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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 최성일의 논쟁적 책읽기

빈곤한 실증, 해석의 과잉 아쉬워 ‘근대의 책읽기’

  • 글: 최성일 출판칼럼니스트 jjambo@nownuri.net

빈곤한 실증, 해석의 과잉 아쉬워 ‘근대의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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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가 1920∼30년대 책읽기의 양상을 재현하기 위해 내세운 자료 중에는 처음 접하는 것이 꽤 있다. 하지만 그것들로 당시 책읽기의 전모를 밝히기엔 역부족이다. 더욱이 신문의 책광고에 의미를 부여한 것은 무모하다. 같은 책이라도 찍은 책과 팔린 책, 그리고 실제로 읽힌 책의 숫자는 같지 않다. 인쇄된 것보다 더 많이 읽히는 예외적인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책이 만들어져 읽히는 과정에서 단계별로 소용되는 책의 숫자는 줄어드는 것이 보통이다. 이렇게. 발행부수〉판매부수〉독서부수.

이 책에서 1920∼30년대 일반 독자의 독서체험을 짐작케 하는 자료는 ‘동아일보’의 독서 앙케트 3개가 전부다. 그것도 표본의 숫자가 너무 적고 단편적이다. 이 책에 들어 있는 자료만 갖고서는 1920∼30년대의 누가, 어떤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알 수가 없다. 이와 아울러 책에서 드러나는 지은이의 책·출판·독서에 대한 인식의 옅음은 이 책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전자책은 물론이고 컴퓨터나 휴대전화 화면 위의 글 뭉치들도 마땅히 책의 일종으로 봐야 한다는 지은이의 관점부터 문제가 많다. 게다가 독서의 방식이 소리내어 읽기에서 잠자코 읽기로 변화하는 과정을 서술한 대목은 더 큰 문제가 있다. 여기에는 지은이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오해를 살 만한 구석도 있다.

부적절한 인용

“리스먼(D.Riesman)은 ‘고독한 군중’에서 ‘음독에서 묵독으로의 이행’이 영국에서 17∼18세기에 걸쳐 일어난 변화라 명시하며 17세기까지 책읽기란 예외 없이 소리내어 읽는 것을 의미했다고 하였다”(115∼116쪽)가 문제의 구절이다. 데이비드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문예출판사)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이게 어찌된 영문인가.



이를 해명할 열쇠는 일본 릿쿄대학 문학부 교수를 지낸 마에다 아이의 ‘일본 근대 독자의 성립’(이룸)이 쥐고 있다. ‘근대의 책읽기’에 참고문헌으로 인용된 이 책에 문제의 구절이 등장한다. 그런데 마에다 아이가 리스먼의 견해를 인용하면서 전거로 삼은 것은 ‘고독한 군중’이 아니라 ‘구술 전통, 인쇄된 문자, 영상 이미지’ 정도로 옮겨지는 논문이다. 그러면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것은 지은이가 마에다 아이의 책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착오로 보인다. 차라리 지은이가 리스먼의 견해를 마에다 아이의 책에서 재인용한 형식을 취했다면 이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런 사실을 우연히 발견했다. 음독에서 묵독으로의 전환을 뒷받침할 전거로는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보다 ‘사생활의 역사 3’(새물결)가 더 적절하리라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리스먼도 이에 대한 성찰을 남겼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문제의 구절이 포함된 단락의 끝에 붙어 있는 후주를 보니, ‘사생활의 역사 4’가 참고문헌에 포함돼 있다. 로제 샤르티에가 집필한 묵독에 관한 내용은 ‘사생활의 역사’ 셋째 권에 들어 있다.

한편 지은이가 “하나의 읽을거리를 가족이나 지역·직업공동체가 공유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한 ‘공동체적 독서’라는 용어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차라리 마에다 아이의 “공동의 독서방식”이라는 표현이 더 나아 보인다.



나는 이 책에 유감이 없다. 오히려 이 책은 내게 지적 자극을 주는 훌륭한 읽을거리였다. 다만 이 책이 세간의 평판만큼 뛰어난 책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 그것은 ‘나쁜 책’을 솎아내는 작업도 신중해야 하지만 ‘좋은 책’을 고르는 일에도 신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번 찍힌 ‘나쁜 책’의 낙인을 씻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한번 드리워진 ‘좋은 책’의 후광을 걷어내는 것은 더욱 어려운 까닭이다.

신동아 2004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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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성일 출판칼럼니스트 jjambo@now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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