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호

‘외교부 핵폭풍’ 막전막후

‘발상전환’ 비주류, ‘미국중시’ 주류에 KO승!

  • 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4-01-28 11: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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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서운 싸움.’ 석 달 전 한 청와대 관계자가 용산 미군기지 이전협상을 둘러싸고 외교부 내에서 벌어진 갈등을 두고 했던 말이다. 날이 갈수록 악화된 이 갈등은 결국 신년 벽두 장관의 목을 날린 ‘외교부 파문’의 진원지로 지목되기에 이르렀다. 과연 이 싸움은 어떻게 전개되어 왔고 그 배경은 무엇인가.
    ‘외교부 핵폭풍’ 막전막후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이기면 이번 정권은 끝나는 것이다.” “김정일 호감세력이 노무현 지지세력이라는 홍사덕 한나라당 총무의 발언은 맞는 말 아니냐.”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그간의 청와대 발표를 종합해보면, 이 정도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외교통상부 북미국장을 비롯한 현직 간부들이 장시간 조사를 받았고 결국은 윤영관 장관이 책임을 지고 사표를 썼다. ‘외교안보라인 경질설’이 있을 때마다 “현안이 산적해 있는 마당에 말을 갈아탈 수 없다”며 부인하던 청와대가 말 몇 마디 때문에 외교안보라인의 수장을 갈아치웠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림이 맞지 않는다.

    의구심은 계속된다. “그 동안 참여정부의 외교노선에 혼선과 잡음이 있었고 … 외교부 일부 직원들은 과거의 의존적인 대외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참여정부가 제시하는 ‘자주적’ 외교정책의 기본방향을 충분히 시행하지 못한 채….” 1월15일 윤 장관 교체를 발표하며 정찬용 청와대 인사보좌관이 밝힌 사표수리 이유다. 정리하면 윤 장관체제가 참여정부가 원하는 외교정책을 실현하기에 부적합했다는 뜻이다. 과연 무엇이 어떻게 부적합했다는 이야기일까.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NSC)와 외교부의 갈등설, 이라크 파병문제 등 갖가지 일들이 배경으로 거론되지만, 정작 외교부 주변에서는 이번 사태의 핵심을 들여다볼 수 있는 바로미터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용산 미군기지 이전협상을 두고 첨예화된 외교부내 북미국-조약국 사이의 갈등을 지목하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부적절한 발언’ 파문의 발단 정도로 치부됐던 이 문제가 사실은 한미관계와 외교노선을 둘러싼 ‘거대한 싸움’이었다는 것. 정찬용 보좌관이 말하는 ‘과거의 의존적인 대외정책’과 ‘자주적 외교정책’의 갈등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례였다는 설명이다.

    두 차례 마라톤 조사



    지난해 11월 하순의 어느 날 밤, 외교부 청사 6층에 있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 오후에 시작한 회의가 밤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위성락 외교부 북미국장, 차영구 국방부 정책실장 등을 비롯해 안보관련부서와 청와대 관계자들이 참석한 자리는 시종 격론이 오갔다. 미 국방부와의 용산기지 이전협상 과정과 정부 부처들의 보고태도를 조사하기 위해 소집된 이 회의의 핵심논점은 한 가지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 국장 등 협상 실무팀의 태도에 문제가 있었는지 여부다.

    이전협상을 둘러싸고 야당과 언론의 비판이 이어지면서 감사원이 감사에 착수하기로 했다는 소식도 있었지만, 이 조사는 그 의미나 강도가 사뭇 달랐다. 장시간 논의로도 결론을 내지 못해 회의를 다시 소집, 역시 장시간의 논쟁을 벌였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일부 문제점은 있지만 현실을 인정해 협상팀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옳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날 논쟁의 전선은 주로 이전협상의 실무를 맡고 있는 북미국과 협상결과의 법적 검토를 담당하는 조약국 사이에 그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관계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조약국이 공격하고 북미국이 방어하는 형국이었다는 것. 조약국 관계자들은 “국민에게 막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게 될 이전합의를 국회 비준 없이 국방장관 명의의 합의서로 처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고, 북미국에서는 “여소야대 상황에서 비준 통과는 불가능하며, 이는 향후 한미관계에 이상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현실론으로 맞섰다고 한다.

    “조약으로 바꿔야” vs “국가 신의 문제”

    이 같은 대립을 이해하려면 먼저 용산기지 이전협상과 관련한 몇 가지 쟁점을 들여다봐야 한다. 우선 살펴볼 것은 1990년 6월25일 이상훈 당시 국방장관과 메네트리 주한미군 사령관이 서명한 ‘서울도심 미군부대 이전을 위한 기본 합의각서’와 ‘서울도심 미군부대 이전을 위한 합의각서(1990년 6월 25일)에 관한 양해각서’다.

    미국이 ‘주한미군 감축계획’을 공개하며 한국을 압박하는 와중에 체결된 이 각서는 이후 ‘사상 최악의 불평등 협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전비용 전액을 한국이 부담하는 것은 물론 ▲모든 건물은 미국 기준에 따라 한국에서 짓고 ▲주한미군 가족 및 모든 정규·비정규 고용인들의 이사 비용 등도 한국이 부담하며 ▲이전하는 동안 발생하는 기지 내 각종 복지시설 사업자들의 손실 또한 한국이 보상하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체결 후에도 각서 전문은 공개되지 않았고 이후 시민단체들은 “국민의 분노를 살까봐 못 내놓는 것 아니냐”고 비판해 왔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용산기지 이전문제 협상은 이 합의·양해각서를 바탕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다섯 차례에 걸친 협의를 통해 독소조항이 상당 부분 제거되었다는 게 국방부와 외교부의 공식설명이지만, 근본적으로 1990년 각서의 효력은 여전히 살아 있다. 북미국을 비롯한 협상팀과 조약국 사이의 대립 역시 1990년 각서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물음에서 출발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우선 당시의 합의가 불평등한 것이었던 만큼 이를 백지화하거나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 조약국의 논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미 군사 당국자들도 ‘주한미군 재배치는 동북아 지역군 전환을 위한 것’임을 공언한 만큼 이전비용 전체를 우리가 부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협상팀의 입장은 단호하다. 불합리한 비용부담은 없어야겠지만, 이미 장관 명의로 합의한 문서를 뒤엎는다는 것은 국가간 신의 문제라는 요지다. ‘이전비용은 한국이 부담한다’는 기본원칙도 주한미군 주둔의 주된 목적이 여전히 한반도 안보를 위한 것이므로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양측의 논쟁이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6월 열린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 공동협의(이하 미래동맹회의)’ 2차회의 직후라는 게 정설이다. 당시 협상팀에서는 “미국 측이 ‘기본원칙을 담은 포괄협정(국회 비준을 받는)을 만들고 비용에 관한 세부사항 등을 담은 이행계획을 별도로 합의하자’는 방안을 제안했고, 우리측은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협상팀 입장에서는 비준이라는 명분을 얻으면서도 세세한 사항에 대한 국회 검토를 피할 수 있는 방안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절충안’에 대해 조약국이 강력히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전비용이 적게는 30억달러, 많게는 수백억달러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만큼, 그 구체적인 소요사항에 대해 국회의 동의를 얻지 않고 ‘보고’로 처리한다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주장이었다고 한다.

    이 무렵 국방부 주변에서는 국회 비준을 요구하는 조약국에 대해 “어렵사리 협상을 매듭짓고 있는데 원칙만 갖고 발목을 잡으려 한다”고 비난하는 이야기를 어렵잖게 들을 수 있었다. ‘조약국만 침묵하면 일이 마무리된다’는 분위기는, 특히 지난해 10월 열린 5차 미래동맹회의에서도 협상이 결렬되어 11월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방한해 열린 한미연례안보협의회가 ‘썰렁’해지면서 더욱 수위가 높아졌다.

    반면 언론에서는 협상이 진행되면서 독소조항은 대부분 개선되었다는 실무부서의 설명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가 꾸준히 이어졌다. 용산기지가 이전되는 오산·평택에 새로 건설될 C4I 센터가 기존 시설보다 기능이 대폭 향상돼야 하므로 수천억원의 추가부담을 초래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는가 하면, 미군 가족용 임대아파트도 훨씬 강화된 기준에 따라 지어주기로 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비판은 이전협상 실무팀의 협상태도에 대해서도 가해졌다. “협상을 하려면 상대방을 잘 이해해야 한다”는 협상팀의 발언이 도마에 오르기도 하고, 국방부 주변에서 확인된 협상내용을 근거로 “1990년 각서의 불평등 요소가 대부분 개선됐다는 정부의 공식입장은 사실과 차이가 있다”며 “실무부서들과 NSC가 대통령에게도 공식입장대로 보고했다면 대통령이 문제점을 잘 모르는 것 아니냐”는 시민단체들의 비판도 이어졌다.

    언론유출, 청와대 보고, 그리고 반격

    그 가운데 협상실무팀을 가장 당혹케 한 것은 1990년 합의·양해각서와 1년 뒤 이를 추인한 SOFA 합동위원회 각서 전문을 공개한 10월8일자 ‘오마이뉴스’ 기사 및 10월21일자 ‘뉴스위크 한국판’ 기사였다. 체결되자마자 3급비밀로 분류되어 13년간 공개되지 않았던 이 문서들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반기문 현 외교보좌관 등 당시 외무부 담당자들을 강하게 비판한 이들 기사는 북미국 입장에서는 매우 당혹스러운 것이었다고 한다.

    한편 비밀로 분류되어 있던 이 자료가 어디서 새나갔는지에 대한 의혹이 제기됨에 따라,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유출후보 1순위’로 떠오른 조약국도 그 입지가 매우 좁아졌다. 더욱이 ‘오마이뉴스’가 후속보도에서 문건의 출처를 “천문학적인 돈이 미국의 이익을 위해 일방적으로 쓰이는 ‘제2의 을사조약’을 막아야겠다고 생각한 (정부 내) 관계자들”로 특정함에 따라 입장이 더욱 난처해졌으리라는 후문이다.

    이 무렵 이전협상 실무부서들 사이에서는 “협상과정과 대표팀의 태도를 비판하는 보고서가 청와대 간부를 통해 ‘최고 결정권자’에게 전달됐다”는 설이 나돌았다. 최근 청와대 민정수석실측은 “11월 조사는 외교부 내부의 제보로 시작된 것”이라고 말해 일련의 ‘설’이 사실이었음을 사실상 확인해주었다.

    이 보고서가 제출된 이후 이전협상에 관한 청와대의 의중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이 문제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 본인의 발언. 8·15 경축사까지만 해도 “용산기지는 가능한 한 최단시일 내 이전토록 하겠다”며 협상팀에 힘을 실어주었던 노대통령은 이후 한동안 이 문제에 대해 공개적인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용산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제기됐다.

    이와 함께 9월말 미국을 방문해 롤리스 미 국방부 차관보 등과 제반문제를 협상했던 차영구 국방부 정책실장 등이 상당한 곤란을 겪었다고 국방부 인사들은 토로했다. 당초 연합사와 유엔사용 잔류부지를 ‘22만평까지는 수용할 수 있다’던 청와대 지침이, 미국이 28만평을 계속 고집하는 가운데 오히려 17만평으로 줄어드는 바람에 미측과 심각한 마찰을 빚었다는 이야기였다.

    ‘청와대의 뜻에 변화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정점에 달한 계기는 바로 앞서 설명한 11월 하순 민정수석실의 이전협상 관계자 조사. 대통령 측근 가운데 한 사람인 박범계 당시 법무비서관이 맡았던 것으로 전해진 이 조사는 ‘윗분’의 뜻이 아니고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북미국 인사들은 “조약국에서 386 실세 등을 이용해 플레이를 하고 있다”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외교부 핵폭풍’ 막전막후

    지난 1월13일 한·미 미래동맹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인천공항에서 출국하는 위성락 외교통상부 북미국장(오른쪽). 당초 동행할 예정이었던 조현동 북미3과장은 ‘부적절한 발언’에 따른 직위해제조치로 출장이 정지됐다.

    두 차례에 걸쳐 심야 마라톤회의를 했음에도 조사는 어정쩡한 상태로 마무리됐다. 국방부 인사들에 따르면 “조약국측이 오히려 1990년 합의·양해각서를 언론에 유출한 당사자로 의심 받으며 강한 압박을 받아 상당부분 밀린” 분위기였고, 징계 등 별다른 결정사항 없이 조사는 종료됐다. 설령 문제가 발견됐다 해도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 실무팀을 징계하거나 교체하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었다.

    조사가 마무리되자 이번에는 북미국을 비롯한 외교부 주류의 ‘반격’이 한층 강화됐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합의·양해각서 언론유출 건 등을 거론하며 조약국 몇몇 인사들에 대한 ‘조치’가 있을 것임을 암시하는 일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신각수 조약국장에 대해 교체를 위한 대기발령 예정조치가 결정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통상적인 교체시기가 되기는 했지만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던 조약국 관계자들이 위협적으로 받아들였을 것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이전협상 문제를 다루는 제6차 미래동맹회의가 1월15∼16일로 예정됨에 따라 북미국 등 협상팀 계획대로 이전문제가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와 북미국 간부들 사이의 분위기를 악화시키는 사건이 뜻하지 않은 곳에서 터졌다. 외교부와 NSC가 최근의 외교안보 현안마다 파열음을 일으키고 있다는 ‘국민일보’ 1월6일자 ‘외교-NSC 사사건건 충돌’ 기사가 그것이었다. 관점에 따라서는 ‘NSC의 어설픈 일 처리’를 비판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는 내용이었다.

    NSC 관계자들은 이 보도에 대해 “사실을 왜곡했다”며 공개적으로 반감을 표했고,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는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와 5일 밤 통화한 외교부 위성락 북미국장 등을 불러 보도경위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 해당 기자는 “청와대에서 통화시각과 시간도 알고 있더라”며 통화내역 조회에 대한 의혹을 거두지 않고 있다.

    ‘부적절한 발언’ 파문은 이렇듯 외교부와 청와대의 관계가 최악의 상황에 놓인 시점, 특히 미군기지 이전협상과 관련해 문제점을 지적해온 외교부 관계자들이 코너에 몰린 시점에서 불거진 사건이었다.

    “외교부 내부자의 실명제보가 있었다”는 민정수석실 관계자의 언급이 알려지자마자 외교부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된 곳은 조약국. 징계대상으로 알려진 북미3과장이, 1월15일 6차 미래동맹회의에 참석할 예정인 이전협상의 주요실무자이기 때문이었다. 11월 조사가 아무 조치 없이 마무리된 데다 오히려 ‘반격’의 실마리를 잡힌 일부 인사들이 제보를 통해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했던 것 아니냐는 추측이 외교부 직원들 사이에서 꼬리를 물었다.

    반면 조약국 관계자들은 “우리는 오로지 원칙과 법률문제로 사안을 다루고 있을 뿐”이라며 ‘의심어린 시선’을 강력히 뿌리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적절한 발언 파문’의 계기인 ‘실명 제보’가 조약국 관계자들의 작품이라고 단정짓기에는 다소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전협상의 경우 실무를 담당하는 것은 북미국이지만 핵심적인 지침은 NSC로부터 나오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기 때문이다.

    윤 장관에 대한 불신 뿌리깊어

    대신 장관 교체 등으로 문제가 확산되면서 청와대가 이번 사태를 이전협상 실무팀을 포함한 외교안보라인 개혁의 계기로 삼으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사실 ‘외교부 개혁론’에 관한 논의는 참여정부 들어 계속돼 온 고민이었다. 윤 장관의 경우도 표면적으로는 ‘전격적인 사표 수리’지만, 청와대와 외교부 소식통들이 “그다지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고 평가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그간 청와대 주변에서는 노 대통령이 여러 외교현안을 놓고 윤 장관에게 크게 진노했다는 일화가 끊이지 않았다. 그 시초가 지난 5월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방중 직후 흘러나온 에피소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이 없었으면 나는 아마 수용소에 있을 것”이라는 발언 등으로 ‘대미 유화제스처’를 취했고,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치고 나서도 “북핵 문제의 상황전개에 따라 ‘추가적 조치’를 검토한다”고 공동발표문에서 언급하는 등 사실상 미국측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다.

    이러한 일련의 행동은 당연히 회담을 준비한 윤영관 장관과 한승주 주미대사, 외교부 북미라인의 작품. 그러나 ‘저자세 외교’에 대한 국내비판이 고조되고 특히 7월 열린 한중정상회담에서 중국측의 불만이 전달되자, 노 대통령이 회의자리에서 “당신들이 시키는 대로 다 했더니 일이 어째 잘 안 풀리는 것 같다”며 불편한 기색을 내보였다는 전언이 회자됐다.

    이 무렵부터 청와대 관계자들은 “북미국 중심의 대외의존적인 외교부를 바로잡으라는 의미에서 온건개혁파로 알려진 윤 장관을 보냈더니, 오히려 내부분위기에 동화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전하기 시작했다. 노 대통령 본인도 지난해 기자들과의 비공식간담회에서 “윤 장관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외교부에 가더니 너무 한 쪽과만 사이 좋게 지내려 한다는 얘기가 있더라”며 우회적으로 불만을 표출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지난 연말부터 청와대 주변에서는 외교안보라인 경질설이 파다했고, 최근에는 용산기지 이전협상 등이 마무리되는 2월과 총선 이후인 4월, 두 차례에 나누어 ‘멤버 교체’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다. 이를 위해 청와대에서 조용히 대안을 물색하고 있다는 징후도 포착됐다.

    윤영관 장관이 경질대상 리스트에 오른 가장 큰 이유는 조직장악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서울대 외교학과 출신인 윤장관이 같은 과 선후배들이 주축인 북미라인에 끌려가고 있다”는 것이 일부 정부 관계자들의 목소리였다. ‘선비 스타일인 학자 출신의 장관으로는 개혁작업에 한계가 있음이 확인됐으니, 대신 뚝심 있는 정치인 출신 인사가 장관을 맡아야 한다’는 논리로 몇몇 유력 정치인들 이름이 거명되기도 했다.

    ‘거대한 변혁기’

    분명한 것은 이번 파동이 참여정부의 ‘자주외교’ 방침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를 수행할 수 없는 장관은 더 이상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음을 선언한 셈이기 때문. 이전협상 등 비판이 제기돼 온 주요현안과 관련해 국방부와 외교부 등 이른바 ‘동맹파’로 분류되는 부서들은 물론, 주요지침을 작성했던 것으로 알려진 NSC 역시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한편 외교부 사정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이번 파문의 의미가 단순히 정부 내 정책 집행자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청와대가 사용한 ‘의존적’과 ‘자주적’이라는 표현이 모두 미국을 전제하는 것인 만큼, 미국과 연관해 해석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용산기지 이전협상을 담판지을 6차 미래동맹회의가 열리는 날 아침에 핵심부서 장관이, 그것도 ‘자주적 외교노선’을 뒷받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물러났다. 청와대가 의도했든 아니든, 최소한 워싱턴 강경파들은 한국이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해석할 것이다.

    이전협상을 둘러싼 갈등의 뿌리에는 향후 대한민국 외교의 전개방향에 대한 비전의 차이가 놓여 있다. 외교부 북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주류파가 ‘안정과 발전을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미국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반면, 비주류와 청와대는 ‘이제는 근본적 발상 전환을 통해 새로운 외교를 만들 때가 왔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번 파문만 보면 후자가 압도한 것 같지만, 이전협상 등 한미간 다양한 현안에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단정하기에는 이르다. 파문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비주류도 심각한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해방 이래 우리 외교파트의 절대 강자였던 북미라인이 칼바람 앞에 섰고, 이를 통해 ‘자주노선’이라는 분명한 방향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지금은 그 거대한 변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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