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6월호

도박의 메카에서 엔터테인먼트의 수도로

  • 글: 황의봉 동아일보 출판국 부국장 heb8610@donga.com

    입력2003-05-27 13: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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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지노의 도시, 컨벤션의 도시에 이어 라스베이거스가 지향하는 제3의 발전모델은 가족형 엔터테인먼트의 수도. 볼거리 놀거리 먹을거리 화젯거리가 끊이지 않는 라스베이거스는 인류가 만들어낸 도시문명의 총화를 보여준다.
    도박의 메카에서 엔터테인먼트의 수도로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의 밤 풍경. 객실수 3000~5000의 초대형 고급호텔이 6km에 걸쳐 불야성을 이루고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의 환락과 불모의 사막이 공존하는 곳, 하루 24시간 일년 365일 카지노의 불빛이 꺼지지 않는 세계 도박의 메카, 벌써부터 2009년 열릴 컨벤션의 개최등록을 받고 있는 박람회와 회의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를 묘사하는 말들은 이밖에도 무궁무진하다. 연간 무려 3500여 만명의 관광객이 세계 도처에서 찾아오는 호텔객실 14만여 개의 관광 천국, 매일 밤 100여 개의 호화쇼가 벌어지고 알래스카 킹 크랩(바다가재)의 절반이 소비되는 환락가, 김득구가 쓰러지고 마이크 타이슨이 라이벌을 눕힌 세계적 복서들의 전설적 결전장, 밤에도 카메라 플래시가 필요없는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의 불야성…. 한마디로 볼거리 놀거리 먹을거리 화젯거리가 끊이지 않는 엔터테인먼트의 총화라고나 할까.

    흔히 도박의 도시로 알진 라스베이거스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도시로 꼽힌다. 1999년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이 인구 100만 이상의 59개 대도시를 대상으로 실시한 주거환경 적합성에 관한 평가에서 라스베이거스는 2위로 선정된 애틀랜타를 큰 점수 차이로 따돌리면서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뽑혔다.

    살기 좋은 도시답게 라스베이거스는 미국내 최고수준의 급속한 인구증가율을 기록중이다. 1990년 라스베이거스시와 인근지역을 합친 클라크카운티의 인구는 78만이었으나 2000년에는 정확히 100%가 늘어난 156만에 달했고 이같은 증가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관광객이 밀려들고 인구가 급속히 증가함에 따라 라스베이거스는 사업여건이 좋은 곳으로 부각되고 있다. 지난해 5월 포브스지가 선정한 미국내에서 비즈니스 하기 좋은 도시 가운데 3위에 올랐는가 하면 포천지가 해마다 순위를 매기는 ‘비즈니스 10대 도시’에도 빠지지 않고 있다.



    프린팅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 2년 전 시카고에서 라스베이거스로 왔다는 다니엘씨는 “라스베이거스는 24시간 움직이는 곳이기 때문에 24시간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며 사업이 나날이 확장되고 있다고 밝혔다. 라스베이거스 상공회의소의 카라 켈리 대표는 “라스베이거스는 카지노 관련사업뿐만 아니라 돈을 벌 수 있는 여러 가지 사업을 하기에 좋은 곳”이라고 자랑한다.

    사막의 한가운데에 모든 것을 인간의 힘으로만 쌓아올린 도시 라스베이거스가 이처럼 ‘뜨는 도시’로 각광받고 있는 저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 화려함과 막강한 경쟁력의 안팎을 들여다보자.

    세계 최고 대형 호텔들의 위용

    라스베이거스가 자리잡은 곳은 미국의 서부 네바다주 모하비 사막지대. 자갈 모래 흙이 섞여 딱딱해진 황무지다. 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려오든 비행기를 타고 오든 라스베이거스를 처음 찾는 방문객은 황량한 사막 위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초대형 호텔들의 위용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라스베이거스시는 스트립(the strip) 지역과 다운타운 그리고 주거지역으로 구분된다. 스트립은 초대형의 고급호텔이 약 6㎞에 걸쳐 늘어선 곳으로 라스베이거스의 심장부에 해당한다. 스트립의 호텔들은 하나같이 3000∼5000개의 객실을 갖춘 초대형이다. 현재 세계의 10대 관광 리조트 호텔 가운데 9개가 이 곳에 있을 정도로 화려하고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반면 과거 중심지였던 다운타운은 스트립에 눌려 퇴색한 느낌이다.

    라스베이거스의 상징인 스트립의 호텔들은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영화회사 MGM이 만든 객실 5005개의 세계최대 호텔인 MGM그랜드호텔, 호텔 안에 운하를 만들어 곤돌라를 운행하는 이탈리아 베니스 분위기의 베네시안호텔, 이집트의 피라미드처럼 생긴 룩소르호텔, 자유의 여신상을 비롯해 뉴욕의 명물들을 재현한 뉴욕뉴욕호텔, 복싱경기로 유명한 고대 로마 컨셉트의 시저스 팰리스호텔, 열대림을 호텔 안에 꾸미고 호랑이를 기르는 미라지호텔 등등 호텔 자체가 흥미로운 관광거리다.

    스트립의 호텔들은 입구로 들어서면 그대로 거대한 카지노장이다. 어느 호텔이고 예외없이 1층 면적의 70∼80%는 카지노로 꾸며져 있다. 슬롯머신과 블랙잭 키노 룰렛 크랩스 등이 벌어지는 테이블이 꽉 들어차 있어 라스베이거스가 도박의 도시임을 실감나게 한다. 호텔뿐 아니라 공항에도, 주유소에도 슈퍼마켓에도 슬롯머신 등이 설치돼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나 갬블링(각종 도박행위의 총칭)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라스베이거스다.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장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2001년의 경우 76억달러. 지난해와 올해는 9·11테러 사태의 여파로 다소 부진한 편이다. 통계에 따르면 라스베이거스 방문자들은 평균 3.6일을 머무르는데, 카지노 게임을 할 확률은 86%, 하루에 도박을 하는 시간은 3.8시간, 도박에 쓰는 돈은 607달러다.

    호텔들은 카지노의 수입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한다. 저렴한 숙박비와 음식값이 그 좋은 예다. 호텔투숙비의 경우 고객의 도박실적(?)과 신용도에 따라 완전무료 혹은 상당한 폭의 할인혜택이 주어진다. 단골로 와서 카지노에 거액을 쓰고 가는 VIP들에게는 모든 것을 공짜로 제공할테니 카지노에다 돈이나 듬뿍 풀라는 얘기다.

    도박의 메카에서 엔터테인먼트의 수도로

    베네시안호텔 2층에 조성된 수로를 따라 곤돌라가 운행되고 있다.

    세계적 규모의 호텔 치고는 호텔내 음식값이 무척 싸다. 라스베이거스는 뷔페형식의 식당이 최초로 등장한 곳으로도 유명한데, 웬만한 호텔의 뷔페식사는 10달러 미만이다. 알래스카에서 잡히는 킹 크랩이 거의 무제한으로 공급되는 등 최고의 호화뷔페로 알려진 벨라지오호텔의 저녁 뷔페도 일인당 23달러에 불과하다.

    시 당국도 카지노 고객을 유혹하기 위한 정책적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단적인 사례가 음주운전에 대한 관대한 태도. 카지노에서 게임을 즐긴 고객들은 따면 신이 나서, 잃으면 속상해서 술을 마시게 마련이다. 따라서 라스베이거스 시내에는 도처에서 음주운전이 횡행한다는 게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경찰의 단속은 매우 소극적이다. 길을 막고 음주측정을 하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고 ‘비틀거리는 차량’만 단속한다. 미국의 대도시 가운데 가장 안전하다는 평을 듣는 치안확보도 따지고 보면 관광객 유치작전의 소산이다. 최소한 스트립의 번화가만큼은 24시간 관광객이 활보하고 다닐 수 있을 정도다.

    도박이 최대의 수입원인 만큼 호텔측과 라스베이거스 시 당국의 카지노 관련정책은 치밀하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도 갬블링을 둘러싼 분쟁을 완벽히 차단하는 장치를 갖췄다. 딜러와 갬블러(고객)의 일거수일투족은 이중 삼중의 감시카메라 장치에 의해 손금 들여다보듯 파악된다. 부정의 소지를 원천봉쇄하고 있는 것이다. 엄격한 교육을 받은 딜러들은 물론, 갬블러들도 얼굴 붉힐 일이 없다. 카지노에 속임수가 있다는 소문이 나면 그 순간 도박산업은 망하기 때문에 공정한 게임의 규칙이 철저히 적용된다는 것이다.

    스트립의 한 호텔 카지노담당자는 “각 호텔마다 수백개의 각종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는데, 이를 통해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들이 카드의 숫자 하나하나를 모두 읽고 있을 정도로 카지노장내 모든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체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돈이나 코인을 넣고 하는 슬롯머신의 경우 하나 하나의 기계가 독립된 계산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시스템은 중앙전산실로 연결돼 있어 조작이 불가능하며, 수입의 일정비율은 8시간마다 곧바로 라스베이거스 시에 세금으로 입금토록 돼있다”고 밝혔다. 도박게임의 전과정과 세금징수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시스템으로 통제되고 있는 셈이다.

    아무리 게임의 규칙을 엄격히 정하고 관리를 철저히 해도 부작용이 없을 수는 없다. 대표적인 게 도박중독자 문제다. 미국의 일부통계에 따르면 도박하는 사람의 7%가 중독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라스베이거스 시당국은 이와 관련된 수치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대신 중독증세를 호소하는 고객들에게 무료로 카운슬링을 해주는 등 치료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박람회로 날이 밝고 카지노로 밤을 지새는 곳

    도박의 메카에서 엔터테인먼트의 수도로

    공항에서부터 호텔 주유소 상점 등 라스베이거스 곳곳에 카지노장이 있다.

    카지노와 함께 라스베이거스를 지탱하는 수입원은 컨벤션산업이다. 시관계자들은 라스베이거스를 대표하는 것은 카지노가 아니라 박람회라고 열을 올린다.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대형박람회만 연간 60여 개, 여기에 각 호텔에서 개최되는 크고 작은 박람회와 회의 이벤트를 합치면 4000개가 넘는다. 그야말로 박람회로 날이 밝고 카지노로 밤을 지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스베이거스 방문자 가운데 각종 박람회에 참여하기 위해 오는 사람은 연간 약 400만명에 달한다. 매일 1만명 이상이 세계 각국에서 몰려들어 며칠씩 머물고 간다는 계산이다. 이들이 뿌리고 가는 돈만도 50억달러에 육박한다.

    2003년의 경우 전자제품박람회(1월9~12일), 세계최대의 IT박람회인 컴덱스(11월18~22일) 등 대형박람회를 비롯해 스포츠용품전시회(1월) 신발박람회(2월) 의류박람회(8월) 자동차부품전시회(11월) 등 각양각색의 박람회 전시회 회의가 쉴틈없이 개최되고 있다.

    컨벤션산업은 호텔 입장에서 보면 꿩먹고 알먹는 사업이 아닐 수 없다. 카지노를 하러 오는 관광객들은 대개 주말인 금요일 밤부터 몰려와 일요일까지 머물다 돌아간다. 대신 주중에는 컨벤션 손님들이 호텔을 채워준다. 라스베이거스의 호텔 객실점유율이 연평균 85%를 넘어 일반적인 호텔의 수지균형점(55~60%)을 훨씬 상회하는 것도 이같은 컨벤션 덕분이다.

    지난해 전자제품박람회(CES)에 참가한 삼성전자는 400여 객실의 알라딘호텔을 거의 싹슬이하다시피 할 정도였고, 국내의 여타 기업들도 직원들을 대거 파견한 바 있다. 이처럼 대형 컨벤션행사가 개최되는 시기에는 객실요금도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MGM그랜드호텔의 하루 숙박비가 800달러까지 올라가는가 하면 평상시 100달러 안팎의 호텔들도 3배 가량 비싸진다.

    라스베이거스의 컨벤션산업은 일찌감치 카지노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느낀 시당국과 호텔업자들의 선견지명에서 비롯됐다. 라스베이거스시를 관할하는 클라크카운티는 이미 1955년에 컨벤션관광국을 설립하고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 건립에 착수했다.

    1959년에 완공된 LVCC는 이후 확장을 거듭, 2500여 평이던 전시면적이 지금은 무려 50여 배나 커졌다. 라스베이거스에는 세계 200대 컨벤션행사 가운데 30∼40개 가량을 치르고 있는 LVCC 이외에도 샌즈 엑스포 컨벤션센터, 케쉬맨 센터, 핸더슨 컨벤션센터 등 대형 컨벤션센터가 즐비하고, 각 호텔도 하나같이 대규모 컨벤션시설을 갖추고 있다.

    도박의 메카에서 엔터테인먼트의 수도로

    라스베이거스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한 후버댐

    카지노의 도시, 컨벤션의 도시에 이어 라스베이거스가 지향하는 제3의 발전모델은 종합 엔터테인먼트의 수도. 미국내 웬만한 곳에서도 카지노가 합법화돼 있고, 애틀랜타 같은 도시가 컨벤션산업에 강력한 도전자로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무언가 라스베이거스만이 내세울 수 있는 유인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게 바로 가족형 위락도시 개념이다.

    독특한 개성으로 치장한 호텔들이 제공하는 신기한 구경거리들이야말로 엔터테인먼트의 수도를 지향하는 라스베이거스의 명물이다.

    밤이 되면 미라지호텔 앞에서는 화산폭발의 장관이 30분 간격으로 벌어진다. 정글속의 분화구에서 화산이 터지면서 불기둥이 치솟고 용암이 흘러나오는 장면이 실감나게 펼쳐진다. 벨라지오호텔 전면의 넓은 호수에서는 매시간 거대하고 화려한 야간 분수쇼가 펼쳐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트레저 아일랜드호텔 앞에서는 영국군함과 해적선의 한판 전투가 불을 뿜는다. 포격전이 벌어지고 병사가 바다로 떨어지는 등 15분간 진행되는 해적선쇼를 보기 위해 항상 수백명의 관람객들이 몰려든다.

    또 룩소르호텔에서는 대형 피라미드가 쏘아올리는 레이저빔쇼가 장관이고, 오즈의 마법사를 주제로 한 MGM그랜드호텔의 테마파크,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장 높은 스트라스토피어호텔의 전망대와 놀이기구(롤러코스트)가 사람들을 유혹한다. 또 서커스서커스호텔에서는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미국최대의 테마파크가 온갖 놀이시설을 갖추고 있다. 호텔 앞에서 펼쳐지는 볼거리는 모두 무료관람이다.

    세계적 수준으로 정평이 난 각 호텔의 쇼도 라스베이거스를 엔터테인먼트의 도시로 자리매김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싱크로나이징 곡예 등 90분 동안 수중에서 펼쳐지는 스펙터클한 벨라지오호텔의 O쇼, 호랑이 사자 코끼리를 동원해 마술을 보여주는 미라지호텔의 지그프리드 앤드 로이쇼, 상체를 완전히 드러낸 무희들이 대거 등장하는 밸리스호텔의 주빌리쇼 등 사전예약과 함께 100달러 안팎의 입장료를 받는 대형 호화쇼가 하루밤에 무려 100여 개가 펼쳐진다.

    이같은 볼거리들과 함께 많은 호텔은 자체내에 어린이 보호시설을 설치해 가족단위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이쯤 되면 부모들은 카지노와 쇼를, 젊은이들은 호텔 앞에서 공연하는 각종 무료쇼를 즐기고, 어린아이들은 호텔의 보호시설에 맡겨지는 등 가족형 엔터테인먼트의 도시로 손색이 없는 셈이다. 라스베이거스가 가족형 엔터테인먼트의 도시로 변신하고 있는 것은 방문객 가운데 21세 이하 연령층의 비율이 12%로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도박합법화, 후버댐 건설로 도약

    도박의 메카에서 엔터테인먼트의 수도로

    라스베이거스 교외에 있는 국립 공원 레드럭 케년으로 가는 길

    라스베이거스의 역사는 1829년부터 시작된다. 당시 뉴멕시코의 샌타페이에서 캘리포니아의 로스앤젤레스로 가던 60명의 스페인계 탐험가들과 상인들이 무더운 모하비사막 한가운데서 귀중한 오아시스를 발견했다. 그들은 이곳을 초원(the Meadows)이라는 뜻을 가진 스페인어 ‘라스베이거스’라고 불렀다. 캘리포니아를 가기 위해 사막을 질러가는 지름길의 휴식장소가 바로 라스베이거스였던 셈이다.

    라스베이거스에 정착한 최초의 백인 거주자들은 모르몬교도들이었다. 이들은 현재의 라스베이거스 도심 근처에서 인디언들을 선교하기 위해 요새를 건설하고 선교활동을 시작했으나 3년 만에 포기하고 유타주로 되돌아갔다.

    라스베이거스가 하나의 도시로 기본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 데에는 20세기 초에 건설된 철도와 기차역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로스앤젤레스와 솔트레이크시티를 연결하는 철도의 간이역이 들어선 라스베이거스는 1910년경 역 주변에 몇 개의 호텔과 상가 술집들이 있는 인구 1000여 명의 작은 도시로 자리잡았다.

    한적한 시골 간이역이었던 라스베이거스가 오늘날의 대도시로 성장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31년에 발생한 두 가지 사건 즉, 도박의 합법화와 후버댐 건설이다. 네바다주는 불법적인 도박이 만연하자 도시성장과 세수증대를 위해 미국최초로 이 해에 도박을 합법화한 것. 후버댐 건설은 경제공황으로 인한 대량실업사태를 해소하고 미국 남서부의 홍수통제와 수자원 확보를 위해 추진됐다.

    후버댐에서 40㎞ 떨어진 라스베이거스는 건설기술자들이 몰려들자 이들을 위한 위락시설이 발달하기 시작했고, 후버댐 건설현장을 보고 카지노를 즐기려는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점점 도시규모가 커졌다. 한편 일년 내내 건조하고 맑은 날씨의 라스베이거스 주변지역이 군대의 사격연습과 비행연습에 적합해 군사기지와 군수산업시설이 들어선 것도 발전을 촉진시킨 원동력이 됐다.

    1930년대와 1940년대 초기의 성장이 연방정부의 재정지출에 힘입은 것이었다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라스베이거스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된 데에는 이곳이 유망한 관광지가 될 것이라고 보고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선 개별 기업가들의 몫이 컸다. 투자자들은 라스베이거스와 캘리포니아를 연결하는 현재의 라스베이거스 블러버드, 즉 스트립 지역에 카지노호텔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일종의 벤처기업가였던 셈인데, 이때 마피아의 자금도 유입되기 시작했다.

    도박의 메카에서 엔터테인먼트의 수도로

    벨라지오호텔의 분수쇼 뒤로 패리스호텔의 에펠탑이 보인다.

    영화 ‘벅시’를 통해 알려진 벅시 시걸(Bugsy Siegel)은 플라밍고호텔을 건설하기 위해 마피아 자금을 동원했는데, 수영장 온천 스쿼시코트 사격연습장과 9홀의 골프장을 갖춘 오늘날 라스베이거스 카지노호텔의 원형을 일찌감치 선보였다.

    라스베이거스의 오늘날이 있기까지 마피아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시 관광국의 한 관계자는 “1931년 네바다주의 카지노산업 합법화시 알 카포네가 이곳에 진출해 호텔과 카지노사업에 손댔는데, 이때부터 마피아가 라스베이거스의 모든 분야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그 대표적 사례가 벨라지오호텔 미라지호텔 등을 건설한 전설적인 인물 스티브 윈. 부친이 알 카포네의 부하로 알려진 스티브 윈은 호텔종업원으로 밑바닥 생활을 거치면서 호텔주식을 닥치는 대로 사모아 경영권을 장악했으며 대형 호텔들을 대거 신축, 라스베이거스 카지노호텔의 대부가 됐다고 한다. 스티브 윈은 나중에 경영난에 봉착해 호텔들을 팔아 넘겼으나 최근 재기를 노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관광국 관계자는 지금은 마피아가 외견상으로는 사라졌으나 아직도 그 영향력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1969년 네바다주가 공기업이나 법인들도 카지노호텔을 매입,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기업게임법을 통과시키자 대규모 자본을 가진 기업들이 라스베이거스에 진출하게 됐다. 이렇게 되자 그때까지 30년 이상 라스베이거스를 지배해온 마피아들이 점차 사라지게 됐지만 지금도 라스베이거스 시정부의 정책노선을 결정하는 데 과거 마피아의 후신들이 강한 입김을 행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한 예로 과거 마피아의 법률고문이자 대변인 역할을 했던 오스카 굿맨(Oscar Goodman) 현시장이 호텔선전 간판의 규제철폐 등 친호텔정책을 펴는 것을 들었다. 시민의 절반 가량이 호텔관련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라스베이거스에서 호텔업자들은 선거에서부터 일반 시정에 이르기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라스베이거스는 대도시로 발달하기 위한 자연환경이나 산업기반 등 입지조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가장 인구증가가 빠른 도시로 발전하고 있는 데에는 장기적인 안목에 입각한 도시계획을 빼놓을 수 없다. 최근까지 라스베이거스 시 도시계획과에서 근무한 건축가 김도성(39)씨는 “라스베이거스는 자연발생적이 아닌 철저히 인위적인 발전구상에 의해 1930년대부터 체계적으로 확대돼온 도시”라며 “현재의 스트립에 들어선 호텔군은 다운타운에서 공항으로 가는 고속도로 위에 건설됐기 때문에, 주변은 황무지로 비어 있는 땅이어서 앞으로도 얼마든지 확장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김씨에 따르면 호텔뿐만 아니라 주거지역도 외곽으로 거의 무제한적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고 한다. 사막의 한가운데에서 시작된 도시이므로 사람이 살지 않는 외곽지역으로 계속해서 체계적인 택지개발을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라스베이거스 시 서북쪽의 서머린과 동남쪽의 선시티 같은 택지개발지구를 보면 이 도시가 어디까지 뻗어갈지 짐작이 안 간다. 서머린 지구의 경우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의 후손들이 소유주인데, 카운티 당국과 협의하여 개발 마스터플랜을 만든 뒤 일반인을 상대로 분양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개발업자는 도로와 건축물의 크기, 색깔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게 되는데, 서머린 지구의 규모가 현재의 라스베이거스 시가지에 맞먹을 정도로 넓다.

    라스베이거스의 발전을 점치는 사람들은 관광업의 발달과 주거지 개발여건 이외에도 낮은 세율과 범죄율, 밝은 고용전망, 다양한 레크레이션 시설과 함께 따뜻한 기후조건을 그 이유로 꼽고 있다. 특히 공해산업이 전무한 데서 오는 청정한 공기와 연중 맑은 사막의 날씨로 인해 노후생활에 적합한 주거지로 각광받고 있다.

    사막의 신화는 아직도 현재진행형

    사막 위의 기적을 이룬 라스베이거스에도 약점은 있다. 관광산업 한 가지에 매달리다 보니 9·11테러 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곧바로 경기가 얼어붙는다. 실제로 라스베이거스는 아직도 9·11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카지노의 빈 자리가 도처에 눈에 띈다. 라스베이거스 한인회 정용학 사무총장은 “9·11 직후 관광객이 급격히 줄었다가 잠시 회복되는 듯했으나 다시 이라크전쟁과 사스파동으로 줄어들어 각 호텔마다 감원바람이 일었다”고 요즘 분위기를 전했다.

    시당국은 항공산업과 자동차관련산업이 유망하다고 보고 공업지구를 지정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한때 크라이슬러 자동차회사 유치가 가시화되기도 했으나 일단 무산된 상태다.

    물과 전기사정도 장기적인 발전에 걸림돌이다. 후버댐을 막아 조성한 미드 호수의 물을 끌어다 쓰고 있으나 한정된 수자원을 캘리포니아의 대도시들과 함께 이용하고 있어 점차 압박을 받게 될 전망이다.

    몇 가지 구조적인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라스베이거스는 당분간 고속성장을 지속할 전망이다. 직원 8000명에 관련산업종사자가 8만명에 달할 세계 최대 호텔이 2년내 착공될 예정이고, 라스베이거스 공항은 국제공항으로 확장된다. 또 8개의 주요호텔을 잇는 미국내 최장의 6.4㎞ 모노레일이 내년 초면 개통될 예정이다. 사막의 기적, 라스베이거스 신화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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