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호

거품투성이 특급호텔 음식값

재료비 15~20%, 양주 최고 10배, 특별요리 ‘부르는 게 값’

  • 글: 박은경 자유기고가 siren52@hanmail.net

    입력2004-01-29 11:2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한 끼 식사에 30만원을 호가하는 코스 메뉴, 초밥 한 덩이에 1만원인 최고급 일식,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맞춤요리와 특별요리 등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의 특급호텔 고급음식들. 고품격 분위기 연출하기 위한 비용이 상당부분을 차지한다는 특급호텔 음식값의 속내를 알아보았다.
    거품투성이 특급호텔 음식값

    비쌀수록 좋은 음식이라는 사람들의 인식이 특급호텔 음식값을 높이고 있다.

    단돈 1달러(우리 돈으로 1200원)는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사람 한 명의 하루 세 끼 식사비로 충분한 돈이라고 한다. 멀리서 찾지 않아도 무료 식사 한 끼로 배고픔을 달래려고 추운 겨울, 길거리에 길게 줄을 선 노숙자가 수백명을 헤아리고, 생활비가 없어 어린 자식과 동반자살하는 비정한 부모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 최근 우리 사회 단면이다. 그런가 하면 한편에선 한 그릇에 2만5000원인 우동, 2만원인 죽, 100만원짜리 도시락이 불티나게 팔리고, 한 끼 수십만원 한다는 밥값이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길거리를 나서면 “IMF 사태 직후보다 더 먹고살기 힘들다”며 한숨을 내쉬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말, 서민들의 입이 딱 벌어질 만한 뉴스가 방송을 탔고 다음날 일간지들은 앞다투어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권노갑씨 호텔서 주 3, 4회 고급식사’ ‘권노갑씨 1인분 30만원 식사 즐겼다’ ‘1인분 30만원 샥스핀·포도주, 권씨 일주일에 3∼4차례 즐겨’ ‘권노갑씨 밥값 億! 샥스핀에 최고급 와인… 1인당 30만원.’ 한 일간지는 ‘권노갑씨 1년 밥값 3억’이라는 제목을 뽑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무수히 쏟아진 기사의 주안점은 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으로부터 카지노사업 허가 등의 대가로 200억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구속 기소된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에 대한 5차공판 과정의 증인심문과 현장검증에 있었다. 현장검증은 식사 후 권 전 고문과 정몽헌 회장 중 누가 식대를 지불했느냐, 카드로 결제했느냐, 현금으로 결제했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세간의 관심은 정치권력과 재벌기업간 어마어마한 뒷돈거래에 대한 진실이 아나라, 이해하기 힘든 ‘밥값’에 쏠렸다. 이는 공판 과정에서 신라호텔 전 종업원이 한 말이 빌미가 됐다. 그 종업원의 진술을 요약하면 “권 전 고문이 1999년 봄부터 2002년 4월까지 일주일에 서너 차례 중식당에 들렀다. 항상 상어지느러미찜에 매달 바뀌는 이벤트요리와 고급 포도주를 곁들였으며, 이런 식사비용은 1인당 30만원 선으로 4명이 식사하면 부가세 등을 포함해 120만∼130만원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30만원 넘는 트뤼플, 푸아그라, 캐비어



    웬만한 고급식당이나 특급호텔이 아니면 찾아보기 힘든 샥스핀(상어지느러미)은 시세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현재 1kg에 28만원을 호가한다. 손바닥만한 샥스핀을 주재료로 한 수프 가격은 특급호텔의 경우 1인분에 2만∼3만원 정도다. 권씨가 식당에 올 때마다 먹었다는 상어지느러미찜의 가격은 대략 8만원선. 여기에 그가 반주로 곁들였다는 프랑스산 고급 와인 샤토 보의 병당 가격은 12만∼14만원을 호가한다.

    이름조차 낯선 ‘상어지느러미찜’과 ‘한 끼 30만원짜리 식사’는 사람들의 궁금증을 증폭시키며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신라호텔 관계자는 “술값이 포함된 가격이라 요금이 높게 나온 것인데, 사람들이 밥값만 수십만원인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며 곤혹스러워했다.

    ‘샥스핀’은 우리나라에 앞서 이미 지난해 홍콩을 한 차례 시끄럽게 만들었던 주범이다. 홍콩관광청이 홈페이지에 상어지느러미탕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자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상어 멸종으로 인한 환경파괴를 주도하고 있다”며 맹비난을 퍼부은 것. 이 일로 홍콩관광청과 그린피스는 한동안 뜨거운 공방을 벌였다.

    샥스핀 외에도 한 끼에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특급호텔 코스 메뉴에 사용되는 음식 재료는 여러 가지가 있다. 특급호텔 주방장들이 공통으로 손꼽는 최고의 재료는 ‘세계 3대 진미’로 불리는 트뤼플(혹은 트뤼프라 불리는 송로버섯의 일종, Truffle)과 푸아그라(거위간, Foie gras), 캐비어(철갑상어알, Caviar)다.

    ‘버섯의 여왕’이라 불리는 트뤼플은 화이트와 블랙 두 종류가 있는데, 블랙 트뤼플은 프랑스 페리고산이 유명하며 화이트 트뤼플은 이탈리아 피에몬테산이 유명하다. 트뤼플은 인공재배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땅속에 숨어서 자라기 때문에 돼지 또는 훈련한 개를 이용해 캐내야 하므로 값이 비쌀 수밖에 없다.

    푸아그라는 말 그대로 ‘기름진 간’이라는 뜻으로 프랑스 알자스산이 가장 유명하다. 거위를 나무상자에 가둔 채 사육하며 깔때기를 이용해 강제로 사료를 먹여 간만 비정상적으로 키워 얻는 것이 바로 푸아그라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푸아그라는 우유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맛이 기름져 최상급 요리 재료로 손꼽히지만 사육방법의 잔인함 때문에 세계적 논란거리가 되기도 했다. 호텔을 두루 거친 수십년 경력의 주방장조차 “내 손으로 직접 푸아그라를 요리해보지는 못했다”고 할 만큼 비싸고 귀한 재료다.

    캐비어는 상어의 종류와 알의 크기 및 윤기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데, 철갑상어 알 중에서 크기가 크고 투명할수록 상품으로 꼽힌다. 최상급 캐비어 벨루가(Beluga)는 현재 시가가 50g에 11만원 정도다.

    서양요리 전문으로 조리경력 35년의 이기영 부장(서울교육문화회관 조리부 근무)은 “현재 시세는 트뤼플이 100g에 17만8000원(1kg 178만원), 푸아그라는 1kg에 7만5000원이다. 트뤼플은 워낙 값비싼 재료라 주로 요리의 향을 내는 데 이용된다. 푸아그라는 재료 특성상 조리를 하면 녹아서 작아지기 때문에 1kg이라고 해도 양이 많지 않다. 게다가 수입 식자재는 기호품으로 취급되어 관세가 높기 때문에 요리가격도 덩달아 높아질 수밖에 없다. 트뤼플이나 푸아그라, 캐비어 같은 고가 재료를 쓰면 한 끼 식사에 30만원은 보통”이라고 귀띔했다.

    계보정치와 고급 식사

    이외에도 특급호텔에서 사용하는 고가 재료에는 국내산 자연송이, 자연산 복어, 전복, 바닷가재, 대게, 취하(산 새우를 술에 잰 것, 일명 술 취한 새우) 등이 있다. 가을 한철에만 잠깐 나는 국내산 자연송이는 지난해 9월 1kg에 70만원을 호가했고 현재는 40만원 선이다. 자연산 복어는 1kg에 10만∼15만원, 전복은 1kg에 10만원에 달한다. 이러한 재료를 사용해 주요리를 할 경우 특급호텔 코스 메뉴는 10만∼30만원에 이른다. 이외에도 특급호텔에서 비교적 인기메뉴로 손꼽히는 요리와 그 값을 살펴보면 스테이크의 경우 4만원 선이며 뷔페는 1인당 4만∼5만원이다. 샐러드와 음료를 포함해 5∼6가지 요리가 나오는 기본 코스 메뉴는 10만원 안팎으로 시중 전문음식점과 비교할 때 최고가를 형성하고 있다.

    아무리 특급호텔이 제공하는 고급요리라 해도 선뜻 지갑을 열기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지나치게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권노갑씨의 ‘밥값 30만원’이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것도 따지고 보면 상식 선에서 이해되지 않는 가격 때문이다.

    “일반 서민들이야 특급호텔 식당 드나들며 수십만원 하는 음식을 먹을 일이 없지 않은가.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 웬만한 기업체 사장 등 돈 좀 있고 권력 있고 품격 찾는 사람 아니면 출입하기 힘든 곳이 특급호텔 식당”이라고 한 주방장은 얘기했다.

    취재 도중 만난 모 의원 보좌관은 “정치인들이 특급호텔 식당에서 호사를 누리다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되는 것은 계보정치가 원인이다. 자리를 자주 만들고 돈을 써야 계보를 유지할 수 있지 않나. 또 정치를 둘러싼 사안에 보안 유지를 해야 하기 때문에 호텔 출입이 잦은 것이다. 계보를 유지하고 맏형 노릇을 하려면 비싼 식사는 물론, 골프나 해외여행도 주선해야 한다. 특급호텔에서 메뉴를 선택할 때도 품위 유지와 체면을 고려해야 하므로 비싼 음식을 시킬 수밖에 없다. 싼 음식을 주문하면 ‘능력이 저것밖에 안 되나’ 하는 시선을 받거나 ‘짠돌이’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털어놓았다.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외교구락부에서 주방을 담당했다는 이기영 부장은 “당시 외교구락부는 정부 요인이나 저명인사 외에는 일반인의 출입이 극도로 제한됐다. 그때 김종필 총재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등이 자주 이곳을 이용했다. 인기 메뉴는 안심스테이크와 전복스테이크, 바닷가재 요리였는데 김종필 총재와 정일권 전 국무총리가 바닷가재 요리를 무척 좋아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후레미뇽스테이크(쇠고기에 베이컨을 감은 것)를 즐겨 들었다. 신직수 당시 검찰청장은 시금치수프를 특히 좋아했고, 고 이병철 삼성회장은 연어요리와 스파게티를 즐겼다. 비즈니스를 위한 모임을 가질 때는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주로 별실을 사용했지만 정일권 전 총리는 홀을 이용해 상당히 소탈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회상했다.

    내친김에 그는 1970년대 초 박정희 전 대통령과 얽힌 일화 한 토막을 털어놓았다. “국방대학원 졸업식의 칵테일 파티를 맡아 출장을 나갔다. 파티장에 음식을 다 차려놓고 점검을 하는데 케이크를 자를 칼이 보이지 않았다. 그걸 가지러 갔다가 조리용 칼과 케이크 커팅 칼을 손에 들고 황급히 파티장으로 달려오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정면으로 딱 마주쳤다. 옆에는 경호원이 몇 명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살벌한 시대인지라 등에 식은땀이 쫙 흘렀다. 아마 조리사용 흰 가운을 입지 않았다면 오해를 사서 죽지 않았을까….”

    이 부장은 예전에 비해 요즘은 특급호텔을 드나드는 정치인의 수가 많이 줄어든 것 같다고 전했다.

    거품투성이 특급호텔 음식값

    특급호텔에서 제공하는 고급 요리들. 가격은 최소 4만~5만원에서 최고 100만원에 이른다.

    특급호텔은 식당마다 별실인 다이닝룸을 갖추고 있어 남들 눈을 피할 수 있고 호텔 내 안전관리실에서 모든 장소의 보안을 철저히 지켜주며 고객의 정보나 프라이버시를 유출할 경우 해고사유가 될 정도로 직원들 교육이 철저하기 때문에, 신분 노출을 꺼리는 VIP급 고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장소다.

    전직 특급호텔 출신 주방장에 따르면 별실은 경험 많은 고참 웨이터가 서빙을 담당한다. “접대를 위한 자리인가 아닌가, 돈을 낼 사람이 누군가를 눈치껏 파악해 주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접대 자리라면 요리는 고급으로, 술은 최상급 메뉴부터 그 아래로 몇 가지를 추천한다. 이런 자리에선 체면을 따져 최고급 술과 요리를 주문하는 것이 보통이다.”

    비즈니스를 위해서든 체면이나 품위 유지를 위해서든 쉽게 지갑을 여는 사람들을 겨냥해 ‘최고의 서비스와 최고의 품질, 최고의 품격’을 제공한다는 특급호텔 음식값에 거품은 없을까. 취재 도중 만난 특급호텔 관계자와 여러 주방장이 공통적으로 꼽은 ‘특급호텔 음식값이 비싼 이유’는 ▲교통요지에 자리잡아 비싼 땅값 ▲고품격 분위기 연출을 위한 부대비용 ▲우수한 인력에 따른 높은 인건비 ▲최고급 식재료 ▲음식에 부과되는 부가세 10%와 봉사료 10% 등이다.

    신라호텔 관계자는 “호텔은 브랜드 가치가 상품이고 전형적인 트렌드 사업이다. 브랜드 가치 평가기준은 시설과 요리, 서비스의 질이다. 따라서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많이 든다. 예를 들면 우리 호텔은 2년에 한 번 꼴로 인테리어를 전면 교체한다. 그릇을 비롯한 호텔 기물 역시 2년마다 교체하고, 특히 요리에 쓰이는 식기는 계절에 따라서, 요리 성격과 요리 조합을 고려해 수시로 바꾼다. 그릇 세트 중에는 100만원을 호가하는 것도 있다. 이중 한 개라도 파손되면 전체 세트를 바꿔야 한다. 식당에서 쓰는 냅킨을 예로 들면 종이냅킨은 구입·유지비가 적게 들지만 우리 호텔은 품격을 위해 리넨을 쓰고 있다. 리넨 냅킨은 자주 세탁해서 풀 먹이고 다림질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인건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호텔 종사자는 “특급호텔은 식당마다 대개 10개 안팎의 별실을 따로 갖추고 있다. 이곳을 꾸미는 데 쓰이는 조명, 테이블과 의자, 카펫 등은 예술품에 가까운 수입품들이다. 장식품도 마찬가지다. 최고급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적게는 수천만원 많게는 수억원”이라고 말했다.

    음식값 책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재료비와 인건비. 이 가운데 음식 재료는 최고의 신선도와 맛을 지닌 고급 재료만을 쓴다는 것이 특급호텔 관계자들 주장이다. 그러나 일부 특급호텔 관계자와 주방장에 따르면 몇몇 최고급 수입 재료를 제외하면 시중의 고급 전문식당과 비교할 때 특급호텔에서 사용하는 음식 재료에는 별반 차이가 없다. 특급호텔 음식값에서 재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최저 15%에서 최고 30%다. 국내에서 초특급호텔로 손꼽히는 4∼5개(2003년 9월말 현재 특1급 호텔 43개 중) 호텔의 재료비가 음식값의 20∼30%를 차지한다면 나머지 특급호텔은 15∼20%선에 머문다는 것이 한 호텔 관계자의 귀띔이다. 즉 재료비 1만5000∼3만원을 들인 요리를 10만원을 내고 먹는 셈이다. 많게는 8만5000원에서 적게는 7만원이 ‘최고의 서비스와 품격’ 비용으로 고객 주머니에서 나간다는 얘기다.

    고가전략에 따른 가격 거품

    그렇다면 음식 재료비에 거품은 없을까.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수입 식자재는 한국관광용품센터가 독점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다. 그러나 이후 수입 식자재 유통경로가 다변화되고 전문 수입업체가 늘면서 가격 경쟁력이 높아졌지만 특급호텔 음식값은 전혀 내리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특급호텔 출신의 한 전직 주방장은 “브랜드 가치를 중시하는 특급호텔의 고가전략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또 “예를 들면, 복어 코스요리는 1인분에 최소 20만원이 넘는다. 그러나 자연산이냐 양식이냐에 따라, 또 계절에 따라 복어 가격이 많게는 두 배까지 차이가 나지만 일단 ‘복어’ 하면 사람들이 비싸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요리 가격에 원가를 계산한 차등을 두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의 인식에 편승해 비싼 값을 매긴다고 보면 된다. 고가전략에 음식값의 거품이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초특급호텔이 아니면 쉽게 쓸 수 없는 일식 재료 중에 ‘도로’라는 것이 있다. 도로는 참치 뱃살을 말하는데 고급 재료로 꼽히는 흰색황새치 도로의 경우 1kg에 2만5000원 정도다. 그런데 최고급으로 꼽히는 참다랑어(혼마구로) 도로는 1kg에 25만원을 호가한다. 특급호텔 식당은 혼마구로를 사용한 회덮밥과 초밥 1인분에 보통 10만원을 받는다. 초밥 한 덩이에 1만원 꼴인 셈이다.

    수십년 경력의 한 호텔 주방장은 “일반 호텔이 특급호텔을 흉내낸다고 값비싼 재료를 사용해 만든 요리를 가격을 낮춰 내놓으면 손님들이 그 요리를 외면한다. 고급 식재료로 만든 요리는 비싸면 비쌀수록 진가를 인정받는 것이다. 이러한 고객 심리를 음식값에 반영하기 때문에 그만큼 가격에 거품이 생기는 것”라고 귀띔했다.

    음식값과 관련된 거품은 또 있다. 일반적으로 특급호텔 식당은 호텔과 식당 종류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한·중·일·서양식 식당에서 준비한 메뉴가 대개 100여 가지에 달한다. 그 가운데 10만원대가 넘는 코스 메뉴는 보통 한 달 주기로 바꾸는 곳이 많다.

    리츠칼튼호텔 일식 주방장 출신으로 현재 서울보건대학 조리예술과에 재직중인 유택용 교수는 “특급호텔은 다품종·소량 전략을 쓰기 때문에 메뉴가 다양하다. 또 단골손님이 많기 때문에 일년 내내 똑같은 구성의 코스 메뉴가 나가면 손님들 발길이 끊어진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 바꿔주고 코스 메뉴 구성도 달리한다. 여기서 식자재 재고 로스(loss)가 발생하는데 이것은 가격이 올라가는 주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특급호텔은 일반 음식점과 달리 손님의 취향에 따라 내용물을 바꿀 수 있는 ‘주문형 음식’을 서비스한다. 메뉴에 있는 요리라 해도 손님 각각의 취향에 따라 넣고 빼는 재료가 달라질 수 있고 요리법도 달리할 때가 있다. 일명 ‘맞춤요리’는 재료비와 인건비가 더 올라간다. 그뿐만 아니라 메뉴에도 없는 특별요리를 주문할 경우 “부르는 게 값”이라는 것이 주방장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특급호텔 총주방장은 억대 연봉자

    이기영 조리부장은 “특급호텔 단골고객은 미식가나 식도락가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계절성을 강하게 타는 재료로 만드는 요리, 특정 시기를 놓치면 못 먹을 것 같은 요리를 찾는 경우가 많다. 가을철 자연송이 시즌이나 겨울철 대게 시즌 등 시기별로 특별한 재료가 들어오면 미리 전화로 알려달라는 손님도 있다. 이러한 재료는 대개 고가의 귀한 재료이기 때문에 재료 구입에 별도 마진이 붙는다. 최고급 계절성 재료를 사용한 식사는 코스 메뉴 한 끼에 100만원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특급호텔에서 고급 식자재를 써서 조리하는 과정에는 고난도의 특별한 기술과 정성, 시간을 요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경력이 풍부한 조리사를 여러 명 쓰는데 그만큼 인건비가 높아진다. 이것이 일반 음식점과 비교해 같은 재료를 썼다하더라도 특급호텔 음식값이 높게 책정되는 이유 중 하나다. 기본 구성이 5∼6개인 코스 메뉴 10인분을 만든다고 가정하면 세 명 이상의 경력 조리사가 달라붙어야 한다. 예를 들어 아스파라거스 수프를 만드는 과정을 보면, 우선 육수를 하루 전에 미리 만들어야 하는데 대략 여섯 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밀가루와 버터를 볶은 다음 육수를 붓고 갈아놓은 아스파라거스를 넣어 한 시간 정도 끓여야 수프에 깊은 맛이 난다. 수프 한 가지를 만드는 데도 여러 과정을 거치며 최소한 7시간을 소요해야 하는 것이다.” 인건비와 관련한 이 부장의 설명이다.

    특급호텔 총주방장은 대부분 억대 연봉자다. 총주방장을 필두로 신참 조리사에 이르기까지 대개 13단계의 직위가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낮은 단계의 신참 조리사 연봉이 2000만원 안팎이다. 한 특급호텔 관계자는 “우리 호텔 직원이 800명인데 연매출이 1000억원 정도다. 직원 1인당 1억2000만원 안팎의 연매출을 올린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일반 제조업체 생산성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떨어진다. 하지만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생산성이 낮더라도 고품질 인력을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또 “현재 우리 호텔에서 근무하는 구매팀 직원은 20명인데 고기와 생선, 과일 등 식자재 분야별 전문가들이다. 식당에서 사용하는 식자재 중 국내에 없는 재료가 많기 때문에 수시로 해외출장을 가 정보를 얻는다. 마찬가지로 조리사도 새로운 요리 개발이나 조리과정 연수를 위해 해외에 자주 나간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손님이 먹는 음식값에 인력에 대한 투자비용이 고스란히 반영된다는 얘기다.

    앞서 언급한 권노갑 전 고문의 경우처럼 특급호텔 ‘한 끼 식사값’이 부풀려지는 이면에는 바로 술이 있다. 이기영 부장은 “코스 메뉴에 와인을 곁들이면 수십만원의 밥값이 나올 수 있다. 특급호텔 손님들이 마시는 와인 중에는 1병에 100만원짜리도 있고 1잔에 10만원짜리도 있다. 호텔에서 대중적으로 나가는 와인은 매독과 생테밀리옹인데, 보통 납품가에 70∼80%를 붙여 판매한다. 호텔 주장(바)은 부가세와 봉사료 외에 21%의 세금이 따로 붙는다. 따라서 시중가에 비해 술값이 비싸다”고 설명했다.

    시중에서 현재 약 1만5000원에 팔리는 매독의 호텔 가격은 5만원 선이다. 부가세 10%와 봉사료 10%에 주장 세금 21%를 더한다 해도 가격은 2만원을 겨우 넘지만 실제로는 두 배 이상 받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또 다른 특급호텔 주방장은 “양주값은 10배까지 부풀려지는 경우도 많다”고 귀띔했다.

    특급호텔 음식값은 동일한 메뉴라도 주중과 주말, 점심과 저녁식사에 따라 차별화된다. 이때 20∼30% 가격 차이가 난다. 여름철 등 비수기에는 각종 이벤트를 통해 최고 50%까지 음식 가격을 할인하기도 한다. 평소 음식값에 거품이 있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평균을 잡아 전반적으로 음식값을 내리지 않는 이유가 뭘까. “브랜드 이미지를 위해 고가전략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이 호텔 관계자들의 말이다.

    유택용 교수는 “앞에서 지적했듯이 일반 호텔에서 아무리 특급호텔과 똑같은 재료를 써서 조리를 해도 손님들이 인정하지 않는다. 특급호텔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항상 최고의 분위기와 서비스를 누리고 최고 품질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품격을 위해 특급호텔을 찾는 것이다. 식사 목적보다 비즈니스를 위해 드나드는 고객이 많은 편이라 음식값에 민감하지 않다. 또 여기 오는 사람들은 대개 비쌀수록 좋은 음식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에 따르면 특급호텔을 드나드는 손님들이 거품가격, 고가전략을 고수하는 데 일조하는 셈이다. 최근 ‘귀족마케팅’이 유행하는 이유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