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창순 박사가 처음 암에 걸린 건 1957년, 일본 쇼와(昭和)의대 인턴으로 근무할 때였다. 만 스물다섯, 꽃다운 나이였다. 그로부터 25년 뒤인 1982년, 고 박사에게 또 한번 암이 찾아왔다. 4년 임기의 서울대병원 부원장직에서 물러나면서 받은 건강검진에서 십이지장암이 발견된 것이다. 그리고 1997년, 서울대병원을 정년퇴임한 지 사흘 만에 간암 선고를 받았다. 그의 나이 예순다섯. YS 주치의 임기를 5개월 남겨둔 시점이었다.
평생 단 한번도 걸리지 않길 바라는 암이 세 번씩이나 그것도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에 각각 다른 부위에서 발견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세 번 모두 암세포가 상당히 커진 상태에서 발견됐음에도 거뜬히 이겨내고 노후를 건강하게 보내고 있다는 건 놀랄 만한 일이다. 그런 고 박사를 사람들은 ‘오뚝이’ ‘부도옹(不倒翁)’이라고 부른다.
통화를 마친 고 박사와 마주앉았다. 암을 세 번이나 이겨낸 ‘기적의 사나이’는 골리앗이 아니었다. 오히려 다윗에 가까운 작은 체구에 인상 좋은 할아버지다. 암을 세 번이나 물리친 그도 노화는 비켜갈 수 없었나 보다. 오른손이 약하게 떨렸다. 그러나 미소가 떠나지 않는 얼굴, 재미있는 말솜씨는 그를 강인하고 젊어 보이게 한다.
-박사님 이야기가 곧 책으로 나온다죠.
“예,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책이 나오나 봅니다. 이 책은 의사로서 쓴 과학적이거나 교과서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세 개의 독립된 암을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에 앓은 한 자연인의 ‘암 이력서’라고 볼 수 있어요. 내가 온몸으로 부딪친 경험을 그대로 밝혔거든요. ‘이렇게 해야만 암을 이길 수 있다’거나 ‘이것이 정도(正道)’라고 알려주는 게 아니라 이렇게 잘못 생활하니까 암에 또 걸리더라, 그리고 암에 걸리면 다 죽는다고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도 않더라 하는 이야기를 썼어요. 무엇보다 생활습관을 개선하면 면역력이 강화돼 암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 긍정적인 신념을 갖고 생활하면 암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긍정적인 경험, 몸으로 부딪치는 힘, 이런 걸 강조한 암 환자의 소박한 이력서죠.”
-세 번씩이나 암 선고를 받았을 때 심정이 어땠나요.
“스물다섯 살에 암 판정을 받았을 때는 믿지 않았어요.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의료기기가 발달하지 않아서 수술한 뒤에도 ‘니들이 뭘 잘못 봤을 게다’라고 생각했어요. 암이라고 믿지 않았으니 갈등이란 게 있을 수 없었죠. 1982년 십이지장암 선고를 받았을 때는 첫째가 대학 2학년, 둘째가 고교 3학년, 셋째가 중학 3학년, 넷째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어요. 죽으려야 죽을 수 없는 상황인 거죠. 11시간에 걸쳐 십이지장과 위 절반 이상, 췌장 두부, 담낭과 소장 일부를 들어내는 대수술을 했는데, ‘암세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는 당시 서울대병원 민병철 교수의 말을 절대적으로 믿고, 이젠 내가 몸을 튼튼히 만드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면서 3년간 모범생활을 했죠.
그러고는 15년 뒤, 대통령 주치의 시절 또 한번 암이 찾아온 거예요. 1997년 9월3일 서울대 교수직을 퇴임한 지 사흘 뒤 ‘학교 떠나기 전에 건강검진이나 받아두자’는 생각으로 검사했는데 간암이 발견됐어요. 간 오른쪽에 야구공만한 암세포 덩어리가 있고, 왼쪽 부신(곁콩팥)에도 탁구공만한 암 세포가 있었어요. 이번에도 의료진을 전적으로 믿고 수술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