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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연재/허용선의‘지구촌 건축기행’

프랑스 ‘몽 생 미셸’

聖 미카엘의 전설 간직한

  • 사진/글 ·허용선 여행 칼럼니스트 yshur77@hanmail.net

프랑스 ‘몽 생 미셸’

프랑스 ‘몽 생 미셸’

바다에서 바라본 ‘몽생미셸’.조수간만의 차가 심해서 갯벌에 있던 사람이 익사하는 사고가 종종 발생하는 곳이다.

프랑스의 북서부 노르망디(Normandie) 반도에 있는 ‘몽생미셸(Mont Saint Mi-chel)’은 한마디로 신비스럽다. 고속철 TGV를 타고 파리를 출발해 렌(Renne)역에서 내린 뒤 다시 한 차례 기차와 택시에 몸을 실어 도착한 몽생미셸은 내게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준 건축물이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거대한 요새와 같은 몽생미셸의 자태는 적지 않은 흥분감을 전해줬다.

몽생미셸은 ‘聖 미카엘(St. Michael)의 산(山)’이라는 뜻이다. 처음에는 초라한 목조 건물이었으나, 프랑스 왕과 노르망디 공국 (Normandie dukedom)의 도움으로 거의 1000년 동안 증축을 거듭해 오늘날과 같은 장관을 갖게 됐다.

몽생미셸이 있는 자리는 원래 ‘시시(Foret de Sissy)’라는 울창한 숲의 한 부분이었다. 갑자기 밀어닥친 해일과 오랜 시간 계속된 자연의 침식 작용으로 숲은 사라지고 바닷가에 위치한 섬으로 남았다. 멀리서 볼 때 견고한 성채(城砦) 같은 건물은 16세기에 건립된 수도원이다. 조용하고 외딴 지역이라 수도승들이 속세와 인연을 끊고 수도(修道)하기에 좋은 장소였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몽생미셸의 입구에 들어서면 ‘왕의 문(Porte de Roi)’이란 견고한 문이 나타난다. 이 문을 지나 좁은 비탈길을 따라 올라가 보면, 중세시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집들과 선물 가게·호텔·레스토랑 등을 만날 수 있다. 원래는 수도승들이 포도주를 마시던 술집, 잡화 가게들이 있던 곳이다. 언덕길의 돌바닥은 그동안 이곳을 지나간 수많은 사람의 발길로 닳아 반들거린다.

15분 정도 천천히 오르면 성채와도 같이 견고하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수도원을 발견하게 된다. 이 수도원은 16세기에까지 이르는 대공사를 거쳐 오베르 주교(主敎)가 세운 성당 자리에 세워졌다. 수도원 주변에는 꼭대기에 대천사 미카엘 동상을 모신 성당을 비롯해 여러 석조 건축물이 있다. 3층짜리 고딕식 수도원의 내부는 미로처럼 꾸며져 있어 표지판이 없으면 처음 간 사람은 길을 잃기 쉽다. 수도원 문을 지나면 돌층계가 있고, 1·2층에는 순례자를 보살피던 방과 귀빈들을 접대하던 귀빈실, 기사의 방 등 여러 개의 방이 만들어져 있다.

聖미카엘의 산(山)

3층에는 보기 좋은 정원이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높은 곳에 꽃들이 만발한 정원이 있다는 것이 신비스럽게 여겨진다. 창문으로는 노르망디 해안이 한눈에 들어온다. 또 3층의 회랑(回廊)은 다양한 종교적 주제를 소재로 조각된 127개의 돌기둥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돌기둥의 건축미 또한 돋보인다.

몽생미셸의 역사와 전설은 신비감을 더해주기에 충분하다. 708년 오베르 주교가 이 일대를 다스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꿈속에서 대천사 성(聖) 미카엘(생 미셸)을 만난다. 미카엘 대천사는 “커다란 돌이 있는 곳에 성당을 세우라”고 말한다. 오베르 주교는 바위 위에 성당을 세우라는 미카엘 대천사의 말에 의아심을 갖고 공사에 착수하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미카엘 대천사는 세 번째 꿈에 나타나서 손가락으로 오베르 주교의 머리에 강한 빛을 비췄다. 전설 같은 이야기이지만 오브랑슈의 박물관에 구멍 난 오베르 주교의 해골이 전시돼 있는 것을 보면 꾸며낸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또 이웃 마을에서 잃어버린 소가 몽생미셸 바위 위에서 발견되는 이상한 사건들이 벌어지자 사람들은 드디어 성 미카엘의 계시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바위를 깎아 토대를 만들고, 이탈리아의 몽테가르가노(Monte Gargano)에서 화강암을 가져와 미카엘을 기리기 위한 성당을 지었다.

몽생미셸은 966년 노르망디를 지배하던 리처드 1세 공작이 베네딕트 교단의 수도원으로 지정했다. 그 후 백년전쟁(1338~1453) 때에는 요새로, 프랑스대혁명 당시에는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지금은 이름난 관광지이자 조용한 수도원이다. 프랑스 정부 입장에선 이곳이 단지 폐쇄된 성당이나 수도원으로 사용되는 것보다는 지금처럼 한 해 250만 관광객이 찾는 관광 명소로 부각되는 것이 수익이나 지역사회 발전 면에서 모두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다.

몽생미셸은 처음에는 성당만 세워졌으나, 11세기와 15세기에 수도원 등 중후한 석조 건축물이 많이 축조됐다. 8세기에 시작된 공사는 1000년 동안의 증축을 통해 오늘날과 같은 매력적인 광경을 자랑하게 된 것이다. 80m 바위 위에 솟아 있는 성당 꼭대기까지의 높이는 157m. 아래서 올려다보면 육안으로는 성당의 첨탑 꼭대기에 있는 성 미카엘의 금빛 동상을 제대로 보기 어렵다.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 왼손에는 방패를 들고, 발밑에는 죽은 용이 있는 성 미카엘의 모습은 흥미롭다.

프랑스 ‘몽 생 미셸’
1‘몽생미셸’ 내부 정원.

2‘왕의 문’ 부근에 있는 거대한 대포.

프랑스 ‘몽 생 미셸’
3 수도원 건물 꼭대기에는 대천사 미카엘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4 미로와 같은 수도원 내부의 방.

5 석조건물인‘몽생미셸’에는 곳곳에 돌계단이 있다.

프랑스 ‘몽 생 미셸’

‘왕의 문’ 밖에는 지금도 중세시대 모습을 간직한 거리가 남아 있다(좌). ‘몽생미셸’의 문을 여닫을 때 쓰이는 대나무통. (우)

프랑스 ‘몽 생 미셸’
허용선

1953년 서울 출생.

중앙대·고려대 대학원 졸업(이하 석사)

전국대학미전 문교부장관상, 서울올림픽 보도관련 체육부 장관상, 2005년 출판문화상

사진가 겸 여행칼럼니스트, 사진 개인전 7회 개최

저서 : ‘지구촌 축제기행’(예담) 등

신동아 2009년 3월 호

사진/글 ·허용선 여행 칼럼니스트 yshur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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