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6월호

유연한 인재관리로 시대 흐름 꿰뚫는 ‘싱크탱크 + 지식테마파크’

삼성경제연구소의 막강 경쟁력

  • 글: 허헌 자유기고가 parkers49@hanmail.net

    입력2003-05-26 16: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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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RI엔 없는 게 없다”. 삼성경제연구소(SERI) 홈페이지를 찾는 이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그러니 평범한 직장인에서 오피니언 리더, 정책 입안자에 이르기까지 하루가 멀다하고 SERI로 몰려든다. SERI가 설립 17년 만에 국내 정상의 민간 연구기관으로 성장한 비결은?
    유연한 인재관리로 시대 흐름 꿰뚫는 ‘싱크탱크 + 지식테마파크’
    서울 삼성동의 한 벤처기업에서 마케팅팀장으로 일하는 최현아(30)씨는 기획서를 쓰거나 아이디어를 찾을 때 삼성경제연구소 홈페이지에 접속한다. 최씨는 삼성경제연구소가 서울 어느 거리에 있는지도 모르지만, 홈페이지 주소(www.seri.org)만큼은 머리가 아니라 손가락이 기억할 정도로 익숙하다. 그가 “일 때문에 고민할 때마다 늘 ‘세리(SERI·삼성경제연구소의 영문 약자)’를 찾는” 이유는 “없는 게 없다”는 점 때문이다.

    “외국 화장품 회사의 매출 현황과 마케팅 동향을 파악하려고 화장품업계 등의 홈페이지를 찾았지만 만족할 만한 자료가 없었어요. 설마 SERI에 이런 자료까지 있을까 싶어 가장 늦게 접속해 들어갔죠. 그랬더니 제가 원하는 자료가 대부분 다 들어 있는 거예요.”

    최씨는 “SERI의 정보는 분류가 잘 돼 있을 뿐 아니라 매우 정밀해서 버릴 것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전혀 생각지 못한 자료들까지 대부분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발표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새삼스레 놀란다.

    경쟁력 원천은 연구원

    최씨처럼 삼성경제연구소의 정보력을 높이 사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 이들이 SERI를 찾는 목적은 최씨의 경우와 거의 비슷하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싱크탱크’,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는 ‘지식 테마파크’, 미래를 예측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상력 발전소’라는 게 SERI에 대한 이들의 평가다.



    자료를 대부분 무료로 얻을 수 있다는 점도 SERI가 이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유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근무하는 박사 출신 연구원은 “시의적절한 연구 보고서가 제때 나오는 것이 큰 강점이고, 해마다 한국 사회를 예측할 수 있는 프로젝트성 과제들도 제공돼 업무에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SERI는 일반 직장인뿐 아니라 오피니언 리더와 정부의 정책 입안자들도 즐겨 찾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때로는 ‘경쟁자’들도 SERI를 찾는다. 지난해 초 강봉균 당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일행이 삼성경제연구소를 방문했다. 쟁쟁한 학벌과 경력을 갖춘 국내 최대 연구기관의 원장과 교수급 임직원들이 SERI를 찾은 것은 연구원들을 평가하고 관리하는 노하우를 엿보기 위해서였다. 또한 홈페이지 관리부문에서 KDI보다 앞서가는 부분을 벤치마킹하는 것도 방문 목적이었다.

    실제로 강 전 원장이 SERI의 인터넷 관리에 호감을 가졌는지, 그가 세리를 방문한 뒤 KDI는 회원들에게 경제동향을 담은 이메일 보고서를 발송하고 홈페이지도 개편했다.

    이렇듯 여러 분야에서 SERI를 찾고 배우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어떤 점이 삼성경제연구소만의 독특한 경쟁력일까. 경제연구소는 단순하게 얘기하면 연구원과 사무실만 있으면 운영되는 곳이다. 따라서 SERI의 경쟁력은 우선 연구원들에게서 찾아야 할 것이다.

    SERI에는 100여 명의 연구원이 근무하고 있다. 1986년 연구소 설립 당시 연구원이 24명이었으니, 17년 동안 4배 가량 성장한 셈이다. 초창기는 증권사 설립 바람이 불던 시기여서 연구원들의 이탈이 심했지만, 설립 후 3∼4년이 지난 뒤부터는 안정궤도에 들어섰다.

    연구원들은 서울대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출신이 주류를 이룬다. 연세대와 고려대 출신들이 그 다음으로 많고, 서강대 한국외대 성균관대 경희대 중앙대 출신들이 뒤를 잇는다. 이들 가운데 서강대 출신들은 겸손하고 일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 신입 연구원을 채용할 때 서강대 출신들은 알게 모르게 ‘가점’을 받기도 할 정도라고 한다.

    전공 불문, 소속 불문

    재미있는 것은 연구원들의 전공이 매우 다양하다는 점이다. 물론 경제연구소의 특성상 경제학과 경영학 전공자가 많지만, 금속공학 물리학 도시계획학 지역개발학 사회학 정치학 전공자와 엔지니어 출신의 경영학 전공자도 꽤 많다. 소프트웨어 산업 분야를 담당하는 연구원은 음대를 졸업했다. 문화 마케팅 등 예술을 비즈니스 영역에서 다루다 보니 음대 출신도 필요했다는 것이 연구소측의 설명이다.

    다양한 분야 전공자들이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다 보니 그야말로 다양한 주제들이 보고서를 채운다. 골프신동 타이거 우즈 신화와 경영에의 시사점, 가수 서태지와 기업경영, 21세기 동북아 시대와 장보고 해상 지배 모형의 교훈, 히딩크 리더십의 교훈, 일본 명문 기업들의 잇단 불상사와 교훈, 월드컵 이후의 8대 과제, 미국 기업 분식회계의 파장과 대응 등 다채로운 내용이 SERI의 홈페이지를 가득 메운다. 망라되지 않은 주제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유연한 인재관리로 시대 흐름 꿰뚫는 ‘싱크탱크 + 지식테마파크’
    SERI는 골프, 음악, 스포츠, 역사 인물 등에서 성공하는 경영의 핵심을 찾아내는가 하면, 중국 일본 미국 등 한국 경제의 주요 변수가 되는 국가들의 최근 동향까지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보고서를 펴내고 있다.

    이렇듯 SERI가 세태를 반영한 리포트를 자주 발간하다 보니 사회 흐름에 너무 민감하게 대응한다거나 단기적 대응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적절한 보고서를 낼 수 있는 시스템은 오히려 SERI의 자랑거리다.

    실장급 연구원들은 매주 2회씩 티(tea) 타임을 가지면서 현안을 주고받고, 여기에서 매주 어떤 보고서를 작성할 것인지 논의한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소속팀을 넘나드는 연구원 운용이 이뤄진다. 전공과 소속을 불문하고 연구원을 선정해서 과제를 진행하다 보니 어떤 사회적 이슈가 생겨도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원들이 매주 또는 매월, 그리고 연간 연구주제를 선정하거나 팀을 이뤄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을 보면 상당히 합리적이다. 연초가 되면 전체 연구원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한 해 동안 진행할 연구 계획을 발표하기 위해서다. 이 자리에는 연구소장, 부문별 실장과 임원들은 물론 외부의 대학교수들까지 참석해 연구원들이 내놓은 프로젝트의 가능성을 평가한다. 심사위원들은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연구 과제를 뽑아 상을 주기도 한다.

    연구원들의 주제 발표와 함께 그해에 가장 역점을 두고 진행할 전략과제도 발표된다. 전략과제의 주제는 통상 연말에 실장들이 모여 정하는데, 다음해의 주요 이슈와 기업 경영 트렌드, 국가와 사회가 당면한 문제점 혹은 이정표 등이 그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조정실 류한호 상무는 “쉽게 말하면 내년에 어떤 것이 세상을 바꿀 것인지 토론하는 회의가 연말에 열린다”고 설명했다. 2000년에는 디지털과 벤처가 이슈였다.

    전략과제는 SERI가 내놓는 야심찬 프로젝트로, 과제가 끝나면 서울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 같은 널찍한 장소에서 심포지엄을 열어 발표한다. 그 무렵엔 언론에도 보도가 돼서 그런지 해마다 예정 참석인원의 3배를 웃도는 인파가 몰려든다.

    불꽃 튀는 프로젝트 경쟁

    SERI의 특징 중 하나는 연구과제를 발표할 때 연구원들이 마음에 드는 프로젝트에 지원하게 한다는 것이다. 연구원들은 사회적으로 반향도 일으킬 만하고, 회사에서 실시하는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것 같은 연구과제를 소신껏 선택한다. ‘물건이 될 것 같다’고 판단되면 연구원들은 주저없이 프로젝트를 내놓은 리더를 찾아간다. 그리고 자신이 한몫을 담당할 수 있도록 “끼워달라”고 부탁한다.

    선배냐 후배냐에 상관없이 누구나 프로젝트 리더가 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선배 연구원도 후배가 내놓은 프로젝트에 감명을 받으면 주저없이 팀원으로 지원한다. 후배 연구원은 자신의 프로젝트에 지원한 선배 연구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팀원으로 합류하는 것을 거부할 수도 있다. 연구원들은 “실제로 이런 사례가 종종 일어난다”고 귀띔한다.

    더 재미있는 것은 연구과제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어도 다른 연구원들이 이 과제에 지원하지 않으면 폐기된다는 점이다. 평가 결과에 무관하게 동료나 선후배 연구원들의 주의를 끌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도태된다. 가능성 있는 과제에는 실력자들이 모여들지만, 그렇지 않을 것 같은 과제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는 얘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연초에 연구원들은 마치 ‘될성부른 주식’을 골라 투자하듯 한 해 농사를 잘 짓기 위해 ‘좋은 토양’을 고르고 또 고른다.

    이들이 이처럼 좋은 과제에 목말라하는 이유는 상반기와 하반기에 실시하는 평가 때문이다. 연구원을 평가하는 시스템은 이렇다. 우선 평가 심사위원들은 우수한 성과를 보여준 프로젝트에 좋은 점수를 준다. 프로젝트 리더들은 팀 기여도에 따라 팀원들에게 점수를 차등적으로 부여한다.

    점수를 매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예를 들어 K연구원이 A프로젝트에 20맨데이(man-day·연구원이 투입한 일 단위시간을 말한다. 한 과제를 진행하는 데 하루를 일했다면 1맨데이가 된다), B프로젝트에 40맨데이를 투자했다고 하자. 또한 L연구원은 이와 반대로 A프로젝트에 40맨데이, B프로젝트에 20맨데이를 투입했다. 상반기 평가에서 A프로젝트가 100점, B프로젝트가 50점을 받았다면, K연구원은 (20일×100점)+(40일×50점)=400점을 받는다. L연구원은 (40일×100점)+(20일×50점)=500점을 받는다. L연구원이 더 높은 점수를 받게 된다. 여기에 리더가 평가하는 팀원의 기여도 점수, 소속 실장이 주는 점수, 그리고 외부 컨설팅 업무 평가에서 받는 점수 등이 더해져 최종 평가를 받는다.

    이런 성과측정 문화 때문에 연구원들 사이에선 자신이 원래 속한 팀을 ‘본적’, 프로젝트를 좇아 합류한 새로운 팀을 ‘현주소’라 부른다. 또한 새로운 팀의 리더를 ‘세대주’라고 하는데, 성과를 잘 받으려면 세대주에게 잘 보여야 한다. 더러는 유망한 세대주에게 연구원들이 몰리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자원(연구원)의 효율적 배분을 위해 연구조정실이 개입한다. 연구조정실은 프로젝트의 맨데이를 적정하게 잡았는지 심사하고 조정하며, 투입 연구원의 ‘머릿 수’를 대화를 통해 통제하기도 한다. 팀 리더들이 신청한 출장비, 회식비, 도서 구입비 등도 연구조정실과 상의해서 결정된다.

    신입 연구원들의 ‘실험동거’

    점수에 따른 성과급은 어떻게 지급될까. 상반기와 하반기 평가 때가 되면 개인별 점수가 1등부터 100등까지 나온다.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연구원은 ‘S’로 분류되며 1500만원의 성과급을 받는다. 통상 상반기와 하반기에 각 1∼2명이 선정된다. 해마다 일정하지는 않지만, A플러스를 받은 연구원은 200만∼300만원의 성과급을 받고, A와 B플러스 등 등급이 내려갈수록 성과급 액수가 적어진다.

    C등급은 성과급도 없고, 내년 연봉도 동결이다. 그렇지만 실장급의 한 연구원은 “C등급 이하라고 해서 ‘나가라’는 사인은 아니다. 좀더 힘을 내라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때로는 연구소장이 해당 부서의 실장을 불러 C등급을 받은 연구원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게 하고, 필요하면 다른 부서로 이동시키거나 대학에서 가르칠 자리를 알아봐주기도 한다. 어쨌든 여러 사정으로 한 해 10여 명의 인력이 연구소를 떠난다.

    연구원들이 해마다 평가를 통해 성장하거나 도태되는 것처럼 신입 연구원을 채용해 1년 뒤 정식 연구원으로 받아들이는 과정도 비슷하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매년 10여 명의 신규 인력을 채용하는데, 채용은 수시로 이뤄진다. 매월 50여 명의 지원자가 홈페이지를 통해 연구원 지원서를 내며, 연간 600여 명이 연구원 자리를 구하려고 몰려든다. 가끔 연구소 소속 각 실에서 인력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오면 공채 공고를 내기도 한다.

    신입 연구원 후보들은 1차 서류 심사에 통과하면 2차 면접용인 세미나 시험을 거쳐야 한다. 지원자 스스로 주제를 정해 발표하면서 자연스럽게 면접시험을 치르는 것이다. 이들이 진행하는 세미나에는 소속 연구원들이 참석해 실력을 테스트하거나 동료로 일할 자격이 있는지를 가늠하는 질문을 던진다.

    면접시험을 통과했다고 연구원 자격을 주는 것은 아니다. 우선 1년 계약직 연구원 자격을 준다. 연구소나 신입 연구원이나 1년 동안 서로 테스트하면서 마음에 안 들면 미련 없이 서로를 포기하자는 살벌한 계약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1년만 해보고 그만둔 연구원도 없고, 연구소측에서 그만두라고 얘기한 연구원도 없다. 다만 그럴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서로 ‘실험동거’를 해본다는 취지인데, 연구소가 선호하는 인재는 ‘겸손하고,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잘 극복하는 스타일’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성장사는 미국의 대표적인 엔터테인먼트 그룹 디즈니(Disney)의 그것과 많이 닮았다. 만화영화 제작업체 중에서도 후발업체였던 디즈니가 애니메이션 시장에 이름을 제대로 알릴 수 있었던 건 생쥐 미키마우스의 등장이었다. 1928년 7분짜리 단편 만화영화에 등장한 미키마우스는 무명의 디즈니사를 일약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기업으로 부각시켰다. 한 개의 히트 상품을 통해 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유연한 인재관리로 시대 흐름 꿰뚫는 ‘싱크탱크 + 지식테마파크’

    삼성경제연구소 인터넷 홈페이지(www.seri.org). 자료가 풍부하기로 이름이 높다.

    삼성경제연구소 역시 1986년 설립 직후엔 별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87년에 펴낸 한 보고서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서울올림픽 개최를 1년 앞두고 SERI는 올림픽 이후의 경제위기 가능성에 대해 경고했다. 당시 올림픽을 경제성장의 계기로 인식하던 일반인들과 경제 전문가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1965년 일본이 도쿄올림픽을 개최한 뒤 경기가 하강한 요인을 설명하면서 그 가운데 국내에 적용할 수 있는 의미를 찾으려고 시도했다. 올림픽 이후 일본에서는 설비투자의 순환적 조정작용으로 민간 설비투자가 감소했고, 올림픽 관련 전자제품을 중심으로 수요가 둔화돼 경기가 하강했다. 게다가 경상수지를 개선하기 위해 긴축금융정책을 실시했으나 오히려 국내 경기에 악영향을 끼쳐 경기 하강세를 부채질했다.

    SERI 연구원들은 과거 일본이 겪은 실패를 눈여겨봤다. 그들은 일본의 실패 원인 분석을 통해 한국도 경기 흐름으로 볼 때 올림픽 이후 경기 침체에 빠질 위험이 크다고 경고했다. 올림픽이 경기의 흐름 자체를 바꿔놓지는 못한다는 게 SERI의 지적이었다. 특히 건설업의 경우 일본에서 도쿄올림픽 직후 건설공사 붐이 하향세를 보인 것처럼 국내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측했다. 올림픽 이후에 대한 막연한 장밋빛 경기 예측에 합리적으로 제동을 걸면서 SERI는 경제연구소로서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에 힘입어 SERI는 금융시장 구조와 통화정책 효율성 등 학술적 성과를 인정받는 보고서를 펴내 금융당국이 정책을 입안하는 데 참고하기도 했다. 또한 ‘제조업 부문별 생산예측 모형’이란 보고서는 기업 현장의 기획과 생산부문에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평가됐다. 이를 계기로 SERI는 경제연구소의 역할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삼성그룹 경영진의 인식을 바꿨다.

    자신감을 얻은 SERI 연구원들은 해외 자료 번역 비중을 줄이고 자체 보고서를 만들어내는 데 주력했다. 이 또한 디즈니가 단편 만화영화인 미키마우스 히트를 시작으로 장편 만화영화에 도전한 것과 비슷하다. 디즈니는 ‘꽃과 나무’라는 만화영화를 제작하면서 천연색 컬러를 업계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어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피노키오’ ‘밤비’ 등의 장편 만화영화들을 의욕적으로 제작했다.

    SERI는 국내 경제 동향에 관한 보고서는 물론, 1990년부터는 해외 경제 동향을 담은 보고서를 적극 펴냈다. 해외 경제 분야를 연구하던 경제연구2실을 해외일반팀, 구미팀, 아주팀, 공산권팀으로 세분했다. 그리고 일본 도쿄, 벨기에 브뤼셀, 중국 베이징에 연구원을 파견해 해외정보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처럼 연구소의 역량을 키우고 대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면서 이를 바탕으로 그룹의 도움에서 벗어나는 독자적인 생존을 모색했다. 삼성생명 부설 연구단체에서 삼성경제연구소라는 독립법인으로 출범한 것이다(1991년).

    ‘삼성의 힘’이 도약 발판

    어쩌면 삼성경제연구소의 발전은 삼성의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식적인 얘기지만, 국내 경제연구소들은 사실상 모기업과 운명을 같이했다. 국내 최고 수준의 역량을 자랑하던 대우경제연구소는 대우그룹의 몰락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현대경영연구원도 현대그룹이 휘청거리면서 빛이 바랬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러나 SERI는 삼성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등에 업고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다. 1992년 삼성그룹이 국제증권(현 삼성증권)을 인수, 증권업에 진출할 때도 SERI의 지원을 받아 업계에 조기 정착할 수 있었다. 당시 SERI는 금융팀의 금융 연구 업무에 증권 연구를 추가해 금융증권실로 확장했다. 이렇듯 연구소는 일하면서 배우고 성장하는 곳이다.

    SERI는 삼성그룹이 일감을 주고 새로운 계열사를 늘려갈 때 이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았다. 삼성이 종합화학과 신용카드 회사를 설립하고 자동차 사업에 진출하자 SERI가 담당하는 영역도 점차 넓어졌다. 또한 삼성 계열사들이 해외로 진출하면 할수록 SERI의 해외 경제 관련 보고서는 날로 날카롭고 내용적으로도 풍부해졌다.

    디즈니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시도를 한다. 만화영화 ‘보물섬’ 등의 주인공을 실제 배우로 분장시켜 출연시킨 것이다. 이것이 대성공을 거둬 디즈니는 1955년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에 디즈니랜드를 개장했다. 1971년에는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디즈니월드를 열었다. 말하자면 상상 속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만화 주인공과 만화에 등장하는 세계를 실제로 만들어낸 것이다.

    디즈니가 만화영화 주인공을 실제 배우로 등장시켜 입체감 있는 인물로 재구성했듯 삼성경제연구소 역시 삼성의 계열사 지원에만 힘을 쏟아온 연구원들을 바깥 세상으로 끄집어냈다. 외부 컨설팅 업무가 그것인데, 연구원들은 1990년 초반부터 삼성 계열사가 아닌 다른 기업에도 SERI가 확보한 경영지식을 나눠줬다.

    SERI가 처음 손을 댄 컨설팅은 삼성전자 협력업체인 선일전자의 경영 자문과 진단이다. 중소기업과 공존한다는 차원에서 삼성의 경영 노하우를 중소기업으로 이전하는 최초의 시도였다. SERI는 선일전자에 이어 외환은행 대구은행 등 금융기관의 컨설팅 업무를 새로 맡았고, 이후 한양대 서울시청 공무원연금관리공단 등 다양한 분야에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했다.

    1990년대 중반 들어서는 기업과 정부 기관, 대학 등에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던 틀에서 벗어나 일반인들에게도 세리의 지식을 공급하려는 노력이 가시적으로 드러났다. 출판 사업은 일반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유용한 통로였다. 세리가 최초로 출간한 책은 삼원정공이라는 우량 중소기업의 경영혁신 사례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쓴 ‘1초를 잡아라’였다.

    1990년대 초에는 시간을 주제로 한 경영기법이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삼성에서도 효율적인 시간관리를 통해 경영의 스피드를 높이기 위한 각종 운동이 전개됐다. 이에 SERI는 ‘초(秒) 관리’라는 혁신운동을 전개해 상당한 성과를 거둔 삼원정공에 주목, 이를 다른 기업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분석했다. 그 결과를 담은 ‘1초를 잡아라’는 1993년 1쇄를 찍은 후 3년 동안 22만부가 팔려나갔다. 덕분에 무명의 삼원정공도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디즈니사가 디즈니랜드를 만들어 만화를 현실로 끌어냈듯 SERI는 정보를 보고 듣고 경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디지털 시대에 부응해 홈페이지를 구축했고, ‘SERI CEO’라는 지식 테마파크도 만들었다. SERI CEO에선 연구소 연구원과 각 분야 전문가들이 5∼7분짜리 짧은 동영상 강의를 진행한다. 또한 SERI에는 회원들의 자율적인 모임도 있고, 삼성경제연구소 회의실, 혹은 연구소가 있는 서울 용산 국제상사 빌딩 지하 맥주집에 모여 오프라인 모임도 갖는다.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습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SERI의 큰 강점이다.

    盧정권과 밀월관계?

    삼성경제연구소가 너무 ‘잘나가서’일까. 요즘 들어 SERI의 경쟁력을 정권과의 밀착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최근 ‘시사저널’은 ‘노무현-이건희 밀월의 나날’이라는 기사를 게재하면서 삼성경제연구소를 거론해 눈길을 끌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노대통령과 이회장은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사이지만, 올해 초부터 두 ‘스타’의 관계에 의미있는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노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인 지난 1월 삼성경제연구소는 ‘국정과제와 국가 운영에 관한 어젠더’를 작성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연구원 70여 명이 투입돼 한달 반 가량 작업한 끝에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12대 국정과제를 확정할 즈음 4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보고서를 노당선자측에 전달했다고 한다. 이것은 재벌개혁 속도 조절론, 향후 경제 전망 등을 담은 보고서라는 것만 알려졌을 뿐 실제로 국정운영에 참고가 되고 있는지, 노대통령이 읽어봤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아무튼 SERI는 김대중 정권에 이어 노무현 정권에도 국정 관련 보고서를 제출한 셈이다. 이에 대해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새 정권이 들어설 때 경제 현황에 관한 보고서는 제공하지만, 정권을 위해 따로 작성하거나 돈을 받고 제공하지는 않는다”며 “경제연구소는 누가 요청해도 내놓을 보고서가 준비돼 있다”고 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SERI는 재정경제부 교육인적자원부 행정자치부 산업자원부 기획예산처 등 주요 정부 부처와 한국산업단지공단 농산물유통공사 등 공공기관에서 발주한 보고서를 제공해왔다. SERI의 능력이 눈에 띄게 신장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때로는 기존의 보고서를 조금 각색해서 정부에 무료로 제공하기도 했고, 이 때문에 정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 것도 부인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SERI를 아끼는 회원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대표적 민간연구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것이냐다. 한 사회가 발전하면 그 사회에 속한 경제연구소도 함께 발전하겠지만, 내로라하는 경제연구소 덕분에 사회가 좀더 탄탄하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도 있다. 미국의 후버연구소나 일본의 노무라경제연구소 등이 국력에 걸맞은 능력을 갖췄다고 평가받고 있는 것이 그 예다.

    SERI는 ‘삼성’이라는 브랜드와 ‘경제연구소’란 타이틀을 갖고 어떤 가능성에 도전할 수 있을까. 삼성경제연구소 류한호 상무는 “우리의 꿈은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소로 가는 것이다. 현재의 목표는 세계 수준으로 가기 전에 우선 동북아에서 일등 경제연구소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SERI는 영어로 된 보고서뿐 아니라 일본어와 중국어로 번역된 보고서도 펴낼 계획이다. 또한 연구원들의 언어장벽을 깨기 위해 언어연수를 적극 지원하고 있으며, 중국과 일본 등에서 유능한 연구원들을 초빙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최우석 소장은 임원과 고참급 연구원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고 한다.

    “신입 연구원일수록 혹독하게 일을 시켜라. 연구소는 일을 하면서 커가는 조직이다. 사람을 키워야 발전한다. 연구원이 게을러지면 연구원도 연구소도 바보가 된다. 일을 하다 보면 조금 늦게 집에 들어갈 수도 있다. 자주 정시에 퇴근해 귀가하면 마누라도 불안해한다. ‘우리 남편이 요즘 일을 게을리해서 도태되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게 만들지 말라.”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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