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 이것이 건포도 명상이다. 읽기엔 지루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따라 해보면 전혀 다른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무심코 아무 생각 없이 하던 행동을 꼼꼼히 따라가 보면서 지금,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이 명상의 목적이다. 건포도 세 알로 20분쯤 마음을 모을 수 있다. 불가에서 행하는 참선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이모꼬(화두) 대신 눈에 보이고 냄새가 나고 맛도 느낄 수 있는 건포도를 들고 왔을 뿐이다. 우리 감각의 실체를, 깨어 있는 마음을 좇아가기 위한 가장 간단한 훈련이다. 추상이 아닌 건포도라는 실체, 오감을 동원할 수 있는 대상이 눈앞에 있기 때문에 마음 움직임을 따라가기가 비교적 수월하다.
이렇게 천천히 보고 듣고 촉감을 느끼고 냄새 맡고 맛보면서 마음을 찬찬히 살피면 우리 마음에도 근육이 생길 수 있다. 아령을 들고 내려서 이두박근과 삼두박근을 키우듯 마음의 행로를 샅샅이 지켜보는 마음챙김 명상을 거듭하면 마음근력 전반이 강화된다(마음에도 근육이 있다는 장 교수의 설명에 나는 무릎을 친다). 마음근육은 집중력이기도 하고 포용력이기도 하고 인내력이기도 하다. 실제로 임상에서는 통증 감소, 스트레스 해소, 면역력 증강, 우울증 해소 같은 반응으로 나타나는 게 증명됐다.
마음챙김 명상
서초동 교육개발원 회의실 매트에 똑바로 앉아 나는 장 교수가 이끄는 대로 저 건포도 명상을 체험했다. 전에 몇 번 여름 산사에서 실시하는 참선수행에 참가했는데, 건포도를 눈앞에 들고 오감을 집중하는 것은 화두를 머릿속에 잡고 면벽하고 앉는 불교식 수행보다 훨씬 마음 모으기가 쉬웠다. 반야심경의 색·성·향·미·촉·법을 외면하지 않고 따라가며 지켜보는 방식이라 장 교수가 지시하는 대로 놓치지 않고 생각을 풀어내면 되는 일이었다. 난생 처음 내 입 안에서 나타나는 침의 움직임을 자세히 지켜봤다. 배가 고픈 상태가 아니었건만 입 근처에 건포도가 다가오자 내 혀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침을 마구 분비했고 혀도 침이 분비되는 쪽으로 따라 움직였다.
그걸 느껴봐서 무슨 소용이냐고? 아니다. 일상에서 자신의 마음이나 몸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지켜보는 각성훈련은 우리를 놀랍게 변화시킨다. 자기 몸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감각을 비판 없이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 고통이나 우울까지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된다.
만성통증 환자가 명상수련을 반복하면 통증을 그저 바라볼 뿐 아픔을 느끼지 않게 된다. 우울이나 불안증 환자는 우울을 일으키는 생각 자체를 바라봄으로써 우울이나 불안 속에 빠져들지 않게 된다. 통증이나 불안이나 우울과 관련한 생각은 그저 생각일 뿐 실체가 아닌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