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INES가 정의하는 ‘등급 3’ 이상의 사고가 단 한 번도 발생하지 않은 나라이다. 한국 원전은 콘크리트 격납용기를 갖추어 최악의 순간에도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다. 반면 체르노빌 원전은 격납용기가 아예 없었던 데다 가연성 물질인 흑연을 사용했기에 원자로에 장전한 핵연료가 녹아버리는 ‘등급 7’의 초대형 사고를 맞았다.
사고 직후 구소련 체르노빌 원전 4호기의 광경.
이 영화는 핵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을 때 특종을 노리는 킴벌리라는 여기자가 카메라맨 리처드와 함께 취재차 원자력발전소를 방문했다가 심각한 사고를 당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들은 원자력발전소의 엔지니어인 잭 가델에 의해 간신히 위험을 모면한다.
킴벌리 기자는 이 사건을 보도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곧 이를 숨기고자 하는 음모 세력에 의해 사건이 은폐될 위기에 처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킴벌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히 취재해 사건의 전모를 파헤친다.
영화 ‘차이나 신드롬’은 허구에 불과하지만 원자력 사고는 대형 참사를 불러일으키고 당국에서는 이를 숨기기 위해 온갖 조치를 다 취한다는 선입관을 관객에게 심어준다.
그러나 원자력발전소측이나 원자력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부인한다. 원자력발전소에서는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또 원자력발전소에서는 대형 사고 발생률이 매우 낮으며, 설령 사고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절대로 대형 참사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다.
‘등급 3’까지는 ‘사고’ 아닌 ‘고장’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원자력과 관련된 사고와 고장을 일반인에게 정확하게 알리고자 원자력의 사고와 고장등급의 분류 체계를 만들었다. 객관적인 분류 체계를 도입함으로써 원자력의 투명성을 높이고 원전 사고에 대한 언론과 대중의 이해를 구한 것이다.
국제원자력기구의 제안은 경제협력개발기구 산하 원자력국의 동의를 얻어 1992년부터 전세계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INES(International Nuclear Event Scale)로 불리는 ‘국제 원자력 사고 및 고장등급체계’는 아주 경미한 고장을 등급 0으로 하고 등급 1, 등급 2의 순서로 점차 올라가, 가장 심각한 대형 사고를 등급 7 로 분류했다.
등급 0에서 등급 3까지는 사고라기보다 고장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등급 4에서 등급 7까지는 일반적인 의미의 원전 사고에 해당한다.
위 표에서 보듯이 등급이 높을수록 사고 정도가 심각하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구(舊)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등급 7 에 해당한다. 그리고 1979년 일어난 미국의 스리마일 섬(TMI) 원전 사고는 등급 5 로 분류되고, 1999년 일본에서 발생한 JCO(일본 핵연료 변환 회사)의 핵 임계(臨界) 사고는 등급 3으로 사고가 아니라 심각한 고장으로 분류된다.
우리나라에서는 1994년 국내 최대의 원전 사고로 보도된 월성 1호기 중수(重水) 누출 사고가 가장 등급이 높은데, INES의 등급 분류에 의하면 등급 2에 속해 사고가 아니라 고장에 해당한다.
원자력 시설을 보유한 전세계 59개국은 ‘국제 원자력 사고 및 고장 등급체계’ 따라 발생한 사고와 사건을 신속하게 국제원자력기구에 통보하도록 되어 있다. 특히 일반 대중의 관점에서 볼 때 중요한 사건은, 24 시간 이내에 IAEA에 통보하게 하여 INES 참여국이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였다.
INES의 국제 원자력 사고 및 고장 등급체계 <br>*실제 발생 사고나 고장은 국제원자력 등급체계 사용 이전에 발생한 것이지만, 만일 INES 기준을 적용한다면 그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한 것임.
설계 취약과 운전원의 실수
INES 등급 7에 속하는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돌아보자. 체르노빌에는 소련에서 설계해서 소련에서만 가동되는 RBMK라고 하는 소련형 가압경수로 4기가 있었다. 서방 세계의 가압경수로는 물을 이용해 핵분열을 일으키는데, RBMK는 가연성(可燃性) 물질인 흑연을 이용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 원자로는 전기를 생산하면서 핵무기의 원료(플루토늄)도 함께 만들어내는 구조이기 때문에 원자로 고유의 안전성이 크게 떨어졌다. 게다가 RBMK형 원자로는,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을 담보하는 최후의 보루인 격납(格納) 용기도 갖추지 않았다.
격납용기는 원자로에 최악의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방사성 물질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밀폐하는 거대한 콘크리트 용기이다. 격납용기를 건설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소련은 이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 체르노빌 원전에 격납용기를 설치하지 않았다.
체르노빌 원전측은 1986년 4월25일 4호기를 정기 점검하기 위해 정지시킬 예정이었다. 그런데 4호기를 정지하기 전에 간단한 실험을 하기로 하였다. 비상 전력 확보에 관한 실험이었는데, 이는 그리 어려운 실험이 아니었다. 실험 절차서에 따라 쉽게 수행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험과정에서 운전원들은 안전상의 주요한 절차를 위반했다. 그들은 원자로를 정지시키지 않고 실험을 반복할 생각으로, 원자로에 이상이 발생하면 자동적으로 원자로를 정지시키는 비상정지계통을 끊어버렸다. 쉽게 설명하자면 자동차의 브레이크를 떼어내고 주행 테스트를 한 셈이다.
임계 사고가 발생한 일본 JCO회사.
두 번의 폭발로 고온의 방사능 파편과 불타는 흑연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파괴된 원자로가 공중에 노출됐다. 방사능 구름이 1km 상공까지 치솟았다. 원자로 내부에 있던 가연성 물질인 흑연은 계속 타올랐다. 소방대원들이 투입되었지만 불길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사고 발생 열흘째에야 비로소 화재가 진압됐지만 방사성 물질은 사고 발생 20일째까지 계속 방출되었다. 이 기간에 바람의 방향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우크라이나 북부, 벨로루시의 고멜 지역, 그리고 러시아의 칼루가 등지로 방사능이 날아갔다. 방사성 물질은 바람을 타고 더 멀리 날아가 벨기에, 네덜란드, 영국, 및 스칸디나비아 반도 등지로 퍼졌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직후 31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2005년까지 19명이 방사선 후유증으로 추가로 사망했다. 여기에 갑상선암으로 사망한 어린이 9명을 포함하면 지금까지 숨진 사람은 모두 59명이다.
‘체르노빌 사고 후 20년’ 이라는 제목의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이 사고로 인한 방사선 후유증으로 앞으로 3940명 정도가 죽을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이는 사고 현장 복구 관련자와 인근 주민 등 방사선을 상당히 많이 쐰 60만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이다.
서구 원전 안전성 보여준 TMI
일반인은 60만명 가운데 15만명 정도가 암으로 사망한다. 그렇다면 체르노빌 사고의 방사선으로 인한 총 사망 예상자 4000명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암 사망자 15만명의 3% 내외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정도의 사망률 증가는 통계적으로 볼 때 의미 있는 숫자가 아니다.
TMI 원전 사고는 1979년 3월28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해리스버그 시 인근의 스리마일 섬(Three Mile Island)에 있는 90만 kw짜리 원전 2호기에서 일어났다. 그날 오전 4시경, 운전 중이던 펌프 한 대가 고장나 증기발생기의 열이 식지 않자, 터빈과 원자로가 자동으로 정지되었다.
곧 수증기 압력이 높아졌다. 압력이 너무 높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밸브가 열렸다. 문제는 이 밸브가 고장난 데서 비롯됐다. 이 밸브는 다시 닫혀야 하는데 계속 열린 상태로 있는 바람에 원자로 속의 물이 밖으로 빠져나가, 원자 노심(爐心)이 과열되었다.
그리하여 원자로 속의 뜨거운 열이 핵연료를 녹여버렸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한마디로 TMI 원전사고는 기기의 오작동과 운전원의 실수가 겹친 작은 사건이 연달아 일어남으로써 발생한 사고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공산권에서 일어난 최악의 원전사고라면 TMI 사고는 서방 세계에서 일어난 최악의 원전 사고였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나 미국의 TMI 원전 사고 모두 방사능의 원천인 원자로 속의 핵연료가 녹아내렸다.
그러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INES 분류 체계에 의한 등급 7의 대형 사고로 기록되고, 미국의 TMI 사고는 그보다 낮은 등급 5로 분류되었다. 왜 이러한 차이가 발생한 것일까. 미국의 TMI 원전에는 격납용기가 설치되어 있어 주변 환경에 방사능이 거의 유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고 후 미국의 원자력규제위원회와 환경청, 보건복지부 등 관련 기관에서 방사선학적 상세 조사를 했다. 그 결과 인근에 살고 있던 200여만명의 주민이 쐰 평균 방사선량은 0.01밀리시버트 정도로 무시할 만한 수준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환경에 미친 영향도 거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일본 JCO의 임계 사고
일본에서 발생한 사고도 살펴보자. 1999년 9월30일 이바라키(茨城)현 도카이무라(東海村)에 있는 ‘일본 핵연료 변환 회사(JCO)’ 의 우라늄 가공 공장에서 ‘임계 사고’가 발생했다. 임계 사고란 핵물질이 걷잡을 수 없이 분열하는, 말하자면 초소형 핵폭탄이 터지는 것과 비슷한 사고를 말한다.
JCO 공장은 농축 우라늄을 정제해 이산화우라늄(UO2)을 제조한다. 사고 당시 JCO 공장에서는 고속증식로인 ‘조요(常陽) 원자로’에 사용할 농축도 18%짜리 우라늄 핵연료의 정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작업을 할 때는 우라늄의 모양과 무게에 여러 가지 제한을 두어, 임계 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한다. 규정에는 정제 작업을 위해 허가된 실험탑(실험기구의 일종)을 이용해서 한 번에 2.4kg 이하의 우라늄 용액을 정제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JCO 직원들은 사고 전날부터 규정을 어겼다. 우라늄을 녹이기 위해 허가된 설비를 사용하지 않고, 작업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용량이 큰 스테인리스 용기를 사용했다. 또 그들은 규정에 명시된 정량인 우라늄 용액 2.4kg보다 여섯 배나 많은 16kg의 우라늄 용액을 한군데에 집어넣었다.
이때가 9월30일 오전 10시30분경이었고 작업자들은 임계 사고 때 나타나는 푸른 빛을 보았다. 동시에 방사선 감시기가 작동해 작업자들이 현장으로부터 대피했다.
그러나 작업자 3명 중 2명은 방사선을 너무 많이 쐬어 후에(12월20일 및 이듬해 4월27일) 사망했다. 또 공장 안에 있던 다른 작업자 169명이 방사선을 쐬었으며 소방대원과 사고 처리반 사람들도 방사선을 쐬었다.
사고 후에 여러 가지를 종합 평가한 결과 반감기가 매우 짧은 방사성 가스만 방출되었고, 공장 주변의 환경 조사를 해보니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JCO 는 2000년 2월에 절차 위반 혐의로 사업 취소 명령을 받았다. JCO 사고는 INES의 사고 등급 3으로 분류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살펴보자. 우리나라는 대체적으로 산업 안전에 대해서 감각이 무딘 편이다.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 성수대교 붕괴사고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만 보아도 짐작이 간다. 그러나 원자력만큼은 다르다.
과장된 월성 1호기 사건
원자력발전소 도입 초기부터 미국의 안전 개념이 그대로 도입되어 원전의 설계, 건설 및 품질 관리 기준이 미국의 기준과 같은 수준이다. 또 원자력 규제 기관은 안전 관련법을 제정할 때 세계 각국의 법을 검토하여 우리나라의 안전 규정이 어느 나라에도 뒤떨어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따라서 원자력 안전은 선진국 못지않게 엄격하고 또 철저히 준수된다.
국정 감사가 펼쳐질 때마다 국회의원과 여러 사회단체는 원자력발전 사업자측에 각종 자료를 요청한다. 대형 원전 사고를 은폐하고 있지나 않은지 철저하게 따져보겠다는 의도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 큰 원전 사고가 없었다.
국제 원자력 사고 고장등급체계가 공식적으로 도입된 이래 우리나라에서는 분류체계상 등급 2의 일반 고장이 한 번 발생했을 뿐이다. 그리고 등급 1 의 단순 고장은 8번이 일어났고, 안전상 중요하지 않은 경미한 고장(등급 0)은 246번 발생했다. 이는 세계 6위의 원자력 발전 대국임을 고려하면 대단히 안전한 운전 기록이다.
우리나라의 유일한 등급 2의 사건은 1994년 10월20일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에서 일어났다. 월성 1호기는 우리나라에 4기밖에 없는 중수로형 원자로를 이용해 발전한다.
그날 새벽 5시경에 원자로의 열을 식히는 냉각수 계통의 한 밸브가 고장을 일으켜 열린 채로 있는 바람에 냉각수가 빠져나갔다. 그러자 원자로를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 제1안전장치와 제2안전장치가 차례차례 자동으로 작동되었다. 따라서 더 이상의 냉각수 누출은 없었지만 그 사이 약 6.5t의 중수가 누설되었다.
누설된 중수는 격납용기에 갇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했다. 격납용기의 중요성이 다시 한 번 입증된 셈이다. 월성원전 1호기는 곧바로 누설된 중수를 회수하고 고장난 밸브를 수리하여 정상으로 돌아갔다.
방사선이 주변 환경에 끼친 영향은 거의 없었고 사고 조치에 투입된 작업자 중의 일부가 삼중수소를 들이켰으나 방사선의 양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후속 조치로 고장난 밸브의 점검을 강화하고 비상용 중수를 확보해 비상운전 절차를 강화했다.
매스컴은 영광원전의 탈염수 방사능 오염 사건, 울진원전의 증기발생기 관련 사건이나 고리 1호기 증기발생기 문제 등도 보도했지만 이는 모두 안전상 중요하지 않은 등급 0 내지 1의 경미한 고장으로 분류되었다.
원전을 곱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나라 원전은 세계 최고의 이용률을 자랑하며 가장 안전하게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원전이 안전하게 운영되고 있는 이유를 찾자면 먼저 운전원의 수준 높은 자질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 운전원들의 학력 수준이나 교육 훈련 수준은 대단히 높은 편이다.
둘째로는 철저한 예방 정비 덕분이다. 고장이 날 만한 부품은 미리 찾아내 이를 사전에 교체한다.
선입관을 버려라
셋째는 운전절차를 확실하게 지킨다는 점이다. 발전소 직원들은 미리 정해진 운전절차서에 따라 운전하고 원자력안전기술원이나 과학기술부의 전문가들이 발전소에 상주하면서 발전소 운전절차가 얼마나 엄격하게 지켜지는지 감시한다. 이 세 박자가 맞아야 원전의 안전 운영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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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과 우리나라를 비롯한 서방 세계의 원전은 근본부터 다르다. 우리나라의 원전은 순수 전기 생산을 목적으로 하기에 흑연을 쓰지 않고 물을 이용한다. 그리고 최악의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격납용기를 설치하고 있다. 원자로에서 아무리 큰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격납용기가 설치돼 있으면 방사능의 외부 유출은 완전히 차단된다.
원전 사고에 대한 일반의 선입관과 우리나라의 현실은 크게 다르다. 우리나라의 원전 주변에서는 안심하고 채소를 가꿔 먹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