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호

대통령 탄핵사태, 무엇을 남겼나

국회의 충분한 토론, 명확한 증거 제시, 반론권 보장이 필수

  • 글: 장영수 고려대 교수·헌법학 jamta@korea.ac.kr

    입력2004-05-27 15: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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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사태가 헌법재판소의 기각 판결로 막을 내렸다. 국민 다수의 뜻에 어긋나는 정치적 탄핵이었다는 점 외에 소추과정과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법적 미비점은 현행 탄핵제도의 개선 및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사태, 무엇을 남겼나

    3월12일 박관용 국회의장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포하자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구두와 명패를 던지며 항의하고 있다.

    3월12일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어 5월14일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2개월이 걸렸다. 결코 길다고 할 수는 없는 시간이지만, 그동안 탄핵사태로 인해 정치권과 헌법재판소, 그리고 국민이 겪어야 했던 우여곡절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야당측에서 처음 나왔을 때부터 이 문제를 둘러싸고 정치권에서 심각한 찬반 대립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반대하는 국민의 여론도 분명했다. 그럼에도 야당이 연합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국회에서 가결시키면서 전국이 이른바 탄핵 후폭풍에 몸서리쳐야 했다.

    탄핵 후폭풍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것은 탄핵소추를 주도했던 야당들이다. 국민 여론을 무시하고 탄핵소추를 강행했던 야당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의 다수를 확보해서 탄핵소추를 관철시켰다는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촛불시위로 대표되는 반대여론에 밀려 설자리를 잃게 됐고, 결국 4·15 총선에서 참패하는 수모를 겪었다.

    물론 탄핵사태의 파장은 정치권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대통령의 권한행사가 정지되면서 고건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상황이 전개됐고, 정치적·사회적 불안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았다. 다행히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큰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로 인해 촉발된 국민들 사이의 갈등, 특히 세대간 갈등은 지금껏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다.

    법적 책임 아닌 정치적 책임 추궁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온 현시점에서 탄핵문제를 되짚어보는 것은, 그동안 야기된 여러 가지 상황을 정리하고, 탄핵과정에서 제기됐던 쟁점들에 대한 분석과 평가를 통해 우리가 얻은 것과 잃은 것, 그리고 보완이 필요한 점을 확인함으로써 정치문화 발전의 계기로 삼고자 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건이 그처럼 커다란 파장을 몰고 온 것은, 그리고 당시의 상황에서 탄핵소추가 의결됨으로써 사단이 벌어진 근본 원인은 현행 헌법상 탄핵제도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헌법의 탄핵제도는 하원에서 소추하고 상원에서 의결하는 영국이나 미국의 경우와는 다른 형태로 제도화되어 있다. 즉 국회에서 소추하되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성 및 위법성에 대한 엄격한 사법심사를 통해 탄핵결정을 내리도록 한 사법심사형 탄핵제도로서, 정치적 책임을 묻기 위한 방편으로는 탄핵을 이용할 수 없도록 돼 있다.

    헌법 제65조 제1항은 직무행위에 있어서의 위헌성 내지 위법성을 탄핵의 요건으로 요구하고 있다. 국회는 사법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탄핵소추를 하는 데 있어 정치적 고려가 완전히 배제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결국은 사법적 판단을 통해 탄핵심판이 내려지기 때문에 법적 요건이 주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번 국회의 탄핵소추과정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법적 책임의 추궁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책임의 추궁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탄핵사유로 내세운 것들도 선거법위반을 제외하면 사실상 정치적 책임의 추궁이라고 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탄핵소추 의결과정에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면서 이를 받아들일 경우에는 재고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은 탄핵소추가 다분히 정치적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탄핵소추 자체가 총선을 앞둔 상태에서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정치공세 수단으로 이용된 측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탄핵소추가 정치적 고려에 의해 시도됐던 것은 헌법상 탄핵제도에 대한 몰이해 내지 무시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야당은 대통령의 명백하고 중대한 직무상의 위법성을 밝혀내지 못한 가운데 탄핵소추로 비롯될 국가적·국민적 혼란과 불안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정치공세의 수단으로 탄핵소추를 이용했다. 그것이 지난 2개월 동안 온나라를 뒤흔든 탄핵사태의 출발점인 셈이다.

    결국 야당이 사법적 심판인 탄핵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 것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탄핵소추를 강행함으로써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정치적 효과만을 야기했다.

    탄핵대상자에게 반론 기회 줘야

    헌법상 탄핵제도는 매우 중요한 의미와 비중을 가지고 있다. 탄핵제도는 국회가 정부를 통제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의 하나로, 특히 오랜 독재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독재에 대한 견제수단으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탄핵제도의 남용이 가져올 문제점도 적지 않기 때문에 탄핵소추에는 엄격한 의결정족수가 요구된다.

    문제는 의결정족수를 충족시킨다고 해서 의결내용의 정당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즉 다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수의 국회의원이 찬성한 탄핵소추라고 해서 무조건 타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탄핵소추의 정당성을 확인하기 위한 두 가지 보완 장치가 요구된다.

    그 중 하나가 탄핵소추 절차다. 이는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탄핵소추를 의결함으로써 법적 정당성을 어느 정도 확보하는 문제다. 이와 관련해서는 종래 논란이 됐던 국회법상의 절차위반, 특히 국회법 제93조에 명시된 질의·토론과정의 생략이 중대한 문제로 떠오르게 된다. 나아가 헌법상의 적법절차 원칙과 관련해 탄핵소추 대상자에게 일정한 변명 내지 해명의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견해도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즉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은 소추 대상자인 노무현 대통령에게 일절 해명 내지 반론의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적법절차를 위반했으며 따라서 위헌이라는 주장이다.

    탄핵사유 추가는 부적절

    다른 하나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다. 적법한 절차를 거쳐 탄핵소추가 의결됐다 할지라도 그것이 내용상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불충분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탄핵사유에 대한 사법적인 판단을 통해 과연 탄핵소추대상자가 그 공직을 계속 수행하기에 부적절한 것인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물론 절차의 위반 내지 탄핵사유의 불충분성에 대해 국회의 견해와 헌법재판소의 견해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탄핵소추권은 헌법상 국회에 부여되어 있으므로 국회가 이를 행사함에 있어 잘못된 판단을 했다 하더라도 이를 위법하다고 비난하기는 곤란하며, 그러한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단이 남아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탄핵소추가 갖는 의미와 파급효과를 고려한다면 국회가 그처럼 중대한 권한을 오·남용했을 경우 이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국회의 탄핵소추과정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과정에도 적지 않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대한민국 헌법제정 이후 최초로 국회에서 의결된 탄핵소추이기 때문에 탄핵심판에 관한 구체적 규정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고 이를 보완할 선례도 없었기에 어려움은 더욱 컸다.

    그런 가운데 탄핵사유의 추가 또는 탄핵소추의 철회와 관련해 논란이 일기도 했고, 증인심문 등 탄핵심판의 절차진행과 관련해서도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탄핵심판에 관한 보다 구체적인 규정을 둠으로써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과연 어떤 방향으로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지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우선 탄핵사유 추가는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형사소송법에 대한 준용의 문제를 떠나서 헌법소송, 특히 탄핵심판의 성질에 비추어볼 때 탄핵소추 의결서에 명시되지 않은 사유를 사후에 추가하는 것은 소추대상자의 입장에서 볼 때 적법절차 위반이라는 문제가 있고, 탄핵소추 의결에 찬성한 의원의 입장에서 볼 때도 위임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그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탄핵소추의 철회에 대해서는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한편으로는 탄핵소추의 철회를 인정함으로써 원만하게 문제를 종결짓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형사소송의 경우 제1심 판결 이전에 공소 취소가 가능하다는 점을 근거로 하고 있다. 그러나 탄핵소추 철회를 인정할 경우 오히려 탄핵소추를 남발할 우려가 있다는 반대견해도 있으며,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편의주의가 인정되는 형사소송에서의 공소취소를 탄핵심판에 그대로 준용하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절차에서 증인심문 등과 관련해서도 구체적인 규정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있는데, 실제로 헌법재판소가 심판과정 중 탄핵사유와 관련한 증거조사 및 증인심문에서 어떤 기준으로 어떤 범위까지 인정했는지에 대해 논란이 적지 않다.

    이는 특히 탄핵소추만으로도 소추대상자의 권한행사를 정지시키는 중대한 법적 효과가 수반되는 점을 고려할 때 국회가 탄핵소추 이전에 충분한 증거를 확보했어야 한다는 점과 관련해 적지 않은 비판의 대상이 됐다.

    그밖에 탄핵심판을 할 때 신속한 결정의 필요성과 관련해 집중심리를 명문화하는 것도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세부 규정 명문화 필요

    이번 대통령 탄핵소추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문제점을 통해 현행 탄핵제도의 미비점이 드러났다. 차후에도 탄핵심판이 이용될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제도적 미비점을 신속히 보완할 필요성이 널리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먼저 국회의 탄핵소추권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탄핵소추 의결정족수를 강화하는 방안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사실 현행 규정도 약한 게 아니다.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라는, 헌법개정도 가능한 가중다수로써만 탄핵소추가 가능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여야 합의를 통해서만 의결 가능한 정족수다. 이번에 탄핵소추가 가결될 수 있었던 것은 민주당의 분당(分黨) 탓에 대통령의 국회내 지지세력이 극도로 약화된 특수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국회내 세력관계만을 믿고 국민의 지지 없이 탄핵소추를 강행한 결과 야당이 엄청난 정치적 타격을 입은 경험까지 얻게 된 현재 상황에서 탄핵소추의 남용이 재발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오히려 의결정족수가 너무 엄격해서 지난 50여년 동안 탄핵제도가 사문화되어 있었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보완이 필요한 것은 탄핵소추의 의결정족수보다는 그 절차다. 탄핵소추가 야기할 정치적 파장을 감안하면 국회법상 탄핵소추 의결절차에 관한 규정은 매우 간단한 편이다.

    이번 탄핵사건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탄핵소추시 탄핵사유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절차 및 위법성에 대한 증거확보 등이 명시될 필요성이 있다. 만일 검찰 수사가 지지부진하거나 그 결과가 미진할 경우에는 특검이나 국정조사권을 이용해서라도 명확한 증거를 갖춘 뒤에 탄핵소추를 하도록 명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탄핵소추 이전에 국회의원간 충분한 토의를 거쳐 의견을 수렴하도록 하며 소추대상자에게 해명기회를 주는 방법으로 적법절차를 지키도록 명시해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과정에서는 앞서 검토한 심리의 신속성과 관련해 집중심리 명문화, 증거조사 등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 그리고 탄핵사유 추가 및 탄핵소추 철회 등에 관한 규정이 보완 대상이 될 것이다.

    국민 뜻 거스른 탄핵은 곤란

    이와 관련해 한 가지 더 논의할 것은 헌법재판소가 탄핵결정을 내릴 때 소수의견을 어떻게 표시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헌법재판소 결정을 앞두고 소수의견 표시가 논란이 된 것은, 9명의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 기각 의견이 몇 명이고, 인용 의견이 몇 명인지에 대해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사법적 판단이며, 탄핵소추에 대한 각하, 기각 또는 인용에 따라 법적 효력이 달라질 뿐이다. 그럼에도 찬성과 반대의 숫자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는 자칫 정치적으로 중립에 서야 할 헌법재판소를 정치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들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한다.

    그렇다고 소수의견을 표시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처럼 문제를 피해갈 경우에는 정치적 또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회피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게 될 것이고, 결국 소수의견을 명시하는 제도 자체의 취지가 상실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소수의견을 명시하되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지금까지 탄핵소추 및 심판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들과 그 보완방법 내지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국회의 탄핵소추에 대한 국민의 강력한 반대여론이 정치권 및 헌법재판소 결정에 미친 영향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다.

    여론 의식 말고 법적 판단으로만

    이번 탄핵사태가 복잡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원인은 국회의 탄핵소추에 대해 다수의 국민이 강력하게 반대했고, 그럼에도 다수 야당에 의해 탄핵소추가 강행됐다는 점에 있다. 즉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탄핵소추였던 것이다.

    물론 현행 헌법상 탄핵제도는 앞서 검토한 바와 같이 사법적 탄핵제도이기 때문에 탄핵소추 및 심판에 있어 법적 요건을 갖추었는지가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국민의 의견이 결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국회에 의한 탄핵소추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은 국민 여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법적으로는 국회의 탄핵소추가 국민 다수의 지지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모든 정치과정이 국민의 지지에 의존하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정치적 사안일수록 그에 대한 찬반 여론이 형성되고, 이를 고려하는 가운데 정책추진 여부 및 완급이 조절되기도 한다. 더욱이 이번 탄핵의 경우에는 대통령에 대한 정상적인 통제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적지 않았기에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탄핵에 대한 반대의견을 촛불시위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표명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탄핵반대 여론에 의해 정국이 크게 영향받았던 이른바 탄핵역풍은 정치적으로 볼 때 긍정적인 측면과 더불어 부정적인 측면도 가지고 있다. 긍정적인 측면으로는 무엇보다 국회의 다수세력이라 하더라도 국민의 의사를 무시할 경우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줌으로써 민주주의가 진일보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으로는 탄핵에 대한 찬반을 둘러싸고 국론이 분열되는 심각한 갈등이 발생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인 측면이 더 부각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국민은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정치적인 탄핵소추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한다는 뜻을 평화적 시위를 통해 적절하게 표현함으로써 성숙한 주권의식과 시민의식을 드러냈다. 아울러 이러한 뜻을 총선에 반영함으로써 정치권의 세력판도를 바꾸는 데도 성공했다.

    대통령 탄핵사태, 무엇을 남겼나

    총선 이튿날인 4월17일 ‘탄핵무효’를 주장하는 광화문 촛불집회에 1만여명의 시민이 참가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갈등이 첨예화할 경우에 나타날 문제점도 적지 않을 것이다. 자칫 탄핵에 대한 찬반을 둘러싸고 골이 깊어진 세대간 갈등이 지역갈등에 버금가는 심각한 문제로 정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불행한 사태를 막기 위해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국민 여론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릴 수 있다. 예컨대 헌법재판소가 탄핵결정시기를 총선 이후로 미루었던 점, 탄핵심판 결과가 총선에서 나타난 국민의 생각과 어긋나지 않는 점 등에 비추어 헌법재판소도 사실상 국민여론에 영향을 받았다는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절차를 진행하면서 “일체의 정치적 고려를 배제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서만 판단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으며, 그러한 공언에 따라 탄핵사유에 대해 순수한 법적 판단을 내린 것으로 이해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가능성과 관련해 어떤 것이 진실인지를 밝히기는 어려우며, 굳이 밝혀야 할 필요성도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헌법재판소가 사법기관이며 사법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법적 판단과 민주적 정당성이 충돌했을 경우에 대해서는 여전히 문제의 여지가 남아 있지만, 적어도 이번 사건에서는 그러한 불행한 경우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통령 반성하고 야당도 잘못 인정해야

    이제는 헌법재판소 결정과 더불어 탄핵에 대한 법적 판단이 종결됐다. 그러나 헌법재판소 결정만으로 그동안 야기된 모든 문제가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탄핵 후유증은 이제부터 본격화할 우려조차 없지 않다. 헌법재판소 결정을 기다리며 잠복했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정치권은 이 문제와 더 이상 대면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끝난 문제로 치부하고 새 출발을 하고 싶을 것이다. 여당은 새로운 세력구도 속에서 17대 국회를 구성·운영하는 게 더 중요할 것이고, 야당으로서는 탄핵소추를 강행했던 과거를 정당화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이를 공식 사과하기도 껄끄러울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 사이에 남아 있는 갈등을 외면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번 탄핵사태는 무엇보다 세대간 갈등을 촉발했다. 우리 사회는 지난 수십 년간 서구사회가 몇백 년에 걸쳐 이룬 변화를 단기간에 겪어야 했다. 그 결과 세대간 의식 내지 사고방식, 생활패턴 등에 큰 차이가 생겼다. 그런데 이번 대통령 탄핵문제는 이러한 세대간 인식차를 전면에 끌어내는 뇌관 노릇을 했고, 그로 인해 표출된 세대간 갈등은 매우 심각한 상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앞다투어 상생의 정치를 부르짖고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이러한 국민 내부의 갈등을 방치한다면 우리 모두에게 불행한 사태가 전개될 수도 있다. 대통령도 반성할 부분이 있고, 야당도 확실하게 잘못을 인정해야 할 부분이 있다. 이런 점을 분명히 하는 가운데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를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언제나 대화의 단절이다. 자기 입장만을 강조하고 상대방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면 상황은 악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할 때다. 나와 다른 의견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은 대화의 출발점이며, 민주주의의 기초다.

    이번 탄핵사건이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전화위복의 계기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자기반성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입장과 배치되더라도 상대방 의견에 귀기울이는 자세부터 갖추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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