문이다.

연출가로서 이윤택은 독일 사회주의 작가 브레히트와 프랑스의 무정부주의 작가 장 주네의 파격적 번역극을 거침없이 소개해왔다는 점에서 분명 진보적이다. 극작가로서 이윤택은 ‘오구’와 ‘어머니’ 같은 창작극을 통해 보수의 핵심 가치로서 ‘가족’에 천착해왔다. 인간 이윤택은 ‘세상이 아무리 난리법석 용천지랄을 떨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가족이란 관계’(자전 에세이 ‘결국 삶이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한국 보수의 본고장 경상도에서 태어나 자랐고, ‘경주 양동 이씨 가문’으로 회재 이언적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을 마냥 진보라고 낙인찍을 수 있을까.

자유주의의 출발점이 개인이고, 사회주의의 출발점이 사회라면 보수주의의 출발점은 가족이다. 가족과 그 가족의 확대된 형태로서 민족과 국가에 대한 책임과 명예를 중시하는 이야말로 보수주의자라는 이름에 값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윤택은 보수주의자에 가깝다. 다만 역마살 낀 아버지의 부재 속에 억센 홀어머니 아래 자라면서 형성된 반항기와 그가 종교처럼 믿는 연극의 가치를 억압하는 권력과 자본에 대한 불신과 반감이 그를 문화 게릴라로 길러냈을 뿐. 이는 그가 1986년부터 꾸려온 연극공동체 ‘연희단거리패’에서 휘두르는 가부장적 권위에서도 확인된다.

이윤택 자신도 이런 분열적 정체성을 예민하게 의식하고 살아왔다. 그가 자신을 비민중권 지식인, 회색분자, 중도파로 끊임없이 규정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회색도 색이다. 나는 차라리 당당한 회색분자로 남겠다”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이런 태도는 좌와 우로부터 모두 공격받는 빌미도 제공했지만 험난한 이념갈등의 격랑을 노회하게 헤쳐올 수 있는 동력이 된 것도 사실이다.

정책농간 경고한 카나리아

박근혜 정부 들어 그런 정체성에 전례 없는 타격이 가해진다. 탄핵정국과 맞물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라는 빙산의 일각이 그를 통해 처음 드러났기 때문이다.

2015년 9월 그의 이름은 후배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박근형과 함께 신문에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그해 1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아르코문학창작기금 희곡 분야에 제출한 그의 시극 ‘꽃을 바치는 시간’이 100점 만점을 받고 1위에 올랐음에도 문화체육관광부의 압력으로 최종 탈락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는 박근형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가 예술위의 ‘대본 공모 지원’ ‘시범공연 지원’ ‘우수 작품 제작 지원사업’에 줄줄이 선정됐지만 역시 문체부의 압력으로 지원금 포기 각서를 제출해야 했다는 소식과 맞물려 상당한 파장을 몰고 왔다. 이윤택은 2012년 대선에서 고교동창이던 문재인 후보의 TV 지지연설을 했다는 빌미로, 박근형은 2013년 9월 국립극단을 이끌고 공연한 ‘개구리’가 박정희·박근혜 부녀를 풍자했다는 전력으로 ‘된서리’를 맞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15년 가을 한국 연극계의 척추와 같은 이윤택과 박근형에 대한 지원금 배제 소식이 국정감사 도마에 올랐을 때 김종덕 당시 문체부 장관은 맞불작전에 나섰다. “이윤택 선생에겐 지난 2년간 15억을 지원했다. 예술가 중에서 최고액의 지원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침소봉대의 ‘물타기 수법’이었음이 드러났다. 도종환 의원실이 문체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15억 원은 명동예술극장·국립극장·국립국악원에서 제작한 6개 작품의 총 제작비를 뭉뚱그린 것이었다. 이윤택 개인에게 돌아간 돈은 그 20분의 1 수준인 7600만 원(극작료+연출료)에 불과했다.

자신을 ‘국민 세금을 15억이나 받아먹은 배은망덕한 하마’쯤으로 몰고 간 ‘물타기’에도 침묵하던 이윤택은 2016년 2월 연희단거리패 3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한국 사회가 이렇게 야만적일 수가 있는가. 이윤택만 떨어뜨린 게 아니고 오태석도 떨어뜨리고 이강백도 떨어뜨렸다. 한국연극계를 대표하는 사람을 모두 떨어뜨리는 한국 사회는 얼마나 잘난 사회인가. ‘개판의 시대’에는 ‘깽판’으로 맞서야 한다. 일체의 정부지원금을 포기하고 소극장운동으로 돌아가 연극정신을 지키겠다.”

이날의 발언은 정치적 검열에 대한 분노 표출에만 머문 게 아니었다. 문화예술 문외한인 최순실-차은택의 농간에 대한 예언가적 경고까지 담겼다. “많은 지원이 문화 콘텐츠, 융합 쪽으로 다 넘어가버리고 순수예술에 대한 지원은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인문학적 바탕도 없이 그냥 비빔밥 짬뽕처럼 만들어지는 게 무슨 융합인가. 왜 예술이 미적 형식도 갖추기 전에 콘텐츠가 돼야 하는가.”

창단 30주년에 존폐 위기 몰려

그의 이런 발언은 문화예술계 뒤에 숨어 있던 ‘검은 그림자’의 천박한 실체가 드러나면서 ‘사이다 발언’이라며 다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그 대가로 그가 이끄는 연희단거리패는 일체의 정부 지원금 없이 홀로서기를 위해 지난해 힘든 구조조정을 겪어야 했다.

극단의 서울 아지트인 ‘게릴라극장’과 수유동 단원숙소를 매물로 내놨다. 2006년 개관한 게릴라극장은 개막 공연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공연된 이윤택의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과 박근형의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가 그해 말 나란히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며 대학로 창작극의 산실로 우뚝 떠올랐다. 하지만 노무현, 이명박 정부에서 계속 지원받던 공간지원금이 끊기면서 월 800만 원의 운영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된 것.  

대신 은행 대출을 받아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앞 막다른 골목에 위치한 불탄 고시원 건물을 인수해 단원 숙소와 공연장을 겸한 ‘짐머테아터’(가옥극장)로서 ‘30스튜디오’의 문을 열었다. 창단 30주년에 막다른 골목에 섰다는 절체절명의 자의식이 깃든 극장명이다.

1월 4일 오후 창덕궁 담벼락에 위치한 30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났다.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청와대에서 내려보냈다”는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의 폭로와 그 작성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 조윤선 현 장관의 은폐 의혹이 한창 일고 있을 때였다. 그 만남이 있고 8일 뒤인 12일 유진룡, 조윤선 장관 사이에서 문체부 장관을 맡았던 김종덕 씨가 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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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 기자 |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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