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합의문의 부속서는 좀더 상세한 사업추진 방안을 담고 있다. 다자간 협력체는 한국, 북한, 중국, 러시아, 몽골, 일본을 범위로 하지만 다른 나라나 관련 국제기구도 재정지원 등에 참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북한과 몽골 두 나라의 경제사정을 고려해 ‘특별 지원(Special Support)’의 필요성에 동의하고, 이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검토·실행한다고 명문화했다.
또 하나 주목되는 사항은 3개 참가국 이상의 이해가 맞으면 협력체 안에서 공동 에너지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한 부분. 이러한 사업을 실행하기 위해 고위당국자위원회를 설립해 정기회의를 열고 그 산하에 에너지분야 재구성(restructuring), 전력연결, 화석연료 이전 등을 담당하는 세 개의 태스크포스 혹은 실무그룹을 두기로 했다. 이 실무그룹은 구체적인 프로젝트의 경제성을 검토하고 실무추진을 맡게 된다.
언뜻 국내 에너지 수급을 위한 지역협력체 구성방안으로 보이는 이 합의문이 의미를 갖는 것은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일련의 상황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북핵 위기가 불거진 이래, 에너지 지원은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도록 유도하는 ‘당근’의 하나로 유력하게 검토되어왔다. 에너지 제공을 북핵문제 해결 로드맵의 일환으로 삼아, 극심한 전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대북 에너지 지원 추진체 될 듯
3월말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한 라종일 청와대 안보보좌관이 러시아 당국자들과 만나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대북 전력(電力) 지원사업에 나설 용의가 있다”며 이르쿠츠크 등에서 남북한을 연결하는 가스관 건설을 대안 중 하나로 언급한 것으로 전해져 논란이 일었다. 이후 청와대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하고 나서기는 했지만 정부 최고위층의 의사가 흘러나온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그런가 하면 노무현 대통령 또한 3월26일 러시아 최대 천연가스회사이자 시베리아 및 극동지역 에너지개발 사업조정자인 가즈프롬의 사장 알렉세이 밀러를 단독면담한 사실이 알려져 그 이유와 배경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난무한 바 있다.
그동안 대북 에너지 지원 논의는 물밑에서 진행돼온 것이 사실. 민간 기업들 간에 실무협상을 벌이고, 정부는 이를 비공식적으로 검토하는 방식으로 추진돼왔다. 이번 블라디보스토크 회의에서 합의된 ‘동북아 에너지 협력체’는 수면 아래에 있던 대북 에너지 지원방안을 공식적으로 논의하고 실무적으로 추진하는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남북 양자간의 직접 지원이 아닌 ‘다자간 협력’의 틀이 새로 마련됐다는 점에서 ‘퍼주기 논란’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통일부 당국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러시아로부터 에너지를 수입하는 중간과정에서 북한에 일부를 지원하자는 방안은 사실 통일부 입장에서도 기대가 크다. 한국도 이익을 얻고 북한도 이익을 얻는 ‘윈윈 게임’이기 때문이다.
DJ정부의 대북지원은 쉽게 말해 돈을 주고 안보를 사는 형태였기 때문에 ‘퍼주기 논란’을 피할 수 없었지만, 이 경우는 에너지도 얻고 안보도 얻는 일거양득 아닌가. 가히 ‘노무현 정부식 대북지원’이라 부를 만한 새로운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가 이 방안에 의지를 갖는 것이나, 이를 구체화해 나갈 다자간 지역협력체가 마련됐다는 점에 관계부처가 주목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북한은 전기석탄공업성 부상 내보내
블라디보스토크 회의에 참석한 한국 측 공식대표단은 15명. 단장은 이원걸 산자부 자원정책심의관이 맡았고 관련부서 실무자들이 동행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한국전력 등 정부 유관기관의 부서장급 연구원들도 대거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외교부와 청와대 관계자들도 대표단에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개최지인 러시아 정부와의 최종 조율과정에서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측은 “당초에는 우리 부에서도 과장급 실무자가 동행할 예정이었지만 러시아 사정상 참석하지 못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