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호

소설가 이외수 산천어매운탕

괴짜사공이 건져 올린 얼큰한 맛의 노래

  • 글: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사진: 김용해 기자 sun@donga.com

    입력2004-06-02 17:1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춘천에 가면 ‘격외선당(格外仙堂: 신선들이 격의 없이 노니는 집)’이 있다. 낚시광인 집주인이 고기를 많이 잡은 날이면 매운탕으로 동네잔치가 열린다. 흥겨움에 주인장 ‘으뜸애창곡’이 빠질쏘냐.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외로운 길 나그네 길, 찬바람이 분다, 눈보라가 친다, 이별의 종착역…’
    소설가 이외수 산천어매운탕
    온갖 기행과 파격으로 국내 예술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3대 기인(奇人). 이들 중 시인 천상병(千祥炳)과 걸레스님 중광(重光)은 세상을 떠났고, 이제 소설가 이외수(李外秀·58)만 남았다.

    이외수의 기행은 잘 알려져 있다. 여기저기 술 구걸 다니면서 마셨다 하면 무박삼일이요, 취하면 개집이나 쓰레기통에서 잠을 잤다. 행색은 차마 말 못할 정도. 때에 전 긴 머리에 닦지 않아 누런 이, 세수는 1년에 서너 번 할까 말까, 깎지 않은 손톱 사이에 낀 새카만 때…. 집필을 시작하면 방문을 밖에서 걸어잠그도록 한 뒤 몇 년씩 틀어박혀 글을 썼다. 장편소설 ‘벽오금학도’ ‘황금비늘’이 그런 산고를 겪으며 만들어졌다. 그런 탓일까. 그에겐 ‘타고난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극찬보다 ‘광인’ ‘신이 만들어낸 최후의 사기꾼’ ‘시를 쓰는 거지’ ‘거리의 부랑아’라는 표현이 여전히 더 잘 어울린다.

    “그땐 그런 이상한 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어요. 지독한 가난, 그리고 예술에 무관심한 사람들 때문에. 지금은 운전도 하고 컴퓨터도 하면서 남들과 똑같이 살아요. 옛날처럼 방에 틀어박혀 글을 쓰면 복창 터져 죽습니다. 꼬박 9년을 그렇게 살았는데 그게 좋은 게 아니더군요. 그때 내가 있던 자리는 산에 비유하면 꼭대기였어요. 아무리 산을 잘 타고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꼭대기에서 사는 사람은 없어요. 공부의 완성은 출발했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죠.”

    남들과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확고한 자기만의 세계를 갖는 것이 바로 공부의 완성단계라는 게 오랜 고통과 방황 끝에 내린 그의 결론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2001년 6월에 문을 연 ‘격외선당’이다. 오랫동안 꿈꿔온 자신의 집이자 찾아오는 이들을 위한 ‘사랑방’. 이외수는 이곳에서 장편 ‘괴물’과 산문집 ‘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 ‘뼈’를 잇달아 출간했다. 최근엔 사라져가는 ‘이 시대의 낭만’을 찾기 위한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다.

    “이 시대의 낭만, 도시적 낭만이 소멸돼 가는 것 같아요. 낭만이란 ‘멋’인데 요즘 그게 사라져가는 거죠. 그래서 소설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낭만은 어떤 것일까 모색해보려고 해요.”



    알코올 중독에 빠진 초등학교 4학년짜리 꼬마, 부모로부터 닭갈비집을 물려받아 매일 토막나는 닭들의 비극적 종말을 노래하는 시인, 그 시인이 끈질기게 쫓아다니지만 거들떠보지도 않는 행글라이더를 타는 여자 등이 그가 준비하는 소설의 주요 인물이고, 주인공 인터넷 폐인은 내레이터다. 이외수는 요즘 이들과 함께 깨어나 생활하고 잠든다.

    그의 기상시간은 오후 3시.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독자들이 보내온 질문이나 상담에 성심껏 답한 뒤 찾아온 손님들과 차를 마시거나 바둑을 두면서 오후를 보낸다. 집필은 날이 어두워지면서부터 시작해 다음날 아침 10~11시까지 이어진다.

    그의 취미는 낚시다. 예전에는 2~3일에 한 번씩 다녔다. 고기가 많이 잡힌 날에는 양동이 가득 매운탕을 끓여 온 동네 사람에게 나눠주곤 했다. 하지만 근래에는 건강이 나빠져 작품을 끝낸 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나선다. 그럼에도 요즘 이 집에서 가장 흔한 음식이 산천어매운탕이다. 올해 1월 그가 홍보대사로 나섰던 ‘얼음나라 화천 산천어축제’ 때 쓰고 남은 산천어가 아직도 많기 때문.

    이외수의 매운탕 솜씨는 부인 전영자(全榮子)씨가 보증한다. 그 나름의 비법이 있다. 웬만한 야채는 칼을 대지 않고 손으로 자른다. 그래야 야채의 신선한 맛이 온전히 남는다는 것. 미나리, 부추, 대파, 깻잎, 쑥갓, 풋고추 등은 손으로, 감자, 당근, 양파 등 딱딱한 것은 어쩔 수 없이 칼로 썬다. 산천어는 꼬리와 지느러미를 가위로 잘라내고 비늘을 칼로 긁어낸 다음, 배를 갈라 내장을 발라내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재료 손질이 끝나면 냄비에 물을 적당량 부은 후 생선과 마늘 다진 것, 고추장, 고춧가루, 정종을 조금 넣고 1시간 정도 충분히 끓인다. 이때 고추장을 너무 많이 넣으면 텁텁한 맛이 나므로 고춧가루와 적당한 비율로 섞는 것이 기술.

    또 하나의 비법은 빵가루를 물에 개서 넣는 것. 그러면 국물에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더해진다. 마지막으로 소금으로 간을 맞춘 뒤 준비된 야채를 모두 집어넣어 한소끔 더 끓이면 얼큰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일품인 매운탕이 완성된다.

    아쉽게도 그는 자신이 만든 매운탕을 남들만큼 즐기지 못한다. 건강에 문제가 있기 때문. 젊은 시절 폐결핵을 앓아 폐의 절반이 굳었고, 신장도 약한데다 최근엔 골다공증에 신경통까지 생겨 그를 괴롭히고 있다. 그래서 하루 한끼만 먹는다. 가혹하리만큼 그의 육체를 빼앗아간 문학이란, 아니 ‘글’이란 과연 그에게 무엇일까.

    “그동안 크게 착각했는데, 옛날에는 내가 글을 쓰는 줄 알았거든요. 글이라는 대상을 내 맘대로 좌지우지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알고 봤더니 그게 아니고, 글이 나를 선택해서 온 육체와 영혼을 송두리째 노예로 만들어 부려먹은 것이더군요. 웅치고 뛸 수가 없어요. 글이란 ‘불가시적 지성체’인 것 같아요.”



    소설가 이외수 산천어매운탕

    매운탕꺼리 장을 보다가 익살을 피우는 부부의 모습이 무척 행복해 보인다.

    그는 이제 글에 대한 억지를 부리지 않기로 했다. 좋은 글이니 나쁜 글이니 하는 구분도 버렸다. 진정한 미의식은 ‘추하다’는 반대말이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현상보다는 본질, 즉 우주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존재가치가 있고, 그 가치는 무엇이든지 아름답다는 게 그의 철학적 결론이다. 이외수는 그 바탕에서 이제 마지막 ‘미친 짓’을 준비하고 있다. ‘주어’가 없는 소설.

    “어떤 하찮은 것이라도 전 우주에 연결돼 있어요. 그 만물이 공유하고 있는 것을 의식의 첫머리에 간직하고 글을 쓰면, 굳이 주어가 필요없습니다. 지금 발표했다가 또 무슨 욕을 얻어먹을지 모르니 죽을 때 써놓고 갈 겁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