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호

번잡한 일상사 떨치는 평안의 땅 충북 단양·제천

山明水紫·淸風明月이 버무려낸 ‘내륙의 고요’

  • 글: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사진: 김성남 차장 photo7@donga.com

    입력2004-05-27 11: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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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 떠나보면 안다. 풀뿌리 하나, 돌 한 조각에도 온전히 무심해질 수 없음을. 사물을 향한 그런 까닭 모를 애틋함에서 한줄기 여유 또한 묻어남을. 생에 쫓기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넉넉함 하나 숨겨두지 않겠다면 그건 위악(僞惡)일 터. 빈 마음을 채우기보다 머릿속을 맴도는 상념을 버리려 찾는 곳, 단양과 제천이다.
    번잡한 일상사 떨치는 평안의 땅 충북 단양·제천

    일출 무렵의 도담삼봉. 남한강 수면을 가르고 우뚝 솟은 세 바위의 자태가 그림 같다.

    단양으로 향하는 길은 마냥 순조롭다. 화창한 봄볕. 차창밖을 지나는 까치놈의 날갯짓도 그저 여유로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품이다. 영동-중앙고속도로를 번갈아 타고 논스톱으로 내달린 지 3시간. 제천 어귀에서부터 준봉들이 삐주룩삐주룩 고개를 쳐든다 싶더니 이내 단양땅이 자태를 드러낸다.

    수줍게 속내를 감춘 새색시 같다고나 할까. ‘단양의 봄’은 고요 그 자체다. 아무리 총선 여파로 단체관광객이 줄었다곤 해도 잘 정비된 시가지에서조차 나들이객의 모습을 찾기 힘든 건 좀 이상하다.

    웬일일까. 우선 3.4km 산길을 뱅뱅 돌아 양방산 전망대에 올라본다. 해발 650m. 활공장을 겸한 이곳에선 남한강이 감싸고 도는 복주머니 모양의 단양 전경이 시원스레 내려다보인다. 라디오를 벗삼아 홀로 전망대를 지키는 60대 산불감시원의 표정 또한 느긋하다.

    단양에선 그 유명한 고수동굴(천연기념물 256호)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들어가보니 상춘객은 죄다 이곳에서 흥청거리고 있는 듯하다. 경남 진주에서 수학여행 온 한무리 중학생들의 재잘거림도 보태진다.

    단양엔 노동동굴 등 관람가능한 동굴이 3개 더 있지만, 길이 1300m의 석회석 천연동굴인 고수동굴의 명성을 따르지 못한다. 동굴내 오르락내리락 철제계단이 다소 촘촘하긴 하지만 종유석과 석순이 빚어낸 신비를 만끽하려면 그쯤이야…. 게다가 동굴 안은 15℃로 서늘하기까지 해 때이른 피서지로도 안성맞춤이다.



    번잡함을 피하고 싶다면 가곡면 사평2리 두산마을을 찾으면 좋다. 해발 400m 고지대로 가을감자가 유명한 이 마을에선 낙조가 멋있다. ‘고운골(佳谷)’이란 지명이 헛되지 않게 빼어난 풍광에다 인적마저 드물어 나무 위 다람쥐와도 심심찮게 눈 맞출 수 있다.



    번잡한 일상사 떨치는 평안의 땅 충북 단양·제천

    단양의 명물 고수동굴 내부. 종유석과 석순이 빚어낸 형상이 신비롭다.

    먹을거리로는 올뱅이해장국(단양에선 올갱이를 ‘올뱅이’로 부른다), 산채정식, 쏘가리매운탕 등도 괜찮지만, 단양이 자랑하는 육쪽마늘의 특장을 살린 음식이 제격. 단양 시외버스터미널 부근 장다리식당(043-423-6660)의 대표 메뉴는 외지인이라면 한 번씩은 맛보고 가는 마늘솥밥이다. 외양은 일반 돌솥밥과 비슷하지만, 마늘을 비롯 백미 흑미 기장 찹쌀 밤 은행 대추 호박씨 팥 등 15가지 재료로 지은 밥에 마늘장아찌 마늘쫑무침 등 굽고 지지고 익히고 삭힌 12가지 마늘반찬과 각종 쌈이 곁들여진다. 여기에 수육 또는 육회까지 추가된다. 주인 이옥자(42)씨는 “마늘솥밥의 별칭이 ‘부작용 없는 단양의 비아그라’”라며 “마늘솥밥을 먹은 뒤엔 혼자 자선 안된다”고 농을 던진다.

    단양8경 중 제1경인 도담삼봉을 보지 않고는 단양을 입에 올리기 쑥스럽다. 조선개국공신 정도전이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칭하고 유년시절을 청유(淸遊)한 곳으로 경치가 뛰어나다. 도담삼봉 감상은 낮보다 일출 무렵이 더 낫다. 물안개 자욱히 피어오르는 남한강 수면을 가르고 우뚝 솟은 새벽 4시의 바위 셋을 차례로 바라보노라면 절로 탄성이 나온다.

    학생이 낀 가족 관광객들은 영춘면의 온달관광지를 찾아도 좋다. 온달산성, 온달동굴, 온달장군과 평강공주를 테마로 한 전시관 등을 두루 갖춰 교육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인근의 구인사(救仁寺)도 볼거리다. 구인사는 1945년 창건된, 대한불교 천태종의 총본산. 다만 50여동의 당우(堂宇)가 경내를 꽉 채울 만큼 규모가 웅장해 고즈넉한 절집 맛은 덜한 편이다.

    단양과 이웃한 청풍명월의 고장 제천을 빠뜨리면 봄나들이가 다소 허전해진다.

    한반도의 중심을 자처하는 제천의 으뜸 볼거리는 단연 충주호와 맞닿은 청풍문화재단지. 충주댐 건설로 인한 청풍면 수몰지역의 문화재 43점을 1983년부터 3년에 걸쳐 망월산성 기슭 8만5000평에 고스란히 이전해놓았다. 지금은 국내는 물론 대만 등지의 해외 관광객들까지 발품을 팔아 찾는 곳이 됐다.

    바로 옆엔 드라마 ‘대망’을 촬영했던 SBS 촬영장이 붙어 있고 ‘태조 왕건’의 무대였던 KBS 해상촬영장도 인접해 있어 촬영지로 각광받는 제천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번잡한 일상사 떨치는 평안의 땅 충북 단양·제천

    제천 청풍문화재단지 옆 SBS ‘대망’ 촬영장.

    제천에서만 맛볼 수 있는 드문 음식이 하나 있다. 다름아닌 황기국수다. 한약재인 황기 농축액을 첨가한 일종의 기능성 국수인데 콩국수와 칼국수 두 종류가 있다. 황기뿌리를 넣어 만든 황기비빔밥도 맛깔스럽다. 제천경찰서 인근 황기음식 전문점 ‘황기마당촌’(043-642-6162)의 조부원(34) 사장은 “황기국수는 지역특산 약초인 황기를 통해 제천을 널리 알리려 직접 개발해 특허까지 받은 것”이라며 “황기를 활용한 수제비와 쫄면, 떡볶이도 개발할 예정”이라 말한다.

    제천에선 의림지도 빼놓을 수 없다. 삼한시대 축조된 국내 최고(最古)의 저수지인 의림지는 화려하진 않지만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역사적 수리시설이어서 한번쯤 들를 만하다. 찾는 이 없이 강태공만 세월을 낚는 고즈넉한 풍광에도 나름의 운치는 있다.

    제천은 구한말 을미의병의 진원지인 만큼 자양영당, 의병기념관 등 의병사적지를 둘러봐도 괜찮다. 자연친화적인 단양의 볼거리들에 비해 제천의 그것은 다소 인공적이란 점이 흠이라면 흠.

    돌아오는 길, 도담삼봉을 다시 본다. 오랜 세월을 버티며 어제와 오늘을 이어온 일관(一貫)의 미덕. 그속엔 ‘내륙의 고요’가 깃들여 있었다.

    번잡한 일상사 떨치는 평안의 땅 충북 단양·제천

    ① 단양의 대표 음식인 마늘솥밥. ② 제천에서만 맛볼 수 있는 황기콩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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