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호

개그작가 장덕균의 정치 개그 비화

  • 글: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hanmail.net

    입력2004-01-28 13: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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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 대통령 인기 떨어지자 ‘노 통장’ 아웃
    • 정주영 회장 이미지 고양하려 광고 압력 행사한 현대
    • 5공 때 ‘이화장 별곡’ 녹화 당일 세트 뜯기기도
    • YS 때 김현철 다룬 ‘이무기의 꿈’, 가위질로 17분짜리가 2분짜리로
    • ‘이회창 못 먹어도 고’가 ‘이회창 대권을 잡아라’로 바뀐 사연
    개그작가  장덕균의  정치 개그 비화
    “에이, 더러워 니 눈에 눈곱이나 떼라.”“내, 참. 당신은 뭐, 눈곱 없어?”“만일에 말이야. 내 눈곱이 당신 눈곱의 10분의 1을 넘으면 국회의원직 때려치우고 정계를 은퇴할 거야.”

    지난해 12월21일 방송된 KBS 코미디 프로그램 ‘쇼! 행운열차’의 정치풍자코너 ‘왜 나만 가지고 그래’의 한 장면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불법 대선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정계를 은퇴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 것을 풍자했다는 걸 금세 알 수 있다.

    ‘왜 나만…’의 대본을 집필한 개그작가 장덕균(39)씨. 1987년 KBS 2TV ‘유머 1번지’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을 통해 본격적인 정치·시사풍자 코미디의 문을 연 그가 ‘왜 나만…’에 쏟는 정성과 애정은 남다르다.

    방송가에 널리 알려진 그의 닉네임은 정치풍자의 ‘달인’. 1988년과 1993년 KBS 코미디대상 작가상과, 2002년 KBS 연예대상 작가상을 수상한 그가 정치·시사풍자 코미디 프로그램에 얽힌 뒷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노 대통령의) ‘10분의 1’ 발언을 풍자한 대본을 가지고 연출자, 개그맨 등과 회의를 하면서 ‘이거 이대로 나가도 괜찮을까’ 하고 걱정했죠. 조심스럽게 녹화를 마쳤고 방영이 됐는데 다행히 저쪽(청와대)에서 아무런 얘기가 없습디다. 일요일 낮 시간대라서 못 봤나?(웃음) 그래서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어요. ‘지금이 어떤 시댄데’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이게 정치풍자 코미디 제작현장의 현주소입니다.”



    ‘노 통장’ 김상태의 예감

    -정치권의 눈치를 본다는 겁니까.

    “무시할 순 없죠. 방송계가 오랫동안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문화에 젖어 있었기 때문에 연출자, 연기자, 작가까지 한마디로 ‘쫄아’ 있어요. 하찮아 보이는 ‘왜 나만…’의 코너는 실상 방송사(史)에 획을 긋는 중요한 작품입니다. 정치풍자 코미디가 1997년 가을 TV브라운관에서 사라진 지 6년 만에 다시 살아났으니까요. 제작진과 저는 이 코너를 통해 정치풍자 코미디의 폭을 넓혀가자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시작했어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게 바로 정치풍자 코미디였으니까요.”

    -이유는요?

    그가 긴 한숨을 내쉬며 “그건 조금 있다 얘기하겠다”면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개그콘서트’(KBS)의 주작가로 활동하는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 어두운 표정이었다.

    -정치풍자가 중단됐다고 하는데. 대선 직후인 지난해 1월 ‘개그콘서트’의 ‘봉숭아학당’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캐릭터인 ‘노 통장’을 등장시키지 않았습니까.

    “‘노 통장’은 정통 정치풍자 코미디가 아니라 노 대통령의 캐릭터만 등장시킨 단순한 개그 소재일 뿐이었죠. ‘노 통장’의 탄생 배경도 아주 재밌습니다. 대선 직후, 대통령당선자에 대한 개그는 ‘쓸만한’ 아이템이라 ‘개그콘서트’에 출연하는 개그맨들이 당선이 유력한 후보를 흉내내는 연습에 몰두했어요. 당시 이회창 후보가 된다는 분위기여서 다들 이 후보를 따라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딱 한 사람, 김상태가 자신은 ‘아무리 노력해도 이 후보 흉내는 안 된다’면서 ‘노무현 후보를 연습한다’고 합디다. 김상태가 ‘내가 노 후보와 똑같은지 봐달라’는 말에 다들 ‘그 사람이 당선되고 나면 그때 해봐’ 하고 묵살했어요. 그런데 ‘개그콘서트’ 팀의 예측이 빗나갔고. 김상태가 ‘맞습니다 맞고요’ 한마디로 하루아침에 무명의 설움을 벗고 스타가 됐잖아요.

    ‘노 통장’을 ‘봉숭아학당’에 투입하자마자 저쪽(노무현 대통령당선자측)에서 전화가 여러 번 왔어요. 예전과는 달라서 ‘이렇게 하지 말라’고 직접 요구하면 문제가 생길게 뻔하니까 ‘(대통령에) 취임하기도 전인데 조심스럽게 다뤄달라’는 주문을 한 거죠. 결국은 ‘잘 다뤄줬으면 좋겠다’는 얘기였어요. (대통령당선자가) 코미디 프로그램의 소재로 등장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럽게 여기는 분위기였고요.”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죠.

    “‘노 통장’을 너무 희화시키거나, 웃기는 대사를 날리면 바로 다음날 연락이 와요. ‘이미지에 손상 가는 것은 안 하면 좋겠다’는 거죠. 저쪽에서 그런 식으로 얘기해 와서 기분이 썩 좋진 않았어요. 대본을 쓰면서도 무척이나 조심스러웠고요. 우리나라 대통령인데 망가뜨릴 의도가 있었겠어요? 하지만 코미디가 갖는 한계라는 게 있잖아요. 어쨌거나 사람들을 웃겨야 한다는. 저쪽의 요구대로라면 무미건조하고 근엄하기만 한 모습으로 그려야 하는데…. 제작진과 방송국의 여러 시스템을 통해 거를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고 자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데도 ‘관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물론 무관심보다는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좋죠. 하지만 관심이 지나쳐서 자신들이 의도한 바대로 진행되기를 바라서는 안 되죠.”

    -지난해 가을 ‘노 통장’이 무대에서 사라졌는데요.

    “더 이상 ‘노 통장’을 보고 관객이나 시청자가 즐거워하지 않아 ‘퇴출’시킬 수밖에 없었어요.”

    -노 대통령의 인기하락이 ‘노 통장’ 퇴출에 한몫했다는 건가요.

    “그렇죠. 처음에는 ‘맞습니다 맞고요’만 해도 사람들이 배꼽을 잡고 웃으면서 난리가 났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지면서 개그 소재로서의 가치도 하락했고. 노 통장을 더 이상 살려둘 수 없었죠. 우리(개그콘서트팀)끼리 한 얘기지만 노 대통령이 ‘재신임을 묻겠다’고 하기에 ‘노 통장’더러 ‘너도 재신임을 받으면 (봉숭아학당에) 다시 넣어줄게’ 그랬다니까요(웃음).”

    -직·간접으로 정치권의 압력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알게 모르게 그런 일들이 있었어요. 어디, 정치권뿐인가요. KBS ‘유머 1번지’(1987년)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코너는 특정 기업을 지칭하지 않고 우리나라 재벌 회장을 코믹하게 그렸어요. 그때 재계에서 ‘재벌 총수를 너무 희화화한 게 아니냐’면서 은근히 압력을 가해 프로그램 제작에 어려움이 있었죠. 하지만 민주화 열기가 거셌던 1987년 대선 당시 선거분위기와 맞물리면서 작은 제재나 통제도 크게 부각됐기 때문에 정치권이든 경제계든 직접적인 압력을 가하진 않았어요.”

    1990년대 초반 정치풍자 코미디의 ‘봄’이 시작됐다. 그는 “정치·시사풍자프로그램이 전성기를 맞은 것은 김영삼 대통령을 풍자한 ‘YS는 못 말려’(1993년)의 출간이 계기가 됐다”고 주장한다.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식 때 ‘문민정부’라고 힘주어 말하는 것을 듣는 순간 ‘이제는 때가 됐다’는 느낌이 오더라고요. 하지만 방송소재에 대한 제약이 많던 시절이라 대통령을 상대로 정치풍자를 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어 출판에 눈을 돌렸어요. 책을 내면서 실은 좀 겁이 났고 방송가도 긴장을 했죠. 출간 당일 SBS의 한 PD로부터 ‘청와대에서 널 찾더라’는 얘기를 전해 듣고 가슴이 두근 반 서근 반 했으니까요. 당사자인 김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제 ‘목’도 달려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출간 다음날 ‘집사람과 함께 책을 읽었다’면서 김대통령이 ‘퍼스트레이디가 된 걸 축하한다는 말에 우리 집사람이 세컨드 아니다’라는 조크와 ‘YS의 오른팔이라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에게, 니 내가 왼손잡인 거 아나?’라고 받아친 내용을 직접 거론하며 ‘재미있게 읽었다’고 한마디 하자 긴장했던 방송가도 분위기가 확 뒤집힌 겁니다. 대통령이 자신을 풍자하는 것에 대해 딴죽 걸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인하게 된 거죠.”

    “광고 내릴테니 알아서 하라”

    그 ‘사건’을 계기로 방송가엔 정치시사풍자를 해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확산됐고 각 방송사는 앞다퉈 정치시사풍자 코미디 무대를 신설했다. 전직 정치인을 등장시킨 SBS ‘코미디 전망대’(1993년)의 ‘전망대 당무회의’ 코너와 ‘이주일의 투나잇 쇼’등에서 정치인에 대한 신랄한 풍자가 이어졌다. 정치시사풍자 코미디의 백미는 1996년 SBS ‘코미디 펀치펀치’의 ‘배워서 남 주나’ 코너였다. ‘배워서…’는 장씨의 작품.

    -당시 ‘배워서…’가 대단한 화제를 불러일으켰죠. 프로그램 이름은 몰라도 전두환(탤런트 박용식 분), 노태우(탤런트 김기섭 분) 두 전직 대통령과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개그맨 최병서 분) 캐릭터를 완벽하게 연기해 웃음을 자아냈던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은데요.

    “하하. 말도 마십시오. 그때만 생각하면 아찔하니까요. 정 회장 역을 맡은 최병서가 여자 연기자에게 ‘너, 몇 살 때부터 이렇게 예뻤어?’ 하고 묻습니다. 그랬더니 방송이 나간 다음날 아침에 난리가 났어요. 정 회장이 연예가뿐만 아니라 세간에 여자와 관련해 좋지 않은 소문이 나돌았잖아요. 그런 이유 때문인지 그쪽(현대그룹)에서 그 대사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더라고요. 소문을 염두에 두고 쓴 대본도 아닌데…. 아무튼 (방송국의) 윗선에 현대의 압력이 가해졌다고 해요.”

    -정 회장의 캐릭터를 빼달라는 것이었나요?

    “그건 아니었어요. 갑자기 정 회장이 빠지면 이상하니까요. 그 일 이전에도 정 회장이 좋지 않은 모습으로 그려지면 (현대에서) 연락이 오곤 했거든요. ‘이미지에 나쁜 영향을 미칠 만한 내용은 삼가’라는 것이었죠. 그런데 그 대사가 나온 이후 현대가 얼마나 열 받았는지 ‘SBS에서 (현대의) 광고를 내린다’고 했다는 겁니다. 당시만 해도 현대가 잘나가는 재벌 그룹 중 하나였는데. 상업방송의 ‘돈줄’인 광고를 내린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잖아요. 현대가 광고를 안 주면 방송사로서는 손해가 엄청날 거 아닙니까.”

    -그래서요?

    “조심을 할 수밖에요.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인데요. 최병서씨와 이주일씨는 호형호제하는 막역한 선후배 사이고, 널리 알려졌다시피 정 회장과 이주일씨는 절친한 사이잖아요. 정작 당사자인 정 회장은 이주일씨와 만난 자리에서 ‘최병서더러 나 좀 재미있게 표현하라고 전해달라’고 주문할 만큼 자신의 캐릭터에 애착을 보였는데 그런 정 회장의 의중과 상관없이 ‘아랫사람’들이 알아서 기었던 겁니다. 권력상층부에 잘 보이기 위해 정치권 인사들이 눈치껏 방송사에 압력을 넣는 것과 비슷한 양태를 보인 거죠.”

    개그작가  장덕균의  정치 개그 비화

    KBS ‘개그콘서트’에서 노무현 대통령 흉내로 인기를 누린 ‘노 통장’ 김상태. 노 대통령 인기하락과 더불어 ‘노 통장’은 무대에서 사라졌다.

    -당시 전·노 두 전직 대통령의 반응은 어땠나요.

    “그분들을 만난 사람으로부터 ‘썩 유쾌하지 않다’는 얘기는 전해들었어요. 5공 때는 녹화 당일 아예 세트가 없어지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죠. 이승만 대통령이 거처하던 ‘이화장’을 배경으로 한 ‘이화장 별곡’이라는 코너였는데 이승만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받는 장면 등을 현실 정치와 접목시켜 풍자하는 내용이었어요. 녹화 당일 방송국 스튜디오에 나가보니 설치됐던 세트가 뜯기고 없더라고요. 위에서 ‘(녹화를) 뜨지 말라’고 했다는 겁니다. 사전에 대본 심의를 마치고 나온 작품이었는데. 그때는 대통령이나, 장관이라는 ‘직책’을 코미디 프로그램에 내세운다는 것 자체가 무척 어려웠던 시절이었어요.”

    -코미디 대본도 사전심의를 거쳤나요.

    “(대본) 사전 심의도 하고, 녹화 뜬 이후에 사후심의도 하죠. 현재도 예전과 다름없이 사전·사후 심의가 이뤄지고 있고요. 기본 취지는 방송소재에 대한 통제의 수단이 아니라 방송에 부적합한 내용을 고른다는 거지만.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악용될 소지는 많죠.”

    -정치풍자에 권력 상층부의 입김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네요.

    “그럼요. 절대적으로 중요하죠. 지금처럼 방송사의 인사권을 (청와대가) 쥐고 있는 구조에서는 더하죠. 저쪽(정치권)의 의지만 있다면 좋은 여건에서 얼마든지 수준 높은 정치풍자 코미디를 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한 정치풍자 코미디는 아무런 의미가 없죠. 다만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뭔가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정치풍자여야 한다는 거예요. 신문에 보도된 가십거리를 영상으로 옮기는 정도라면 의미가 없잖아요.”

    그가 코미디 작가로 발을 내디딘 건 1981년. 그의 나이 16세 때였다. 중학교 졸업직후 적성에 맞는 일을 찾다 무작정 MBC TV ‘청춘만세’ 제작진에 대본을 내밀었고 그의 뚝심과 남다른 재능을 알아본 심상수 PD에게 발탁됐다. ‘변방의 북소리’ ‘탱자 가라사대’ 등 유명 코너와 SBS 시트콤 ‘오박사네 사람들’을 집필하며 ‘잘나가는’ 코미디작가로 명성을 떨치던 그가 좌절을 겪게 된 것은 1997년 가을. KBS의 코미디 프로그램 ‘웃음천국’의 정치풍자 코너인 ‘이무기의 꿈’ 때문이었다.

    “당시는 ‘용의 눈물’이 공전의 히트를 이어갈 때였어요. ‘웃음천국’에서도 ‘용의 눈물’의 기본구도에 현실정치 상황을 접목한 정치풍자 코너 ‘이무기의 꿈’을 준비했죠. ‘이무기…’는 차기 왕권을 노리는 4명의 왕자와 9룡으로 불리는 종친들이 세자책봉을 둘러싸고 벌이는 경쟁이 중심 줄거리였어요. 특히 4명의 왕자 중 차남이 주인공으로, 좀 모자란 듯한 둘째 왕자(이봉원 분)가 좌충우돌하는 것으로 설정돼 있었죠. 당시에 김 대통령의 차남(김현철)이 국정과 인사 개입설로 나라가 시끄러울 때라 그 상황을 풍자했는데 첫 방송이 나가기 전 한 일간지에 ‘이무기…’ 코너에 대한 기사가 실렸어요. 근데 신문 기사 제목이 ‘사고뭉치 차남 그려’로 나온 겁니다. KBS가 발칵 뒤집히는 등 그야말로 난리가 났어요. 모처로부터 상상할 수 없는 압력이 방송사에 들어왔던 모양이에요.”

    -‘이무기의 꿈’ 녹화는 마친 상태였나요.

    “그럼요. 보도가 된 직후에 (KBS의) 윗사람들이 ‘녹화테이프를 보자’, 이렇게 된 겁니다. 방송용으로 17분 녹화를 마쳤는데 ‘이건 빼자, 저것도 빼자’ 해서 결국 차 떼고 포 떼고 방송은 2분 내보냈어요.”

    “청와대에 같이 가자”

    -녹화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당시 청와대 수석비서진의 경질을 연상시키는 풍자였어요. ‘이번에는 바꿔야겠지. 지난번 ‘수석’은 너무 모가 나서…’ 하고 측근에게 의견을 묻던 왕이 ‘원만하고 둥그런 ‘수석’이 좋겠다’며 그동안 애지중지하던 ‘수석(水石)’을 밀어내고 둥근 모양의 수석을 꺼내놓는 장면과 차남이 설치는 부분 등이 다 가위질 당한 겁니다. 그 일 이후 ‘이무기…’ 코너는 당초 의도와는 달리 사회풍자로 발길을 돌렸고 5주 후에는 ‘웃음천국’이 아예 문을 닫았어요. 대본을 쓴 저는 반발할 수밖에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워 한 달 동안 절에서 살았는데 분통이 터지더라고요. 그 사건 이후 방송사에서 정치풍자 코미디가 사라진 겁니다.”

    -국민의 정부 때도 정치풍자 프로그램이 없었단 말이네요.

    “저간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각 방송사가 정치풍자 코미디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거죠. 아무리 좋은 정치풍자 기획안을 올려도 채택되지 않았죠. PD들도 괜히 나서서 미운 털 박힐 이유가 없으니까 손을 안 댔던 거고요. 그거 잘 만들었다고 누가 상주는 것도 아니고. 방송사 간부들이 정치권에 밉보일 ‘꺼리’를 만들지 않으려 했던 겁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KBS의 주요 보직은 적법한 절차를 거친 인사로 보이지만 청와대의 입김에 의해서 인사가 결정되잖아요. 그게 현실이고…. 사실이잖아요. (KBS의) 한 간부는 저더러 ‘나도 국장도 하고 본부장도 해야 될 거 아니냐’고 하소연했습니다.”

    방송가에 찬바람이 불어닥친 1997년 대선 당시 김대중·이회창 후보 진영에서 각각 그를 찾았다고 한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잘 다뤄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나요.

    “TV에서 정치풍자 코미디가 사라진 직후였으니까 방송에서 잘 다뤄달라는 것보다는 ‘YS는 못 말려’와 같은 책을 통해 이미지 제고작업을 해달라는 거였죠. 방송에서 정치풍자를 할 수 없게 되자 대선후보를 풍자한 책을 낼 계획을 세우고 있던 참이었어요. 먼저 이회창 후보 쪽 사람이 만나자고 합디다. 만나서 첫 말이 뭐냐면 ‘우리를 잘 좀 써달라. 딱딱한 엘리트 이미지를 희석시켰으면 좋겠다. 우리 후보도 재미있는 부분이 많다’고 하더군요. 김대중 후보 쪽 사람도 첫마디가 ‘이번에는 틀림없습니다. (김대중 후보는) 상대후보에 비해 유머도 많고 재미있는 분’이라면서 ‘(청와대에) 같이 가자’고 하더라고요. 물론 거절했죠. 그 사람이 나중에 청와대 고위직에 앉긴 합디다(웃음). 두 진영 모두 ‘(책을 쓰는 데) 필요한 자료는 얼마든지 챙겨주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왔어요. 그러면서 양쪽 다 똑같은 부탁을 하더라고요. ‘상대후보의 책은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요.

    “결국 ‘못 먹는다’는 것 아니냐”

    -당시 대선 때 출간된 ‘DJ 한다면 한다’와 ‘이회창 대권을 잡아라’를 두고 한 얘기네요.

    “어∼휴. 말도 마십시오. 먼저 김대중 후보 책을 냈더니 책 표지에 역도를 들고 있는 DJ의 캐릭터가 힘들어 보인다고 그쪽에서 난색을 표했습니다. 이회창 후보 진영의 경우 출간하기 직전에 ‘이회창 못 먹어도 고’를 책 제목으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결국 ‘못 먹는다’는 것 아니냐면서. DJ 쪽과 책 제목의 비중을 맞춰달라고 해서 ‘이회창 대권을 잡아라’로 변경된 겁니다.”

    -혹시 두 후보로부터 돈을 받고 출간한 건 아닙니까.

    “돈 받고 책을 냈거나, 제목을 바꿔 줬다면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단지 방송에서 정치인과 정치상황에 대한 풍자를 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워 책을 통해 그 작업을 했던 거죠. 지금처럼 공개방송 형식의 ‘개그콘서트’도 필요하지만 정치풍자 코미디 또한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꼭 있어야 할 프로그램이죠.

    정치풍자 코미디가 전성기를 맞았던 시절엔 정치인들이 그나마 ‘씹히지’ 않고 ‘웃음거리’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을 했어요. ‘배워서…’의 코너에 정부부처의 정책을 힐난하면 방송이 나가자마자 해당부처의 반응이 방송국에 전달되곤 했어요. 한번은 교육부 장관을 꼬집었더니 다음날 바로 전화가 왔더라고요.

    “방송사 고위층부터 변해야”

    -뭐라고요.

    “‘사실은 알려진 것과는 다르다. 교육부와 장관이 굉장히 신경을 쓰고 있던 사안이다. 자료가 필요하다면 보내주겠다’고 합디다. 이해당사자인 정치권 인사들이 ‘왜 그렇게 썼냐’면서 항의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정치풍자 코미디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 정치권이 노력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어요. 지금 방송되고 있는 ‘왜 나만…’의 코너만 해도 그래요. 국회의원과 보좌관들이 많이 본다고 해요. 민주당의 한 고위인사는 ‘왜 국회의원을 그런 식으로 그리냐’고 언짢아하기도 했답디다. 정치인이 국민 앞에 추한 모습으로 보이지 않으려면 잘하면 되지 않겠어요. 친구나 방송계 사람들은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왜 정치풍자 코미디를 못해서 안달이냐’고 말리는 사람도 있지만 정치발전을 위해서라도 정치풍자 코미디는 활성화돼야 합니다.”

    -정치풍자 코미디가 활성화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면요?

    “방송사 고위층부터 변해야죠. 정치권의 눈치 좀 그만 봤으면 좋겠어요. 만날 ‘국민의 방송’이라고 떠들면서. 국민을 보고 방송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우선 KBS의 사장부터 정치사회풍자 코미디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KBS의 작품을 맡아 대본을 집필하고 있는데, 이렇게 얘기해도 괜찮겠습니까.

    “이제는 정말로 변해야죠. 지금이 정말 어느 시댄데.”

    망설임 없이 “괜찮습니다”고 대답한 그는 방송사 직원이 아닌 프리랜서다. 방송사에 밉보여 오늘이라도 당장 ‘대본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한마디면 ‘밥줄’이 끊길 수도 있는 처지다. “돈 되는 것으로 따진다면 정치풍자 대본을 쓰는 일은 맨 아래계단을 차지할 것이다. 어떻게든 정치풍자 코미디가 황금시간대에 편성돼야 한다”고 말한 그의 목소리에 묵직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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