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호

“의사당 폭동 기억하는 美, ‘한국 탄핵’ 남 일 아니다”

[인터뷰] 신기욱 스탠포드대 아태연구소장의 ‘미국인이 본 韓 탄핵’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입력2025-01-08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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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화와 산업화 성공한 한국이 계엄이라니…

    • 후쿠야마 교수 “이거(계엄) 트럼프가 배우는 거 아닌가”

    • 처음엔 한국 회복탄력성 믿었으나 점점 우려돼

    • 법치는 민주주의 떠받치는 ‘룰’…韓 룰이 흔들려

    • ‘시간 끌기’ 이재명 대표, 법 존중감 있는지 몰라

    • 트럼프, ‘대행 체제’에서 정상회담 응하지 않을 수도

    • 적폐청산‧계엄으로 보수 두 번 죽인 尹, ‘민주적 훈련’ 안 돼

    • 정치는 고난도 예술, 보수 가치 정립해 차세대 키워야

    2023년 6월 ‘신동아’와의 인터뷰 당시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장. [조영철 기자]

    2023년 6월 ‘신동아’와의 인터뷰 당시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장. [조영철 기자]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수사와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개시됐지만 법적, 정치적 논란으로 분열과 갈등이 극에 달하는 양상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과연 대통령 내란죄 수사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이 입법권을 침해한 것은 아닌지 등 건건마다 법 해석이 다르다. 이를 이유로 윤 대통령은 소환도 거부했고 체포영장 집행도 불응했다.

    각자 속한 진영과 처지에 따라 법 해석이 다른 이런 상태에서 대한민국의 사법 체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재미 석학 신기욱(64) 스탠포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장도 이 점을 가장 걱정하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초미의 관심, 한국

    그와 화상채팅으로 연결한 것은 1월 3일 오전 7시, 밖은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때였다. TV 화면에는 공수처가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위해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대치하는 장면이 실시간으로 보도되고 있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지 시간은 오후 2시였다. 신 교수는 ‘굿모닝’이라고 인사했다.

    지난해 가을 한국에 들렀을 때 잠시 만났던 그와 한국 정치 상황의 답답함을 토로했는데 몇 달 만에 비상계엄 사태로 시계가 불투명한 상황이 됐다. “계엄에 무안 공항 사고에 여객기 사고에 하루하루 불안하고 마음이 힘들다”고 했더니 신 교수는 “요즘 한국 분들과 대화하면 ‘안녕하시냐’는 말 걸기도 미안하다”고 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 후 BBC와 인터뷰하는 신기욱 소장. 화면 캡처.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 후 BBC와 인터뷰하는 신기욱 소장. 화면 캡처.

    우선 미국에서 바라보는 한국 상황이 어떤지 궁금했다.

    “계엄 이후 인터뷰 요청이 무척 많았습니다. 대략 60~70건 정도 오간 것 같아요. 첫 주에는 너무 몰려서 3분의 1 정도로 골라서 했을 정도였습니다. 요즘도 요청이 있는데 좀 자제하고 있어요. 앞날도 불투명하고 처음에 가졌던 생각이 약간씩 달라지고 있어서요.”

    -달라지다니요.

    “처음 계엄이 선포되고 해제됐을 때만 해도 한국 사회가 회복 탄력성이 크다는 믿음이 커서 잘 해결되리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일부러는 아니었고, 제가 한국인이고 한국 사회에 대한 경험이 많으니까 불안과 의문을 가진 시선을 보내는 미국 지식인들과 시민들에게 긍정적 메시지를 내려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학습 경험도 컸지요. 혼란스러웠지만 질서 있게 탄핵하고 선거를 치르고 절차에 따라 정권 교체를 했잖아요. 이번에도 그렇게 되리라 믿고 있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어렵게 얻은 것이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큽니다. 그런데 요즘엔 제가 가졌던 믿음이 솔직히 조금 흔들리고 있어요. 그래서 지난 2, 3주 동안은 인터뷰도 많이 안 했습니다. 사실 걱정이 많이 됩니다.”

    -어떤 점에서요?

    “민주주의의 룰이라고 할 수 있는 ‘법치주의가 무너지고 있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어서요. 서로 자기가 해석하는 법 해석이 맞다며 물러서지 않는 모습이니까요. 제가 2022년부터 ‘신동아’에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장기 연재(‘신기욱의 밖에서 본 한반도’)를 할 때만 해도 한국 사회가 갈등이 심해도 법치라는 큰 틀에서의 공감대는 있었는데 지금은 법 자체에 대한 해석이 사람마다 제각각이어서 혼란스럽습니다.”

    -저도 며칠 전 평소 생각이 같았던 변호사와 ‘헌법재판관 임명 권한이 대행에게 있는가’ ‘공수처가 내란 혐의를 조사할 권리가 있는가’ 등에 대해 논쟁하던 중 입장이 너무 달라 매우 언짢게 헤어진 적이 있습니다. 합의점을 찾기가 힘들었거든요. 시위대만 분열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이런 분열이 있어서 걱정스럽습니다.

    “게임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룰이잖아요. 룰이 흔들리면 승패에 승복을 못 하잖아요. 법치는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떠받치는 룰입니다. 이게 무너지면 사회 혼란은 심해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걱정스러운 겁니다. 법이라는 게 최소한의 동의인데. 지금은 자기 진영이나 정치적 입장에 따라 해석이 다르잖아요. 모든 게 헌법재판소까지 가서야 결론이 나는 상황이 돼 버렸어요. 박근혜 대통령 때엔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너무 아이러니하게도 윤석열 대통령은 평생 검사였고 적폐 청산을 주도하면서 역대 대통령 두 명(박근혜, 이명박)과 최고위 공직자,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까지 한국 검찰 역사에서 가장 큰 수사를 했던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사람이 집권하고 있던 시기에 법치가 무너진다는 게 밖에서는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죠.

    윤 대통령과 바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계속 시간을 끌고 있는 형국인데, 이 대표 역시 법에 대한 존중감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신동아’에 연재할 때 ‘가랑비에 옷 젖듯 한국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며 법치주의라는 미명 하에 민주적 규범이나 가치를 지키지 못하는 현실을 걱정했어요. 지금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위기의 강도가 더 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24년 12월 3일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다. [대통령실]

    2024년 12월 3일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다. [대통령실]

    “트럼프가 배우는 거 아냐?”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데 밖에서 볼 때 지금 한국 상황은 어떻습니까.

    “경제와 외교‧안보 문제가 심각하죠. 2017년 때는 경제가 그런대로 괜찮아 넘어갔는데 지금은 경제가 너무 안 좋잖아요. 고환율은 곧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고 그러면 삶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죠. 무엇보다 외교‧안보 컨트롤 타워가 불안한 상황에서 곧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취임하는데 지금 상태로는 트럼프 행정부와 소통도 잘 안될 거라고 생각해요.”

    -리처드 하스 미국 외교협회 명예회장이 ‘동아일보’와 한 신년 인터뷰에서 ‘한국의 계엄선포는 바샤르 알 아사드 전 시리아 대통령 해외 도피와 함께 지난해 접한 가장 충격적인 뉴스’라고 했습니다. 미국 언론이나 지식인들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나요.

    “관심이 너무 많아서 저도 굉장히 놀랐습니다. 사실 미국에서 한반도 문제는 북한 문제 아니면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물론 최근에 K팝이나 K드라마에 관심이 높아지긴 했지만 한국의 국내 정치 이슈로 이렇게 미국 사람들이 관심이 많았던 건 처음입니다.”

    -이유가 뭐라고 봅니까.

    “전 세계가 겪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공감대가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미국에서 볼 때 한국은 국력으로 보면 잘 잡아서 10위권, 적어도 15위권이고 아시아에서는 대만과 함께 민주화와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이룬 나라잖아요. ‘그런 나라가 2024년에 계엄이라니 이게 무슨 일이지?’ 하는 거죠. 여기에는 대한민국 같은 선진국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다른 나라 어디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깔려 있어요.

    특히 미국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 때 있었던 2021년 의사당 점거 사태와 이미지가 겹치면서 한마디로 남 일 같지 않은 거죠. 우리 학교 스탠포드에 있는 프란시스 후쿠야마 교수가 제게 e메일을 보내왔는데 ‘이거(비상계엄) 트럼프가 배우는 거 아니냐, 많이 놀랐다’는 거에요. 탄핵 하고는 또 느낌이 달라요. 또 6시간 만에 계엄이 해제되는 것에도 놀랐고요.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 시한을 하루 앞둔 1월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출입구를 막아선 차벽 앞에 경비병력이 모여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 시한을 하루 앞둔 1월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출입구를 막아선 차벽 앞에 경비병력이 모여 있다. [뉴시스]

    ‌한 가지 재미있다고 할까, 특이한 건 트럼프 쪽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코멘트가 아직까지 없다는 겁니다. 저 역시 영국 BBC를 비롯해 미국 주류 신문사, 방송국에서 다 인터뷰 요청이 왔는데 유일하게 미국 보수 채널인 폭스뉴스에서는 인터뷰 요청이 없었어요. 그러다 며칠 전 연락이 왔는데 응하지는 않았습니다. 미국 유럽 중국 이집트 언론에서까지 인터뷰 요청이 왔는데 트럼프 지지 언론인 폭스뉴스에서 연락이 늦게 온 걸 보면서 한동안 ‘정말 관심이 없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바이든 대통령만 해도 ‘한국 시민의 민주주의 회복력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는데 말이죠.”

    -트럼프 행정부는 정말 관심이 없는 걸까요.‌

    “현재 대행 체제이기 때문에 한국이 관심 사항에서 밀려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어요. 바이든 대통령만 해도 예를 갖출 텐데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상 ‘대행 체제에서 정상회담을 하자고 하면 응할까’ 하는 의심이 드는 거죠,

    곧 취임인데 골든타임을 놓칠까 우려됩니다. 앞으로 대통령이 탄핵 되고 선거가 치러지면 새 정부가 출범하는 게 여름이겠죠. 새 정부가 자리 잡으려면 가을, 겨울까지 가야 할 텐데 이러면 골든타임을 놓치는 거죠. 트럼프 행정부 첫 6개월이 향후 정책 방향을 세팅하는 시간일 텐데 한국이 ‘패싱’당할까 걱정입니다. 만일 탄핵이 기각돼 윤 정부가 지속되면 그 혼란은 더 클 수 있고요.

    한미동맹의 관점에서 보면 2023년에 캠프 데이비드 회담이 하이라이트였어요. 윤 대통령이 잘했는데 지금 바이든, 일본 기시다 총리, 윤 대통령 모두 사라지면 그 정신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겠죠. 트럼프는 우리 예측대로 방위비 압박도 많이 할 텐데 지금 국방부가 쑥대밭이라 누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내 일처럼 맡아 대응하기 어려울 거고요. 트럼프는 절대 우리 사정 봐주질 않을 텐데 말이죠. 또 북한에 대처는 어떻게 할 것인지…”

    -기업들의 행동반경은 어떻게 될까요.

    “지난 트럼프 1기에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재협상한 바가 있어 무역 문제는 상대적으로 덜 영향을 받지 않을까요. 다만 한국이 중국 쪽에서 제조해서 수출하는 기업들은 중국 관세를 높이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겠죠.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보조금에 대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급하게 바이든 대통령과 사인을 하긴 했는데 트럼프 입장에서 왜 외국 기업에 보조금을 주느냐고 할 수 있으니 약간 불안한 면이 있습니다.

    기업들이 죽어라 뛰고 있긴 하지만 보호무역주의, 자국우선주의, 국수주의가 지배하는 상황에서 한국처럼 해외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힘들지 않겠습니까. 일본처럼 내수 중심이라면 영향이 적겠지만 말이죠.”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대한 예측을 한다면요.

    “사실 전 세계가 리더십의 위기죠. 유럽도 영국은 좀 안정이 되는듯한데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 지지율도 엉망이고 독일도 리더십이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푸틴, 시진핑, 인도 모디 총리는 좋든 나쁘든 안정적으로 오래가고 있어요.

    제 생각엔 트럼프 1기와 2기의 차이가 커요. 물론 정책 기조는 그대로 가겠지만 1기 때는 공화당 내 주류도 아니었고 ‘트럼피즘’이 미국 보수의 주요 이념도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미국 정치의 이단아가 나와서 돌풍을 일으킨 거였는데, 처음 정권을 잡아 인재풀이 없다보니 전통적인 프로페셔널들을 많이 썼죠. 그런데 지금은 다 바뀌었어요.

    상‧하원도 공화당이 장악을 했으니 든든한 우군이 되겠죠. 트럼피즘도 보수의 중요한 정치이념이 됐어요. 내각도 아시다시피 추종자들로 채워지고 있죠. 부통령 벤스는 트럼프보다 더 트럼프스러운 사람이라고들 하니까요. 국방부(피터 해그세스 전 폭스뉴스 진행자), 교통부(숀 더피 전 하원의원) 장관 후보자는 한마디로 우리로 비교하면 극우 유튜버들처럼 활동한 사람인데 이런 사람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어요. 트럼프 4년이 지나도 트럼피즘 영향력은 한동안 갈 것 같아요.”



    美 민주당과 비슷한 한국의 보수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 시한을 하루 앞둔 1월 5일 저녁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탄핵 찬성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동아DB]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 시한을 하루 앞둔 1월 5일 저녁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탄핵 찬성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동아DB]

    -다시 한국 이야기로 돌아올까요. 한국이 디지털 분야에서 최첨단을 걷다보니 소셜미디어의 지배력이 큰데 유튜브 등 각자 자기가 선호하는 정보만 수용하니 분열이 심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이번에 보니 대통령도 그런 것 같고요. 이 문제는 해결책이 안보여 답답합니다.

    “정치적 양극화는 글로벌한 현상이긴 한데 제가 느끼기에도 한국이 정도가 가장 심한 것 같아요. 저도 미국의 첨단기술문화가 지배하는 실리콘밸리에 살고 있지만 키오스크도 한국이 훨씬 많아요. 이런 상황에서 모든 뉴스가 중앙 집권화 돼 있는 것도 특징이랄까요.

    미국은 9.11테러 같은 일 아니면 전 국민이 관심을 갖는 내셔널 이슈가 사실상 없어요. 하지만 한국 사람들에게는 거의 모든 게 내셔널 이슈죠. 한국 사람들만큼 정치에 관심 있는 나라가 없는 것 같아요. 사실 계엄이 해제되면 일단 상황은 중간 종료된 건데 눈 오고 추운 날 매일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이런 나라가 세계에 또 있을까요.

    한국 뉴스를 보면서 혼자서 이런 생각을 해봐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저렇게들 싸우는 건지. 한 발짝 물러나서 보면 이 모든 것이 그렇게 죽기 살기로 싸울 일인가 싶은데, ‘조선시대 사화(士禍) 때가 이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어떻든 한국 사람들 에너지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도 해요. 연구과제인 것 같습니다(웃음).

    정치적으로 적극 개입하고 목소리를 내는 ‘시민 인게이지먼트(engagement)’에 대해서는 미국 학자나 지식인사회도 경의를 표해요. 긍정적으로 봅니다. 그래서 제 마음 속 밑바닥에는 한국은 결국 이 위기를 뚫고 나갈 것이라고 봅니다. 그동안 그래왔고요. 막연하긴 하지만 믿음이 강합니다. 국민이 이 정도로 나라 걱정하는 나라가 어디 있나요. 이번에도 보면 아무리 권력이 강해도 잘 하지 못하면 시민들의 힘에 의해 물러나잖아요. 계엄도 막아내고요. 결국은 잘될 것이라고 보는데 그 과정이 너무 험난해서 희생이나 고생이 많다는 게 문제에요. 사는 게 힘들어지니까 다치는 사람들은 결국 약자들 일 수밖에 없고요.”

    -문제는 경제죠, 미국도 그래서 트럼프를 선택한 거 아닌가요.

    “미국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이죠. 어떻든 미국 내에서는 경제가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기대가 있어요. 그래서 큰 표차로 이긴 것이고요. 물론 (경제가 과연 잘 될지) 두고 봐야 알겠지만요. 트럼프는 1기 때 운 좋게 오바마로부터 괜찮은 경제를 물려받았고, 반대로 바이든은 코로나 이후 어려운 상황에서 취임했기 때문에 좀 억울한 면이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을 가져온 재정 확대는 트럼프 마지막 해에 주로 이뤄졌으니까요.

    이 대목에서 짚고 싶은 게 있는데 미국의 민주당은 대국민 메시지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거예요. 반(反) 트럼프만으로는 안 되거든요. 트럼프 대통령은 그게 옳든 그르든 내세우는 메시지가 있었거든요.

    저는 이 점에서 한국 보수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제가 윤 대통령이 후보가 됐을 때 정권교체는 될 수 있어도 보수가 망할 수 있다고 한 적이 있어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재건을 했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이재명 정권을 막고 정권을 다시 빼앗아 올 것인가’만 생각했습니다.

    윤석열이라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저 문재인 대통령에게 핍박받은 사람이니 보수의 간판으로 내세울만하다는 거였지요. 하지만 ‘평생 검사를 한 사람이 한국 사회에 대한 고민을 제대로 했을까’ 생각했었습니다. ‘경제의 복잡함이라든지, 서민들의 아픔을 제대로 알까’하는 의문도 있었고요.

    게다가 한국 사회에서 검사라는 직업은 ‘슈퍼 갑’이잖아요. 검사로서의 능력은 뛰어났을지 모르지만 민주적 규범이나 가치에 대한 내재화는 안 되었다는 것이 이번에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야당 후보를 리더가 아니라 피의자로 보는거고 국회를 범죄자들의 소굴로 보는, 전혀 민주적 훈련이 안된 사람이 정권을 잡았을 때 내심 위험하다고 생각했는데 불행하게도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어요.

    어떻든 미국하고 비교하면 트럼피즘이란 게 ‘옳다, 그르다’ 문제를 떠나서 그들이 내세우는 나름대로의 메시지, 즉 정치 이데올로기가 있습니다. 미국 민주당도 트럼프에 맞서는 정치 이념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없어요. 이걸 한국에 적용해보면 한국의 보수가 미국 민주당하고 비슷해 보여요.

    이제 한국의 보수도 뭔가 ‘가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정치인들은 그런 훈련을 거친 사람들 속에서 나와야 합니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굉장히 고난도의 예술인데 보수의 가치를 정립해 차세대 리더를 키우는 정치를 하지 않으면 이대로는 힘들어요. 그런 점에서 윤 대통령은 보수를 두 번 죽였다고 봅니다. 과거 보수 대통령에 대한 적폐청산으로 한 번, 이번에 ‘자살골’로 두 번 죽였습니다. 윤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진솔한 사과와 함께 하야를 통해 국민께 용서를 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대통령 중심제는 수명을 다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계속 내각제 개헌을 말해왔습니다. 민주 국가에서 대통령제를 채택한 나라는 이제 거의 없어요. 미국도 상‧하원 체제가 떠받치는 구조죠. 한국의 대통령 중심제가 87년 체제인데 40년 가까이 되어 가고 있잖아요. 자라면서 옷을 바꿔 입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니 여기저기 찢어지는 거죠. 야당도 생각을 잘해야 합니다. 일단 정권잡고 보자는 심정으로 상대를 억누르고 부정하면 또 불행한 역사의 반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분노의 정치는 이제 누군가가 끝을 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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