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 화물운송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확성과 속도다. 정확성과 속도에 대한 소비자들의 만족을 보장하기 위해 페덱스는 이미 오래 전부터 운임환불제도(Money Back Guarantee)를 운영하고 있다. 고객이 의뢰한 화물이 약속한 시간에 제대로 배달되지 않을 경우 운임의 환불을 요청할 수 있는 제도이다.
정확성이 항공 특송회사들이 갖춰야 할 ‘기본’이라면 업체간 경쟁에서 비교우위를 점할 수 있는 핵심 요소는 당연히 ‘속도’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페덱스가 내세우고 있는 모토는 ‘익일 배송’. 즉 모든 수하물은 세계 어디서든 출발지의 고객이 의뢰한 다음날 업무가 끝나기 전에 받아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경쟁력의 핵심이다.
바퀴살 시스템으로 출발
고객들은 페덱스가 자체 개발한 컴퓨터 시스템 ‘코스모스(COSMOS)’를 통해 자신이 의뢰한 수하물이 지금쯤 어디에 있는지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다.
이처럼 물건을 만들어 파는 기업이 아닌 만큼 고객 서비스에 한치의 오차도 없도록 하자는 것이 페덱스를 초우량기업으로 끌어올린 기본 정신이다.
물론 이러한 서비스가 가능한 것은 페덱스가 구축한 거미줄 같은 물류 연결망 때문이다. 페덱스의 물류 연결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허브 앤드 스포크 시스템(Hub and Spoke)’이라 불리는, 페덱스 특유의 ‘바퀴살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바퀴살 구조’란 1973년 페덱스를 창업한 프레드 스미스가 예일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던 1965년, 학교에 제출한 학기말 리포트에서 비롯했다. 프레드 스미스는 이 리포트에서 미국내 인구분포를 감안해 인구밀집지역에 수하물 집결지인 허브(hub)를 만들고 모든 화물을 여기에 집결시킨 다음 바퀴살(spoke) 모양으로 미국 전역에 특급으로 배송하자는 구상을 내놓은 것이다.
이런 구상은 지금 생각하면 간단한 아이디어 같지만 항공 화물운송이 대중화되지 않은 당시만 해도 획기적인 발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것이 바로 페덱스의 출발이었다.
페덱스는 멤피스공항을 포함해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 각각 1개씩, 모두 3개의 허브공항을 갖고 있다. 이 3개의 허브공항을 중심으로 전세계 215개국으로 화물 운송망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것.
우리나라와 가장 밀접한 아시아 지역 허브는 필리핀 휴양도시 수비크만(灣)에 자리잡고 있다. 페덱스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가 있는 홍콩(香港)의 첵랍콕 공항도 아니고 아시아의 물류 지형을 바꾸고 있다는 상하이(上海)의 푸둥(浦東)공항도 아니다. 1992년까지 미해군이 사용하다 떠나버린, 아직도 군사기지 냄새가 물씬 나는 수비크만에 페덱스 같은 초우량기업이 자리잡은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페덱스 임원들을 만날 때마다 ‘당신들이 허브 공항 선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곧바로 “24시간 운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첫 번째 요건”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한국 정부가 아무리 인천국제공항을 ‘동북아 허브공항’이라고 우겨도 페덱스 같은 글로벌 기업이 쉽게 한국에 둥지를 틀지 못하는 이유를 알 법했다.
필리핀 수비크가 페덱스 같은 글로벌 기업의 허브공항을 유치할 수 있었던 데에는 범정부적인 노력이 단단히 한몫을 했다.
아시아 ‘제2의 허브’를 노려라
지난 1992년 미 해군이 수비크에서 떠나자마자 필리핀 정부는 이 일대를 특별경제구역으로 지정하고 필리핀 최고의 휴양도시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수입관세 면제, 수출입 통관절차 간소화 등 각종 혜택을 줘 외국기업 유치에 앞장섰고, 미군 기지가 보유하고 있던 전력이나 통신 등의 풍부한 인프라도 적절히 활용했다. 외국 기업에게 무엇보다 매력적이었던 것은 허가된 외국인과 내국인 서비스 종사자 이외에는 출입을 제한할 정도로 ‘특구다운 특구’를 지향했다는 점.
그러나 수비크공항과 페덱스 간에 맺어진 이용 계약은 오는 2007년 끝난다. 당연히 아시아 각국이 페덱스 같은 대형 고객을 잡기 위한 물밑 경쟁을 시작했다.
멤피스의 페덱스 본사에서 만난 도널드 콜러란 수석 부사장을 붙잡고 인천공항으로의 허브 이동 가능성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콜러란 부사장은 인천공항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페덱스가 허브공항을 선정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은 24시간 화물 하역과 운송이 가능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말해 인천공항의 허브화에 대해서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콜러란 부사장은 허브공항 선정의 기준에 대해 △정부의 규제 완화 △공항 운영에 따른 기반시설 △원활한 영공 진입절차 △저렴한 부동산 가격 △양질의 인력 등을 들었다. 이미 업계에서는 페덱스가 필리핀의 수비크을 대신할 ‘제2의 허브’로 중국 푸둥공항을 점찍어놓았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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