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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리포트

‘카리스마 망령’이 한국축구 망친다

포르투갈의 名將이 왜 한국에선 안 통할까

  • 글: 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차장 mars@donga.com

‘카리스마 망령’이 한국축구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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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쿠엘류 한국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이 사실상 경질됐다. 성적부진이 1차적 원인이다. 그러나 쿠엘류 경질의 이면엔 한국축구계의 고질적인 ‘카리스마 숭배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국가대표팀 감독의 카리스마는 과연 만병통치약인가.
‘카리스마 망령’이 한국축구 망친다
한국 국가대표팀 쿠엘류 감독이 지난 4월19일 부임 14개월 만에 사실상 경질됐다. 김진국 축구협회 기술위원장도 이에 따른 책임을 지고 5월10일 전격 사퇴했다. 그러자 벌써부터 차기감독에 대한 하마평이 무성하다. 다만 ‘카리스마 있는 감독’이어야 한다는 데는 다른 의견이 없는 것 같다. 쿠엘류가 사람만 좋았지 카리스마가 없어서 선수 장악에 실패했다는 게 그 이유다.

그러나 일본 ‘아사히신문’의 축구 전문기자 나카코지 도르(中小路 徹)의 생각은 다르다.

“쿠엘류 감독의 취임은 한국 축구에 있어서 새로운 도전이었다고 본다. 히딩크 감독 아래 한국은 응축된 조직력을 만들어내 월드컵 4강에 올랐다. 이제부터는 개인의 타개력과 창조력의 중요성을 주입하자는 것이 쿠엘류 감독의 기본노선이었다. ‘최후까지 남는 것은 조직전술이 아니라 개인의 힘’이라는 남미 축구와 궤를 같이하는 포르투갈인 다운 발상이었다. 이는 또한 한국축구가 한 차원 더 높아지기 위해 불가결한 개념이었다. 그는 히딩크 축구에 플러스알파를 위한 적임자였다.

이러한 타입의 지도자는 자잘한 약속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이 재치를 발휘하는 것, 자유로운 발상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연습할 때도 전술을 가르치기보다 선수끼리 서로의 의도를 피부로 느껴 감각적으로 팀을 만들어내도록 한다. 원래 시간이 걸리는 일이기에 히딩크 감독보다 연습시간이 더 필요했다. 기자회견에서 쿠엘류 감독이 ‘14개월 중 훈련시간은 72시간밖에 없었다. 축구에서 목적을 이루려면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한 대목은 그런 뜻이 내포된 것이다.

한국인들에겐 몰디브와의 무승부가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레바논 베트남 몰디브를 상대로 한 독일 월드컵 1차 예선에서 한국이 패퇴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면 좀더 기다릴 수 없었을까. 아시안컵을 위한 7월 합숙훈련에는 유럽파와 J리그파도 합류해 연습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다. 이 대회 성적을 본 뒤에 결정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눈앞의 성적이 아니라 최종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장기적 전망이 중요하다는 것은 친선경기 성적에 개의치 않고 의연하게 대처했던 히딩크 감독을 통해 이미 배우지 않았던가.”



히딩크 감독이 ‘족집게 강사’라면 쿠엘류 감독은 ‘가정교사’다. 족집게 강사에겐 시험 때까지 시간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조직적으로 집중해서’ 가르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카리스마가 필요하다. 카리스마형 감독은 정열적이고 에너지가 넘쳐흐른다. 그 에너지로 사람들을 휘어잡아 앞으로 끌고 간다.

‘족집게 강사’와 ‘가정교사’

카리스마형 리더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러일으키고 그들로부터 잠재력을 이끌어낸다. 마틴 루터 킹 같은 종교지도자나 성공한 세일즈맨들이 카리스마적 유형의 인물이다. 그들은 논리적이기보다는 감수성이 뛰어나고 달변가들이다. 의사전달능력이 좋아 사람들을 순식간에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카리스마’란 단어엔 열정, 확신, 명령, 추종, 희망, 감동, 지도력, 매력 등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윈스턴 처칠, 마이클 조던, 히딩크, 홍명보, 허재 등은 사람들을 이끌어 목표를 달성시키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비전을 주고 뭔가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카리스마형 리더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1930년대 독일의 경제공황은 히틀러라는 카리스마형 인간을 낳았다. 당시 독일인들은 히틀러가 자신들을 구원해줄 ‘메시아’라고 생각했다.

카리스마형 리더는 흔들리지 않는다. 한번 방향을 잡으면 누가 뭐라든 개의치 않고 ‘무소의 뿔’처럼 간다. 결국 자신의 노선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비정하게 내리친다. 성공하면 ‘대박’이지만 실패하면 ‘쪽박’이다.

히딩크가 카리스마형 리더라면 쿠엘류는 자율형 리더다. 흔히 용장(히딩크)과 덕장(쿠엘류)으로도 구분된다.

2000년 12월17일 한국에 첫발을 내디딘 히딩크는 “난 한국에 대해서 잘 모른다. 비행기 안에서 한국 안내 책자를 읽었을 뿐”이라고 첫 소감을 말했다. 그는 첫 한식 식사 때 네덜란드에서 같이 온 핌 베어벡 코치가 능숙한 젓가락질을 자랑하자 “배고플 땐 젓가락보다 숟가락이 낫다”며 숟가락으로 밥을 가득 퍼 입에 넣었다.

이에 비해 2003년 2월3일 서울에 처음 온 쿠엘류는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며 수줍게 인사했다. 얼마 뒤인 3월20일 첫 국가대표팀 명단을 발표할 땐 오른손을 불끈 쥐며 한국말로 “우리는 자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첫 한식 식사 때도 “한국음식에 빨리 익숙해지고 싶다”며 서투른 젓가락질로 열심히 반찬을 날랐다.

히딩크는 코칭스태프나 선수들로 하여금 자신을 ‘미스터 히딩크’로 부르도록 엄명했다. 그러나 쿠엘류는 “축구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나를 ‘움베르투’로 불러달라. 나도 당신들을 ‘(박)성화’ ‘(최)강희’로 부르겠다”고 말했다. 감독과 코치가 서로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유럽에서조차 대단한 파격이다.

2003년 3월27일 한국 축구대표팀은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첫 훈련에 들어갔다. 쿠엘류는 자신이 직접 플라스틱 콘으로 미니게임을 위한 경계선을 만들었다. 훈련 전 실무자에게 미니게임을 위한 이동식 골대를 준비하라고 했으나 미처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무자가 사정 설명을 하자 쿠엘류는 ‘없으면 없는 대로 하자’며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아마 히딩크라면 부산 시내를 다 뒤져서라도 가져왔어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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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차장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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