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호

의료의 질 저하? 환자 선택권 박탈?…문제는 ‘돈, 돈, 돈’

의협이 포괄수가제를 반대하는 진짜 속내는?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12-06-20 16:4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의료의 질 저하? 환자 선택권 박탈?…문제는 ‘돈, 돈, 돈’

    대한의사협회(회장 노환규)는 5월 22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포괄수가제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의사들이 단단히 성이 났다. 아니 정확하게는 대한의사협회(회장 노환규)가 화가 났다. 의료정책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를 탈퇴한 데 이어 대규모 결의대회를 열더니 이젠 수술조차 거부한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정부가 7월 1일부터 국내 모든 병원과 의원에서 ‘포괄수가제’를 전면 실시키로 한 데 따른 반발이다. 일부 언론에선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일어났던 의료대란(의사파업)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의협의 맹공 앞에서도 보건복지부는 의약분업 때와는 반응이 완전히 다르다. 조금은 여유가 있어 보인다. 오히려 “의사들의 수술 거부는 명백한 불법 행위다. 강력한 법적 제재를 가하겠다”고 벼른다. 현행 의료법 15조는 ‘의료인은 진료나 조산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해당 규정을 어길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포괄수가제’, 말이 너무 어렵다. 포괄은 뭐고 또 수가는 무엇인가. 수가는 어떤 질병을 치료한 데 대해 정부나 개인이 병의원에 지불하는 금액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진료비를 포괄적으로 병의원에 내는 제도쯤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언제는 안 그랬나? 일반 환자들은 지금껏 병의원으로부터 전혀 해독이 불가능한 청구서를 받은 뒤 ‘포괄적으로’ 진료비를 내왔다. 무엇에 얼마가 들었는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못했다. 행여나 밉보일까봐.

    7개 수술에만 실시

    의료의 질 저하? 환자 선택권 박탈?…문제는 ‘돈, 돈, 돈’

    독일의 한 병원 내부. 독일은 2003년 시범사업에 이어 2004년부터 정신과 진료와 특수병동을 제외한 모든 입원진료에 포괄수가제를 도입했다.

    포괄수가제는 수정체수술(백내장수술), 편도수술, 충수절제술(맹장염수술), 탈장수술, 항문수술(치질수술), 자궁적출술(자궁근종, 난소 혹 제거술 포함), 제왕절개술 등 7가지 질환군 수술에 대한 입원진료비를 정부가 미리 정한 가격만 내게 하는 일종의 ‘입원비 정찰제’다. 영어로는 ‘Diagnosis Related Group Payment System’으로 진단명 기준 환자군 지불제도로 번역되지만 의료계에선 통칭 ‘DRG’로 부른다. 치료과정이 비슷한 입원환자를 한 묶음으로 분류해 일련의 치료행위를 합쳐 하나의 가격을 매기는 의료비 지불 방식이다.



    1997년 2월부터 2001년 12월까지 5년간 4차례에 걸쳐 시범사업을 했고, 2002년부터는 선택하는 병의원에 한해 적용해왔지만 환자들은 자신이 포괄수가제 병의원에서 치료를 받았는지 잘 모른다. 이 제도는 감기나 배탈 등 일반적인 외래 진료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우리 생활 속에서 흔히 하게 되는, 앞서 나열한 7개 질병군 수술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수가 제도다. 현재까지는 그렇다.

    포괄수가제 아래에서는 진찰, 검사, 처치, 주사, 입원 등 치료과정에 투입되는 각각의 의료 서비스에 대해 비용을 따로 계산하지 않고 정부가 정한 가격으로, 속된 말로 퉁 쳐서 한방에 내면 끝이다. 환자가 아무리 많은 검사를 받고, 수술을 여러 번 하고, 입원 일수가 많아도 진료비를 더 내지 않는다. 병원 입장에선 아무리 많은 의사를 투입하고, 검사를 자주 하고, 고급 재료와 최첨단 의료장비를 썼다 하더라도 돈을 더 받을 수 없다. 그래서 병의원 측은 꼭 필요한 치료행위만 하게 된다. 진료를 더하면 할수록 손해가 나기 때문이다.

    반면, 행위별수가제는 ‘Free for Service’라는 영어명에서 알 수 있듯, 진료 행위 하나마다 따로 가격을 매겨 계산하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의사가 진찰을 자주 할수록, 검사를 많이 하면 할수록, 붕대나 거즈를 많이 쓰면 쓸수록, 수술이나 처치를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그만큼 돈을 더 내야 한다. 병의원에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받는 모든 서비스에 일일이 가격이 매겨진다.

    이 행위별수가제는 1977년 의료보험제도 도입 이후부터 지금껏 쓰고 있는 지불방식으로 7월 1일 이후에도 7개 질병군 수술 외의 모든 질병군에 그대로 적용된다. 이때 환자가 내는 진료비용은 각 진료행위 곱하기 받은 횟수의 총합이 된다. 이런 점에서 행위별수가제는 의료서비스가 행해진 만큼 소비자가 돈을 지불한다는 점에서 좀 더 자본주의적이고 정확한 계산법이라고 할 수도 있다.

    환자부담 평균 21% ↓, 총진료비 평균 18% ↑

    하지만 행위별수가제에 대한 보건복지부와 시민단체의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다. 진료행위량을 늘리면 늘릴수록 의사의 수입이 늘어나는 행위별수가제 아래에서는 병의원이 꼭 필요한 만큼을 넘어서 과잉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로 인해 불필요한 진료행위만큼 건강보험재정이 낭비되고 환자와 그 가족의 호주머니는 얇아지며, 쓸데없는 검사로 인한 방사선 과다노출, 항생제 오남용의 가능성이 커져 종국에는 환자의 건강에도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복지부는 이번 포괄수가제 도입으로 환자의 입원진료비 부담이 평균 21% 줄어든다고 밝혔다. 7월 1일 이전에 100만 원을 주고 수술을 받은 환자라면 7월 1일 이후에는 평균적으로 79만 원만 내면 된다는 얘기다. 질환별로 환자부담금이 줄어드는 폭은 제각각으로 탈장수술(-27%), 제왕절개술(-25.7%), 백내장수술(-25.4%), 치질수술(-15.1%), 편도수술(-11.2%), 맹장수술(-8.9%) 등의 순이다.

    예를 들어 6월에 기존 행위별수가제 아래에서 환자부담금 명목으로 30만 원을 주고 탈장수술을 한 환자는 7월에는 8만1000원 싼(-27%) 21만9000원만 내면 된다. 복지부는 이렇게 줄어든 환자부담액이 연간 1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환자부담액이 이처럼 줄어든 것은 행위별수가제에서 환자부담금으로 잡혀 있던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 가운데 평균 20%가량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험급여로 전환해 부담키로 한 데다 그간 병의원에서 환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뤄졌던 불필요한 진료행위(과잉진료 부분)를 총 진료비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환자부담금은 이처럼 줄어든 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병의원에 지불해야 할 보험자부담금, 즉 보험급여 수가는 대폭 늘어났다. 포괄수가제가 되면서 보험자부담금이 지불 총액 평균 기준으로 34.5%나 인상됐다. 복지부는 이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에 추가 투입돼야 할 돈이 198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보험급여 수가가 이처럼 늘어난 이유는 환자가 내야 할 비급여 항목 중 20%를 공단이 책임지기로 한 데다 물가상승률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보험급여 인상분도 환자부담금처럼 수술마다 차이가 크다. 자궁적출술이 46.4% 인상된 데 반해 백내장수술은 0.4% 인상에 그쳤다. 제왕절개술 40.0%, 맹장수술 24.4%, 편도수술 17%, 치질수술 15.1%, 탈장수술 8.7% 순이다.

    환자부담금이 줄어든 것보다 보험자부담금 증가폭이 크다보니 7개 수술에 대해 각 의료기관이 받아가는 총 진료비(총수가=환자부담금+건강보험부담금) 평균은 오히려 18% 늘었다. 복지부의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병의원 측도 손해 볼 게 없다. 문제는 환자부담금이 크게 내린 데 반해 보험자부담금, 즉 보험급여가 그만큼 오르지 않은 백내장수술과 탈장수술이다. 자궁적출술(25%), 제왕절개술(19%), 맹장수술(16%), 편도수술(10%), 항문수술(7.48%) 순으로 총 진료비(총수가)가 증가한 반면, 백내장수술은 오히려 6.0% 줄었고, 탈장수술은 0.98% 감소했다. 복지부는 포괄수가제와 행위별수가제로 각각 치료받았을 때의 차이를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산모 이모 씨는 A 병원에서 제왕절개수술로 아이를 낳고 일주일간 입원해 있었다. 입원료, 식대, 마취료, 수술료 등 총 170만 원의 진료비가 발생했고, 그중 환자부담금으로 75만 원을 지불했다. 하지만 같은 시기 B 병원에서 제왕절개수술을 받은 친구 김모 씨는 총 진료비가 150만 원밖에 발생하지 않은 데다 본인이 낸 진료비는 27만 원에 불과했다.

    왜 이런 차이가 일어났을까. 이 씨가 입원한 병원은 행위별수가제를 적용하는 병원인데 반해 친구 김 씨가 찾은 병원은 포괄수가제를 선택한 병원이었기 때문이다. 포괄수가제가 적용된 김 씨의 경우는 대부분의 보험 비급여 항목이 급여로 적용돼 환자부담금이 대폭 줄어들어 있었다. 더욱이 영수증을 서로 비교해보니 이 씨의 영수증에 영양제, 빈혈제 등이 비급여 항목(환자부담금)으로 잡혀 있었다.

    정부, 환자는 대환영

    복지부는 포괄수가제를 전면 실시하면 진료비 거품이 없어지면서 환자 측이 물어야 하는 진료비 부담이 확 줄고 항생제 오남용과 과잉검사를 줄여 환자의 건강권도 담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리베이트 관행도 일부 감소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환자나 가족은 병원비 예측이 가능해져 가계지출 계획을 세우는 데 좋고, 병의원도 꼭 필요한 진료만 하게 됨은 물론, 들인 비용에 비해 효과가 좋은 재료나 서비스를 선택함으로써 그만큼 이익을 늘릴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렇게 되면 병원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진료비의 적정성을 두고 서로 감정 상하도록 싸우는 일도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는 게 복지부의 생각이다.

    복지부의 설명대로 된다면 의료소비자인 환자 측에선 포괄수가제가 전혀 나쁠 게 없다.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 당장 줄고 의료비 지출을 예상할 수 있으며 바가지요금까지 막을 수 있다니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다. 거기다 건강권까지 담보된다니 더욱 좋다. 정부도 대환영이다. 환자부담금이 줄면 전체 의료비 지출이 줄고 과잉진료에 따른 급여누수를 막아 시일이 흐르면 보험재정 안정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포괄수가제를 실시하면 1년 후 의료비 지출을 가늠할 수 있어 정책대응이 쉬워진다. 이와 관련해 2009년 충북대와 서울대산학협력단이 그동안 포괄수가제를 선택해온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만족도를 설문조사한 결과, 만족 또는 매우 만족한다는 답변이 96%에 달했다. 행위별수가제는 87%였다.

    그런데 5월 1일 새롭게 출범한 제37대 의협(회장 노환규)은 이미 2월 15일 전임 집행부가 포괄수가제 전면 실시를 합의한 건정심에 참여했음에도 뒤늦게 건정심의 위원 구성을 문제 삼아 “의협은 포괄수가제에 합의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27명의 위원 중 의사단체를 대변하는 사람이 3명밖에 없어, 반대를 했으나 수적 우세에 밀려 잘못된 결정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결국 의협은 5월 24일 건정심 탈퇴를 선언했다. 건정심은 못 믿겠으니 장외에서 실력행사를 하면서 국민과 직접 대화를 하겠다는 것이다.

    “의사 양심 빼앗고 부작용 속출”

    의협이 포괄수가제를 반대하며 내세우는 가장 큰 이유는 의료의 질 저하와 의사와 환자의 선택권 무시, 신기술의 발전 저해 등이다. 즉 복지부의 총 진료비 인상률로는 정상적인 치료행위를 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의협은 “포괄수가제로 총 진료비를 고정시키면 의사들은 재료비와 검사료, 치료비를 아끼기 위해 노력하고 환자가 퇴원하기에 아직 불안한 상태인데도 조기퇴원을 강요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필요한 검사나 치료를 생략할 수도 있고, 싸구려 의료품을 사용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도 덧붙인다.

    더욱이 “신기술이 개발돼도 사용할 수 없으며 진료비를 많이 내더라도 좀 더 쾌적하고 통증이 적으며 미용적인 방식의 고급 수술을 원하는 환자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게 의협의 호소다. 의협은 포괄수가제를 “국민을 실험용 쥐로 만들고 의사에겐 전문가적 선택권을 빼앗아가며 양심을 팔아먹게 하는 제도”라고 비판한다. 다음은 의협이 포괄수가제가 전면 실시될 경우 과별로 일어날 수 있다고 밝힌 부작용 사례다.

    안과의 백내장 수술(총 진료비 -6%) : 최근에 개발된 인공수정체 대신 10년 전 쓰던 인공수정체를 삽입함으로써 수술할 때 절개해야 할 부위가 커진다. 따라서 입원 일수가 증가하고 환자의 사회복귀가 지연될 수 있다. 원가 보상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서 최신 재료를 사용해 수술의 질을 높이고 입원 일수를 줄일 필요가 없다. 또한 수술 절개 부위를 작게 하기 위해선 고가의 정밀기계를 사용해야 하지만 대도시 이외 지역이나 수술 건수가 많지 않은 곳은 수술 자체를 포기하거나 예전 방식으로 절개 부위를 크게 할 수밖에 없다.

    산부인과 제왕절개술(+19%) : 수술 중 간혹 과다출혈 상황이 발생하는데 자궁을 보존하면서 지혈을 하려면 풍선확장술이나 자궁동맥색전술을 사용해야 하지만 병원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하에선 아예 자궁 자체를 들어내버리는 소극적 진료밖에 할 수 없다.

    산부인과 자궁부속기 수술(+25%) : 복강경(수술도구가 달려 있는 일종의 내시경)으로 배에 작은 구멍을 내고 자궁근종만 제거하는 수술을 해야 하지만 비싼 재료가 많이 들어가 아예 배를 절개하는 수술을 하거나 자궁 전체를 들어내는 수술이 진행될 가능성이 커진다. 난소에 난 혹을 제거할 때도 혹만 제거해야 하지만 비싼 재료 문제로 난소 전체를 제거하는 수술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또한 장기끼리 들러붙는 유착을 방지하기 위해 유착방지제를 써야 하지만 비용 문제로 사용을 꺼리게 된다.

    이비인후과의 편도수술(+10%) : 비용절감을 위해 전신마취보다 국소마취를 하는 경우가 증가하는 데다 진통제 사용을 줄여 환자의 통증이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출혈이 없으면 당일 퇴원을 시켜 수술 후 환자의 불편과 통증은 더욱 커진다. 코블레이터 편도 절제술과 같은 신의료 기술이 사장될 우려도 있다

    시민단체 “이러고도 의사 양심 운운?”

    의협은 포괄수가제를 일정한 돈을 내고 음식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뷔페식당에 비유하면서 “좋은 재료를 사용해 맛있는 음식을 내놓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비용을 들여야 하는데 원가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으면 좋은 재료와 기술을 사용할 수 없고 결국 요리는 맛이 없어져 뷔페식당은 망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복지부와 의협이 의료 서비스 질 하락을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지만, 의협이 수술 거부라는 극단적 처방을 들고 나온 궁극적 이유는 결국 ‘돈 문제’다. 복지부가 전체적으로 인상됐다고 발표한 총 진료비, 즉 총수가가 행위별수가제하에서 의사들의 주머니에 들어왔던 실제 수입보다 터무니없이 적다는 항변인 것이다. 안과의사회가 유독 따로 성명을 내고 수술 거부를 최초로 발표하는 등 포괄수가제에 극렬 반대하고 나서는 이유도 결국 다른 수술의 총수가가 오른 데 반해 백내장만 유독 총수가가 6% 줄어든 게 결정타였다. 그래서 일부 의사들 사이에서는 “복지부가 총수가를 조금이라도 더 인상해주면 이 지루한 공방은 금세 끝이 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복지부는 “이미 건정심의 합의가 있었고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6월 5일)했기 때문에 올해 내 추가 인상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의료의 질 저하? 환자 선택권 박탈?…문제는 ‘돈, 돈, 돈’

    2000년 의료대란(의사파업) 당시 거리로 뛰쳐나온 의사들. 2월, 4월, 6월의 파업으로 엄청난 혼란이 빚어졌다.

    오랜만에 정부와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의료시민단체 측은 “의협이 말도 되지 않는 논리로 억지를 부리고 있다. 결국 그 목적은 수가를 더 받아내려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15년간에 걸친 시범실시, 선택실시로 포괄수가제가 의료의 질 저하가 없고, 환자만족도는 높다는 점이 증명됐는데도 (의협이) 수가를 조금 더 높게 받기 위해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게 시민단체 측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보건사회단체연합 우석균(의사) 정책실장은 “이번 의협의 태도야말로 의료를 상품화하고 있는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월과 2월 건정심에서 의협도 포괄수가제 전면 실시에 분명히 합의했다. 어느 과의 수가를 조금 줄이고 늘릴 것인지를 비롯해 전체 인상률에 대한 논의도 같이 했다. 그런데 5월 새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합의를 뒤집었다. 비용이 많이 든다고 어떻게 환자가 통증이 심한데 진통제를 적게 쓰고, 조기퇴원을 시키고 신기술을 안 쓴다는 말이 나오나. 그러고도 의사의 양심 운운하는 게 말이 되나. 15년 시범실시, 선택실시 상황에서 그들이 말하는 포괄수가제 부작용 우려 사례는 단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의협은 2000년 의사대란 당시, ‘울면 떡 하나 더 받는다’는 걸 배웠다. 이번 역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선택실시에서 부작용 없음 검증”

    사실, 의협의 주장에는 논리상 빈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우선 의협은 소속 회원 의사 대부분이 포괄수가제 반대 대열에 동참한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2011년 말 현재 기준 총 3282개 의료기관 중 71.5%인 2347개 기관이 이미 포괄수가제를 선택하고 거기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의협의 주요 구성원인 의원급의 경우에는 총 2511개소 가운데 83.5%인 2096개소가 포괄수가제를 운영 중이다. 나머지 415개 의원만 동참하면 자동적으로 전면 확대되는 셈이다.

    더욱이 종합병원과 대학병원이 속해 있는 대한병원협회가 포괄수가제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도 의협의 실력행사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들 상급 병원은 비록 내년 7월 1일 포괄수가제가 전면 실시되지만, 진료비 산출과정이 단순화, 효율화되면서 포괄수가제를 해도 손해 볼 게 전혀 없다는 반응이다.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병원이 더 많다. 복지부가 의협의 계속된 수술 거부와 파업 압력에도 강경 일변도의 자세를 보이며 큰소리를 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만약 의협 소속 대다수 의사가 7개 질병군에 대해 수술 거부나 그 이상의 파업행위를 하더라도 상급 병원들이 응급센터나 진료센터를 확대운영하면 2000년 의사파업 때와 같은 혼란은 피할 수 있다.

    의료의 질 저하와 환자의 선택권 박탈 부분도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이미 포괄수가제를 일찌감치 시작한 유럽과 미국(공보험 메디케어)에서도 진료과정과 결과에서 질적 저하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올해 초 발간한 ‘한국 의료의 질 검토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급격한 의료비 상승을 억제하고 의료체계의 효율성을 키우기 위해 포괄수가제를 전체 병원으로 확대하고 가능한 한 많은 서비스를 포괄수가제의 대상으로 할 것’을 주문했다.

    1997년 2월부터 2001년 12월까지 실시된 포괄수가제 시범실시와 이후 올 6월 30일까지 실시된 포괄수가제 선택적용 상황 속에서 의협이 주장하는 부작용 사례들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부작용의 한 지표로 사용되는 재입원율은 행위별수가제 병의원과 포괄수가제 병의원 간에 차이가 거의 없었다. 항문 및 항문 주위 수술에서만 포괄수가제 실시 병원 재입원율이 0.2% 포인트 높게 나왔을 뿐 다른 6개 질병군은 행위별수가제 병의원보다 오히려 재입원율이 낮게 나타났다.

    신기술을 적용하지 않는다거나 환자의 선택권을 박탈할 수 있다는 부분도 의료관행에 비춰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포괄수가제를 선택했던 병의원에서 자궁적출술이나 자궁근종, 난소 혹 제거술, 맹장수술 등을 하면서 복강경수술을 외면한 곳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한 환자의 불만사례도 없었다. 더욱이 정부는 이미 2002년부터 질병별 포괄수가 외에 별도로 비급여를 받을 수 있는 신의료기술 항목들을 규정하고 있다. 포괄수가 안에 포함되지 않은 신기술을 사용하려면 이 항목을 이용해 환자에게 따로 비용을 청구하면 된다.

    사실, 일반 환자들은 자신이 어떤 수술을 받았는지 어떤 진통제가 쓰였는지 알 수 없다. 의료행위는 전문 영역이라 환자에게는 실질적으로 선택권이 있을 수 없다. 다만 수술 후 평가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어느 병의원이 좀 더 통증이 적고 흔적 없이 예쁘게 수술을 하며 합병증이나 후유증이 없다는 정도다. 진료비가 동일하다면 환자들은 입 소문이 난 병의원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 그게 시장경제 체제에서의 냉혹한 룰이다. 의협의 비유를 빗대 설명하자면 비슷한 가격대의 뷔페식당이 어떤 곳은 망하고 어떤 곳은 흥하느냐는 전적으로 음식의 맛과 서비스에 달렸다는 말이다.

    고가 진단기기 ‘왕국’의 슬픔

    만약 의협이 포괄수가제 전면 실시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굳이 홍보하려면 지난 15년간 포괄수가제를 실시해온 기관들에서 발생한 부작용의 실제 사례를 증거로 제시해야 한다. 주목할 사실은 그간 선택 적용에 참가한 의료기관들이 7월 1일 전면 실시 때보다 더욱 적은 수가를 받고도 지금껏 불만 없이 지내왔다는 점이며 포괄수가제 실시 병의원에 대한 환자의 고발사례가 드러난 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입에서 “지금까지 가만히 있다 의협이 갑자기 왜 저러느냐”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적 의료 진단기기 제조회사들은 “한국의 병의원이 최고의 고객”이라고 대놓고 말한다. 서울 강남지역에는 조금 과장해 100m에 하나씩 CT와 MRI를 갖춘 병원이 있다. 국가가 대형병원을 장악한 유럽이나 민간보험이 대세인 미국에서는 꿈도 못 꿀 이야기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1인당 보건의료비 지출 상승률이 가장 높은 나라다.

    의료의 질 저하? 환자 선택권 박탈?…문제는 ‘돈, 돈, 돈’
    요즘 병의원에만 가면 의사들로부터 듣는 얘기가 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CT 또는 MRI를 찍어보자고 한다. 보험급여 지급률이 높은 CT보다 비급여 대상 항목이 많은 MRI를 권하는 의사가 더 많다. 그 모든 상황이 정말 CT 또는 MRI를 찍어야 했던 것일까? 방사선 (X-ray)만으로도 병명을 척척 알아냈던 옛 의사들은 정말 ‘신의(神醫)’였단 말인가. 이제 의료소비자인 환자들은 적어도 포괄수가제가 전면 실시되는 7개 수술에 대해선 이런 의구심을 가지지 않게 됐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