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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유럽기행

로마 황제 별궁 ‘빌라 하드리아누스’

그리스·이집트·이탈리아風 공존하는 제국 賢帝의 小우주

  • 글: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로마 황제 별궁 ‘빌라 하드리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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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리아누스는 아무래도 행운아였던 것 같다. 그처럼 좋아하는 여행을 맘껏 즐겼는 데도 나라가 흔들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굳건해졌고, 따라서 ‘어서 로마로 돌아가야지’ 하는 불안한 마음은 갖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황제가 오랫동안 로마를 비워도 제국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 만큼 권력이 적절히 분산되어 있었기에 가능했다. 원로원과 각지의 행정·군사 책임자들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면 황제가 장기간 로마를 비울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 로마는 거대하지만 잘 짜여진 하나의 완벽한 시스템이었다. 마치 그들이 만든 가로(街路)나 법망처럼. 인터넷 시대를 맞아 네트워크란 말을 즐겨 쓰고 있어 ‘네트워크 시대’가 지금에야 열린 듯하지만, 2000여년 전 로마제국은 이미 통치 차원에서 훌륭한 네트워크를 가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현제 시대에는 황제의 자리가 세습되지 않고, 전임 황제가 적임자를 골라 양자로 맞아들였다가 자리를 물려주는 식으로 이어졌다. 무능한 자가 황제의 피를 물려받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황제가 되는 잘못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황제 잇기 방식은 96년에 등극한 네르바에서부터 시작되어 트라야누스(재위 98∼117), 하드리아누스(117∼138), 안토니우스 피우스(138∼161)를 거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61∼180)까지 이어졌다.

‘로마제국 쇠망사’를 쓴 에드워드 기번은 오현제 시대를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고 상찬한 바 있다. 바로 이런 제도 덕분에 히스파니아 태생의 트라야누스와 하드리아누스가 로마의 황제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번이 오현제 시대를 과대평가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행을 그토록 좋아한 하드리아누스였지만 자신이 태어난 히스파니아 땅(지금의 세비야 인근에 퇴역장병을 위해 건설된 신도시 이탈리카에서 태어났다)은 동북부 지방만 한 차례 다녀온 게 고작이었다. 그가 빈번하게 찾았고 또 오래 머물렀던 곳은 그리스 문화가 곳곳에 배어 있는 에게해 연안의 소아시아 지역과 서아시아(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이스라엘), 그리고 그리스와 이집트 땅이었다.



그는 일찍부터 그리스 문화에 매력을 느꼈으나 내놓고 좋아하지는 못했다. 친구들이 ‘그리스 아이’라고 놀려대서만은 아니었다. 당시 로마에서는 감수성이나 논리성보다는 용맹함과 강건함을 사내다움의 최고 덕목으로 삼았기에 그리스 취향은 권장사항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열 살 이후 그의 후견인이 된 동향 출신의 트라야누스(그로부터 12년 뒤 로마 황제가 됐으나 당시엔 누구도 그가 황제가 될 것이라고 예상치 못했다) 또한 그의 그리스 취향을 경계했다. 따라서 하드리아누스는 이를 자신의 내면 깊숙이 묻어두지 않으면 안 됐다.

그로부터 30년의 세월이 흐른 뒤 하드리아누스는 마흔한 살의 나이에 황제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때에도 그리스 취향을 밖으로 드러내지 못했다. 로마 황제는 권력을 사유화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는 절대군주가 결코 아니었다. 원로원과 백성들의 눈을 늘 의식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당시 황제는 ‘시민 중의 제일인자’였던 것이다. 그가 10대 이후 안으로 삭이고만 있던 그리스 취향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황제가 되고 나서 6년이 지난 뒤인 그의 나이 47세 때였다. 그때 그는 꿈에도 그리던 아테네 땅을 처음 밟았던 것이다. 얼마 전 소아시아에서 만난 안티노스와 함께였다. 그리고 그날 이후 그는 마치 그리스 사람이 된 것처럼 구레나룻까지 길렀다.

미소년 안티노스의 죽음

하드리아누스 대제가 여느 황제와 공유하지 않은 또 하나의 특징은 자신이 정무도 보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궁전 겸 별장, 즉 별궁을 로마 시내가 아니라 교외의 한적하기 짝이 없는 언덕 위에 마련했다는 사실이다. 전해오는 바에 따르면 로마의 역사는 기원전 753년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로물로스 형제가 팔라티노(Palatino) 언덕에 성을 쌓고 나라를 세우며 시작됐다고 한다. 역대 황제들 또한 거기에다 궁전을 세우고 살았다. 왕궁을 뜻하는 영어의 ‘palace’란 말도 팔라티노에서 유래했다. 지금도 이곳에는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세운 왕궁 유적인 도무스 아우구스투스가 남아 있다.

그런데 하드리아누스는 이들과 달리 로마 시내에서 30km 정도 떨어진 티부르티니 언덕 120ha의 대지에 ‘빌라 하드리아누스(Villa Hadrianus 또는 Villa Adriana, 영어로는 Hadrian’s Villa)’, 즉 하드리아누스 별궁을 세운 것이다. 건설공사는 그의 대순행이 그랬듯이 3단계로 나뉘어 진행됐는데, 1단계는 등극한 이듬해인 118년에 시작되어 125년까지, 2단계는 125년부터 134년까지, 마지막 3단계는 134년부터 그가 숨을 거둔 138년까지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 여행에서 돌아온 134년에 공사가 거의 끝나 이용하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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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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