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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눈으로 본 정치

“여보! 나 유인태랑 나가서 89타 쳤다!”

노무현 대통령은 골프 마니아

  • 글: 최영해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yhchoi65@donga.com

“여보! 나 유인태랑 나가서 89타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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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이 다시 골프채를 잡은 것은 대통령 별장이었던 충북 청원군 문의면 소재 청남대 반환행사를 갖기 전날인 4월17일. 3당 대표와 청남대 만찬회동에 앞서 노대통령은 청남대 내 간이 골프장에서 골프를 쳤다. 민주당 정대철(鄭大哲) 대표와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 이원종(李元鐘) 충북 지사와 한 조가 돼 미니 골프장에서 9홀을 돌았다. 노대통령으로서는 1년 만에 치는 골프였지만 현직 대통령이 골프채를 잡은 것은 무려 10년 만의 일이었다. 때문에 이 날 노대통령의 동정과 관련된 신문기사는 온통 골프에 집중됐다.

YS와 DJ는 대통령 때 골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직 대통령의 티샷 모습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이 자리에는 당초 박희태(朴熺太) 한나라당 대표 권한대행도 참석하기로 돼 있었으나 국민들 앞에서 골프 치는 모습이 비쳐지는 게 부담스러웠던 듯하다. 박대표가 “만찬만 하고 골프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뜻을 청와대측에 전달하면서 3당 대표 골프회동은 무산됐다. 박대표 대신에 라운딩 파트너로 이지사가 나섰다.

청남대 골프장은 폭 100m에 길이가 360m로 1개의 미들홀로 갖춰져 있지만 그린이 5개, 티박스 9개로 여러 방향을 겨눠 골프를 칠 수 있어 9홀 라운딩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 이날 노대통령은 53타를 쳐 네 사람 중에서 스코어가 가장 뒤처졌다. 김총재와 이지사가 각각 45타를 쳤고 정대표는 50타를 쳤다. 취임 직전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았던 노대통령으로서는 완쾌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소 무리를 했다는 후문이다.

당초 청와대는 이날 골프 회동을 계획했다가 여론의 눈치를 보며 막판까지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장의 ‘골프 안 친다’는 선언에 대해 대통령이 ‘접대골프가 아니라면 쳐도 된다’는 시그널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쪽과 ‘그래도 나라가 어수선한데 대통령이 상류층 운동인 골프를 즐기는 모습은 국민정서상 좋지 않다. 아예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백 배 낫다’는 의견이 맞섰던 것이다. 이 때문에 대통령이 골프채를 잡을지 여부는 청와대 기자실에서도 관심사였다.

대통령이 이날 골프채를 잡은 데에는 골프를 즐겨 치는 유인태 수석의 역할이 컸다. 유수석은 골프 불가론 주장에 대해 “구닥다리 같은 생각은 좀 그만하자”면서 “경기가 안 좋을수록 돈을 써야 경제가 돌아간다. 대통령이 골프 치는 모습을 보여주면 경제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강력히 주장했고, 대통령도 흔쾌히 ‘OK’했다는 것이다.



노대통령은 청남대에서 하루 묵은 다음날 청남대 반환행사에 참석하기에 앞서 그 날 새벽 예정에 없던 골프를 또 쳤다. 노대통령은 권양숙(權良淑) 여사와 주치의, 부속실장과 함께 5홀을 가볍게 돌았다고 한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런 사실을 언론에는 비밀에 부쳤다. 노대통령이 이틀 연속 골프 친 사실이 알려지는 게 조금은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태릉 골프장과 ‘버디’

노대통령 내외는 지난 5월4일(일요일)에는 참모들과 함께 태릉 골프장에서 새벽 골프를 쳤다. 이날 네티즌들은 ‘대통령의 골프’를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골프 티업 시간은 새벽 5시30분. 첫 티업이었다. 일반인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서 새벽 일찍 잡았다고 한다. 통상 대통령 골프라면 앞뒤 팀이 모두 보이지 않게 시간을 넉넉하게 잡는 것이 관례지만 이날 골프는 일반인과 마찬가지 시간 간격을 두고 진행됐다고 한다.

현직 대통령이 일반인들의 출입이 자유로운 곳에서 골프를 한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 고(故) 박정희 대통령은 태릉 골프장을 가끔 찾았지만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은 청남대만 이용했을 뿐 ‘경호상’의 이유로 태릉 골프장은 거의 찾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해성(李海成)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얼어붙은 경제 분위기를 개선하고 건강한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준다”며 나름의 의미를 부여했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서민 출신 대통령이 서민 고통을 잊었느냐’는 질책 섞인 반응을 보였다. 94타를 친 대통령이 이날 처음으로 17번 홀(파4)에서 ‘버디’를 잡았고, 권여사는 16번 홀(파3)에서 ‘버디’를 했다. 3개 팀으로 나눠 운동을 했던 이날 대통령 내외는 김세옥 경호실장과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과 함께 2조로 출전했다. 이보다 앞선 1조는 김진표(金振杓) 경제부총리와 권오규(權五奎) 대통령정책수석비서관, 이해성 홍보수석비서관, 조윤제 경제보좌관이, 3조에는 유인태 정무수석과 반기문 외교보좌관, 김희상 국방보좌관, 김태유 정보과학기술보좌관 등이 함께 라운딩을 했다. 대통령이 버디를 한 태릉 골프장 17번 홀은 파4 미들홀로 노대통령은 그린에 2온 시켜 퍼팅 한 번 만에 공을 홀로 집어넣었다고 한다.

이날 골프에 대해 청와대 한 386 핵심참모는 “노대통령이 지난 김영삼(金泳三) 정부 때처럼 ‘골프 금지령을 내린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사람들 머리 속에 확실히 심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골프 그린피는 모두 노대통령이 냈다. 골프비용은 세 팀 모두 합해 100만원 선으로 대통령에 대한 예우 때문인지 통상적인 그린피보다 훨씬 쌌다. 이날 골프는 공무원들도 무조건 골프를 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자기가 친 것만큼 그린피를 내면 굳이 말릴 이유도 없다는 ‘시그널’이었다. 이날 골프회동을 두고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골프를 좋아해서 친다고 하면 될 것이지 굳이 경제 살리기 운운하는 것은 너무 속 보인다”는 비판론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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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영해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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