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호

페덱스|사람 존중 ‘엔진’달고 고객만족 ‘날개’로 세계의 하늘 선점하다

  • 글: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4-01-29 11: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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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덱스 익스프레스(FedEx Express)가 전세계 215개국으로 화물을 실어나르는 ‘슈퍼 허브’인 테네시주 멤피스공항은 낮보다 밤이 더 분주하다. 하루에 해리포터 35만질을 미국인의 안방으로 배달하는 저력. 고객들이 잠자는 사이 휘파람 불며 밤을 새우는 페덱스 사람들의 희망과 열정의 비결은 무엇일까.
    페덱스|사람 존중 ‘엔진’달고 고객만족 ‘날개’로 세계의 하늘 선점하다

    페덱스 로고가 선명한 전용 화물기. 미국 멤피스공항에서는 이 비행기가 3분에 한 대 꼴로 뜨고 내린다.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않는 기업’.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초우량기업을 거론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건 좀 이상하다. 그러나 항공특송 분야에서 세계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페덱스(FedEx)의 임원들은 자신들이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않는 기업’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밝히는 데 주저함이 없다. 단,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않기 때문에 서비스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랑한다.

    크리스마스 연휴를 코앞에 둔 지난해 12월17일 오후,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공항. ‘페덱스’ 로고를 붙인 대형 화물기 100여대가 끝도 없이 늘어서 있다. 그러나 화물기보다 더 바쁜 건 세계 각국으로 들고나는 항공 화물들을 분류하고 옮겨 싣는 현장 근로자들이다. 항공 화물 운송업체로서 연중 가장 바쁜 시즌인 크리스마스 휴가를 앞두고 공항터미널을 가득 메운 근로자들은 찬바람에도 아랑곳없이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멤피스공항에선 페덱스 로고를 단 화물기가 낮에는 100대, 밤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150대가 떠오릅니다. 물론 세계 각국에서 미국으로 보낸 화물을 싣고 멤피스공항에 내리는 비행기도 이와 비슷한 숫자죠. 3분에 한 대꼴로 세계 각국을 향해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셈입니다.”

    기자를 멤피스공항으로 안내한 홍보 담당자 에드윈 콜먼이 들려주는 설명을 듣고 나서야 페덱스 한국지사에서 ‘페덱스를 취재하려면 반드시 멤피스공항에 가봐야 한다’고 강조하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4개의 활주로를 통해 노스웨스트 에어라인(NWA) 등 주요 항공사 소속 여객기가 쉴새없이 뜨고 내리는 공항에서 페덱스는 별도의 터미널과 관제탑을 가진 슈퍼 허브(super hub)를 운영하고 있다. ‘슈퍼 허브’란 페덱스가 화물을 실어나르는 전세계 215개국으로 뻗어나가는 ‘허브공항 중의 허브공항’을 뜻한다. 이 공항에서 일하는 페덱스 직원만도 4500명이나 된다.



    일반 물류 기지와 달리 항공 화물 운송 기지는 어둠이 깔리면서 더욱 바빠지기 시작한다. 멤피스공항에서 야간근무에 투입되는 페덱스 직원은 주간의 꼭 2배에 해당하는 9000명이다. 에드윈 콜먼은 “하루에 해리포터 35만질을 미국인들의 안방에 배달할 수 있는 회사는 페덱스뿐”이라고 자랑했다.

    화물기만 643대 보유

    ‘누구에게 무언가를 배달한다’는 것은 인간과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시작된 이래 가장 먼저 생겨난 비즈니스 형태일지 모른다. 화물운송 역시 미래형 산업이나 첨단산업이라고 분류하기에는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멤피스공항에서 처리되는 화물운송 시스템을 보더라도 그렇다. 대형 건물 몇 개를 이어 붙여놓은 것 같은 컨베이어 벨트에 사람들이 달라붙어 페덱스 로고가 붙은 수하물 상자를 하나하나 뒤집고 있는 것을 보노라면 답답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전세계에서 페덱스가 하루에 취급하는 화물이 모두 310만개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수공업적’ 방식이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을 법도 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기서 사람이 하는 일은 대형 컨베이어 벨트 위에 어지럽게 쏟아놓은 수하물을 행선표의 바코드가 위로 오도록 뒤집어놓는 것이 전부다. 40인치가 넘는 대형 PDP TV부터 노트 한 권 정도 포장용기에 담긴 여성용 속옷까지 크고작은 수하물들이 빠르게 움직이는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이동한다. 그러다가 하늘을 향해 누워 있는 바코드를 인식기가 읽어들이면 바코드에 적힌 행선지 정보에 따라 목적지별로 분류된다. ‘아시아 국가로 가는 것은 1층, 유럽 국가는 2층…’ 이런 식이다. 그 다음에는 ‘한국으로 가는 것은 A블록, 일본으로 가는 것은 B블록…’ 이렇게 하위 분류 항목으로 이어진다.

    미국내 수하물 역시 주(state)별, 도시(city)별로 가지치기를 하면서 분류에 분류를 거듭한다. 중앙 컴퓨터로 통제되는 이런 수하물 분류 시스템을 ‘매트릭스’라고 부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한치의 오차도 없이 행선지를 분류해내는 것은 사람이 아닌 자동화된 시스템의 몫이다. 모두 중앙 컴퓨터 제어시스템을 통해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진다.

    멤피스공항의 페덱스 전용 터미널에는 이런 매트릭스 시스템을 둘러싼 수하물 집하장이 8개나 있다. 1개의 집하장은 축구장 하나만한 크기. 이 수하물 집하장은 세계 각국에서 이 공항으로 들어온 온갖 종류의 수하물을 모두 하역한 뒤 지상 견인차로 끌어온 화물을 하역해 1차 분류하는 곳이다.

    매트릭스 시스템과 수하물 집하장이 643대의 자체 보유 화물기와 4만3000여대의 차량으로 매일 310만개나 되는 화물을 실어나르는 페덱스 글로벌 네트워크의 심장부인 셈이다.

    항공 화물운송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확성과 속도다. 정확성과 속도에 대한 소비자들의 만족을 보장하기 위해 페덱스는 이미 오래 전부터 운임환불제도(Money Back Guarantee)를 운영하고 있다. 고객이 의뢰한 화물이 약속한 시간에 제대로 배달되지 않을 경우 운임의 환불을 요청할 수 있는 제도이다.

    정확성이 항공 특송회사들이 갖춰야 할 ‘기본’이라면 업체간 경쟁에서 비교우위를 점할 수 있는 핵심 요소는 당연히 ‘속도’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페덱스가 내세우고 있는 모토는 ‘익일 배송’. 즉 모든 수하물은 세계 어디서든 출발지의 고객이 의뢰한 다음날 업무가 끝나기 전에 받아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경쟁력의 핵심이다.

    바퀴살 시스템으로 출발

    고객들은 페덱스가 자체 개발한 컴퓨터 시스템 ‘코스모스(COSMOS)’를 통해 자신이 의뢰한 수하물이 지금쯤 어디에 있는지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다.

    이처럼 물건을 만들어 파는 기업이 아닌 만큼 고객 서비스에 한치의 오차도 없도록 하자는 것이 페덱스를 초우량기업으로 끌어올린 기본 정신이다.

    물론 이러한 서비스가 가능한 것은 페덱스가 구축한 거미줄 같은 물류 연결망 때문이다. 페덱스의 물류 연결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허브 앤드 스포크 시스템(Hub and Spoke)’이라 불리는, 페덱스 특유의 ‘바퀴살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바퀴살 구조’란 1973년 페덱스를 창업한 프레드 스미스가 예일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던 1965년, 학교에 제출한 학기말 리포트에서 비롯했다. 프레드 스미스는 이 리포트에서 미국내 인구분포를 감안해 인구밀집지역에 수하물 집결지인 허브(hub)를 만들고 모든 화물을 여기에 집결시킨 다음 바퀴살(spoke) 모양으로 미국 전역에 특급으로 배송하자는 구상을 내놓은 것이다.

    이런 구상은 지금 생각하면 간단한 아이디어 같지만 항공 화물운송이 대중화되지 않은 당시만 해도 획기적인 발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것이 바로 페덱스의 출발이었다.

    페덱스는 멤피스공항을 포함해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 각각 1개씩, 모두 3개의 허브공항을 갖고 있다. 이 3개의 허브공항을 중심으로 전세계 215개국으로 화물 운송망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것.

    우리나라와 가장 밀접한 아시아 지역 허브는 필리핀 휴양도시 수비크만(灣)에 자리잡고 있다. 페덱스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가 있는 홍콩(香港)의 첵랍콕 공항도 아니고 아시아의 물류 지형을 바꾸고 있다는 상하이(上海)의 푸둥(浦東)공항도 아니다. 1992년까지 미해군이 사용하다 떠나버린, 아직도 군사기지 냄새가 물씬 나는 수비크만에 페덱스 같은 초우량기업이 자리잡은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페덱스 임원들을 만날 때마다 ‘당신들이 허브 공항 선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곧바로 “24시간 운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첫 번째 요건”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한국 정부가 아무리 인천국제공항을 ‘동북아 허브공항’이라고 우겨도 페덱스 같은 글로벌 기업이 쉽게 한국에 둥지를 틀지 못하는 이유를 알 법했다.

    필리핀 수비크가 페덱스 같은 글로벌 기업의 허브공항을 유치할 수 있었던 데에는 범정부적인 노력이 단단히 한몫을 했다.

    아시아 ‘제2의 허브’를 노려라

    지난 1992년 미 해군이 수비크에서 떠나자마자 필리핀 정부는 이 일대를 특별경제구역으로 지정하고 필리핀 최고의 휴양도시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수입관세 면제, 수출입 통관절차 간소화 등 각종 혜택을 줘 외국기업 유치에 앞장섰고, 미군 기지가 보유하고 있던 전력이나 통신 등의 풍부한 인프라도 적절히 활용했다. 외국 기업에게 무엇보다 매력적이었던 것은 허가된 외국인과 내국인 서비스 종사자 이외에는 출입을 제한할 정도로 ‘특구다운 특구’를 지향했다는 점.

    그러나 수비크공항과 페덱스 간에 맺어진 이용 계약은 오는 2007년 끝난다. 당연히 아시아 각국이 페덱스 같은 대형 고객을 잡기 위한 물밑 경쟁을 시작했다.

    멤피스의 페덱스 본사에서 만난 도널드 콜러란 수석 부사장을 붙잡고 인천공항으로의 허브 이동 가능성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콜러란 부사장은 인천공항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페덱스가 허브공항을 선정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은 24시간 화물 하역과 운송이 가능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말해 인천공항의 허브화에 대해서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콜러란 부사장은 허브공항 선정의 기준에 대해 △정부의 규제 완화 △공항 운영에 따른 기반시설 △원활한 영공 진입절차 △저렴한 부동산 가격 △양질의 인력 등을 들었다. 이미 업계에서는 페덱스가 필리핀의 수비크을 대신할 ‘제2의 허브’로 중국 푸둥공항을 점찍어놓았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페덱스|사람 존중 ‘엔진’달고 고객만족 ‘날개’로 세계의 하늘 선점하다

    페덱스 컴퓨터 시스템 ‘코스모스’를 통하면 화물의 위치를 실시간 추적할 수 있다. 사진은 화물이 운송되는 전과정.

    페덱스가 물류와 운송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기업인 만큼 신기술 개발 같은 IT 분야에 상대적으로 소홀할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요즘 페덱스는 고객들이 화물 운송을 의뢰하기 위해 탁송의뢰서를 기입할 때 사용할 특수 펜을 도입해 실험중이다. 덴마크의 로지테크사가 개발한 원천기술을 기반으로 페덱스가 자체 개발한 이 특수 펜은, 고객들이 탁송의뢰서를 기입할 때마다 펜에 달린 초소형 카메라가 그 필적을 읽어들여 곧바로 컴퓨터 화면에 보여주는, 일종의 ‘카메라 펜’이다. 인터넷을 이용해 탁송의뢰 정보를 입력하기 어려운 고객들을 위한 배려다.

    페덱스 기술연구소의 스티브 스트라이트매터 정보통신실장은 “전체 고객의 70% 정도는 온라인을 통해 운송을 의뢰하지만 직접 펜으로 운송의뢰서를 작성하는 나머지 30% 고객에게는 어떤 편의를 제공할 것인지 고민하던 끝에 이 특수 펜을 도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초우량기업의 범주에 드는 모든 글로벌 기업들이 온라인을 통한 경비 절감과 효율성 제고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이 페덱스는 인터넷의 혜택에서 소외된 나머지 30%의 고객을 위한 투자와 편의 제고에 과감히 눈을 돌린 것이다.

    그러나 신기술 개발은 매출이나 수익 면에서 안정적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9·11 테러 이후 전세계적으로 교역량이 줄어들고 미국이 점점 빗장을 걸어잠그면서 화물운송도 줄어들었다. 결국 페덱스 같은 항공 운송회사의 매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까 궁금해졌다.

    이에 대해 페덱스 본사 관계자들은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한 매출 신장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에 집계된 경영 실적을 보면 지난해 9~11월 매출이 59억2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4%의 성장을 기록했다.

    한편 오는 2008년부터는 현존하는 상업용 화물기 중 최고 규모와 성능을 자랑하는 보잉사의 B747-400보다도 규모가 큰 A380-800F 10대를 새롭게 들여올 공격적 계획을 갖고 있다. 페덱스의 공격적인 경영으로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년에 걸쳐 신규 도입하는 A380 기종은 대당 150t의 화물을 약 9600km까지 운송할 수 있는 장거리 운송의 최강자로 꼽힌다.

    한국 시장 역시 확산일로에 있다. 페덱스는 그동안 주당 13편씩 운항해오던 한국 노선을, 1월6일부터 7편이 늘어난 20편으로 증편 운항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 시장에도 에어버스의 A310과 같은 대형 항공기가 신규 투입된다.

    에릭 잭슨 커뮤니케이션 담당 부사장은 “국제 화물운송에서 매출이 줄어들었다면 미국내 지상 서비스나 화물운송 부문의 매출 증대로 보완이 가능한 포트폴리오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9· 11 이후의 타격을 줄일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한국에선 흔히 ‘페덱스(FedEx)’라고 하면 항공 특송업체인 ‘페덱스 익스프레스(FedEx Express)’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페덱스는 이외에도 4개의 계열사를 갖고 있는 ‘항공화물 및 수출입 전문업체’라고 표현하는 것이 훨씬 정확하다.

    즉 페덱스 익스프레스 이외에도 소형화물 택배서비스를 담당하는 택배그라운드(FedEx Ground), 한 트럭 분량 이내의 화물만을 취급하는 페덱스 화물운송(FedEx Freight), 귀금속류와 같은 특수화물만을 취급하는 페덱스 커스텀 크리티컬(FedEx Custom Critical), 무역 상담과 솔루션을 담당하는 페덱스 트레이드 네트웍스(FedEx Trade Networks) 등의 자회사가 모여 거대기업 페덱스를 구성하고 있다.

    서비스나 수익보다 사람이 우선

    이처럼 적절히 분화된 사업 분야가 페덱스의 성장을 이끌어가는 ‘날개’라면, 직원들을 최고로 존중하는 페덱스의 인사정책은 페덱스 성장에 추진력을 더해주는 강력한 ‘엔진’이다. 그가 누구이건 간에 페덱스 사람들을 만나 몇 마디만 나눠보면 ‘사람이 곧 회사의 경쟁력’이라는 이 회사의 인사방침을 엿볼 수 있다.

    페덱스의 인사정책을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 ‘PSP 정책’이다. ‘PSP’란 ‘사람-서비스-수익(People-Service-Profit)’의 약자. 즉 회사 경영의 모든 분야에서 사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그 다음으로 서비스와 수익을 추구한다는 페덱스의 정신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에릭 잭슨 부사장은 “내부 고객인 직원들이 근무에 만족하면 그만큼 서비스의 질이 향상되고 서비스의 질 향상은 곧 소비자의 만족을 이끌어내 회사의 수익으로 이어진다는 인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페덱스|사람 존중 ‘엔진’달고 고객만족 ‘날개’로 세계의 하늘 선점하다

    전세계 215개국에 진출한 페덱스 운송망. 필리핀 수비크에 이은 ‘아시아 허브공항’ 자리를 놓고 각국이 치열한 유치경쟁을 벌이고 있다.

    예를 들어 페덱스의 본거지 멤피스공항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상당수가 주당 20~30시간 일하는 임시직이다. 이들 임시직 근로자 중엔 대학생이 많다. 페덱스는 이들에게도 학비 보조나 건강보험 등의 각종 혜택을 준다.

    지난해 페덱스 익스프레스는 미국내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조기퇴직 프로그램을 실시해 호평을 얻기도 했다.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많은 직원들이 조기퇴직을 신청하는 바람에 오히려 회사측이 놀랐다는 후문이다.

    에릭 잭슨 부사장은 이에 대해 “미국내 다른 회사는 통상 ‘2주 안에 나가라’는 식으로 정리해고를 단행하는데 페덱스는 정리해고 대신 조기퇴직 프로그램을 통해 근로자들의 희망을 반영하는 데 힘쓴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페덱스 항공기가 줄지어 늘어서 있는 멤피스 허브 공항을 방문했던 기자에게는 인사방침에 대한 이런 설명보다 훨씬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바로 세계 각국을 운행하는 페덱스 대형 화물기에 붙여진 애칭들이다.

    항공기 조종실 바로 밑에 새겨져 있는 기명(機名)은 우리로 치면 ‘승리호’나 ‘쾌속호’쯤 될 법하지만 그런 작명법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어떤 비행기의 이름은 ‘윈디(Windy)’였고 또 다른 비행기의 이름은 ‘메리디스(Meridith)’다. 모두 페덱스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자녀 이름이다. 직원들은 자신이 일하는 비행기에 자녀의 이름을 붙일 수 있어 좋고 회사는 직원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어 업무의욕을 높일 수 있어 ‘일석이조(一石二鳥)’라는 것이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럴듯하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멤피스 시민들이 자랑거리로 내세우는 엘비스 프레슬리 기념관에 전시돼 있는 그의 전용기에도 페덱스 항공기와 똑같은 위치에 ‘리사 마리(Lisa Marie)’라고 새겨져 있던 것이 떠올랐다. 엘비스의 딸 이름이다. 지금 리사 마리 프레슬리는 팝가수 마이클 잭슨과의 이혼,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와의 두 번째 이혼과 재결합설 등으로 숱한 염문을 몰고 다니는 스캔들 메이커가 되었지만 엘비스에게는 영원히 아홉 살짜리 외동딸이었던 것이다. 리사는 아홉 살 때 아버지인 엘비스를 여의었다.

    이런 것들에서 가족 중심의 가치관을 갖고 있는 미국인의 사고와, 직원들을 가족처럼 대하는 페덱스의 경영 방침을 읽을 수 있었다.

    전쟁터에서도 쉬지 않는다

    페덱스의 ‘사람존중’ 경영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사회공헌 활동이다.

    페덱스는 몇 년 전 중국에서 판다곰 두 마리를 페덱스 특별기로 수송해 세계적 화제를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지금도 지진이나 홍수 등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구호물자 수송에 페덱스 항공기를 지체없이 투입한다.

    페덱스의 한 관계자는 “미 프로농구(NBA)의 이 지역 연고구단인 멤피스 그리즐리스의 신임 코치를 페덱스 항공기에 태워 초빙해 오는 이벤트를 연출했는데 멤피스 시민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이런 행사도 멤피스 사람들에게는 즐거웠던 경험”이라고 귀띔했다.

    페덱스 글로벌 커뮤니티 담당자인 로즈 플레놀은 “회사가 자리잡고 있는 지역사회에 공헌하면 할수록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나중에 우리 회사의 직원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것이 바로 고용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페덱스가 항공운송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는 전세계 215개국 중 항공운송을 가장 늦게 시작한 나라는 다름아닌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이다. 외교관이나 정치인들이 ‘전쟁 상대국과도 외교를 해야 한다’는 말을 내세운다면, 페덱스는 ‘전쟁터에서도 수하물 특송은 필요하다’는 모토를 내세울 것이다.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세계 어디선가 하늘을 날고 있을 페덱스 로고가 박힌 화물기가 전쟁중이라고 해서 운항을 멈출리 없지 않은가. 페덱스는 그래서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 기업’이지만 ‘동북아 허브’를 꿈꾸는 한국에서 찾아간 기자에게는 ‘보여줄 것이 너무도 많은 기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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