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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심리학

판결의 오류를 상식으로 뒤집겠다고?

  • 허태균 |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판결의 오류를 상식으로 뒤집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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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법부 판결 중에는 국민의 기대나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일반 국민의 상식이 사법 판결에 반영되도록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하기도 했다. 그런데 사법부가 여론에 따라 유무죄를 판단하고 상식을 다루는 기관이 되는 게 옳은 일일까.
판결의 오류를 상식으로 뒤집겠다고?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한국 사회에는 ‘나쁜 놈’이 너무 많다. 미디어가 발달해서 ‘몰라도 되는 나쁜 놈’까지 알게 돼서인지 몰라도 요즘은 참 나쁜 놈 천지인 것 같다. 침몰해가는 세월호에서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고 자신만 탈출해서 300명에 가까운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은 세월호 선장. 부하들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가혹행위를 저질러 후임병 윤모 일병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이모 병장.

이렇게 명백해 보이는 ‘나쁜 놈’들을 처벌하는 데에도 사회적 여론이 들끓는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당연히 살인인데도 살인죄가 선고되지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국민은 사법부의 무능함을 비웃는다. 누가 무슨 짓을 했는지, 그래서 누가 어떻게 죽었는지가 명확한 사건에서도 사법부의 판단이 국민의 일반적인 상식과 다르다면, 누가 무슨 짓을 했는지 자체가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부인과 두 살짜리 딸이 아파트 욕조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돼 남편인 치과의사가 살인죄로 기소된 사건. 이른바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됐지만, 대법원 재상고까지 거쳐 결국 무죄가 선고됐다. 반대로 만삭 부인을 욕실에서 목 졸라 죽인 혐의로 기소된 유명 병원 레지던트는 지루한 법정 공방 끝에 결국 대법원에서 20년형의 유죄판결이 확정돼 감옥살이를 한다. 최근에는 현직 대법원장이 37년 전에 내린 판결이 고등법원에서 뒤집힌 사건도 언론에 보도됐다.

판결이 뒤집힐 때마다 환호하며 정의가 실현됐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정의는 실종됐다며 사법부를 비난하고 자신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울부짖는 사람이 상존한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걸까. 또는 누가 진실을 말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는 걸까. 과연 사법부는 바른 결정을 내린 걸까, 아니면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걸까.

진실과 상식

사법체계는 정의 실현을 궁극적 목적으로 한다. 사법부를 상징하는 이미지도 정의의 여신이다. 국민도 사법부에 정의의 실현을 기대한다. 물론 누구나 사법부의 정의로운 판결은 당연히 자신이 믿는 바와 같을 것이라고 암묵적으로 전제한다. 왜? 자신은 정의로우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납득할 만한 설명이 있어야 하고, 납득이 안 되면 사법부가 무능하든지, 썩었든지, 정치적인 집단이 된다.

사법부에 대한 이런 식의 판단은 성급하지도 편향되지도 않고, 매우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다. 최소한 자기 자신에게는 그렇다. 왜? 사법부의 판결이 자신이 믿는 상식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식을 좀 반영하라고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배심제, 즉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하기도 했다. 그런데 과연 사법부가 상식을 다루는 기관일까. 상식이 사법 판단에서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한국인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대부분의 한국인은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법률체계에 대해 배운다. 이후 법대에 진학하지 않는 한 따로 법에 대해 배울 기회는 거의 없다. 초중고교 교육에서는 사법부의 조직, 체계, 판결 절차를 ‘아주 간단히’ 외우고, 관념적으로 사법부는 정의를 실현해야 하고 실현할 것이라는 당위적인 얘기들을 주입식으로 배운다. 사법 판단의 본질이나, 사법 판단이 많은 경우 일반인이 생각하는 상식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법 판단의 한계에 대해서는 전혀 배우지 않는다.

법률체계나 법 규정은 그 사회에서 넓게 받아들여지는 합의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대부분의 법률 내용은 일반인의 상식과 일치할 수밖에 없다. 일치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일반의 상식에 근거하고, 사회적 합의에 부합해야 한다.

하지만 사법 판단의 본질은 판결이 얼마나 진실과 상식에 부합하느냐에 있지 않고, 그 판단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상식과 다를 수밖에 없다. 판결의 진실 부합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다. 판결에서 결정적인 사항은 사실로 알려지기보다는 추론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오류 아닌 본질

앞서 언급한 세월호 선장의 경우, 퇴선 명령을 하지 않고 혼자만 탈출한 행위는 확인이 가능하고 그래서 수백 명이 사망한 것도 확인 가능한 사실(fact)이다. 하지만 살인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승객이 죽어도 좋다는 생각과 죽을 것이라는 예상을 했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과 예상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기록으로 남지도 않는다. 그 진실을 아는 유일한 사람인 세월호 선장은 당연히 그런 생각도 예상도 안 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자신이 그런 예상을 안 했다는데, 했다고 확신(확인은 불가능하니 그냥 확실히 믿는 것)할 근거가 있느냐는 것이다. 학창 시절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너 그렇게 생각했지?’라고 단정할 때, 실제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무척 억울했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다. 그때 내가 그런 생각을 안 했다는데, 자기들 마음대로 그랬다고 단정해 처벌받았을 때의 분통함을 기억한다면, 왜 법률제도가 이렇게 만들어졌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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