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2000년부터 매년 발행하고 있는 ‘책의 현장 2004’판 744쪽/ 3만원
‘불황타령’이 입에 배어버린 출판계에서 이런 말을 들으면 코끝이 찡하다. 소신껏 책을 만들어 잘 팔아서 직원들 월급 걱정 안하고 출판사를 경영한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세상인가. 한스미디어의 김기옥 사장은 창업 첫 타이틀(‘인생을 두 배로 사는 아침형 인간’)로 대박을 터뜨린 출판계의 신데렐라지만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창업 초기에 성공 운운하며 매체에 오르내린 회사치고 결과적으로 성공한 회사는 없었다는 심히 불안한 조언도 들었다”고 한다(‘송인소식’ 2004.1.5).
2005년이면 창립 50주년을 맞는 범문사의 유성권 사장(설립자 유영국의 손자)은 “변하지 않는 비즈니스는 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외국서적 수입으로 시작한 범문사는 3세 경영체제에 들어간 후 어린이 영어교재(‘잉글리시플러스’)와 그림책(자회사 ‘언어세상’) 분야에 대한 집중투자로 거듭 태어났다.
사라질 책, 살아남을 책
그렇다. 반세기의 전통을 자랑하든, 신생아 수준이든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 무엇으로? 어떻게?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펴낸 ‘책의 현장 2004’는 이런 문제점과 해결책을 진지하게 모색한 결과물이다.
우선 ‘책의 현장’은 달라진 출판환경, 달라진 책의 개념을 강조한다. 책은 더 이상 농경사회의 ‘교양’이 아니다. 적어도 공업사회까지만 해도 고전 또는 명저라는 게 통했고, 조직이 요구하는 지식을 습득하기 쉽도록 책은 가능한 한 많은 지식을 체계적으로 담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매트릭스 사회로 진입한 지금, 책의 개념도 달라지고 있다. 때로는 책이 15초짜리 광고 같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몇 년 사이 베스트셀러가 된 책의 공통점은 광고의 이미지처럼 앙상한 뼈대만 있을 뿐 풍부한 살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한기호 소장은 “절박한 개인이, 광고가 던져주는 단 한마디의 메시지를 책에서마저 추구하는 현상이 갈수록 두드러진다”고 설명한다.
또 요즘 독자들은 읽지 않고 인터넷에서 무료정보를 ‘검색’하는 데 익숙하다. 그런 그들의 지갑을 열어 책을 사게 만들어야 한다. 독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책은 이미지와 문자가 상생하는 책, 획일적 형식에서 탈피해 내용과 형식이 조화를 이루는 책, 세상의 변화를 이해하고 독자의 감수성을 끌어들일 수 있는 책이란다.
그러나 이런 차가운 분석보다 “요즘 독자들은 책에서 ‘대접받았다’는 느낌을 받길 원한다”는 대목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대접받았다’는 느낌은 사실 편집과 디자인의 몫이다. 알고 보면 ‘아침형 인간’의 성공은 어느날 하늘에서 떨어진 행운이 아니다. 출판사는 일본에서 출간된 책을 완전히 발가벗겨 원고를 거의 다시 쓰다시피 하고, 원문에는 없는 ‘아침형 인간 되기 100일 프로그램’을 짜 넣고, 본문 줄 간격을 넓혀 마치 대화하듯 편하게 읽고 ‘나도 이제 변할 거야’라고 다짐하게 만드는 전략을 세웠다고 한다.
한때 출판계 ‘로또복권’으로 불리던 MBC의 ‘느낌표’가 종영됐다. 일간지 북섹션의 1면 톱을 장식해도 초판 3000부를 소화하기 힘든 시대다.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책, 독자를 대접하지 않는 출판사는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