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절에 베이징 톈안먼광장 쑨원의 초상 앞에 모인 인파.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역사가 오랜 중국엔 오래된 도시가 많다. 그중에서도 여러 왕조에 걸쳐 도읍지였던 시안(西安), 뤄양(洛陽), 난징, 베이징(北京)을 4대 고도(古都)로 꼽는다. 여기에 카이펑(開封)을 추가하면 5대 고도가 되고, 항저우(杭州)까지 포함하면 6대 고도가 된다. 1988년부터 한 지리학자의 제안에 호응하여 7대 고도를 꼽는 사람들이 생겼는데, 이때는 은나라 도읍지 은허가 있는 안양(安陽)이 들어간다.
남쪽의 도읍이라는 뜻의 이름에서도 짐작되듯 난징은 서쪽 도읍인 시안에 버금가는 2500년의 긴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다. 동오(東吳)에서부터 시작해 동진, 남조, 남당의 수도였고, 주원장이 몽고족의 원나라를 무너뜨리고 명나라를 세웠을 때도 그 수도였다(후에 명나라는 수도를 베이징으로 옮긴다). 근대에 들어서는 청나라가 무너지는 데 결정적인 타격을 가한 홍수전(洪秀全)의 농민 반란군이 세운 태평천국의 수도였고, 아시아 최초로 근대 민주공화정의 기원을 연 쑨원(孫文)의 중화민국 수도도 난징이었다. 고대부터 1940년대 말까지 10개 왕조, 혹은 국가의 수도였다.
물론 도시의 명칭은 그때마다 바뀌었다. 삼국시대에는 건업(建業)이라 불렸고, 명나라가 베이징으로 천도한 뒤에는 남도(南都)로, 태평천국 시기에는 천경(天京)으로 불렸다. 사실 난징은 지금도 수도이긴 하다. 타이완에 있는 국민당에 그렇다. 타이완 국민당은 공산당에 져 대륙을 내주고 타이완으로 후퇴했지만 그렇다고 대륙의 영토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영토가 북한을 포함하고 있듯이, 국민당에 있어 중화민국의 영토는 타이완 섬만이 아니라 대륙을 포함한다. 그들에게 대륙 본토는 언젠가는 돌아가 되찾아야 할 땅이며, 타이완은 임시수도이고 난징이 정식 수도인 것이다.
난징의 과거는 찬란하지만 현재는 초라하다. 난징을 수도로 정한 국민당의 중화민국이 공산당에 패해 타이완으로 간 뒤 수도로서 난징의 역사는 끝났다. 하지만 수도의 지위를 베이징에 넘겨줘 난징이 초라해진 것은 아니다. 난징이 이렇게 된 것은 베이징 때문이 아니라 상하이 때문이다. 난징은 이제 더는 상하이의 경쟁상대가 아니다. 100여 년 전 상하이가 작은 어촌일 때, 난징은 베이징에 대비되는 중국 동남지역의 중심이었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도시였다. 그런데 중국 동남지역의 정치·경제·문화 중심으로서 난징의 지위는 100여 년 사이에 상하이로 완전히 넘어가고 말았다.
난징의 곤혹스러운 위상
요즘 난징의 위상은 말이 아니다. 난징은 분명 장쑤(江蘇)성의 성도(省都)다. 장쑤성의 남부에는 유명한 쑤저우(蘇州)가 있고, 우시(無錫)가 있다. 최근 들어 세계 최대 자동차 부품업체인 보쉬(BOSCH)와 한국의 하이닉스 반도체가 공장을 짓는 등 자동차, 반도체를 중심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는 도시들이다. 그런데 이들 도시는 지리적으로는 장쑤성에 속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상하이권(圈)에 속한다. 그런 가운데 경제규모나 도시발전 면에서 난징을 위협하고 있다. 가난한 가장이 식솔을 잃듯, 쑤저우와 우시가 난징을 버리고 인근 상하이의 경제권으로 편입되면서 난징은 그 외곽에 외로이 떨어져 있는 형국이다. 물론 난징의 번화가인 신제커우(新街口) 일대엔 세련된 고층건물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지만, 중국의 다른 도시에 비해 활력이 떨어진다. 태평천국의 몰락과 국민당 정부의 파탄, 난징대학살 등 난징이 겪은 근대의 어두운 역사가 활력을 앗아가버린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