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6월호

번민과 시름, 에게海에 지다

하얀 건물, 비취빛 바다가 아름다운 그리스 산토리니섬

  • 글·사진: 김선겸 여행작가

    입력2003-05-28 11: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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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민과 시름, 에게海에 지다

    산토리니섬 끝자락에 위치한 이아마을 전경. 에게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꿈과 낭만으로 가득한 신화의 나라 그리스는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어하는 곳이다. 육지의 끝자락 발칸반도와 20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이 ‘바다국가’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려면, 찬란한 고대유적뿐 아니라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에게해의 섬들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그 중 에게해의 이미지를 가장 많이 담고 있는 섬이 바로 산토리니다.

    아테네 인근 피레우스 항구에서 아침 8시에 출발한 배는 거의 11시간이 지나서야 산토리니에 도착했다. 배에서 바라보는 산토리니섬의 자연경관은 매우 독특하다. 깎아지른 듯 경사가 급한 붉은 절벽 위에 하얀 집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어 멀리서 보면 흡사 눈이라도 내린 듯하다. 항구에서 섬의 중심지인 피라마을까지는 아슬아슬한 절벽을 따라 도로가 이어져 있다.

    붉은 석양에 물든 하얀 풍차

    에게해에서 가장 화려한 곳이라는 피라는 매끄럽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그 골목길 사이로 한 발짝을 들여놓은 여행객은 흡사 면도칼로 도려낸 듯한 절벽을 따라 서 있는 수많은 흰색 호텔과 카페, 타베르나(taverna·그리스식 향토요리점), 선물가게, 보석점의 하얀 미로에 꼼짝없이 사로잡힌다.

    피라에서 580개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구항구가 나온다. 걸어 내려가려면 한숨부터 나오는 긴 계단이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피라 중심지에서 구항구까지 케이블카가 연결되어 있고, 산토리니의 명물인 당나귀를 타고 갈 수도 있다. 꼬불꼬불한 계단을 당나귀를 타고 오르내리며 끝없이 펼쳐진 에게해를 바라보는 재미는 잊지 못할 추억거리.



    피라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이아마을은 섬에서 가장 멋진 노을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섬의 북쪽에 위치한 이 마을은 피라 같은 화려함은 없지만 저물어가는 붉은 태양에 물든 에게해의 정취를 느끼기에 최적의 장소다. 이아마을의 끝자락에 위치한 하얀 풍차는 이 곳을 찾은 이들의 뇌리에 가장 오래 각인되는 이미지다. 푸른 에게해 너머로 사라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그리스 샐러드와 해산물 요리를 맛보는 동안, ‘분주한 삶의 힘겨움’ 따위는 까마득한 다른 세상의 이야기일 뿐이다.



    나그네의 가슴 달뜨게 하는 만돌린 선율

    산토리니섬의 해변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신비롭기까지 하다.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이 섬의 두 명소 검은 해변과 붉은 해변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 섬이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일지도 모른다’는 마을 주민들의 말에 슬그머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화산폭발로 형성된 카마리 해변은 온통 검은빛을 띠고 있어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마치 해변을 따라 아스팔트가 포장돼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여름이면 각종 수상스포츠를 즐기며 젊음을 발산하려는 사람들과 일광욕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카마리 해변 앞에 보이는 높은 산에는 고대도시인 티라 유적이 있다. 이곳에 올라서면 시원스레 펼쳐진 카마리 해변과 함께 맞은편의 페리사 해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섬의 남쪽에는 깎아지른 듯한 붉은 절벽을 배경으로 레드비치가 펼쳐져 있다. 해변의 규모는 작지만 일상의 번잡스러움을 피해 한적한 시간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레드비치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아크로티리(Akrotiri) 유적은 에게해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유적지 가운데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산토리니섬을 오가는 동안 여행객의 귓가에는 그리스 특유의 밝고 경쾌한 만돌린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파란 하늘과 바다, 하얀 건물 벽과 파란 지붕, 섬에서의 낭만 어린 생활과 목가적인 분위기. 산토리니가 주는 이 모든 느긋함은 여행이 끝난 후에도 오래도록 관광객의 꿈속에서 재현될 것이다.





    번민과 시름, 에게海에 지다

    고양이와 함께 놀고 있는 산토리니섬 아이들





    ※‘여행작가 김선겸의 낯선 땅, 낯선 사람’은 이번호로 끝맺습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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