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호

사회심리학자가 본 노무현의 ‘눈물의 정치학’

“약발 다한 ‘盧의 눈물’… 국민은 ‘남몰래 흐르는 눈물’ 원한다”

  • 글: 이훈구 연세대 교수·사회심리학 hoonkoo@yonsei.ac.kr

    입력2004-01-28 17: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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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흘려도 너무 자주 흘린다. 노무현 대통령의 눈물 이야기다.
    • 잦은 눈물은 그에게 고뇌의 카타르시스인가, 정치적 비기(秘器)인가. 한 심리학자가 들여다본 노 대통령의 ‘눈물 정치학’ 메커니즘.
    사회심리학자가 본 노무현의 ‘눈물의 정치학’
    2002 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는 이회창 후보를 불과 50만표 차로 따돌리는 대역전 드라마를 펼쳤다. 동서양을 통틀어 전무후무한 이 박빙의 승리는 이긴 편이나 진 편 모두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는 4년11개월을 굳건히 버티다 마지막 한 달을 못 버티고 노무현 후보에게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세상을 놀라게 한 노 후보의 대역전 승리는 어디에 기인하는가? 여러 가지 효과적인 선거전략이 동원됐고, 이것이 적중한 덕분이다. 그 중에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전략이 제몫을 다했을까? 노 후보 진영은 대중의 심리를 파고드는 대중적 정서 캠페인에 치중했다. 예컨대 부산 자갈치 아지매가 찬조연설을 해서 노 후보가 국민의 아픔을 이해하고 이들의 대변자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무엇보다 노 후보 진영은 이회창 후보와 차별화하는 전략을 세웠다. 이 후보가 상류층 가정의, 소위 KS마크로 통하는 일류학교 출신, 대법관과 총리를 역임한 고위권력층인 데 비해 노 후보는 가난한 농촌 출신, 별 볼일 없는 학력의 소유자임을 부각시켰다. 이러한 차별화 전략을 통해 대중은 이 후보보다 노 후보에게 친근감을 가졌고, 나아가 동정심과 연민까지 품게 됐다. 부산상고를 졸업했으나 첫 취업에 실패했던 그는 와신상담 끝에 고시에 합격해 인생을 대역전시켰다. 코리안 드림의 주인공으로 노 후보의 트레이드 마크가 결정됐다.

    노 후보의 선거광고 중 압권은 그가 파란만장한 인생을 회고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는 TV광고 장면이다. 이 광고를 시청한 일반 대중, 특히 서민들은 가슴이 미어졌고 노 후보에 대한 연민에 목이 메었다. 마치 모세가 홍해바다를 갈라놓듯, 2분여의 이 TV광고가 50만표의 향방을 갈랐던 것이다.

    물론 노 후보의 눈물은 탤런트들이 최루성 드라마를 녹화할 때 안약을 넣어 억지로 짜낸 가짜 눈물과 다르다. 그의 인생살이 자체가 눈물바다였기에 선거용 광고에서 내비친 눈물은 순도 100%의 진짜 눈물이다. 그가 대통령당선자로 결정된 이후 여러 공식석상에서 흘린 눈물도 연기를 위해 짜낸 것이 아닌 진짜 눈물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노 대통령이 너무 자주 눈물을 흘린다, 그것은 자연발생적이 아닌 연기다”라고 수군거린다. 이제 노 대통령이 어떤 곳에서 어떻게 눈물을 흘렸기에 이 같은 국민적 의문이 싹트게 됐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落淚…落淚…落淚

    2003년 1월31일 SBS TV의 ‘좋은 아침’ 프로그램에 대통령당선자 신분으로 노무현 부부가 출연했다. 노 당선자는 사법시험 합격 당시를 회상하면서 “사법시험에 합격하자 평소 자존심 때문에 나에게 몸을 기대지 않던 부인이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약한 모습을 보였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 눈물 역시 선거 때의 TV광고처럼 순수한 것이었고 여기엔 아무런 정치적 동기가 없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노 당선자는 다시 한번 국민의 가슴속에 따뜻한 인물로 각인되는 효과를 얻었다. 특히 그가 이제는 영부인이지만 당시 한낱 농촌 처녀였던 권양숙씨를 짝사랑하고 애태웠던 연애추억담을 토로했을 때 시청자들은 노 당선자의 애틋한 인간미를 곱씹을 수 있었다.

    노 당선자는 인생 길이 평탄치 않았기에 인생의 고비고비에서 적잖이 눈물을 머금었을 것이다. 그 결과 노 당선자는 자주 감상에 젖고, 쉬이 눈물을 흘리는 정서적 성격의 소유자가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성격과 감상적 행동을 탓할 수는 없다. 더구나 지금까지 그가 흘린 눈물을 정치적 술책의 하나라고 간주할 하등의 근거도 없다. 그러나 이후에도 노 대통령은 여러 공개석상에서 눈물을 흘렸는데, 이것이 바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2003년 12월19일 리멤버1219 행사를 여의도광장에서 가졌다. 이 행사는 바로 역전 드라마를 연출한 2002년 12월19일 대선 개표일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이른바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이 주축이 된 행사인데 노 대통령은 이들 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 배경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노 대통령은 선거시절 노사모에게 자신이 당선되면 그들을 청와대에 초청해 삼겹살을 대접하겠노라고 약속했는데 아직 이를 이행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낙루(落淚)했다. 이에 감읍한 노사모들은 “괜찮아요. 삼겹살 매일 먹어요”라고 열광적으로 소리쳐 답례했다. 그리고 곧바로 노사모들은 대통령의 눈물에 크게 감동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두 사례만 인용해보자.

    ‘석송’이란 아이디의 노사모 회원은 “우리들 앞에서 ‘노짱(노 대통령의 별명)’이 두 뺨에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는 순간 나는 그대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이 글을 쓰는 지금도 멈출 수 없는 내 눈물은 그날의 못다 흘린 눈물”이라고 했다. ‘윤이다’라는 노사모 회원은 “대통령은 제대로 된 정치를 국민에게 선사하고 싶기에 눈물을 흘린 것”이라며 “더 이상 노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하고 싶다. 이제 나부터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의 낙루는 다시 한번 국민의 심금을 울리고 특히 노사모의 지지를 담보하는 위력을 발휘했다.

    그런데 며칠 후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사건이 발생했다. 2003년 12월23일 노 대통령은 민생관련 하위직 공무원을 청와대에 초청해 만찬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우편집배원, 환경미화원 등이 초대되었는데 그는 집배원을 붙들고 눈물을 흘렸다. 이유인즉 그가 대통령선거 공약시 이들에게 인력충원을 약속했는데 과연 그 약속이 그들에게 흡족한 것이었는가 하는 자책감이 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왜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꼭 눈물을 흘렸어야 했는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사실 그 자리는 대통령이 하위직 공무원의 노고를 치하하는 경사스러운 자리였다. 외국에서는 하위직 공무원이 아무리 힘든 일을 한다고 해도 그들을 대통령관저에 초청하는 예가 흔치 않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청와대 만찬이 잘못됐다고 꼬집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노 대통령의 자상한 인간미를 엿볼 수 있었던 기회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바쁜 정무를 제쳐두고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만찬을 개최했는데 왜 대통령이 눈물을 보였을까. 만일 그들의 노고에 연민의 정을 느꼈다면 그들에게 앞으로 자신이 대통령으로서 어떻게 작업환경과 대우를 개선해줄 것인지를 천명하는 것으로 족하지 않았을까? 리멤버1219 행사 때와 마찬가지로 낙루한 이유가 석연치 않다. 이 청와대 낙루사건 때문에 국민은 대통령이 너무 자주 눈물을 흘린다, 이것이 혹시 일종의 계산된 연기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 것이다.

    리멤버1219 행사 때와 하위직 공무원 초청만찬 때 흘린 노 대통령의 눈물은 그 상황과 시기로 볼 때 고의성을 추측하기에 충분하다. 왜 그런가?

    리멤버1219 행사는 다음 선거를 위한 워밍업인 동시에 최근 야당으로부터 사방팔방에서 집중공략당하는 노 대통령을 구원하기 위해 다목적으로 기획된 행사였다. 또 최근 노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다. 멀게는 지난해 중반기부터 측근비리에 시달려왔고 그로 인해 그의 최측근 참모가 줄줄이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가깝게는 노 대통령이 지난해 하반기 외국방문시 검찰이 자신에 대한 비리사건 조사에 착수해 상당히 진척시켰다는 사실과 그 조사내용을 전해듣자 자신의 말대로 “앞이 캄캄했고” 따라서 귀국하자마자 폭탄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2004년 총선 전 자신에 대한 국민의 재신임을 묻겠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노 대통령의 비리사건에 관해 자세히 알지 못했던 한나라당과 국민은 노 대통령의 심중을 헤아리지 못해 갈팡질팡했다. 그러나 이후 장수천 문제에 노 대통령이 연루됐다는 검찰의 발표를 듣고서야 국민은 대통령이 왜 갑자기 신임문제를 제기했는지 비로소 납득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검찰의 충격적 발표로 청와대는 한나라당과 언론의 집중공격을 받았다. 한나라당은 심지어 대통령이 재신임 대상이 아닌 탄핵소추 대상이라고까지 압박을 가했다.

    이런 복잡한 정치 사건의 와중에서 노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자인 노사모와 하위직 공무원 앞에서 눈물을 흘린 터라 그의 눈물이 순수한 것이 아닌, 정치적 복선이 깔린 것이라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노사모가 다시 한번 자신의 정치적 후원자가 돼주기를 바라는 의도에서 눈물을 흘린 것인지 아니면 정말 삼겹살 대접을 못한 아쉬움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린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오직 대통령 자신만이 알 것이다.

    그런데 노 대통령의 눈물을 더 이상 그의 따뜻한 인간미가 아닌 ‘정치적 술수’로 추측하게 만드는 결정적 사건이 연거푸 터졌다. 그것은 노 대통령의 불법정치자금 ‘10분의 1’ 논리다. 노 대통령은 자신이 대선자금 불법모금, 불법사용에 관여했다 손치더라도 이것은 한나라당의 대선자금 규모에 비하면 10분의 1을 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그의 부정은 사소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조사 결과 자신의 불법선거자금 총액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사임할 것이라 공언했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그가 이 불법선거자금의 규모를 티코와 그랜저에 비유했다는 점이다. “티코가 휘발유를 썼으면 얼마나 썼겠는가? 그랜저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식으로 말했다. 그의 막료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대통령의 불법대선자금은 “생계형이다”라고 주장했다. 불법선거자금이 먹고 살기 위한 방편이라는 표현은 세계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황당한 해석이다. 배가 고파서 물건을 훔치는 경우를 우리는 생계형 범죄라 부르고 이런 범죄에 대해서는 그 사정이 너무 가련해 흔히 관용을 베푼다. 그런데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 또는 당선된 후 대선자금을 유용한 것이 생계형이라니! 그러면 대통령에 출마한 것도 노 대통령이 먹고 살기 위한 방책이었다는 이야기 아닌가. 남이 들을까봐 목소리를 낮춰 소곤거려야 할 창피한 억지다.

    이제 노 대통령의 눈물은 약발이 다한 느낌이다. 물론 아직 노사모는 그의 눈물에 감읍하겠지만 국민 대다수는 더 이상 감동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그 눈물의 저변을 의심할 뿐이다. 우리는 갖은 역경에 처했어도 한줌의 양심을 저버리지 않고 살아온 선량한 서민의 눈물에 크게 감동받는다. 그러나 자신의 부정과 비리 의혹에 땅을 치고, 가슴을 치고, 피눈물을 흘리며 석고대죄하기는커녕 티코형 범죄 운운하면서 그 비리를 순화하려는 대통령에게는 더 이상 따뜻한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그의 눈물이 안약을 넣은 가짜 눈물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한국인은 정에 약한 민족이다. 그래서 노 대통령이 낙루하면 적지 않은 국민이 몸둘 바를 모른다. 그러나 외국의 국가지도자가 눈물을 흘리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미국의 경우 헤프게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 1972년 민주당 대통령후보 지명전에서 선두를 달리던 에드먼드 머스키 상원의원은 부인을 헐뜯은 신문기사를 비난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였다. 머스키는 자기가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언론은 그가 정서적으로 불안하다고 평가했고, 결국 그는 중도하차할 수밖에 없었다.

    마찬가지로 케네디 대통령이 총격으로 사망하여 그를 추모하기 위한 추도식이 거행됐을 때 케네디 가문은 눈물을 억제했다. 아버지가 사망한 줄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재롱을 떠는 그의 아들 존의 행동에 국민은 더욱 오열했다.

    국가지도자는 국가적 재앙이나 어려움에 처했을 때 눈물을 보이기보다 오히려 이를 이겨나가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안심하고 동요하지 않는다. 즉 국가지도자는 나약하고 감정적이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정서적 선거전략으로 당선된 것을 의식하고 계속 눈물이란 코드의 정치적 전술을 사용한다면 국민으로부터 냉대를 받을 것이다.

    노 대통령이 취임 후 인기가 급강하한 원인은 “대통령이 힘들어 못해먹겠다”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임명한 장관이 국회 동의를 받지 못한 것, 언론들이 계속해서 대통령을 깎아내린 것, 특검비리 거부안을 재차 국회에서 통과시킨 것 등등을 헤아려보면 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 바 아니나 그래도 대통령의 할말은 아니라고 본다. 그의 지도자로서의 능력, 그의 공약을 믿고 대통령으로 선출한 국민이 이 말을 듣고 얼마나 실망하고 불안해할까?

    대통령은 아무리 어렵고 억울해도 감정에 복바쳐 눈물을 흘려선 안 된다. 아버지가 살기 힘들다고 자식 앞에서 눈물을 흘릴 때 자식은 아버지를 동정하기에 앞서 불안감에 떨 수밖에 없다. 아버지나 대통령은 공개석상에서 눈물을 자제해야 한다. 비록 그것이 개인적이고 억울한 것이라 해도 눈물을 억제하고 뒤에서 남몰래 눈물을 흘려야 한다. 대통령이 할 일은 눈물을 참고 반대로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다.

    이젠 국민도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그러나 만일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 대선자금 비리에 개입했다면 그때는 단연코 석고대죄하고 피눈물을 흘려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것도 찔끔찔끔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무릎을 꿇고 닭똥 같은 눈물을 펑펑 쏟아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이 죄를 용서하고 사면할 수 있다.

    이제 국민도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대통령을 선출할 때 단순히 그가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그가 나와 같은 역경에 처했다고 해서, 또 그가 가슴 아픈 사람의 마음을 대변할 수 있다고 해서 무조건 그를 지도자로 선정해선 안 된다. 후보자가 비전을 갖고 있는지, 정치수행능력이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도덕적으로 하자가 없는지 등등을 세심히 따져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지도자는 눈물을 자주 흘리기보다는 남몰래 눈물을 흘려야 한다.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내가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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