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억, 현금화 쉽게 12개 은행에 분산 송금 후 23회에 걸쳐 인출
- 3000만달러는 권노갑에게 전달될 틈이 없었다
현대상선 관계자들 증언에 따르면 200억원은 2000년 3월7, 8, 13, 14일 모두 4회에 걸쳐 현대상선 외화계정에서 인출됐다. 외화계정을 이용한 것은 해외거래선에 대한 용선료와 화물비를 지급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서였다. 검찰은 이 돈이 4~5회에 걸쳐, 그러니까 한번에 50억~40억원씩 3월 중순~4월 초에 권노갑씨(정확히는 김영완씨)에게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비자금 조성작업의 실무자였던 현대상선 임원 유아무개씨는 현금화 방법에 대해 “일단 외화계정에서 은행이 관리하는 별단구좌로 이체해 매각한 후 별단구좌에서 자기앞수표로 인출한 다음 현금으로 교환했다”고 진술했다. 유씨에 따르면 4회에 걸쳐 별단구좌에 200억원 상당의 외화가 이체됐는데 그때그때 인출을 했다고 한다. 인출 횟수가 4회이므로 한번에 평균 50억원씩 수표로 빼내 현금화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런데 계좌추적 결과 200억원(정확히 말하면 206억원)은 유씨가 말한 ‘은행이 관리하는 별단구좌’로 이체됐다가 4회에 걸쳐 인출된 게 아니라 외환은행 계동지점에 있는 현대상선 계좌에서 한미은행을 비롯한 12개 시중은행으로 분산 송금돼 총 23회에 걸쳐 5억~10억원 단위로 인출된 사실이 드러났다. 수취인은 현대상선이었다. 그중 한미은행 계좌로 송금된 10억원만 한번에 인출되었고 나머지 11개 은행으로 보내진 196억원은 4일(3월7, 8, 13, 14일) 중 2일은 5회씩, 나머지 2일은 6회씩 총 22회에 걸쳐 인출됐다. 여러 은행으로 돈을 나누어 송금하고 이를 억대 단위로 인출한 것은 현금화를 쉽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현금화 쉽게 잘게 쪼개 송금
검찰의 수사내용과 다른 이 새로운 사실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200억원을 현금화하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렸는가에 따라 권노갑씨에게 돈이 전달된 시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1심 재판의 최대 쟁점은 돈이 전달된 시기였다. 애초 돈 전달시기를 3월 중순~3월 말로 잡았던 검찰은 재판 도중 공소장을 변경해 4월 초까지로 늘려 잡았다.
관련자들 진술에 따르면 이 사건 5인방(정몽헌, 이익치, 김충식, 전동수, 김영완)은 200억원이 권노갑씨에게 전달되는 기간에 모두 국내에 있어야 한다. 돈이 전달될 때마다 정 회장의 지시가 있었고 나머지 네 사람은 현장에서 손발을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가능성이 높아보이진 않지만 정 회장이 해외에서 돈 전달을 지시했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나머지 네 사람은 국내에 함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네 사람이 2000년 3월에 국내에 함께 있던 날짜는 3월11, 12, 25, 26, 27, 28일 등 6일뿐이다(‘신동아’ 2004년 2월호 참조). 다들 해외출장이 잦았기 때문이다. 그 중 일요일인 12일과 26일을 빼면(관련자들 진술에 따르면 일요일엔 돈을 전달하지 않았다) 남는 날짜는 4일뿐이다. 그 중 이틀은 토요일이다. 검찰이 재판도중 돈 전달시기를 4월 초로 늘려 잡은 것은 이렇듯 날짜의 경우의 수가 매우 제한됐기 때문이다(현대 관계자들의 애초 진술은 3월 말까지 돈을 날랐다는 것인데 재판과정에서 4월 초까지 나른 것으로 진술이 바뀌었다).
재미있는 것은 1심 재판부가 돈 전달이 가능한 날을 검찰보다 더 늘려 잡았다는 점이다. 재판부는 출입국 당일, 곧 출국 전 혹은 귀국 후에도 돈을 나르는 데 관여할 수 있지 않느냐고 추론했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얘기다. 그러나 현실성이 매우 떨어지는 가능성임에 틀림없다.
나아가 재판부는 ‘4월초’라는 개념을 ‘4월 초순’으로 확대해석해 4월1, 3, 4, 10일에도 돈 전달이 가능했다는 분석을 내놓음으로써 ‘날짜에 쫓기는’ 검찰의 숨통을 터주었다. 2일은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빠진 것이고 5~9일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정 회장과 이익치씨가 4월5일 정상회담 예비접촉차 출국했기 때문이다(정 회장은 4월17일에, 이씨는 4월9일에 귀국했다).
재판부 견해로는 3월7~14일에 인출한 돈이 권씨에게 전달되는 데 길게는 한달까지 걸린 셈이다. 그러나 이는 “돈을 전달하는 데 보름 정도 걸렸다”는 김충식씨나 전동수씨 증언과 어긋난다. 돈을 마련한 실무자였던 현대상선 임원 유씨는 “별단구좌에서 인출한 수표를 현금화하는 데 짧게는 2~3일, 길게는 일주일 내지 10여일 걸렸다”고 진술했다. 마지막으로 인출한 날짜가 3월14일이므로 ‘10여일’을 최대한 길게 잡아 19일이라 쳐도 4월1일을 넘어서진 않는다. 이렇게 보면 재판부가 돈 전달 가능 기간을 4월10일까지 늘려 잡은 것은 관련자들의 진술을 무시한 것이다.
이처럼 다소 무리해 보이는 검찰과 재판부의 판단을 떠받쳐주는 것은 “현금화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는 현대측 진술이다. 김충식씨 진술에 따르면 정 회장은 “돈이 마련되는 대로 바로바로 (권노갑씨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유씨는 현금화 방법에 대해 “별단구좌에서 인출한 자기앞수표 금액이 너무 커 한 은행에서 (현금으로) 교환하기 어려웠다”며 “직원들을 데리고 직접 은행에 다니면서 자기앞수표를 5000만~1억원권으로 교환한 다음 그것을 다시 현금으로 교환했다”고 주장했다.
2003년 11월 서울중앙지법 앞마당에서 진행된 현대비자금사건 현장검증.
3000만달러 미스터리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정 회장은 검찰에서 권노갑씨에게 2000년 1월경과 2월 말에 각각 3000만달러와 200억원을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이중 이익치씨가 먼저 발설한 3000만달러 수수혐의는 검찰이 두 사람의 진술만 받아놓고 기소하지는 않았다.
베일에 싸인 3000만달러 수취인
그렇지만 3000만달러와 200억원은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정 회장 진술에 의하면 2000년 2월말 신라호텔 커피숍에서 권씨로부터 200억원을 ‘추가로’ 요청받을 때, 권씨가 “지난번엔 고마웠다”며 3000만달러를 받은 데 대해 감사표시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3000만달러가 권씨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면 200억원이 건네졌다는 진술의 신빙성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3000만달러가 권씨에게 전달되는 데도 김영완씨가 개입했다. 관련자들 진술에 따르면 정몽헌 회장은 이익치씨로부터 김영완씨가 알려준 해외계좌번호를 받아 김충식씨한테 주면서 송금을 지시했다. 김씨는 현대상선 미주법인 지사장 박재영 전무에게 지시해 정 회장이 일러준 해외계좌로 송금하도록 했다.
이 3000만달러는 나중에 2500만달러로 바뀌었다. 까닭은 이렇다. 당시 김충식씨는 대북송금 사건에 연루돼 출국금지 상태였다. 검찰은 “미국에 가 송금영수증을 갖고 오겠다”는 김씨의 요청을 받아들여 출국금지를 일시 해제했다.
김씨는 7월31일 출국했는데, 법무법인 김&장 소속의 조준형 변호사가 대동했다. 일종의 귀국보증이었다. 조 변호사는 미국에서 한국시각으로 일요일인 8월3일 오후 4시경 유재만 대검 중수2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검찰은 두 사람이 통화한 내용을 ‘진술청취서’라는 제목의 문서로 재판부에 제출했다.
조 변호사는 통화에서 “김충식 사장과 함께 송금영수증을 보관하고 있는 미국인 지인을 만나 송금영수증을 확보하고 내가 직접 확인했다”고 말했다. 검사(유재만 과장)가 송금액이 얼마냐고 묻자 2500만달러라고 대답한다. 조 변호사에 따르면 김충식씨 등이 2500만달러를 3000만달러라고 진술한 것은 2500만달러가 한화로 약 300억원이므로 당사자들이 3000만달러로 착각했기 때문이라는 것.
조 변호사가 통화에서 밝힌 송금일자는 2000년 2월26일이고 송금은행은 스위스 연방은행이다. 정 회장과 김충식씨 등은 송금시기를 2000년 1월경이라고 했으므로 이 또한 ‘착각’에 의한 거짓진술인 셈이다.
이 통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그 다음에 이어지는 대화다. 계좌번호와 송수신인을 묻는 검사의 질문에 조 변호사는 “한국 시간으로 8월4일 아침 9시10분에 다시 통화한 후 사무실로 팩스 송부하겠다”고 대답했다. 이에 검사는 “그렇게 하라”면서 “송금영수증 원본을 갖고 조속히 귀국하길 바란다”고 부탁했다.
다음날 아침 6시경 정 회장은 투신자살한 모습으로 발견됐고 조 변호사는 3000만달러 송금영수증을 팩스로 보내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정 회장의 자살에 충격을 받은 김충식씨가 ‘현대상선 보호’를 내세워 송금영수증 제출을 거부한다는 게 이유였다. 기막힌 우연이었다.
“지난번엔 고마웠다”
8월6일 조 변호사는 혼자 귀국했다. 원래 검찰과 약속하기로는 송금영수증과 더불어 미주 지사장 박재영 전무의 자술서도 받아오기로 했으나 박 전무 또한 현대상선에 피해가 있다는 이유로 진술을 거부하는 바람에 빈손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 후 3000만달러(2500만달러) 수사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검찰은 조 변호사를 통해 김충식씨에게 여러 차례 귀국을 종용했으나 김씨는 응하지 않았다. 조 변호사는 김씨의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검찰의 요구에 대해 김씨가 원하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박재영 전무도 검찰의 소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이 모든 내용은 검찰 수사보고서에 담겨 있다. 이상한 것은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이를테면 현대상선 장부를 압수하면 2500만달러의 수취인이 누구인지 밝힐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기자는 조 변호사에게 8개 항목의 취재질의서를 보냈으나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했다. 사무실 직원을 통해 통화를 원한다는 뜻을 여러 차례 전하고 심지어 방문까지 했으나 그는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현대상선 미주지사에도 전화를 걸어 박재영 전무에게 메시지를 남겨놓았으나 역시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정 회장, 이익치씨 등의 진술에 따르면 권노갑씨가 200억원을 요구한 시점은 2000년 2월 말이다. 2500만달러는 그보다 며칠 앞선 2월26일 김영완씨 계좌로 보내졌다. 권씨가 200억원을 요구하면서 “지난번엔 고마웠다”고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권씨는 2500만달러를 받은 지 며칠 만에 다시 200억이라는 거액을 요구했고 정 회장은 그 부탁을 들어준 셈이다. 아무리 당시 권씨가 실세였다지만 상식 밖의 일임에 틀림없다.
현대상선 미주법인이 스위스 연방은행의 김영완씨 계좌로 2500만달러를 송금했다는 2000년 2월26일은 토요일이었다. 한국은 그날(2월27일)이 일요일이라 입출금 확인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남는 날짜는 2월28일과 29일뿐이다.
“지난번엔 고마웠다”는 말은 적어도 돈이 입금된 사실을 알고 하는 말이다. 아무리 빨라도 권씨는 2월28일 오후 4시(스위스 시각 오전 9시)에야 돈이 입금된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 만나 “지난번에 고마웠다”고 말하는 건 코미디다. 29일엔 몹시 바빴다. 점심 때 김대중 대통령과 만나 선거대책을 논의하고 오후엔 네 군데의 지구당 개편대회에 참석했다. 그 와중에 시간을 내 정 회장을 만났다 치자. 2500만달러가 입금된 사실을 안 다음날 만나 “지난번에 고마웠다”면서 다시 200억원을 요구한 셈이다. 그때까지는 2500만달러를 쓰기는커녕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했을 텐데 말이다. 여기서 정 회장의 진술은 심각한 모순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