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호

‘머리 페라이어가 연주하는 바흐’ 외

  • 글: 전원경 동아일보 출판기획팀 기자 winnie@donga.com

    입력2004-01-29 16: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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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 페라이어가 연주하는 바흐’ 외
    무색무취(無色無臭). 피아니스트 머리 페라이어의 연주를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화려한 테크닉과 거리가 멀고, 악센트가 없는 그의 연주는 일견 지루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들으면 들을수록 귀를 사로잡는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타건, 연주곡의 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기품 있는 해석. 페라이어의 연주는 ‘고상함의 극치’를 이룬다.

    1972년 리즈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세계 무대에 데뷔한 페라이어는 초기에 모차르트를 비롯해 베토벤, 슈베르트 등 고전파 스페셜리스트로 명성을 떨쳤다. 특히 지휘까지 맡아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전곡 시리즈는 모차르트 애호가라면 누구나 첫손꼽는 명반이다.

    페라이어는 1990년대 이후 바흐의 건반음악에 탐닉하고 있다. 손가락을 다쳐 한동안 피아노를 칠 수 없었던 그는 휴식기 동안 바흐를 연구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다고 한다. ‘바흐는 음악이 돌아가야 할 고향’이라는 것이 이 학구적인 피아니스트의 고백이다. 그는 바흐 음반을 여러 장 내놓았으며 이중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은 그라모폰상과 디아파종상을 수상했다.

    페라이어의 바흐 연주는 단정하고 아름다우며 플루트, 바이올린 등 다른 악기들과의 조화도 이상적이다. 오케스트라 파트를 연주한 세인트 마틴 인 더 필드 아카데미는 런던의 원전음악 연주단체로, 바흐의 음악을 숨쉬듯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솜씨가 페라이어 못지않게 뛰어나다.



    그러나 페라이어의 진가는 음반 마지막에 수록된 ‘이탈리안 협주곡’에서 발휘된다. 5분여의 짧은 독주곡은 원래 두 단 건반의 하프시코드를 위해 작곡된 곡이다. 피아노 건반으로 하프시코드와 같은 효과를 내면서 동시에 바흐 음악의 역동성을 한껏 펼치는 솜씨가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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