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스페셜 리포트

사회학자 송호근 교수의 ‘참여정부 1년’ 대해부

파괴와 해체, 중산층 붕괴, 지적 헤게모니 상실

  • 글: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hknsong@snu.ac.kr

사회학자 송호근 교수의 ‘참여정부 1년’ 대해부

2/16
사회학자 송호근 교수의 ‘참여정부 1년’ 대해부

2003년 10월11일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발표 담화를 TV로 지켜보는 시민들.

혼란과 투쟁으로 점철된 노무현 정권 1년은 시민들에게는 ‘눈물의 계곡’이었다. 대통령 자신도 자주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그 눈물은 시민들이 흘렸던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시민들은 새 정권이 몰고 온 충격의 회오리와 그것이 촉발한 역풍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눈물을 흘렸다.

정치란 시민들에게 안정을 주는 것을 최대 과제로 삼는다. 위급한 상황에서 행동규칙을 정해주고, 극심한 경제난에서 생계유지 수단을 제공하며, 세계시장과 국제 정세의 불안을 여과시켜 안정심리를 부여해주는 그런 역할 말이다.

그런데, 결코 편치 못했다. 불편한 것은 그만두고라도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다. 세대교체에 걸었던 신선한 기대는 경력자들의 기반을 파괴했고, 분배로 돌아선 정치는 경제성장을 적대시했다. 실직자가 날로 쏟아졌다. 현 정권의 최대 지지층인 젊은층은 정치적 지지의 대가로 최고의 실업률을 돌려받았다. 기업인을 죄인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서민출신 대통령하에서 더욱 기승을 부렸다.

‘눈물의 계곡’은 통과의례

프로페셔널들이 부도덕한 집단으로 내몰리고 그 자리에 이상주의와 도덕주의로 무장한 아마추어들이 들어섰다. 덕치(德治)라는 동양적 이상주의는 제도로 작동하는 현대의 정치체제에서 단지 개인적 덕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아마추어 신세력은 철저히 무시했다. ‘썩은 정치’를 결딴내는 데에는 그것만큼 중대한 요소가 없겠지만, 현대의 제도정치에서는 단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기에 경험부족이었다. 집권경험의 부족이 과거 김영삼 정권과 김대중 정권에서 어떤 자해요인이 되었는가를 목격하고도 도덕주의를 통치의 생명선으로 설정해야할 만큼 한국정치는 막다른 골목으로 치달았던 것이다.



‘눈물의 계곡’은 노무현 정권 탓만은 아니다. 철저하지 못했던 지난 시대의 민주화 이행 양식이 한국 국민에게 부과한 업보(業報)여서 노무현 정권도 국민들과 함께 감당해야 하는 통과의례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은 ‘눈물의 계곡’을 더 깊고 넓게 만들었다. 기왕에 닥친 시련이라면 더 철저하게 치러야 한다는 듯이. 그래야 더 넓은 평야와 비옥한 대지에 안착할 수 있다고 독려하려는 듯이. 국민들은 집권세력이 몰아치는 돌개바람과 그것에 촉발된 역풍 사이에서 극심한 혼란과 불안을 겪었다.

한국사회는 몇 개의 이질적 집단으로 쪼개지는 듯했고, 우위를 선점하려는 집단간 쟁투가 연일 신문 머릿기사로 떠올랐다. 시민들은 무엇에 기댈 것인지, 어떤 기준과 가치관을 붙잡고 있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가치관은 뒤집혔고, 기존의 행동 양식은 낡은 것으로 규정되었다. 경제가 어느 정도 돌아가 준다면 약간의 여유 속에 새로운 규정을 수용할 수 있으련만, 그럴 만한 여유도 선물해주지 못했다.

집권세력은 새로운 규정을 수용하면 경제적 여유도, 변화와 개혁도 가능할 것임을 되풀이 강조했지만, 경제는 통치자의 확신을 무력화시킬 만큼 어려워졌고 현실은 더욱 각박해졌다. 성장률 2.9%(1980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이후 최저 성장률)에 새로운 성장엔진을 찾지 못한 경제현실은 ‘눈물의 계곡’을 한없이 연장할 것처럼 보였다.

시민들의 혼란한 마음을 수습해줄 안식처는 사라졌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은 집단 행동수칙을 발령하고 강제로 안식처를 만들었다. 민주정권은 그것을 걷어치우고 스스로 안식처를 만들라고 강제한다. 노무현 정권 1년은 시민들이, 사회집단들이 참여의 자유를 만끽하도록 허락한 대가로 극도의 사회적 불안감을 치르게 했다. 그것이 민주주의라면, 이제 우리가 힘겹게 건너고 있는 ‘눈물의 계곡’은 ‘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한 필연적 여정처럼 보인다.

노무현 정권 1년이 우리에게 반드시 고통만 주었던 것은 아니다. 그 고통이 우리가 치러야 할 권위주의적 고도성장의 대가라면, 그것을 걷어치우는 데 혼란이 없을 수 없다. 카리스마가 물러간 자리에 세련된 정치인이 들어선다는 것은 웬만해서는 기대하기 힘들다. 선진국처럼 노련한 정책정당이 그럴듯한 인물을 배양하는 것도 아니고, 정치경험을 쌓을 만한 정치학교가 제도화되어 있는 것도 아닌 한국에서 카리스마 정치를 이을 카리스마적 인물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한국의 수준급 정치가들의 면면을 관찰해보면, 노무현만한 사람이 배출된 것도 다행스럽다는 판단이 설 정도다. 그나마 비관을 접고 낙관론을 펼 만한 빈약한 근거다.

2/16
글: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hknsong@snu.ac.kr
목록 닫기

사회학자 송호근 교수의 ‘참여정부 1년’ 대해부

댓글 창 닫기

2022/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