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2월25일 열린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2004년은 그렇게 시작되었지만 “어려운 시간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대통령의 신년사처럼 결코 순탄치만은 않은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2003년과는 다르기를 바라는 기대만큼은 모든 국민의 공통된 심사일 것이다.
우리는 도대체 2003년에 무엇을 그렇게 혹독하게 치렀는가? 서민 출신의 튀는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예상한 ‘바람’보다는 훨씬 강력한 ‘회오리’가 일었다. 그 충격에 어떤 일관된 논리와 원칙이 내포되었더라면 이처럼 혼란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돌개바람은 여러 갈래로 흩어져 사회 각 부문을 강타했는데, 그것이 촉발한 역풍(逆風) 또한 만만찮아 시민들은 미래전망과 설계가 불투명한 상태로 한 해를 보내야 했다. 사회 지도급 인사들과 여론지도자들은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진단서를 발급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치열한 이념투쟁의 상처
1년 동안 각 일간지의 머릿기사가 낙관적 메시지를 담고 있었던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비난의 화살은 노무현 대통령과 386참모들 그리고 그들을 보좌하는 진보적 학자들에게 집중되었다. 지난 시대, 권위주의 정권의 선전 창구였던 방송사들은 태도를 바꾸어 비난의 화살을 무력화시키고 비관적 담론을 낙관적으로 역전시키는 데 주력했다. 공론장은 두 갈래로 절단되었으며, 양 진영을 갈라놓은 전선에는 전쟁터와 같은 긴장이 감돌았다. 마치 적을 섬멸하지 않고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비장함 마저 엿보였다. 각 진영은 사생결단의 싸움에 돌입한 것처럼 보였다.
해방 이후 58년의 역사에서 한국전쟁을 제외하고 이토록 치열한 이념투쟁이 벌어진 적은 일찍이 없었다. 이념투쟁은 이익투쟁을 동반한다. 관직, 공기업의 경영권, 군대와 경찰의 통제권, 공공기관의 통치권, 경제 운영권, 재정과 사회정책의 결정권, 검찰과 법무기관의 감독권 등등의 중대한 권한을 놓고 두 진영이 격돌했다.
역대 가장 약한 정권으로 평가받는 노무현 정권은 승자독식(winner-takes-it-all)이라는 한국정치의 이점을 활용해 적어도 공공권력의 영향권 안에 있는 영역에서는 대부분 승리를 거두었다. 힘겨운 승리였지만, 대통령의 통치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한국 정치제도의 선물이었다. 관직에는 인사태풍이 불어 젊은층이 대거 진입했고, 검찰과 법무기관에는 서열파괴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공기업의 고위 경영직은 노무현 정권의 탄생에 기여했던 사람들로 채워졌으며, 사회정책은 어쨌거나 서민층 중심으로 바뀌었다.
정치적으로도 노무현 정권이 손해본 것은 아니었다. 시민들이야 진절머리 났겠지만 수개월의 진통 끝에 급기야 노무현 정당이 탄생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변방의 정치인이던 사람이 대통령으로 등극함과 동시에 독자정당을 얻어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최약체 정권이 획득할 수 있는 최대 전과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렇게 보면,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토로한 대통령의 불만은 약간의 엄살이거나 힘겨움을 빗댄 탄원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인과 관료가 언론에 포위되어 꼼짝을 할 수 없다’는 상황판단은 이보다 더 얻어냈어야 한다는 일종의 정치적 엄살이다. 언론은 비아냥거림이 전문이고, 그것을 그쳤을 때 언론은 이미 사망신고를 낸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