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호

17일짜리 국회의원 탄생…한국정치사의 ‘블랙 코미디’

  • 글: 정용관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yongari@donga.com

    입력2004-05-27 16: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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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대 국회의 해산을 앞두고 17일짜리 초단기 국회의원이 탄생했다. 민주당 비례대표 35번 안희옥씨가 그 주인공. 이 희대의 정치 코미디 배경에는 입각과 신당행, 보궐선거 출마 등 각자의 이해득실에 따라 짐을 싸고 풀기를 반복하는 한국 정치판의 씁쓸한 구태가 깔려 있다.
    17일짜리 국회의원 탄생…한국정치사의 ‘블랙 코미디’

    2003년 11월7일 ‘열린우리당행’ 의원들을 대신해 비례대표직을 승계한 민주당 새내기 의원 5명이 의원선서를 하고 있다. 원내는 ‘초단기 국회의원’이 된 안희옥 의원.

    ‘17일짜리 국회의원’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 민주당 안희옥(安熙玉·64) 의원. 비례대표 35번을 배정받았던 그는 16대 국회의원 임기가 거의 끝나가던 지난 5월12일 마침내 비례대표 의원직을 승계하게 됐다. 안 의원의 파란만장했던 4년간의 정치 경험은 본인 표현대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한국 정치사의 또 하나의 ‘블랙 코미디’다.

    그보다 앞선 5월3일 오후 2시경. 외부 강연을 마치고 서울 여의도 ‘청소년 여가선용 지도협회’ 사무실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뉴스를 읽던 안 의원의 눈에 충주발 연합뉴스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민주당 비례대표 박종완 의원이 무소속으로 충주시장에 출마하기 위해 탈당했다는 기사였다. 안 의원은 협회 부회장인 정성현씨를 불러 말했다. “이 기사 좀 봐라. 박종완 의원이 탈당했다. 정말 재미있다.”

    정씨는 곧 수화기를 들었다. 예전에 양승부 의원이 무소속으로 17대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했다가 번복한 적이 있는 터라 박 의원의 탈당 사실을 직접 확인하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 원내대표실의 당직자는 “모르겠는데요? 확인해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궁금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한 안씨는 평소 가깝게 지내던 임혜자 당 부대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임 부대변인도 금시초문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임 부대변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의원님, 축하합니다.”

    ‘짧은’ 금배지 달고 눈시울 붉어져



    주요 일간지들은 ‘26일짜리 초단기 국회의원의 탄생’이라며 안 의원의 비례대표 승계 사실을 보도했다. 그러나 30여년의 행정경험을 가진 안 의원의 생각은 달랐다. “행정절차 때문에 26일짜리 의원도 될 수 없을걸? 민원서류 처리기간이 1~2주일은 걸리니까 더 짧아질거야.” 그 생각은 들어맞았다.

    박 의원의 의원직사퇴서가 접수된 다음날인 5월4일, 비례대표 승계자가 중앙선관위에 통보됐다. 그러나 선관위 측은 “선관위 전체회의 일정이 잡혀 있지 않아 서면으로 개별 회람을 거쳐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밝혔다. 금쪽 같은 시간이 흘러 어느덧 5월12일. 국회사무처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선관위로부터 ‘의석 승계자 결정 통지서’가 도착했으니 국회의원 신분증과 금배지를 찾아가라는 전갈이었다.

    정성현씨가 국회에서 받아온 금배지를 달아주는 순간, 안 의원의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2000년 1월 대통령비서실 여성정책비서관(1급)으로 있다가 “당에 가서 일하라”는 특명을 받고 정치판에 들어온 지 4년. 그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면서 한꺼번에 회한이 밀려왔다.

    안씨는 이날 기자와 저녁식사를 하면서 농담 섞어 “나를 동정하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직을 마음껏 누려라. 금배지를 양쪽에 두 개 달고 더블로 누려라’고 하더라”며 웃었다. 그러나 이내 그의 눈시울은 불거졌다.

    4년 전 청와대에서 근무하다 16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여성위원장으로 발탁되어 정치판에 몸담게 된 안희옥 의원은 행정에는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었지만 정치에는 그야말로 ‘유치원생 수준’이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로부터 “집권당으로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선거를 치러야 한다. 선대위 여성위원장을 맡으라”는 언질을 받았지만, 여성계 영입파와 기존 당료파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견제가 심해 결국 선대위 체제가 꾸려질 때 ‘순진하게도’ 여성위원장직을 다른 영입인사에게 양보했다.

    “선대위 고위관계자가 ‘선대위 여성위원장 문제 때문에 골치 아프다. 여성계 영입인사 H씨의 압력이 거세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당 여성위원장은 제가 하고 선대위 여성위원장은 H씨가 맡으면 되죠. 역할을 분담하면 더 큰 효과를 내지 않겠어요?’ 했죠.”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는 법이다. H씨는 비례대표 상위 순번을 배정 받았지만 안 의원은 35번으로 밀려났다. 평소 친분 있던 모 기자로부터 당시 실세인 K씨를 만나야 한다는 충고를 들었지만 거절했다.

    “처음에는 ‘당으로 보내놓고 이렇게 망신 줄 수 있느냐’며 분노했죠. 저를 당으로 보낸 청와대 고위관계자에게 항의했더니 ‘그럴 리 없다. 내가 아침에 명단을 봤을 때만 해도 훨씬 앞 번호였는데’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2년쯤 지나 정치권의 ‘서당개’가 되어 정치 메커니즘을 터득한 후에는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미성년자도 아니고, 나 스스로 일어났어야 했는데….”

    입각과 분당…줄줄이 금배지 반납

    비례대표 35번을 배정받은 후 주위로부터 ‘언제쯤 금배지를 달게 되냐”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농담 삼아 “의원들이 다 죽어도 안될 걸”이라고 응수했다는 안 의원. 그러나 정치상황이 급변하면서 지난 1월, 마침내 금배지를 달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는 듯했다.

    2000년 9월 김한길 의원이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입각하면서 김화중 의원 승계, 2000년 12월 서영훈 의원이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선출되면서 최명헌 의원 승계, 2001년 1월 한명숙 의원이 여성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박양수 의원 승계, 2001년 9월 유삼남 의원이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입각하면서 조배숙 의원 승계, 2003년 2월 김영진 의원이 농림부 장관, 김화중 의원이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입각하면서 오영식 구종태 의원 승계….

    이렇게 비례대표 순위가 착착 앞당겨진 데다 민주당 분당 과정을 거치며 신당 창당에 참여한 비례대표 의원들이 무더기로 금배지를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비례대표 의원들의 신당행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해 국정감사가 끝난 직후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던 열린우리당 창당주비위원 박양수, 이미경, 이재정, 허운나, 오영식 의원 등은 사퇴하지 않고 시간을 끌다가 11월 초가 되어서야 비로소 민주당을 탈당했던 것. 이에 안상현, 황창주, 박종완, 한충수, 양승부 의원이 비례대표직을 승계했다.

    한때 이들의 탈당이 늦어지자 여의도 옛 민주당사에는 “이곳은 정통 민주세력의 성스러운 전당이니 이들(신당파 비례대표)의 출입을 금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리기도 했다.

    조배숙 의원은 앞의 5명이 탈당할 때까지도 합류하지 않고 의원직을 유지했다. 조 의원은 나중에 “성매매 관련 법률개정작업을 매듭짓기 위해 사퇴서를 내지 못했다”고 해명했으나 친지들에게는 “신당에 갈 의지는 확고하지만, 솔직히 말해 원내에 남아 있어야 의정보고서도 낼 수 있고 선거운동을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탈당하지 못했다”고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튼 조 의원이 떠밀리다시피 그해 12월말 탈당했고, 박금자 의원이 비례대표직을 이어받았다. 이어 김운용 의원이 비리혐의로 검찰조사를 받자 지난 1월 의원직을 포함한 모든 공직을 사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열린우리당 창당주비위에 참여한 김기재 의원도 2월초 탈당할 것으로 보도되면서 점차 금배지가 가시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비례대표 29번 송희섭 후보가 2002년 대선 때 국민통합21로 당적을 바꿨고, 34번 최홍건 후보도 일찌감치 열린우리당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4개월의 임기가 남은 비례대표 의원직을 승계할 수 있었던 것. 그때는 당 고위관계자들로부터 “축하한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의원직을 내놓겠다며 보도자료까지 돌린 김운용 의원은 끝내 금배지를 내놓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과 면담한 뒤 부산시장 재보선 출마와 부산 연제구 총선 출마 사이에서 고심하던 김기재 의원도 끝까지 탈당하지 않았다. 안 의원의 비례대표직 승계는 물거품이 되는 듯했다.

    올 듯 말 듯한 ‘내 차례’

    그렇게 속절없이 시간이 흐르다 3월이 됐다. 한국노총 위원장 출신 박인상 의원이 “이제 정치생활을 마감하고 늙은 노동자로 돌아가겠다”며 전격적으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안 의원은 이번에도 주변에서 “이젠 정말 당신 차례다. 축하한다”는 전화를 여러 차례 받았다. 그러나 탈당한 것으로 알려졌던 비례대표 33번 이종성 후보가 당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이 후보가 의원직을 잇게 됐다.

    안 의원은 ‘금배지와는 인연이 없는 모양’이라며 협회 일에만 전념했다. 그리고 3월28일. 또다시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양승부 의원이 기자회견을 열어 17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하기 위해 탈당하겠다고 선언했으니 빨리 의원직 승계 관련 서류를 준비하라는 전화가 원내대표실로부터 걸려온 것.

    당시는 총선을 앞두고 있던 때라 의석수를 기준으로 책정되는 선거보조금 때문에 ‘공백’이 있어서는 곤란하다며 서둘러달라는 당부였다. 그러나 이틀 뒤 양 의원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 또다시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17대 총선에서 민주당 비례대표 17번을 배정받은 안 의원은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고 협회 일에만 전념했다. 그러던 중 엉뚱하게도 충주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박종완 의원의 탈당으로 ‘기적적으로’ 16대 국회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5월7일. 국회 헌정기록보존소 직원은 안씨의 사인을 받으러 갔다. 국회가 마감할 때마다 의원들의 사인을 받아 기록으로 남기는 관례 때문이었다. 안 의원이 비록 짧은 기간이라 하더라도 엄연히 대한민국 헌법기관임을 분명히 보여준 사례였다.

    서울시 5급공무원으로 출발

    1965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안 의원은 경성제대를 졸업한 부친의 권유로 판사가 되기 위해 1년 동안 사법시험 준비를 했다. 그러다 우연히 서울시 5급(현재는 9급) 공채시험 공고를 보고 응시, 동사무소 근무를 시작으로 공직에 몸담았다. 당시만 해도 사법시험을 통과한 여성은 작고한 이태영 박사가 유일했던 때이다. 여러 사정으로 판사의 꿈은 접었지만 안 의원은 공무원으로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가 맨처음 맡은 보직은 동사무소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이후 승진을 거듭해 마포부녀복지관장, 가정복지과장 등을 두루 거쳤으며 정무조정관실 조정관으로 파견근무하는 등 여성정책 수립에 큰 역할을 했다. 그는 ‘가정도우미’ 제도를 국내에 처음으로 도입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안 의원은 또한 1997년 8월 여성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1급 공무원인 서울시 여성정책보좌관으로 승진했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우리나라 여성정책을 총지휘하는 대통령비서실 여성정책비서관으로 일했다. 33년 공직생활의 대미를 청와대 1급 비서관으로 화려하게 마무리 한 것.

    그는 민주당에서 비례대표 35번으로 ‘물’을 먹은 뒤, 2000년 12월 청소년 여가선용 지도협회를 만들었다. 청소년에게 창의적인 놀이문화를 보급하자는 취지다. 이듬해인 2001년 제1회 청소년 무예 및 댄스스포츠 경연대회를 열었다. 안 의원은 “잘 노는 청소년도 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협회의 설립목적”이라고 말한다. 안 의원은 다양한 사례를 들어가며 쉽고 재미있게 강의하는 실력도 뛰어나 사방에서 강연 초청을 받기도 한다.

    기억력이 뛰어난 그는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소상히 외운다. 64세의 나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하고 술도 잘한다. 또 오랫동안 여성 관련 업무를 해온 덕분에 여성계 인사들의 개인 스토리까지 훤히 꿰뚫고 있을 정도다.

    이러한 안 의원의 사회활동에는 부군 박동식씨의 외조(外助)가 가장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험난한 정치판에서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당신이 최고야”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최대 2억7000만원까지 쓸 수 있는 마이너스 통장까지 만들어줬다는 후문이다.

    한국 정치의 씁쓸한 뒷모습

    우여곡절 끝에 금배지를 달았지만 안 의원으로서는 아쉬움이 많다. “언론에서 ‘17일짜리 국회의원’이라고 희화화하더군요. 의정활동도 안하는데 왜 세비를 주느냐고도 하고요. 저는 차제에 국회의원 승계제도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봅니다. 예컨대 임기가 3개월 미만일 경우엔 비례대표라 하더라도 의원직을 승계할 수 없도록 한다든지 하는.”

    안 의원은 “이번 의원직 승계는 코믹 드라마나 다름 없다. 19명의 비례대표직 당선에 그쳤던 민주당에서 35번을 받은 내가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정부 입각, 분당 사태, 보궐선거 사퇴 등 격변하는 한국 정치의 씁쓸한 구태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16대 국회만 보더라도 임기가 한두 달 정도밖에 안되는, 이름만 국회의원인 이들이 안 의원을 비롯해 박경섭(한나라), 변웅전(자민련), 이종성(민주), 이만재(한나라) 의원 등 5명이나 된다.

    안 의원은 5월13일 부군과 함께 미국으로 떠날 계획이었다. 조지타운대에서 MBA 과정을 이수한 아들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안 의원은 미국 방문을 포기했다. 짧은 임기에 의원회관 사무실도 배정 받지 못했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에서다.

    “남녀평등문제 등은 제가 아니더라도 할 사람이 많죠. 그보다 훨씬 더 절박한 게 있어요. 사회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요(要)보호여성’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강력한 처벌규정을 둔 관련 법안을 만들고 싶었는데….”

    안 의원은 특유의 입담으로 정치 경험과 포부를 이야기하다가도 문득문득 허공을 응시하곤 했다. 의원선서조차 하지 못한 초단기 국회의원으로 임기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게 허탈하고 안타까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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