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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관의 조선사회 뒷마당 ⑨ 과거제도

대리시험, 커닝, 시험관 매수… 타락의 극치 보여준 양반들의 잔치

  • 글: 강명관 부산대 교수·한문학 hkmk@pusan.ac.kr

대리시험, 커닝, 시험관 매수… 타락의 극치 보여준 양반들의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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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때의 일이다. 성균관 앞 반촌(泮村)의 한 아낙이 나물을 캐다가 노끈이 땅에 묻힌 것을 발견하고 잡아 당겼다. 대나무 통이 묻혀 있었다. 대나무 통은 땅속을 통해 과거시험이 열리는 성균관 반수당(泮水堂)으로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부정행위자는 대나무 통을 매설하고, 통 속에 노끈을 넣은 것이다. 과장(科場)에서 시험문제를 노끈에 매달아 보내면, 밖에 있는 자가 줄을 당겨 시험문제를 확보한다. 그리고 답안지를 작성해 노끈에 묶어 보내는 수법이었다. 당국이 조사를 했으나, 범인은 잡을 수 없었다고 한다(숙종실록 31년 2월18일).

이처럼 과거는 결코 투명하고 공정한 게임이 아니었다. 응시자가 책을 베끼거나, 출제자가 채점자와 공모하거나, 서리(書吏)를 매수하는 일회성 범죄가 횡행했다. 또한 특정 정파가 자파 세력이나 친인척의 답안지에 의도적으로 후한 점수를 주어 합격시키는 권력구조적 비리도 있었다. 조선 500년을 통틀어 부정의 흔적이 없던 시대는 없었다.

문제는 이러한 부정시험이 범죄라는 의식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정이 관례가 되고 풍속이 되어 버린 것이다. 예컨대 과장에 책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은 금지사항이었다. 그러나 만약 책을 가지고 과장에 들어가는 것이 일상화했다면 감독관은 어떻게 할 터인가. 현재 사법고시를 치를 때 책을 가지고 들어가서 그것을 보고 답안지를 작성한다면 어떻게 될까. 부정이 범죄의식 없이 일상화되면 그 제도는 그 날로 끝이며, 그 제도 위에 구축된 체제의 정당성은 사라진다. 이제 과거제도의 부정이 일상화되는 과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정조 때 1회에 무려 11만명 응시

과거를 치르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글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 점에서 ‘한양가(漢陽歌)’에서 묘사하고 있는 19세기 중엽의 과거시험 장면은 흥미로운 것이다. 워낙 긴 것이기에 중요한 장면만 인용한다.



“춘당대(春塘臺) 높은 언덕 영화당(暎花堂) 넓은 뜰에 배설방(排設房) 군사들과 어군막(御軍幕) 방직(房直)이가 삼층 보계판(補階板)을 광대하게 널리 무고 십칠량(十七樑) 어차일(御遮日)을 반공에 높이 치고…”

과거를 치르는 장소는 창경궁(昌慶宮)인 듯하다. 창경궁의 춘당대 영화당 넓은 뜰에 어좌(御座)를 설치했다. 임금이 친림하는 과거였다. 임금이 친림하는 과거는 알성시, 정시, 춘당대시 등이었으니, 아마도 이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제 과장 입장을 기다리는 과거의 주인공인 과유(科儒)들의 모습을 보자.

“선비의 거동 보소, 반물 들인 모시 청포(靑袍) 검은 띠 눌러 띠고, 유건(儒巾)에 붓주머니 적서(積書) 복중(腹中) 하였으니, 수면(粹面) 앙배(央背) 하는구나. 기상이 청수(淸秀)하고 모양이 조촐하다.”

반물은 검은 빛을 띤 짙은 남색이다. 이 색을 들인 모시 청포를 입고, 검은 띠에 유건을 썼다. 글 읽고 몸 닦은, 단정한 선비 차림이다. 그러기에 기상은 청수하고 모양은 조촐하다지 않는가. 하지만 이어지는 장면은 청수하고 조촐한 선비의 상과는 전혀 딴판이다.

“집춘문(集春門) 월근문(月覲門)과 통화문(通化門) 홍화문(弘化門)에 부문(赴門)을 하는구나. 건장한 선접군(先接軍)이 자른 도포 젖혀 매고 우산에 공석(空石) 쓰고 말뚝이며 말장이며 대로 만든 등(燈)을 들고 각색 글자 표를 하여 등을 보고 모여 섰다. 밤중에 문을 여니 각색 등이 들어온다. 줄불이 펼쳤는 듯 새벽별이 흐르는 듯 기세는 백전(白戰)일세, 빠르기도 살 같도다.”

‘부문(赴門)’은 문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즉 과장으로 입장하는 것이 부문이다. 입장하는 문은 넷이다. 홍화문은 창경궁의 정문이고, 나머지 집춘문, 월근문, 통화문은 창경궁 담장에 있는 작은 문이다. 이 네 문으로 거자(擧子)들이 입장한다.

그런데 시험장에 들어서면 항시 긴장되어 조용한 법인데 법석대는 분위기라고 한다. 또 나라의 인재를 선발하는 시험장에 입장하는데 그 모습이 야단스럽다고 한다. 또 ‘건장한 선접군’이란 대체 누구란 말인가? 과장은 지금의 시험장과는 달리 번호가 매겨진 자기 좌석이 없었다. 과장에 들어서면 무조건 좋은 자리를 잡아야 한다. 좋은 자리란 시험문제를 빨리 볼 수 있는 곳, 시험 문제를 빨리 낼 수 있는 곳이 으뜸이다. 어쨌건 좋은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남보다 먼저 입장해야 해야 하는데, 이때 치열한 몸싸움이 벌어진다. 부문에는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는 입장(入場)’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때 몸싸움을 전문적으로 떠맡은 건장한 사람들이 바로 선접군이다. 선접군은 자른 도포를 젖혀 매어 옷매무새를 단단히 하고, 우산과 말뚝 막대기(말장) 등 이상한 도구들을 들고, 자기 접(팀)이 인지할 수 있는 표시를 한 등을 밝히고 문 앞에 선다. 밤새 기다린 끝에 문이 열린다. 등불은 줄불 흐르듯 새벽별이 흐르듯 화살처럼 쏟아져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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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명관 부산대 교수·한문학 hkmk@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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