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호

좌담 : 40대 국회의원 3인의 ‘총선 이후 한국號’ 심층진단

진보의 복권, 386의 전진, 시동 건 이념 논쟁

  • 정리: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4-05-27 18: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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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대 국회 개원과 노무현 대통령의 업무 복귀를 계기로 노무현 2기 정부가 출범을 앞두고 있다. 4·15총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드러난 한국 사회 대변화의 조짐은 한둘이 아니다. 진보 대 보수 논쟁, 성장과 분배의 충돌, 세대간 갈등 등 우리 사회의 향후 10년을 가름할 핵심 의제들을 40대 국회의원 3명을 통해 진단해보았다. <편집자>
    좌담 : 40대 국회의원 3인의 ‘총선 이후 한국號’ 심층진단
    일 시 : 5월12일 오전10시 장 소 : 동아일보 출판국 회의실참석자 : 송영길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원희룡 한나라당 국회의원, 조승수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당선자,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사회)

    김호기 :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먼저 이번 17대 총선 결과에 대해서 선거에 참여하셨던 세 분의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원희룡 : 이번 4·15 총선이 딛고 서 있는 지반 자체가 엄청난 지각변동을 한 것이라고 봅니다. 우선 인구학적인 구성 면에서 한국사회의 주력세대가 교체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한국사회에는 현재 50대 이상의 이른바 와인(WINE : Well Integrated New Elder)세대와 P세대, 그리고 이념 성향이 강한 중간세대, 이렇게 세 그룹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좌우대칭형 피라미드 구조를 이룬 것이 아니고 개혁을 요구하는 젊은 세대가 좀더 두터운 ‘고래등형’ 구조를 이룬 겁니다.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엄청난 에너지로 국면을 주도한 것이지요.

    송영길 :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노무현 후보가 승리한 것은 ‘개인 노무현’의 승리라기보다는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일부에서는 대선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국민이 뭔가 감정에 치우쳐 잘못 판단한 것이 아닌가’ 또는 ‘철부지 네티즌들이 멋모르고 지지한 것 아닌가’와 같은 해석이 나왔단 말이죠. 이런 해석 차이가 지난 1년동안 계속 갈등을 일으키면서 공존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다시 한번 ‘국민이 감정에 휩쓸려 노무현을 찍은 것이 아니고 진짜 새로운 시대를 위해 결단을 내린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이번 총선의 의미라고 봅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이 잘하고 못하고는 둘째 문제고, 일단 국민의 결단을 전제로 새로운 시대의 지평을 연 다음에 그 안에 민노당도 참여해서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 이슈를 가지고 국민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논의를 시작해달라는 것이라고 봅니다.



    조승수 : 이제는 과거처럼 거대정당들의 횡포를 용납하지 않고 의회내에서 수의 논리로만 하는 정치를 인정하지도 않겠다는 것이 이번 총선에 나타난 민의였습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이 10석, 특히 정당지지율 13.1%를 기록한 것은, 그동안 지역주의와 패거리 정치가 눈을 가려 제대로 보지 못했던 국민이 자기 삶과 정치를 일치시키려고 하는 민노당에 눈을 뜬 것이라고 봅니다. 부유세나 무상교육, 무상의료와 같은 민노당 정책들의 실현 가능성을 제쳐놓고서라도 국민은 이런 공약을 보면서 ‘내 삶의 고통을 정치에서 이야기해 주는구나’하고 느꼈을 겁니다. 민노당에 주어진 표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비로소 지역주의나 패거리 정치를 벗어나서 진정한 정책과 이념에 따른 정치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봅니다.

    보수-중도-진보의 삼각구도

    김 : 이번 선거를 통해서 우리 정치 사회에 비로소 보수 대 중도 대 진보의 삼각구도가 마련된 것 같습니다. 여태까지 우리 정치권의 이념구도라는 것은 제가 보기에 기껏해야 보수 대 중도 정도였습니다. 진보가 설 자리가 없었죠. 반면에 시민사회에서는 보수 대 중도 대 진보의 삼각 구도가 있었습니다. 이러다보니 시민사회와 정치권 사이에 늘 긴장과 마찰이 일 수밖에 없었는데, 이번 총선을 통해 비로소 삼각 구도가 형성된 것 같습니다.

    물론 보수와 진보를 각각 표방하고 있는 한나라당이나 민주노동당 경우에는 별 이견이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열린우리당의 경우 제가 보기에는 1950년대 이후 미국이나 서유럽에서 나타난 포괄정당의 성격이 두드러집니다. 상당히 보수적인 사람에서부터 시작해서 민노당과 별다른 차별성이 없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이념적 스펙트럼이 대단히 넓다는 것이지요.

    송 : 말씀하신 대로 보수, 중도, 진보, 이렇게 건강하게 갔으면 좋겠습니다. 열린우리당은 자유주의 정당인 데다 우리 사회의 집권당이 됐으니까 포괄적인 정당으로 발전해 가야한다고 봅니다. 민노당의 노선은 그 자체로서 사회 담론을 풍부하게 만들고 새로운 담론의 지평을 여는 긍정적 기능을 맡게 될 것입니다. 대신 실용적 개혁노선으로 가는 것은 민노당이나 한나라당이나 저희 당이나 다 같이 합의할 수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그것이 바로 일하는 국회, 싸우지 않고 국민을 위해 선의의 경쟁을 하는 국회로 가는 길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 정당이 이념적 귀속성이 강한 유럽식 정당시스템으로 발전해갈 것이냐 아니면 미국식으로 지지자 중심의 포괄정당으로 갈 것이냐를 놓고 볼 때, 현재는 두 가지 요소가 혼재돼 있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이냐를 고민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 : 보수, 진보와 비교해서 열린우리당을 중도적 개혁정당이라고 할 만한 어떤 포인트가 있는지 덧붙여 말씀해 주시죠.

    송 : 민노당 강령이 사회적 시장경제, 즉 국가의 조절기능을 더욱 중시하고 시장경제를 활용하는 관점에 서 있다고 한다면, 열린우리당은 자유시장 경제를 중심에 놓고 그에 대한 보완점을 케인스적인 방식으로 찾자는 겁니다. 신자유주의 노선과 관련해 논란이 있기는 합니다만, 지금과 같은 세계화시대에는 정책적 변수가 제약을 받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자유시장경제를 중심에 놓은 채 독점을 배제하고 공정한 평가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김 : 저희 연구자들이 보기에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은 감격적이었습니다. 해방공간 이후에 진보에는 시민권이 제한되어 왔습니다. 오랫동안 냉전체제 아래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다가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을 통해서 비로소 시민사회에 진보의 시민권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만큼은 진보세력이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해 대단히 안타까웠지만, 이번 총선 결과 진보도 드디어 시민권을 획득한 것으로 봅니다.

    좌담 : 40대 국회의원 3인의 ‘총선 이후 한국號’ 심층진단

    김 호 기<br>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조 : 그동안 보수정당들은 끊임없이 이념과 노선에 근거한 현대적인 정당의 출현을 억눌러 왔습니다. 민주노동당은 어렵지만 긴 시간을 거쳐서 독자적으로 그걸 이뤄낸 겁니다. 바둑으로 치면 반 집 이상 집을 낸 거라고 봅니다. 최근 들어 각 당이 실용주의나 선진정치를 내세우면서 정체성 논란을 벌이고 있지만 저는 큰 틀에서는 여전히 이미지 정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한나라당이 아무리 선진정치를 하겠다고 해도 한나라당에 어떤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지 시민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열린우리당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는 실용주의를 내세우지만, 이번 총선을 통해 의석수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과정에서 이 사람도 들어오고 저 사람도 들어오고 하다보니까 ‘어떻게 하면 국민에게 집권당으로서 좀더 온화하고 안정적인 이미지를 줄 것인가’를 고민한 결과가 그런 표현이라고 봅니다.

    김 :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민주노동당이 현재 제시하는 진보적 프로그램의 실현가능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유권자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조 : 부유세만 봐도 그렇습니다. 부유세가 결코 특별한 얘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웬만한 학자들은 다 압니다. 예를 들어 이미 여러 나라가 부유세 혹은 부유층에 대한 누진과세 제도를 채택하고 있지 않습니까? 일부에서는 부유세 도입에 대한 반대하기 위해 독일 등 몇 나라에서 (부유세를) 최근에 폐지했거나 앞으로 폐지할 예정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이 나라들은 이미 누진세와 부유세를 통해서 분배 위주의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더 이상 이런 정책이 필요없는 겁니다.

    각 당이 모두 사회복지를 주장하면서 그 돈을 어디서 가져올 것이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방비를 줄이든 아니면 다른 데서 세원을 창출하든 해야 하는 겁니다. 누진과세나 탈루세액 환수를 이야기하지만 그건 이미 수십 년 동안 관료와 학자, 시민단체들이 이야기해온 내용입니다. 그게 가능했다면 벌써 이루어졌겠죠.

    김 : 사회학자들이 보기에 동아시아 국가들은 보수주의를 추진하기에 유리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사실 강력한 유교문화 영향 아래에 있는 한국인이나 중국인, 일본인은 기질적으로 보수적인 편이죠. 그런데 지난 10여년간 우리 사회를 보면 한나라당처럼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정당이 이런 조건을 크게 활용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박정희 모델’을 넘어서야 하는데 여전히 과거의 독재 모델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냉혹한 시장경제만을 강조해 국민으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원 : 저는 민주노동당이든 열린우리당이든 한나라당이든 앞으로 생산적인 정책경쟁을 하려면 우리나라를 어떤 국가로 만들 것인가에 대해 명확한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나라당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주축으로 하고 통일도 이 연장선상에서 이룰 것입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성장과 분배가 모두 악화되는 상황에서 중산층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우선은 강력한 성장 동력을 다시 일으켜야 합니다. 그래서 실업문제도 극복하고 분배문제 역시, ‘빈곤의 분배’가 아니라 ‘풍요의 분배’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저도 부유세 도입에 찬성합니다. 하지만 부자에게 벌금 내라는 식의 부유세라면 곤란하다는 것이죠. 실제로 돈 벌 사람을 죽여놓고 어디 가서 돈을 벌어옵니까? 민노당 쪽에서 사회복지 재원을 어디서 끌어올 것이냐고 묻지만 그 재원은 결국 우리 GNP에서 나오는 겁니다.

    김 : 이제 본격적인 논쟁구도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군요. 한나라당은 민주노동당의 노선이나 정책에 대해 어떤 ‘의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봐야겠죠?

    원 : 경제성장에 대해서 민주노동당은 어떤 패키지를 제시하는 겁니까? 경제성장을 추진하면서 부유세도 물리고 조세부담도 늘리겠다는 건가요? 부유세라는 게 별 겁니까? 어차피 조세가 부의 분배에 중요하고도 유일한 수단이나 다름없는데 이러한 부분을 늘리는 것은 반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서 편을 가르기보다는 일단 어떻게 성장시킬 것이냐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 측면에서 민주노동당이 ‘어떤’ 나라를 만들려는 것인가를 보다 명쾌하게 밝혀야 합니다.

    열린우리당도 마찬가지입니다. 개혁이니 실용이니 하는 것은 모두 방법론입니다. ‘어떤’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인지가 빠져 있어요. 아까 송영길 의원이 말씀하신 것처럼 시장경제의 활력을 우리 경제의 최대동력으로 쓰면서 시장 실패로 인한 경제적 약자들을 사회안전망을 통해 흡수하겠다고 한다면, 한나라당이 추구하는 사회상과 다를 게 없습니다. 열린우리당 내부에 여러 가지 경향이 섞여있기 때문에 저희들도 혼돈스럽습니다. 하지만 반(反)기업적인 경향, 탈(脫)이익적인 성향을 통해서 국민의 지지를 얻어나가는 정치적 기술만 계속 구사한다면, 열린우리당이 아무리 ‘글로벌 10’ 진입이니 2만달러 시대 또는 동북아중심국가니 하는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것은 정치적 구호에 그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열린우리당을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좌담 : 40대 국회의원 3인의 ‘총선 이후 한국號’ 심층진단

    조 승 수<br>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당선자

    송 : 원희룡 의원이 이렇게 솔직하게 발언하니까 논쟁의 수준이 업그레이드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진보와 보수를 놓고 학술적인 논쟁을 벌일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가 중도라는 표현을 쓴 것도 동양적 중용(中庸)의 개념을 빌려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천명한 대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생산적 복지라는 3가지 체제를 심화·발전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생산적 복지가 너무나 취약하고 시장경제 역시 공정한 게임의 룰이 빠져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시장내 독점과 재벌의 폐해가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옹호돼 왔던 것을 이제는 바꿔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한나라당과 다를 바가 뭐가 있냐고도 할 수 있겠지만 말로서 다른 게 아니라 역사적 성립배경과 진행과정에서 차이점이 있는 것이죠.

    원 : 지금 말씀하신 내용을 굳이 분류하자면 그게 우파거든요. 그렇잖아요?

    송 : 좌우 개념이 뭡니까. 생산수단의 사유를 전제로 하느냐 아니면 국유로 할 것이냐 하는 부분 아니에요?

    원 : 그럼 중도라는 것은 뭡니까?

    송 : 시장경제가 그동안 자유민주주의라는 미명하에 모든 것을 독점해오던 체제였다면 생산적 복지를 대폭 강화해서 시장경제가 갖고 있는 미비점을 보완하자는 거지요.

    원 : 민주노동당은 어떤 사회를 만들려는 것입니까?

    조 : 노동자 농민 서민 등 대다수가 열심히 일하며 인정받고 정당하게 만들어진 부(富)를 한쪽에 일방적으로 빼앗기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야죠. 부유세를 포함한 민노당의 정책은 독일의 우파정당인 기민당 수준에도 못미치는 것이 많습니다. 독일 기민당의 복지정책과 사민당의 복지정책은 사실 그렇게 큰 차이가 없어요. 그리고 독일의 사민당은 진보정당이 아닙니다. 독일의 진보정당은 녹색당입니다. 이렇게 시대적으로 바뀌게 마련이거든요. 자꾸 민주노동당이 시장경제를 부정한다는 이야기를 하시는데, 시장경제에서도 부정할 부분은 부정해야죠.

    원 : 시장경제의 어떤 부분이 부정돼야 한단 말이죠?

    조 : 순수한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 우리 사회의 지니계수만 보더라도 불평등은 엄청납니다. 가난한 사람이 게으르게 일해서 가난해진 게 아니라는 거죠. 그건 우리 사회가 분배 문제에 관한 구조적인 시스템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불공정 시스템을 바로잡아야만 가난한 사람들 문제가 해결되고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나아갈 것입니다.

    시장경제 부정할 부분은 부정해야

    원 : 좀더 논쟁적으로 얘기할 필요가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예를 들어 향후 대한민국의 모델과 관련해서도 저는 ‘작지만 문화적인 나라’ 같은 것은 실현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동북아시아에서 한국의 위치와 그 뿌리를 놓고 보면 좌파 정권이 들어서서 다 분배했다간 완전히 ‘가버릴’ 수가 있습니다. 세계라는 틀 속에서 한국을 바라보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중국이라는 새로운 블랙홀에 한국이 빨려들어갈 위험이 있습니다. 또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로 인해 우리 경제활동 인구가 부양해야 할 인구도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게다가 북한이라는 또다른 부양 인구도 있습니다. 이런 세 가지 요인 때문에 우리는 성장을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김 : 논쟁 속에 북한을 바라보는 입장이 빠진 것 같습니다.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문제는 통일방안을 모색하는 데도 중요한 요소일 텐데요.

    원 : 북한을 바라보면서 어느 정도 체제의 혼합을 허용할 것인가 하는 측면에서 보면 저희는 분명히 우파입니다. 하지만 중도를 향해 사회 통합을 추구하는 면에서는 ‘중도적’이라는 포지션을 갖는 것이죠.

    송 : 북한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강요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그들이 개혁 개방에 나서서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것이죠. 한나라당의 일부 보수 세력 중에는 민주노동당이나 열린우리당의 일부 친북세력이 북한과 통일전선 전술을 구사해 대한민국 체제를 붕괴시키려 한다는 가능성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지만 절대로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조 : 통일 문제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신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몇 년 전 강인덕 통일부총리 시절 제가 지방자치단체장 연수를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강 전 부총리가 김대중 정부의 통일정책 기조를 설명하면서 “문익환 목사와 논쟁을 할 때 ‘통일, 그거 별 것 아닙니다. 주석궁에 탱크가 들어가는 게 곧 통일입니다’라고 얘기했다”는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섬뜩했습니다.

    좌담 : 40대 국회의원 3인의 ‘총선 이후 한국號’ 심층진단

    원 희 룡<br>한나라당 국회의원

    김 : 좋습니다. 다음에 얘기해보고 싶은 것이 정치권의 세대교체 문제입니다. 1987년을 기점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졌지만 애석하게도 세대교체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번 대선과 이번 총선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사회적’ 의미가 바로 세대교체였다고 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세 분 당선자께서 바로 이러한 세대교체의 주역이기도 하고요. 세대교체의 중심은 결국 40대의 민주화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민주화 세대의 자기 평가와 한계에 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원 : 세대교체의 중심인 30~40대는 부모 세대의 산업화 과정에서 파생된 부산물인 부패·특권·권위주의에 저항하는, 변화와 개혁의 요구가 강하고 이념적 성향이 뚜렷한 세대라고 봅니다. 하지만 이들 민주화 세대도 머지 않아 국가와 사회 경영능력을 시험하는 실험대에 오르게 될 겁니다. 성장과 분배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면서 한국을 ‘글로벌 10’으로 끌고갈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 다음 세대로부터 검증받게 될 것이라는 말이죠.

    김 : 민주화 세대는 총론에는 상당히 능하지만 각론에는 취약한 듯싶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에게 콘텐츠가 어느 정도 갖춰져 있는가라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는 거죠.

    원 : 변화와 개혁의 내용이 부실한 것인지 건실한 것인지도 중요합니다. 또 개혁은 유능함을 동반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민주화 세대의 핵심 과제이자 아킬레스건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송 : 독립운동가들이 친일론자들에 비해 회계에도 능하지 못하고 일본어도 딸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제 원희룡 의원도 법조인이 됐고 저도 법률가로서의 지식을 나름대로 쌓았습니다. 그만큼 운동권 출신도 전문적 분화를 이루었습니다. 조승수 당선자 역시 그 분야에서 노동자 농민을 위해 싸워온 분이죠. 기성세대처럼 연공서열 방식에 근거한 대량생산 시스템에서 20 ~30년 경력을 쌓아온 사람과 비교해 훨씬 더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기량을 발휘하는 386 세대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총론은 강하나 각론이 약하다’는 말은 개론서만 읽고 고시공부 합격한 뒤에는 공부 안하는 70년대 학번에게나 해당하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 : 386세대의 한계를 지적한다면 어떤 내용일까요?

    송 : 물론 그들도 자신의 한계 안에서 경직성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이번에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노사모 현상’도 운동권 출신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반 대중이 자발적인 추진력을 갖고 만든 것입니다.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정통 재야 출신 이해찬 의원이 떨어지고 고시공부해서 변호사가 된 천정배 의원이 당선됐거든요. 그런 면에서 정통 재야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자기 반성, 자기 고찰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조 : 세계 초일류기업을 지향하는 우리나라 대기업 50대 임원들도 민주주의에 대해 훈련받지 못했어요. 그 사람들은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자기식 언어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회사 방침에는 늘 ‘첨단’ ‘정보’ 이런 것들을 강조한다는 거죠. 우리 세대는 정치에서뿐만 아니라 조직내 문화에서도 민주적인 의사결정과 의사소통을 굉장히 중요시하는데 이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이 부분이 우리 세대의 큰 장점입니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대통령 탄핵을 밀어붙인 것도 내부에 자기 성찰의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이죠. 과거 운동권 역시 비슷했어요. ‘내가 옳다’는 도덕성 하나만을 내세우면서 배타적이었죠. 그런 면에서는 민주노동당도 비슷한 문제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성장 멈출 수 없다”

    송 :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자식과 마누라 빼놓고는 다 바꾸라’고 말한 것처럼 이제는 우리도 새로운 산업구조, 변경된 패러다임 속에서 사회적 공익성에 충실하고 책임을 다하는 새로운 기업가 유형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또 그러한 시도가 우리 386세대 안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제가 남북경제문화 교류협력재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만 거기에도 사업에 성공한 386세대가 다수 참가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건강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접하면서 훌륭한 기업가의 모델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좌담 : 40대 국회의원 3인의 ‘총선 이후 한국號’ 심층진단

    송 영 길<br>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원 : 권위주의에 저항해온 민주화 세대의 강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국제무대에서 경쟁해야 하는 현실에서 모든 것을 20 대 80식의 편가르기 구도로 몰고가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50세가 청춘’이 되는 고령화 사회가 다가오는데, 누가 밥을 지을 것이며 누가 이 시스템을 작동시켜 나가겠습니까? 우리가 그동안 이뤄온 성과 자체가 혹시 중국 변수라든가 우리 사회 내부의 적대적 갈등에 의해서 가라앉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부분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세대가 처해있는 현실이라고 봅니다.

    조 : 그런 면에서 저는 원희룡 의원께서 한쪽 시각에만 머물러 있다는 느낌을 아까부터 받는데요. 예를 들어 흔히 분배를 통해서 후퇴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경제를 기본적으로 아는 사람이라면 성장과 분배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알거든요. 분배가 성장의 동력이 되기도 하는데 지금과 같은 성장은 내용있는 분배를 결여한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민노당은 우리 경제가 지금 힘들기 때문에 성장 동력으로 삼아야 하는 여러 가지 요소 중에 분배도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주류 경제정책에서는 이러한 요소를 제대로 써보지 않았다는 거죠.

    원 : 그러면 기업들은 알아서 하고 경제성장은 내팽개쳐도 좋다는 이야기인가요?

    조 : 그런 건 아니죠.

    김 : 성장과 분배 문제는 결코 쉽게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학계에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민노당을 포함해서 각 당이 모두 시장의 활력을 높인다는 데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시장의 활력에 대응하는 분배를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데 있어서 시장의 활력에 일차적인 무게 중심을 둬야 한다는 것이 한나라당 입장인 것 같고요, 시장의 활력과 사회적 분배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 열린우리당의 입장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태까지 분배나 사회보장에 무게가 덜 실렸었기 때문에 시장의 활력과 사회적 분배 중에서 분배 쪽에 새롭게 무게중심을 두고자 하는 것이 민주노동당 입장인 것 같습니다.

    송 : 분배를 단순히 노동자의 임금을 높여주는 것으로 협소하게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교육이나 의료 등 우리 시스템 내에서 상대적으로 배려받지 못한 세력에 대해 기회를 분배하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국가가 맡아야 할 책임을 지나치게 기업들에게 떠넘기고 있어요. 학자금부터 의료, 육아문제에 이르기까지 기업이 다 부담해야 하는데 기업은 이런 코스트를 감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이런 것을 사회가 부담하면 기업의 부담은 줄어듭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성장의 동력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 겁니다. 분배 문제를 단순히 이데올로기화해서 대비시키는 것은 문제 해결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김 : 최근 우리 사회는 중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첫째, 미국에 대응하는 중국의 영향력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습니다. 둘째, 사실상 우리가 성장 엔진의 동력을 상실했다는 부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셋째, 정보화와 세계화의 가속화로 일자리 창출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일자리 창출 없는 성장이 가시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넷째, 20대 80의 사회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경제 성장률이 다시 높아진다고 해서 과거처럼 자연스럽게 사회적 약자들에게 성장의 과실이 돌아가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성장은 성장대로 이뤄지고 분배는 분배대로 악화되는 모습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분배냐 성장이냐

    송 : 앞으로 한국경제를 어떻게 살려나갈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입니다. 김대중 정부 이후의 개혁개방 정책을 민주노동당이나 시민단체에서는 신자유주의 노선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만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의 개혁개방 정책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외국 자본에 대한 교육개방이나 경제자유구역법의 경우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찬성하고 있지만 민노당은 공식적으로 반대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개방에 대한 근본적 견해 차이가 있습니다만, 저는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것을 외면하고 독립경제, 자립경제로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 : 경제체제 자체의 성장 동력을 살리고 친(親)재벌적인 제도를 과감하게 뜯어고치는 것도 필요합니다만 우선적으로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체제에서도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 다음에 국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5~10년 뒤 한국을 먹여살릴 신성장 사업을 발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게 반도체, 디스플레이, 휴대전화 정도거든요. 바이오와 디지털이 기존의 제조기술 공학과 결합된 제품을 발굴해서 세계시장에 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공장이 중국으로 이전하는 수준이 아니라 국내 공장이 있어봐야 세계 시장에 나가서 팔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할 것입니다.

    조 : ‘기업들이 투자하기 좋은 여건이 우선’이라는 말은 한마디로 황당한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은 이윤이 나면 쫓아가는 법입니다. 지금 삼성이 투자를 안 합니까, 현대가 투자를 안 합니까. 돈 되는 데는 다 투자하고 있어요. 우리 산업 전체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경영의 투명성 문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저는 정말 엉뚱한 데 투자하지 않고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존경받는 기업가가 많이 나오면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봅니다.

    송 : 제조업 분야가 중국으로 이전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지금 칭다오(靑島)나 옌타이(煙臺)는 비행거리 1시간 이내로, 국내와 별 차이가 없는 데도 임금은 정확하게 우리의 10분의 1입니다. 옌타이에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대우종합기계 공장도 있는데 이곳 근로자 임금도 국내 근로자의 10분의 1입니다. 하지만 생산성은 80~90%에 이릅니다. 이런 상황인데 어떤 제조업체가 애국심이 끓어넘쳐서 여기에 남겠습니까.

    원 : 분배 구조의 개선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민주노동당이나 진보 쪽에서 솔루션을 내주어야 합니다. 체제를 저주하고 성장의 그늘에서 소외된 채 눈물 흘리는 이웃들이 연대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와 관련해 비정규직 문제를 민주노동당에서 핵심쟁점화하고 있는데 과연 이게 일자리 창출이나 분배구조 개선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3~5년 내에 망하거나 중국으로 갈 수밖에 없는 중소기업이 경우 노조는 임금동결과 무파업을 선언하고 회사는 이윤 전액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동시에 투명한 경영과 직원복지 개선을 위해 시민단체 등에 의한 경영 감시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계속 무파업을 하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어차피 국내 시장에서 살 길이 없어 해외로 나가는 기업의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일자리가 있어야 분배도 있고 복지도 있는 것 아닙니까.

    조 : 민노당이 분배가 바로 성장의 동력 중 하나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이런 겁니다. 예를 들어 ‘고용없는 성장’이 진행될 때 사회복지 부문에서 미취업자나 실업자를 대폭 흡수하자는 겁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교사도 모자라고 사회복지 인력도 부족합니다. 세계 10위 수준의 경제력에 사회복지 시스템이 이처럼 취약하다면 말도 안 되는 거예요. 이렇게 교육과 복지 분야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게 되면 이들이 바로 구매력을 갖는 소비자가 되는 거죠. 1987년 이후에 우리 경제성장의 주요 동력은 내수 증가였습니다. 1987년에 벌인 임금인상 투쟁 결과 노동자의 임금이 급격히 올라갔어요. 이들의 구매력이 올라가니까 내수시장에 긍정적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분배 역시 경제성장의 동력이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고도성장 시대의 유산

    송 : 현재 우리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비중이 43.7%입니다. 경영권 보호를 위해서 거래가 안 되는 주식을 제외한 나머지를 주식총량으로 보면 외국인 비중은 75%까지 올라갑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아무리 주가 관리에 나서도 돈은 다 외국으로 나가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민노당은 반대하고 있어요. 이 문제를 놓고 앞으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질 겁니다. 그리고 나는 국회의원도 주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국회의원이 주식을 갖고 있으면 시민단체들에서 마치 부당한 내부거래를 한 것처럼 몰아붙이는데 이런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조 : 이제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은 우리 산업구조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리 국민은 수십 년 동안 고도성장에 익숙해져 왔습니다. 막말로 슈퍼마켓을 차리든 쌀집을 차리든 웬만큼 장사해서 다 먹고살 수는 있었어요. 게다가 눈높이만 조금 낮추면 어디든 취업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것이 모두 고도성장이 만들어놓은 현상들입니다. 여기에 익숙해져 있기에 지금 고통스러운 것이 당연합니다. 이제 이런 점을 정부 경제정책 입안자나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솔직하게 얘기해야 합니다. 문제를 덮어놓고 ‘여러분, 고통스러우시죠. 그러니까 우리가 (정권을) 잡으면 해결됩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김 : 마지막으로 17대 국회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세 분 당선자께 듣고 싶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정치개혁일 수도 있고 언론개혁일 수도 있고, 아니면 시장개혁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시민단체에서 일해왔습니다. 그래선지 몰라도 정치개혁이 제일 먼저 됐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개원 직후에 정치개혁을 하지 않으면 결국은 다음 총선 직전에 가서야 손댈 가능성이 작지 않을 것 같습니다.

    원 : 국가적으로 보면 경제 살리기가 최우선입니다. 경제 살리기는 모든 집행 수단을 정부가 갖고 있거든요. 그래서 경제 문제에 관한 한 정부가 문제 해결에 집중할 수 있는 정치 문화를 만들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국회가 스스로 법을 바꿔서 해야 할 것 중에는 물론 1순위가 정치개혁입니다. 두 번째로는 교육개혁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의 경제적 어려움이나 세계 속에서 한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결국 우리 내부의 브레인 파워를 얼마나 잘 만들어놓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국회 공전 없도록

    조 : 1차적으로는 정치개혁이 가장 중요하지만 워낙 많은 얘기가 있었기 때문에 저는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비정규직 문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지난해 현재 비정규직은 55~56%나 되는 것으로 됐습니다. 한 집 건너 한 집 이상이 비정규직이라는 말입니다. 유럽 국가의 경우 비정규직은 우리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임금을 더 많이, 또는 동일한 수준까지 주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최소한 사회안전망이 확보된 상태에서의 비정규직이라는 거죠. 이 정도면 비정규직 노동자가 경제의 활력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문제는 그야말로 임금과 복지에 있어 정규직의 50~70%밖에 되질 않는 수준입니다.

    은행에 가면 말끔하게 유니폼 차려입은 직원 중 40% 이상이 비정규직입니다. 바로 뒷자리나 옆자리에 앉아 똑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자기보다 임금을 거의 40~50%나 더 받는 상황에서 무슨 국민통합이나 사회통합이 가능하겠습니까? 비정규직 문제는 결코 노동문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송 : 정치자금법이나 선거법, 정당법 등 아직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는 부분이 많다고 봅니다. 또 상향식 정당 민주주의를 구축하기 위해서도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국회 운영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회 내부규범을 상세하게 만들어서 국회가 텃밭싸움만 하다가 공전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캐나다의 경우는 첫 회의를 열어 원구성을 마칠 때까지는 산회를 못하도록 해놓았다고 하더군요.

    김 : 장시간 좋은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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