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6월호

‘세녹스 죽이기’의 진실

‘법대로’인가 세금 때문인가

  • 글: 이희욱 ‘이코노미21’ 기자 heeuk@hanmail.net

    입력2003-05-26 15: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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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동차 연료첨가제 ‘세녹스’를 둘러싸고 논쟁이 한창이다. 세녹스는 대체 연료인가, 첨가제일 뿐인가, 아니면 가짜 휘발유인가. 산업자원부와 재정경제부, 국세청, 환경부까지 나서 이를 몰아치는 속사정은 또 무엇인가. 소비자의 눈으로 본 세녹스 파동의 실체.
    ‘세녹스 죽이기’의 진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때아닌 유사휘발유 논쟁이 한창이다. 에너지 벤처기업 ‘프리플라이트’가 판매하는 자동차 연료첨가제 ‘세녹스(Cenox)’가 주인공이다. 개요는 간단하다. 연료첨가제로 휘발유에 섞어 쓰는 세녹스에 대해 산업자원부가 ‘유사휘발유’라며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프리플라이트는 이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으며, 산자부 또한 기존 입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을 모양새다. 소비자는 혼란에 빠졌고, 판결은 법원의 몫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법원 판결조차 세녹스 논란을 잠재우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산자부와 프리플라이트 양쪽 모두 법원 결정에 승복하지 않을 태세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가짜 휘발유’ 여부를 놓고 시작된 공방은 이제 사실 확인 문제를 떠나 자존심 싸움이 되었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으며, 문제의 핵심은 무엇인가.

    첨가제인가 가짜 휘발유인가

    세녹스는 에너지 벤처기업 프리플라이트에서 내놓은 연료첨가제다. 동네 카센터나 대형 할인점의 자동차 용품코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엔진세정제나 연소개량제 등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세녹스는 일반 할인점이나 카센터에서가 아닌 지정된 판매점에서만 구입할 수 있다. 대량 판매이기 때문이다. 세녹스는 휘발유에 최대 40%까지 섞어 쓸 수 있다. 연료첨가제의 경우 배합비율이 법에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세녹스는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연구원에서 테스트를 거쳐 40%로 섞어 쓸 경우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원래 프리플라이트는 단순 첨가제가 아닌 알코올계 연료를 염두에 두고 세녹스 개발을 시작했다. 개발 초기인 지난 2000년 12월, 프리플라이트는 세녹스의 전단계 제품이면서 알코올계 연료로 개발한 ‘뉴 파워 오일’의 제조 판매에 관한 법 적용 여부를 산자부에 문의했다. 산자부는 “우리 소관이 아니다”며 “유관부처인 환경부에 물어보라”고 답했다. 이때만 해도 산자부는 “알코올계 연료는 석유사업법상 석유제품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2001년 12월 프리플라이트가 2차 문의를 하자 산자부는 갑자기 태도를 바꿔 “알코올계 연료인 세녹스는 유사석유제품”이라며 연료로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유사석유제품이란 곧 ‘가짜 휘발유’란 얘기로, 법적 단속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이에 프리플라이트는 할 수 없이, 제품의 알코올 함유량을 10%로 낮춰 환경부 시험을 거친 후, 휘발유와 6대 4로 섞어 쓸 수 있는 ‘연료첨가제’로 시판에 나선 것이다.

    프리플라이트는 세녹스를 휘발유에 섞어 쓰면 연비가 향상되고 엔진 세정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배출 가스량도 줄어든다고 말한다. 게다가 휘발유보다 값이 싸기 때문에 소비자로선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주장이다.

    산자부부터 국세청까지 “불가!”

    이런 ‘장점’을 앞세워 프리플라이트는 지난해 6월부터 전국 13개 판매점에서 세녹스를 리터당 990원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당시 리터당 1330원 안팎이던 휘발유보다 300원 이상 싼값이었다. 특히 정상 휘발유를 판매하는 주유소가 리터당 50원 안팎의 판매마진을 남기는 데 비해, 프리플라이트는 세녹스 판매점에 대해 판매가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330원의 마진을 보장해 큰 호응을 얻었다.

    그 덕분에 지난해 11월 설립한 세녹스 판매법인 지오에너지는 같은 해 12월에 21억원, 올 1·2월에는 각각 40억원과 80억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판매점도 부쩍 늘었다. 2003년 5월 현재 전국 25개 총판 산하 42개 전문판매점과 210여 개 용기판매점에서 세녹스를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한때 50만~60만 리터씩 팔려나가던 세녹스는 주무부처인 산자부가 ‘사실상 유사휘발유’로 규정하고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면서 그 상승세가 한풀 꺾인 상태다.

    지난 2001년 12월, 프리플라이트의 문의에 대해 “세녹스는 유사석유제품”이라는 회신을 보냈던 산자부는 프리플라이트가 ‘연료첨가제’로 용도를 바꿔 세녹스를 출시하자 곧바로 이를 문제삼았다. 성분상 가짜 휘발유처럼 톨루엔 비중이 높고 휘발유에 40%까지 섞어 쓰는 등의 이유를 들어 “첨가제라 하더라도 사실상 유사석유제품”이라며 단속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프리플라이트는 “알코올계 연료에 대한 법 적용이 모호해 어쩔 수 없이 첨가제로 내놓았는데, 이제 그것마저 문제삼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연료로는 안 된다고 해서 대기환경보전법이 인정하는 첨가제로 판매하기 위해 알코올 성분을 낮추고 다른 성분까지 조정했는데, 어떤 식으로도 팔아선 안 된다고 하는 건 산자부의 억지”라는 것이다.

    ‘세녹스 죽이기’의 진실

    지난해 8월, 세녹스를 전국 주유소 중 가장 먼저 판매한 인천 서구 가정동 주유소가 제품 성분을 알리는 표시판을 내걸고 적극적인 홍보를 하고 있다

    하지만 산자부는 예정대로 단속을 강행했다. 지난해 6월, 산자부는 유사석유제품을 팔았다는 이유로 세녹스 판매법인 프리플라이트의 대표이사를 석유사업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고, 검찰은 같은해 10월 이들을 기소했다. 이와 관련해 5월초 현재 1심 재판이 진행중이다. 지난 3월20일과 4월17일, 5월1일 세 차례에 걸쳐 공판이 열렸다. 네 번째 공판은 6월 초에 열 예정이다.

    한편 국세청은 지난해 6월부터 올 2월까지 세녹스 판매액에 대한 세금으로 140여 억원을 프리플라이트에 부과했다. 하지만 프리플라이트가 ‘세금을 부과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납부유예 신청을 하자, 올해 3월 원료공급 업체를 대상으로 ‘용제수급 조정명령’을 내렸다. 세녹스 원료인 솔벤트를 프리플라이트에 공급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프리플라이트 쪽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프리플라이트의 원료공급 업체 중 하나인 케맥스 등과 함께 산자부의 조처가 부당하다며 ‘용제수급 조정명령 효력 가처분신청’으로 맞받아쳤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월 중순, 산자부를 주춤하게 만드는 법원의 결정이 있었다. 서울지방법원이 4월18일, 케맥스 대표에 대해 청구된 구속영장을 “용제수급 조정명령의 적법성 여부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구속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며 기각한 것이다. 더구나 산자부가 3월 말부터 한 달 동안 대대적인 단속을 벌여 잡아들인 100여 명 이상의 세녹스 판매업자 중 실제 구속자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정신없이 돌아가는 상황에 환경부도 가세했다. 국립환경연구원을 통해 세녹스를 40%까지 휘발유에 섞어 쓸 수 있음을 인정했던 환경부는 뒤늦게 최고 1%까지만 연료에 섞어 쓸 수 있도록 대기환경보전법을 개정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와 함께 재정경제부는 4월초 “석유제품에 해당하지 않는 대체연료라 할지라도 자동차 연료로 사용될 경우 교통세를 물리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교통세법 개정안 추진을 발표했다. 그리고는 ‘이례적으로’ 행정절차법에 명기된 기간보다 절반이나 짧은 10일간의 입법예고 기간을 거쳐 시행에 들어갔다. 세녹스는 물론, 이미 수입이 예정돼 있던 석탄액화연료 솔렉스의 시판까지 원천봉쇄하겠다는 뜻이었다.

    산자부 주도 아래 환경부와 재경부까지 전방위 압박에 나서면서 세녹스 판매량은 눈에 띄게 줄었다. 5월 중순 현재, 판매량은 전성기 절반 수준인 하루 평균 30만 리터.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세녹스 제조법인인 프리플라이트와 판매법인 지오에너지, 총판과 판매점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뻔한 일. 정부 각 부처의 전방위 압박에 ‘사운을 걸고’ 대항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논쟁의 핵심은 명확하다. 세녹스는 연료첨가제인가, 유사휘발유인가. 우선 세녹스 판매에 제동을 건 산자부는 세녹스가 ‘사실상 유사휘발유’라고 주장한다. 세녹스는 액화천연가스(LNG)에서 추출한 메탄올과 석유 추출물인 솔벤트 톨루엔을 섞은 것으로 석유사업법(이하 석사법) 제26조에 근거, 유사석유제품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석사법 제26조와 석유사업법시행령 30조는 “석유제품에 다른 석유제품이나 석유화학제품 등을 혼합하는 등의 방법으로 제조한 것으로, 조연제 첨가제 기타 명목여하를 불문하고 자동차의 연료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을 유사석유제품으로 규정하고, 이의 생산 판매 저장 운송 보관 등을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석유제품인 솔벤트에 석유화학제품인 알코올과 톨루엔을 섞어 만들었으며, ‘자동차 연료로 사용될 수 있는’ 세녹스는 명백히 유사석유제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프리플라이트 쪽 얘기는 다르다. 프리플라이트는 세녹스가 2001년 7월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연구원의 시험을 통과한 뒤 양산 과정을 거쳐 지난해 6월부터 판매되고 있는 ‘합법적 연료첨가제’라고 주장한다. 함유 성분도 솔벤트 60%, 톨루엔 10%, 알코올 10%에 기타화합물 20%로, 솔벤트와 톨루엔을 반반 섞은 가짜 휘발유와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한다. 또한 엔진세정과 같이 특정 기능에 초점이 맞춰진 기존 연료첨가제와 달리 엔진세정부터 연비개선, 유해물질 배출감소 등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기 때문에 ‘다목적’ 자동차 연료첨가제라 보는 것이 맞다는 얘기다.

    아울러 프리플라이트는 “산자부가 석사법 26조를 불공정하게 적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정유사들도 시중에 유통하는 휘발유에 품질 보정을 위해 MTBE라는 첨가제를 최고 15%까지 넣고 있다는 것. 그러므로 석사법 26조를 여기에 적용하면 시중에 판매되는 정유사의 휘발유도 ‘유사석유제품’에 해당한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세녹스 판매법인인 지오에너지의 구동진 차장은 “현행 석사법에는 ‘석유제품에 석유화학제품을 혼합하여 자동차연료로 제조 판매하면 유사석유제품’이라고 돼 있다. 시중에서 유통되는 정상 휘발유도 석유화학제품인 톨루엔, MTBE 등이 각각 10%, 15% 혼합돼 있으므로 현행법상 유사석유제품”이라며 “결국 정유업자들이 만든 제품은 합법이고, 다른 사업자들이 만들 경우 불법이라는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불공정한 법 적용 문제를 꼬집었다.

    구차장은 또 “산자부가 새로운 에너지원이자 대안 연료인 알코올 연료에 대한 시장의 요구를 무시하고, 에너지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기존 정유업체의 기득권 보호에만 앞장서고 있다. 정유사에서 넣는 MTBE는 문제삼지 않고 세녹스만 걸고 넘어지는 것이 그 증거 아니냐”며 산자부 대응의 ‘순수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대한 산자부의 입장은 확고하다. 주무부서인 석유산업과 염명천 과장은 “세녹스 판매는 법의 취지를 무시한 발상”이라며 “정유사들이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수입 제조 판매하는 제품을 보호하는 것이 석사법”이라고 언성을 높였다. 다시 말해 국내 정유사들이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첨가하는 MTBE에 대해선 예외로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기관이 대기업의 편만 든다”는 프리플라이트와 일부 소비자들의 비난에 대해선 공식적인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

    무엇이 대체 에너지인가

    국립환경연구원의 연료첨가제 ‘허가’ 여부를 놓고도 주장이 엇갈린다. 산자부는 “세녹스는 환경부의 허가를 받은 제품이 아니라 단순한 시험성적서를 발급받은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환경부 또한 “환경부가 세녹스의 판매허가나 승인을 한 것처럼 프리플라이트가 허위과장광고를 했다”며 올해 3월 프리플라이트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산자부와 환경부의 주장은 간단하다. “첨가제에는 ‘허가’란 제도가 없는데, 세녹스는 ‘환경부의 허가를 받았다’는 식으로 정당한 제품인 양 선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프리플라이트는 “환경부의 요구를 모두 준수했다”며 산자부의 주장을 맞받아쳤다. 프리플라이트 쪽은 “연료첨가제는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 품목으로, 신고된 첨가제는 자동차공해연구소에 등록되며, 정기·수시검사를 받고 매년 판매현황을 보고한다”며 “세녹스는 수시검사를 받아 합격했고 판매현황도 보고했다. 신고제 요건에 맞춰 신고를 했으므로, 당국으로부터 허가를 받았다고 표현하는 것은 상식에 맞는 일”이라는 얘기다.

    연료 첨가제는 원래 허가제였다가 행정절차 간소화의 일환으로 1999년에 신고제로 전환됐다. 신고된 첨가제는 국립환경연구원 자동차공해연구소에 등록해, 정기검사 및 수시검사를 받고 매년 판매현황 등을 보고하도록 돼 있다. “세녹스도 여러 번 수시검사를 받아 합격했고 판매현황을 보고했다”며 “신고제에서 신고를 마치면 보통 당국으로부터 ‘하가’받았다는 문구를 쓴다”는 것이 프리플라이트의 주장이다.

    ‘세녹스 죽이기’의 진실

    한 세녹스 판매점을 찾은 시민이 제품이 없다는 업주의 말에 발길을 돌리고 있다

    이런 양쪽의 싸움은 ‘대체에너지’에 관한 논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국내 대체에너지 종류를 규정하고 있는 ‘대체에너지 개발 및 이용보급 촉진법’에 의하면 세녹스가 목표로 했던 알코올계 연료는 대체에너지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대체에너지로 인정되는 것은 태양 바이오 풍력 소수력 지열 수소 해양 폐기물에너지와 석탄을 액화가스화한 에너지 및 연료전지 등이다. 이밖에 대통령령이 정하는 에너지도 대체에너지로 인정된다. 알코올계 연료에 대한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정부는 현재로는 이들 에너지가 석유나 유연탄 등 기존 에너지보다 경제성이 떨어지지만, 미래의 대체에너지 적용 가능성을 보고 자금을 지원하거나 세금을 감면하는 등의 육성책을 쓰고 있다. 이에 따라 산자부는 지난 10여 년간 1700여 억원을 들여 대체에너지 개발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상용화에 성공한 것은 ‘바이오디젤’ 외에 거의 없다.

    바이오디젤은 폐식용유나 쌀겨를 가공해 만든 식물성 연료다. 엄격히 말하자면, 바이오디젤도 아직까지 ‘완전한 대체에너지’로 공인된 것은 아니다. 경유에 20%까지 섞어 쓰는 첨가제로 사용되고 있을 뿐으로, 일부 지역에서만 시험판매를 하는 상태다. 지금은 산자부 주관 아래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청소차 1600여 대를 중심으로 차량 손상 여부와 경제성 등에 관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 결과에 따라 일반 주유소 판매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핵심은 결국 세금

    산자부는 “세녹스는 결국 원유에서 추출한 화합물로 만든 것이므로 대체에너지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프리플라이트도 이에 대해선 수긍하고 있다. 하지만 “에너지 다원화와 효율적 이용을 위해서는 최소한 국내에서 인정하는 대체에너지가 상용화될 때까지만이라도 알코올계 연료를 에너지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원유를 정제하고 남는 솔벤트와 톨루엔의 국내 생산량은 280만 톤 이다. 이중 실제 페인트 희석제 등으로 소비되는 양은 80만 톤 에 불과하다. 나머지 200만 톤은 마땅히 처분할 곳이 없는 데다 폐기도 쉽지 않다. 그런 만큼 “이 물량을 세녹스가 적절히 소화해준다면 에너지 다원화 차원에서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산자부 쪽은 여전히 솔벤트와 톨루엔이 가짜 휘발유의 주원료라는 점을 들어 “불법행위의 유혹이 크고 그 규모도 막대하다”며 프리플라이트 쪽의 주장을 외면하고 있다.

    현행법상 연료첨가제의 소관부처는 환경부이며 10%의 부가세만 부과하게 돼 있다. 반면 휘발유 경유 LPG 등 자동차연료의 소관부처는 산자부로, 이들 연료에 대해선 차등적으로 교통세와 특별소비세 등을 부과한다.

    원유가격이 배럴당 25달러라고 가정하면, 휘발유의 정유공장 출하가격은 리터당 360원선이 된다. 여기에 특별소비세, 교통세, 지방세, 부가세 등의 명목으로 820여 원의 세금이 붙는다. 여기에 대리점과 주유소 마진이 포함돼 최종 판매가격이 1300원 안팎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문제는 세녹스가 첨가제로 분류돼, 10%의 부가가치세만 부과된다는 데 있다. 산자부는 “세녹스가 유사휘발유이기 때문에 휘발유와 똑같은 세금을 내야 한다”며 국세청을 통해 지난해 6월부터 올 2월까지 체납분 140여 억원을 부과했다. 산자부는 덧붙여 “세녹스는 결국 현행 세법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해 탈세를 하는 것”이라며 제조사의 도덕성을 걸고 넘어졌다.

    그러자 프리플라이트도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유사휘발유라고 주장하면서 휘발유와 같은 세금을 매기는 건 사실상 세녹스가 휘발유와 같은 연료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모순”이라며 “우선 대체연료로 인정한 뒤 합당한 부과 기준을 만들어 세금을 매기면 내겠다”고 되받아쳤다. 산자부는 다시 “교통세법에는 유사석유제품에도 휘발유와 같은 세금을 부과하도록 돼 있다”며 세금 부과를 밀어붙였다. 이에 프리플라이트는 “세녹스는 첨가제이므로 부가세 외의 세금을 낼 법적 근거가 없다”며 납부유예 신청을 했다. 지오에너지의 구동진 차장은 “산자부의 고발로 진행중인 재판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며 한치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산자부의 말대로 세녹스가 유사휘발유로 인정되면, 프리플라이트 쪽은 그동안 첨가제로 판 덕분에 내지 않았던 140여 억원의 세금을 토해내야 한다. 또 앞으로 교통세 등이 추가로 붙게 돼, 지금처럼 휘발유보다 싼값에 판매하기가 힘들어질 전망이다. 산자부 또한 “당장 프리플라이트 제조시설을 봉인 압류 철거할 것”이라며 공공연히 장담하고 있다. 프리플라이트로선 사운이 흔들리는 셈이다. 반대로 세녹스의 합법성이 인정된다면 프리플라이트는 더 이상의 걸림돌 없이 세녹스 판매에 주력할 수 있게 된다. 산자부도 더 물고 늘어질 명분이 없어진다.

    ‘유사 세녹스’가 성공할 수 없는 이유

    하지만 산자부는 “그래도 프리플라이트는 살아 남지 못한다”고 단정한다. 석유산업과 염명천 과장은 “세녹스가 합법적으로 인정되면 국내 정유사들도 유사 세녹스 생산에 나설 것이며, 현재 휘발유와 비슷한 가격인 리터당 360원대에 주유소에 공급할 것”이라며 “리터당 660원대에 생산하는 세녹스는 결국 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쨌거나 세녹스는 죽는다”는 게 산자부의 전망이다. 지루한 법적 싸움이 감정싸움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녹스와 유사한 첨가제를 만드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일까. 산자부는 “솔벤트와 톨루엔을 반반씩 섞은 게 가짜휘발유이며, 여기에 알코올을 10% 정도 섞으면 세녹스가 된다”며 일반 정유사도 쉽게 만들 수 있는 제품이라고 주장한다. 때문에 세녹스가 합법화된다 하더라도 정유사들이 막강한 자금력과 유통망을 앞세워 유사 제품으로 세녹스를 ‘고사’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프리플라이트 쪽은 “세녹스에는 노하우가 있다”며 반박한다. 같은 물질이라도 어떤 성분을 어떻게 혼합하느냐에 따라 성능이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특히 첨가제의 경우 휘발유의 원래 성질을 변화시키지 않는 오차 범위 안에서 오염물질 감소와 연비향상 등의 기능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에 “배합비율 자체가 기술”이라고 주장한다. 지오에너지 구동진 차장은 “적절한 배합비율을 발견한 건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다”고 말했다.

    이뿐이 아니다. 산자부가 장담한 대로 국내 차량용 에너지가 이른바 ‘유사 세녹스’로 평정되기 힘든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에너지의 성능과 별도로, 정책적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서 차량 등 수송부문의 에너지 소비량은 전체의 47%에 이른다. 연료 관련 세금만 하더라도 전체 세수의 30%에 이른다. 세녹스처럼 부가세 외에 별도의 세금이 붙지 않는 첨가제가 시장을 잠식할 경우 정부의 세수에 큰 구멍이 생길 것은 뻔한 일이다. ‘표적수사’란 비난에도 산자부가 기를 쓰고 세녹스를 단속하는 것을 소비자들이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심 재판이 진행중인 5월초 현재, 산자부는 상당히 지친 상태다. 세녹스를 둘러싼 논쟁이 격화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주무부처인 석유산업과 쪽은 모두들 “세녹스 얘기라면 지긋지긋하다”는 반응이다. 세녹스를 둘러싼 얘기들이 불거져나오는 게 결국 ‘유사휘발유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산자부의 한 관계자는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세녹스 생산업체와 판매업체들을 깡그리 잡아넣고 싶은 심정”이라며 “언론과 여론을 교묘히 이용해 불법을 일삼는 범죄자들”이라고 적개심을 감추지 않았다. 양쪽의 감정적인 대립은 극을 향해 치닫고 있다.

    지금까지 사정에서 알 수 있듯이, 세녹스를 둘러싼 산자부와 제조사의 대립은 한치의 양보도 없이 전개되고 있다. 법원의 판결이 어떻게 나든, 패배한 쪽은 이에 불복해 재심을 청구할 태세다. 세녹스를 둘러싼 논란 또한 지리하게 이어질 전망이다.

    법원이 어느 쪽 손을 들어주느냐는 부차적인 문제일지 모른다. 더욱 근본적인 것은, 1970년대에 만들어진 석유사업법이 시대 변화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낡은 조항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석사법에 문제가 있다”는 전제에는 산자부와 프리플라이트 모두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개정 방향에 대해선 서로의 입장이 정반대로 나뉜다.

    산자부는 “유사석유제품을 단속하는 석유사업법이 너무 느슨하다”고 불평을 터뜨린다. “프리플라이트처럼 석유사업자가 아닌 자에 대해서도 신속한 행정처분과 단속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처분받은 자가 이에 불만이 있으면 사법절차 등에 따라 구제를 받으면 될 것 아닌가”라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단속이 급하기 때문에 우선 처분한 다음, 억울하면 다른 경로로 나중에 구제받으라”는 입장이다. 산자부는 한술 더 떠 “산자부나 시 도 소속 공무원이 유사석유제품 제조 판매시설 현장조사와 행정집행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공무원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프리플라이트는 “전 지구적 에너지 고갈을 앞두고 대체에너지 개발이 활발한 지금, 1970년대에 제정된 낡은 석사법은 이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다”며 “석사법도 복합연료 개발이라는 세계적 추세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반박한다.

    실제로 현대의 자동차 연료는 복합연료 개념으로 변화하고 있다. 에탄올과 메탄올을 혼합한 연료, 거기에 휘발유를 혼합한 연료, 액화 천연가스 및 액화석탄연료, 식물성 유지와 알코올을 합성해 만든 연료 등이 그것이다. 휘발유나 경유 등 기존 석유연료에 다양한 첨가제를 가미해 연료 효율을 증가시키고 배기가스 배출량은 낮추는 노력들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프리플라이트는 “각종 첨가제를 혼합하는 것 자체를 문제삼지 말고, 최종 제품이 자동차 연료기준에 적합하고 안전한지를 따져봐야 한다”며 “낡은 석사법은 국내 정유 4사의 기득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결국은 국내 정유사들의 대체에너지 개발의지를 없애고 현실에 안주토록 하는 것”이라며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현장에선 “없어서 못 판다”

    그렇다면 실제 세녹스 판매현장의 반응은 어떠할까.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세녹스 전문판매점인 천안 구성점을 운영하는 최용길 사장은 “없어서 못 판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산자부가 용제수급 조정명령을 내리면서 세녹스 공급물량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바람에 팔고 싶어도 제품이 없다는 것. “지난해 9월부터 지금까지 시설투자비만 3억5000만원이 들어갔다. 그런데 정작 팔아야 할 물건이 공급되지 않으니 원…. 가슴을 칠 노릇이다.”

    시중 휘발유보다 300원 가량 싼 ‘파격적’인 가격 탓에 ‘자동차 엔진을 부식시킨다’는 등의 소문이 돌았던 점에 대해 물어봤다. 이에 대해 최용길 사장은 “판매점을 열기 전 10개월 동안 직접 세녹스를 써봤지만 오히려 차가 더욱 부드럽게 움직인다”며 손사래를 쳤다. “엔진 소음도 줄어드는 데다 연비도 10%는 향상된다”며 “오히려 고급차를 모는 손님들이 더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실제 구성점에 세녹스를 구매하러 온 소비자의 반응도 비슷했다. 천안에서 자영업을 한다는 한 고객은 “처음에는 의심이 없지 않았는데, 막상 써보니 차가 훨씬 잘 나간다는 느낌이 들어 계속 찾는다”고 밝혔다. “밤 11시에 와서 세녹스를 꼭 넣어야 한다며 떼쓰는 사람, 새벽 6시부터 찾아와 문 열기만 기다리는 사람 등 극성 고객도 상당수”라고 최용길 사장은 귀띔했다.

    세녹스와 휘발유를 이용해 자동차 테스트를 실시했던 자동차TV의 박태수 부장 또한 지난 3월초 모 방송국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세녹스와 휘발유를 각각 100% 넣고 테스트한 결과, 두 연료간 별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다”며 “세녹스는 가짜 휘발유가 아니다”고 밝혔다. 뒤이어 그는 “대체연료 개발과 상용화가 초기 단계에서 거대기업과 정부의 부정적인 태도에 부딪힌다면 누가 대체연료를 개발하겠는가”고 반문하면서 “대체연료 개발 원천봉쇄는 결국 국민에게 피해로 돌아갈 것”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에너지원 개발에 유연하게 대처할 것을 촉구했다.

    시민단체도 정부의 안일한 초기 대응을 지적하며 직접 검증에 나섰다. 녹색소비자연대는 지난 3월14일 “자동차 연료첨가제의 대기오염 저감과 연비향상 등 효과성에 대한 객관적 검증체계를 마련하고, 검증된 연료첨가제는 정책적으로 활성화하고 상용화할 수 있도록 대기환경보존법과 석유사업법을 개정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어 딴지일보, KBS ‘추적60분’ 제작팀과 함께 세녹스 소비자 검증단 활동을 시작한다고 5월1일 밝혔다. 이번 검증활동은 세녹스의 대기환경 개선효과와 자동차 영향 유무, 연비향상 기대효과 등을 실험하는 것이다. 실험은 4월29일부터 여러 차례 나눠 실시되며, 종류에 따라 2~4주가 걸릴 예정이다.

    반면 환경운동연합은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환경운동연합 에너지대안센터는 4월9일 “세녹스는 석유를 증류할 때 나오는 솔벤트와 톨루엔에 천연가스에서 추출한 약간의 메틸알코올을 첨가해 만든 것”이라며 “메틸알코올이 함유된 것을 빼면 휘발유와 성분이 비슷하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더불어 “석탄액화연료인 솔렉스도 대체에너지이지만 재생할 수 있는 에너지는 아니다”며 정부가 관련법을 개정해 환경친화적인 에너지 개발을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겉으로 보기에 세녹스를 둘러싼 공방은 이제 정부부처와 소기업간의 자존심을 건 대결구도로 흘러가고 있는 듯하다. 산자부를 선봉장으로 국세청, 재경부, 환경부 등이 사방에서 세녹스를 압박하고 있으며, 프리플라이트와 지오에너지가 이에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와중에 세녹스의 인기에 편승한 각종 유사 제품이 우후죽순처럼 나와 소비자들을 더욱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소비자들의 올바른 판단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정부 차원의 교통정리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단 정부는 일 년여 넘게 논쟁이 지속되도록 방치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에너지원 개발 열기를 뒷받침할 수 있는 법 개정이 시급하다. 이유야 어쨌건 논쟁의 주체인 양쪽 모두 낡은 석사법을 바꾸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세녹스를 비롯, 논란에 휩싸인 각종 첨가제에 대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검증에 적극 나서야 한다. 언제까지 민간기관의 ‘실험’을 멀찍이서 구경만 하고 있을 것인가. 소비자의 혼란을 하루빨리 잠재울 수 있도록 ‘에너지 교통정리’에 팔 걷어붙이고 나서는 것이야말로 지금 정부가 꼭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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