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가 주최한 국제심포지엄‘근대의 국경, 역사의 변경’은 지난해 역사학계에 몰아친 ‘국사해체 논쟁’의 2탄이다. 6개국 역사학자가 한 자리에 모여 잡종적 정체성을 지닌 ‘변경’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우리 역사’와 ‘저들의 역사’를 경계 짓는 통념의 벽을 허물었다.
최근 한 일본 우익단체가 독도 점거를 시도해 한·일간 긴장상태가 고조됐다.
중국은 역사상 중국을 자칭한 각 왕조뿐만 아니라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을 구성하는 각 민족과 각 지역을 모두 중국사에 포함시킨다는 원칙하에 “고구려는 중국사의 일부”라고 주장하며 ‘동북공정’이라는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측은 “중국은 역사왜곡을 즉각 중지하라”고 거세게 반발하면서 “자주적이며 독립적인 강대한 국가인 고구려를 계승하고 있는 한국사에 대한 부당한 침략”이라고 규탄한다.
그 결과가 국가가 지원하는 ‘고구려연구재단’의 발족이다. 이리하여 고구려사라는 과거가 한국과 중국 중 어디에 ‘귀속’하는가를 둘러싼 논쟁으로 치닫고 있다.
군국주의 역사학의 망령
근대의 발명품인 민족·국민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고구려사에 민족·국민국가인 한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욕망이 투영되는 한, 이 역사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전쟁은 국가주권의 이름 아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1차원의 선(線)인 ‘국경’과, 하나의 역사적 세계나 거주 가능한 구역이 확장하는 가운데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난 2차원의 지대인 ‘변경’을 혼동하는 데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근대 민족·국민국가의 정치·군사적 경계로서의 인위적 국경 개념을, 다양한 문화가 교류하고 전이되는 유동적 공간으로서의 전근대적 변경에 뒤집어씌운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경 안에 포섭된 모든 지역의 역사를 자국의 지방사로 간주하는 중국의 공식적인 역사해석이 그 대표적인 예다. 변경의 자율적 존재를 부정하고 현재의 국경선을 ‘역사주권’의 기준으로 삼는 중국의 공식적 역사해석으로 미루어볼 때, 고구려사를 중국의 지방사로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임나일본부를 근거로 한국에 대한 제국 일본의 지배를 정당화하고자 했던 식민주의 사관도 같은 맥락에 서 있다. 그러나 ‘임나일본부’나 ‘동북공정’에 대항해서 한반도와 중국동북부에 대한 ‘역사주권’을 지키려는 한국 주류학계의 반발도 이러한 역사인식을 공유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근대 민족·국민국가의 논리인 ‘국가주권’을 ‘역사주권’으로 탈바꿈하는 논리가 전제되는 한, 과거에 대한 해석을 둘러싼 이들의 대립은 동전의 양면일 뿐이다.
문제는 이 논쟁이 단순히 역사논쟁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21세기 동아시아 공동체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역사논쟁은 정치적 오만에서 비롯된다. 이들은 자국중심적인 ‘내셔널 히스토리=국사’의 틀을 고집함으로써, 역사논쟁을 국가적·국민적 경쟁으로 비화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역사라는 과거를 둘러싼 논쟁이 현재의 국가적 경쟁을 촉발하고 냉전체제를 조성하며 동북아에서 한·중·일 각 국가권력의 민족주의적 혹은 국민주의적 헤게모니를 강화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그것은 21세기 동북아시아가 요구하는 수평적이고 자발적인, 밑으로부터의 평화와 연대를 위한 역사인식이나 역사서술과는 거리가 멀다. 그 모습을 보노라면 마치 한반도와 중국동북부 지배를 역사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일선동조론’이나 ‘임나일본부설’ ‘만선사론’ 등을 내세워 국가와 민족·국민에 복무한 제국 일본 역사학의 망령들을 보는 듯하다.
6개국 역사학자의 ‘고구려사’ 구하기
세계화의 파고 속에서 제국 일본의 망령들이 그 모습을 바꾸어 나타난 일본의 네오내셔널리즘 세력은 한·중 간 ‘역사전쟁’을 주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국가·국민간의 냉전체제가 지속되는 반목과 갈등의 과거를 증폭시켜, 제국 일본의 망령들을 불러내고 동북아시아 시민사회의 평화와 연대를 저지하는 동북아시아의 ‘역사전쟁’으로 변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지는 않을까. 나아가 독도(죽도),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남부 쿠릴 열도 또는 치시마 열도 등의 영유권을 둘러싼 동북아시아 각국의 해묵은 영토·국경분쟁이 이 역사전쟁과 쌍을 이룰 때, 동북아시아의 평화는 위태로워지고 시민들의 삶은 위협받게 되지 않을까.
왜냐하면 한·중간 역사전쟁이나 각국 간의 영토·국경 분쟁에서 각국은 항상 자국의 주장을 과거라는 역사를 근거로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소장 임지현) 창립기념으로 4월23~24일 개최된 국제심포지엄 ‘근대의 국경, 역사의 변경(Frontiers or Borders)?’은 다가오는 동북아시아의 ‘역사전쟁’ 구도를 과거에 대한 인식론적 전환을 통해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연대를 위한 코드로 바꾸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한국의 임지현·김한규, 영국 웨일스의 크리스 윌리엄스, 리투아니아의 리나스 에릭소나스, 일본의 이성시, 오스트레일리아의 테사 모리스-스즈키, 타이완의 왕밍커 등 6개국 역사학자들이 ‘역사적 변경’이라는 키워드로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촉발된 한·중간 고구려사 논쟁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찾고자 했다. 발표자들은 각기 다루는 지역과 시대가 다름에도 ‘내셔널 히스토리=국사’의 관점에서 벗어나 고구려사에 대한 동북아시아 공통의 이해의 접점을 만드는 데 필요한 역사인식과 역사서술의 대안을 제시했다.
임지현 교수(한양대)는 기조발제 논문 ‘국가주권과 역사주권 사이에서’를 통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역사전쟁은 “근대 민족·국민국가의 패러다임을 동북아시아 공통의 먼 과거에 투영하는 시대착오주의에 기초해 있다”며 한·중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56개 민족이 통일된 다민족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은 그 영토적 통합성을 신성불가침의 원칙으로 간주함으로써 동북아시아 공통의 과거로서 ‘변경’을 말살한다. ‘동북공정’의 역사해석에서 잘 드러나듯이, ‘변경’에 대한 ‘국경’의 폭력적 전유(專有)는 ‘국가·국민주권’ 개념이 역사해석에 개입하는 것을 통해 정당화된다.
이에 대해 한국의 역사학계는 ‘역사주권’을 무기로 반격한다. 고구려인은 한민족의 조상인 ‘예맥(穢貊)’족이며, 선사시대부터 한반도와 만주(요동)가 문화적·형질적으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는 주장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임 교수는 ‘국가·국민주권’과 ‘역사주권’은 국제적 현실정치에서 힘의 관계가 달라질 때마다 뒤바뀌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비판했다. 이는 또한 동북아시아에서만 목격되는 현상이 아니다. 국제적 역학 관계와 국경선이 바뀔 때마다, 변경지역에 대해 서로 번갈아가며 ‘국가·국민주권’과 ‘역사주권’의 해석을 주고받았던 독일-폴란드, 폴란드-리투아니아, 폴란드-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러시아 등의 논쟁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20세기 동북아시아의 근대 역사학은 ‘기원주의’ ‘영토순결주의’ ‘시대착오주의’로 특징지어지며, 그것은 정치적 기획으로서의 ‘내셔널 히스토리’의 성격을 잘 드러내준다. 문제는 그것이 단순히 역사인식의 오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부적으로는 국가권력의 헤게모니를 강화하고 또 대외적으로는 서로가 서로를 배척하는 적대적 긴장관계를 조장함으로써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연대를 해치는 기제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라고 임 교수는 지적했다. 따라서 ‘변경연구’를 통해 ‘국경’에 갇힌 ‘변경’을 구출함으로써, 관제이데올로기로 변질된 동북아시아 민족주의·국민주의의 ‘적대적 공범관계’를 해체해야 한다는 과제를 던졌다.
잡종의 정체성 간직한 변경
서유럽에서 ‘변경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윌리엄스 교수(웨일스 글래모건대)는 ‘변경에서 바라보다-근대 서유럽의 국경과 변경’에서 먼저 1980년대 중반 이후 미국-멕시코 접경지대에 대한 연구로부터 시작된 ‘변경연구’의 역사를 추적했다. 역사학뿐만 아니라, 사회학 인류학 지리학 등의 학제간 연구로서의 변경연구는 근대 민족·국민국가의 틀에 인위적으로 변경을 통합하려는 시도에 대한 반발로서 출발했다. 그리고 잡종적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독특한 역사·문화·인간학적 공간으로서 ‘변경’의 가치를 인정한다. 그것은 다른 문화와 정체성을 일방적으로 타자화하거나 배제하는 근대 민족주의·국민주의의 시각을 벗어나, 다양성과 잡종성의 창조적 문화공간으로서 변경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도출했다. 변경연구는 또한 근대 역사학의 지배담론인 ‘내셔널 히스토리’의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대안적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도 주목받았다. 윌리엄스 교수는 변경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변경은 국민국가의 변두리 그 이상이다. 그것은 한 국민의 선명한 경계이자 서로 다른 국가와 서로 다른 사회조직 체계들이 만나 갈등하거나 뒤섞이는 지점들일 것이다. 그곳은 차이와 조화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장소다. 변경은 국민국가가 집합적 조직의 최고 단위였던 인류사의 국면 너머를 보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극적이다. 지난해 작고한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피에르 빌라(Pierre Vilar)가 ‘세계사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것은 국경에서’라고 한 말은 이번 국제심포지엄에 더없이 훌륭한 영감을 준다.”
리투아니아 출신 리나스 에릭소나스 교수(스웨덴 발틱·동유럽대학원)는 ‘역사적 변경과 민족논쟁-1918년 이후의 동유럽’에서 동유럽 정부들이 대외적으로는 ‘민족성·국민성(nationality)’에 초점을 맞추면서, 대내적으로는 민족사·국민사(national history) 측면에서 자신들의 영토에 대한 주장을 정당화해왔다고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전통적 관점은 동유럽의 새로운 민족·국민국가들이 민족주의·국민주의 운동들을 통해 존재하게 되었다. 국경분쟁은 민족·국민국가와 일치하는 전근대적 민족성(ethnicity) 혹은 근대적 국민성(nationality)을 지키기 위한 투쟁의 결과로 이해되어 왔다. 이러한 관점은 전근대적 민족성(ethnicity)이 당연하게 인식되는 한 유효하지만 1918년 이후 사용된 근대적 민족성·국민성의 원칙이 대부분의 동유럽인들, 자신들의 민족성·국민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모호한 개념을 지닌 자유롭지 못한 조건 속에서 출현한 사람들에게는 낯선 것이었다고 (그는) 주장했다. 역사적 연속성이 더 선호된 방식이었기 때문에 국경분쟁은 논쟁 지역을 둘러싼 전쟁을 지지하는 선전에 이용된 전근대적 민족 논쟁들보다 더 역사적으로 불타올라 근대적 민족성·국민성의 원칙은 주로 국제 회담에 적용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동유럽의 정부들이 민족 논의에서 합의된 역사적 국경을 유지하려고 분투하는 과정에서 민족사·국민사로부터 도출한 역사적 논의들과 민족지학적 자료 사이에서 어떻게 갈팡질팡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올해 초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공개적으로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자 한국에서 고이즈미 망언을 규탄하는 각종 시위가 벌어졌다.
현재의 북한·중국·러시아 3국의 영역에 걸쳐 있는 ‘동북아시아 경계영역’에 위치한 발해의 역사연구는 근대 일본이 앞장섰으나 1945년 이후에는 한국·북한·중국·구소련 등 여러 나라에서 각각 자국사의 범주에서 인식하고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성시 교수는 이것이 정치적 균질이라는 정치적 요청, 경제통합이라는 경제 합리성에 의해 원래는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여러 요인을 억지로 포섭하려는 민족·국민국가의 논리라고 비판했다.
또 이 교수는 근대 프런티어(변경)로서 동북아시아는 근대 민족·국민국가들의 모순이 한데 모여 있는 장소라고 주장했다. 그 때문에 발해사의 무대로서 각국의 변경이 된 ‘만주’지역의 역사를 검토할 때는 특히 근대사를 우선적으로 문제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발해사를 자국사에 편입시키려고 부심하는 각국에게 ‘만주’의 대지는 프런티어였다. 과거의 ‘진출, 식민’ 과정을 살펴본다면 각국이 이 토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얼마나 경시해왔는가를 통감할 것이다. 멀리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발해에 대해서만 뜨거운 시선을 돌리는 데 비해 발해 멸망 후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에 대한 냉담한 자세는 두드러진 콘트라스트를 보여주고 있다. 각국의 발해사 연구를 통해 말할 수 있는 것은 근대사의 망각 혹은 기억의 소거다. 고대와 현재를 직결하는 논의에 근대의 매개항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발해사 연구에 나타난 각국의 공통점은 근대 이후 이 지역에 집단이주의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토지에 예로부터 살아온 사람들에 대해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자국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것에는 열심이나 원래이 지역에 거주한 민족에 대한 관심은 적고, 있다 해도 감화시켜 문명화해야 할 대상으로 밖에 보지 않았다. 이러한 의미에서 각 국의 발해사 연구는 확실히 ‘근대 체험’의 반복이다. 여러 국가의 발해사 연구는 각국의 근대 프런티어에 대한 욕망과 상관이 있다. 따라서 과거의 배타적 점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국·자민족의 근대사를 응시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이성시 교수는 이런 관점에서서 한·중간 ‘고구려사 논쟁’도 풀어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근대 일본 속 변방
모리스 스즈키 교수(호주대)는 아이누(일본 원주민)의 입장에서 근대 일본의 국가·국민·국경과 정체성을 연구해왔다. 스즈키 교수는 논문 ‘근대 일본의 국경 만들기-일본사 속의 변방과 국민 이미지’에서 최근 수십 년 동안 일본 정부가 영유권 분쟁 지역들이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주장을 옹호하면서 역사를 자의적으로 해석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그가 문제삼은 것은 시대변천 속에서도 본질적으로 변함없이 존속하는 정치적·민족적·영토적 단위인 하나의 일관된 ‘지리적 신체(geo-body)’로서의 일본 이미지다. 우리가 현재 일본이라고 알고 있는 영토는 150여년 전만 하더라도 다양한 정치체의 근거지였다. 물론 이러한 정치체들의 영역도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크게 달라졌다.
그는 일본과 동북아시아 인접국들의 변경지대 연구가 지역의 공간적 영역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역사를 서술할 때 사용하는 시간적 범주에 대해서도 좀더 복합적인 접근이 필요함을 부각시켰다고 본다. ‘조몬’시대나 ‘야요이’시대라고 하는 식의 인습적인 일본사 시대구분은 현재의 일본을 구성하는 영토 대부분의 역사에 적용할 경우 무의미해진다는 것이다. 변경사 연구 역시 ‘우리 역사’와 ‘저들의 역사’ 사이에 명확한 구분선이 그어질 수 있다는 통념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또 동북아시아 역사를 각국의 수도가 아닌 변경지역 중심으로 살펴본다면 동북아시아 역사의 풍요로움과 다양함을 좀더 완전히 음미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역사를 변경의 관점에서 조망하는 것은 우리가 과거 사실에 대해 새로운 시간적·공간적 틀들을 적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변경사는 ‘우리’의 과거를 복합적이고 다층적 역사로 바라보는 데, 그리고 근대 민족·국민국가의 경계 안팎에 위치한 다양한 집단의 사람들이 ‘우리’의 과거를 공유하는 데 일조한다는 것이다.
왕밍커 교수(타이완 중앙연구원)는 ‘영웅, 변경을 가다-중국 전근대의 상상된 변강(邊疆)’에서 중국 변방지역의 ‘형제조상, 역사심성’에서 출발한다. 그는 과거와 현재의 중국인들이 믿어왔던 역사란 단지 ‘영웅조상 역사심성’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영웅조상 역사심성’의 영향으로 전근대 중국의 지식인들은 일찍이 일종의 ‘영웅사변기(英雄徙邊記, 영웅이 변경으로 떠나간 고사)’적 서사를 통해 중화민족의 공간적, 혈연적 변경을 묘사해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묘사와 서술은 각종 장르의 서사(書寫)를 통해 역사기억을 형성했고, 일찍이 변방인들의 자아정체성에 영향을 주었다.
근대 중국의 지식인들은 중화민족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이상과 같은 역사심성과 장르 개념의 영향을 받았다. 이들은 ‘민족사·국민사’라는 새로운 장르의 역사서를 기술하면서 ‘영웅사변기’적 서사를 이어받았고, 이것이 ‘인문사회과학’을 형성하여 중화민족의 혈연적, 공간적 변경을 형성해왔다. 따라서 고조선과 고구려 및 기자(箕子), 단군(檀君)과 관련된 역사처럼, 근현대 역사학자들이 중화민족의 국경 논쟁을 하는 과정에서 주장되는 ‘역사사실’이란, 전통적인 역사심성과 각종 장르 및 근대 사회과학하에서 한편으로 연속되고 다른 한편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역사의 상상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중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은 다르다
최근 펴낸 ‘요동사’에서 고구려사는 중국사와 한국사 어느 것에도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던 김한규 교수(서강대)는 이번 국제심포지움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그는 ‘중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사이-요동과 티베트의 역사공동체적 위상’에서 ‘중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사이는 현재의 중국인에게는 ‘변강’에 지나지 않겠지만, 전통시대 동아시아 세계에서는 중국과 엄연히 구별되는 독립된 역사공동체들이었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중국’은 역사적 경험과 역사의식을 공유하는 공동체, 즉 역사공동체의 명칭이며, ‘중화인민공화국’은 국가의 이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더 엄격히 말하면 ‘중국’은 1912년 이후 ‘중화민국’이나 ‘중화인민공화국’의 약칭으로도 사용되었지만, 그 이전의 전통시대에는 역사공동체의 명칭으로만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사이’에는 개념상의 차이뿐만 아니라 공간적 간격도 존재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국가는 ‘중국’이라는 역사공동체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역사공동체도 통합, 지배하고 있다. 양자 사이에는 몽고와 서역, 티베트, 검계, 요동, 대만 등 여러 역사공동체들이 개재되어 있지만, 이 가운데서도 특히 요동과 티베트는 양자의 ‘사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요동과 티베트의 역사공동체들은 ‘중국인’과는 다른 독자적인 역사적 경험과 역사의식을 공유하면서 독립된 역사 체계를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인들은 ‘중국’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를 ‘변강’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역사 실제에서는 양자 ‘사이’에 중국과는 구별되는 별개의 역사공동체들이 존재했다. 물론 현재는 오랜 정치적 통합으로 인해 이들 역사공동체들의 정체성이 많이 희석되었지만, 현재의 상황으로 인해 과거의 사실이 굴절될 수는 없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이런 의미에서 김 교수는 한·중 역사전쟁 과정에서 한국의 학계와 언론계가 ‘고구려사의 중국사 편입’을 규탄하면서 “고구려사는 오로지 한국사의 일부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의 전형이라고 비판한다. 역사가 사물을 형성하는 과정의 서술임을 인정한다면, 고구려 역사가 현재의 한국을 형성하는 과정의 일부인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중국을 형성하는 과정의 일부였음을 인정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그는 반문한다.
역사전쟁은 가능한가
고구려사가 중국사인가 한국사인가 하는 문제는 처음부터 논쟁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논쟁거리로 삼아서 이른바 ‘역사전쟁’ 운운하는 사람들은 고구려사가 한국사의 일부임과 동시에 중국사의 일부일 수도 있다는 너무나 당연하고 기초적인 사실로부터 고의적으로 눈을 돌렸을 뿐만 아니라, 고구려라는 ‘국가’와 한국, 혹은 중국이라는 ‘역사공동체’의 개념을 구별하지도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고구려가 어느 역사공동체에서 건립한 국가인지, 혹은 어느 역사공동체를 지배한 국가인지 하는 문제를 설정한다면, 그 답은 한국도 중국도 아닌 제3의 요동 국가다. 더 엄격하게 표현하면, 고구려가 요동의 동부에서 건립되어 요동의 중심부로 발전해나간 전기에는 순수한 요동 국가였다고 해야 할 것이고, 고구려가 그 발전의 방향을 남쪽으로 선회하여 평양으로 천도하고 한강 일대를 점령하는 후기에 이르러서는 요동과 한국 일부를 아울러 지배한 통합국가로 발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체계상으로 확인한다면,고구려사는 한국사의 일부일 수도 있고 중국사의 일부일 수도 있지만, 한국사나 중국사상에서는 주변적 요소에 지나지 않는 데 반해, 요동사에서는 핵심적 가치와 위상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자기중심적 사고를 버리고 세계사적 관점을 견지할 수 있다면 동아시아사, 특히 중국사나 한국사의 역사 체계에 대한 객관적이고 새로운 시각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지론이다.
고구려사는 고구려인에게
이번 국제심포지엄에서 소개된 각 지역의 ‘변경연구(border studies)’는 팽팽한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동북아시아의 ‘역사전쟁’에 하나의 돌파구를 제시할 것으로 판단된다. 서유럽과 동유럽의 변용하고 있는 변경들, 신장, 티베트, 타이완과 같은 중국 대륙의 다양한 변경들, 중국동북부와 제주 같은 한반도의 변경, 홋카이도와 오키나와 같은 일본 열도의 변경들을 강요된 근대 국민국가의 민족적·국민적 정체성에서 해방시켜, 다양하고 독특한 변경의 잡종적 정체성을 추적하는 것이다.
즉 근대 민족·국민국가의 인위적 ‘국경’에서 다양한 역사적 ‘변경’을 구출하여 ‘고구려사는 고구려인에게’ ‘홋카이도는 아이누에게’ ‘오키나와는 유구인에게’ 등으로 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보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변경이란 존재는 국사, 지역사, 세계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보는 출발점이 되며, 민족·국민이라는 중심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문제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번 심포지엄의 궁극적 목적은 일본의 네오내셔널리즘이나 중국의 동북공정, 그리고 한국의 주류 역사학이 의거하고 있는 ‘내셔널 히스토리=국사’의 틀과 남·북한-중국-일본의 국가권력을 잇는 적대적 공범관계를 동북아시아 전체 차원에서 해체하고, 동북아시아 시민사회간의 평화와 연대를 구축하는 데 있다. 왜냐하면 수평적이고 자발적인 밑으로부터의 연대는 21세기의 동북아시아가 요구하는 역사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민족주의를 매개로 내부의 동원 논리를 정당화하는 국가권력간의 ‘적대적 공범관계’가 동북아시아의 현실을 지배하기에 그 과제는 요원하며 그렇기에 더 절실하다.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창립을 기념하여 개최된 심포지엄 ‘근대의 국경, 역사의 변경’은 ‘국경’에 갇힌 ‘변경’을 구출함으로써, 동북아 시민사회의 역사의식이 권력의 규율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 연대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