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호

‘웰컴 투 동막골’

포연 속에 피어난 순수한 휴머니즘

  • 윤문원 이지딥 논술연구소장 mwyoon21@hanmail.net

    입력2006-03-14 10: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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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던 기간은 단 30년. 오늘도 지구 한구석에선 원하는 것을 빼앗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전쟁이 한창이다. 6·25전쟁 중 지친 영혼들이 동막골로 모여들었다. 동막골에서 그들은 적과 동지로 나뉘기 전 한 개인으로서 진한 우정을 나눈다.
    ‘웰컴 투 동막골’
    6·25전쟁과 남북 문제는 여전히 시대의 아픔이자 민감한 이슈이다. 현재 남과 북은 ‘화합’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금강산으로 가는 관광길이 열리고, 남한 인력이 북한 개성공단으로 출근한다. 컴퓨터 그래픽이긴 하지만 TV에서는 남북의 학생들이 북한 퀴즈쇼에 나와 문제를 푸는 장면도 연출되고 있다. 남북한의 대립과 화해라는 이분법적 논의를 넘어 범세계적인 연합이 중요해진 상황이다. 이념으로 서로를 구분하기 전에 인간 본성에 호소력을 갖는 ‘순수’의 가치를 되짚어봐야 한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순수함과 따뜻함을 잃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6·25전쟁에서 한 발짝 비껴 있던 두메산골 ‘동막골’이란 마을을 무대로, 이곳에 들어온 국군과 인민군, 미군이 갈등을 빚고 화해하는 내용이다. 전쟁이라는 급박한 상황에서 적군과 함께 생활한다는 기발한 설정과 구수한 사투리 대사가 웃음을 자아내며, 산골마을 사람들의 순박함과 풋풋한 인간애, 이념을 초월한 희생정신이 여운을 선사한다.

    남북한 관련 문제는 논술로 출제되기보다는 통일, 남북협력, 민족동질성 회복을 위한 언어 이질화 극복방안 등의 주제로 심층면접에서 많이 다뤄진다. 특히 이 영화의 중요한 장치인 사투리와 같이 언어와 관련된 논제가 주요 대학의 논술 문제로 출제되고 있다. 이화여대 2006년 정시 논술에서 ‘언어가 사회적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이, 고려대 2002년 수시2학기 논술에서 ‘언어의 특성과 미래 사회에서의 언어와 인간의 관계’가 출제됐으며, 프랑스 대학입학 논술인 바칼로레아에서도 ‘언어의 기능’이 출제된 바 있다.

    6·25전쟁이 절정에 이른 1950년 늦가을 강원도 두메산골의 동막골. 마을 소녀 여일(강혜정 분)의 클로즈업된 얼굴이 점점 멀어지다 머리에 꽃을 단 천진난만한 모습이 비친다. 여일의 머리 위로 날아가던 정찰기가 고장으로 불시착한다. 조종사인 연합군 대위 스미스(스티브 태슐러 분)는 부상을 당해 몸을 가누기조차 힘겹다. 정찰기의 비행을 추적하던 연합군 사령부에서는 인민군의 대공포화를 맞고 추락한 것으로 추정한다.

    정신세계가 조금 이상한 여일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숲 속에서 휴식을 취하던 패잔 인민군 장교인 리수화(정재영 분)와 하사관 장영희(임하룡 분), 소년병 서택기(류덕환 분) 앞으로 휙 지나간다. 이들은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나 총을 겨누며 “꼼짝마라” 하고 외치지만 여일은 씨익 웃으며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내 좀 빨라. 난 참 이상해. 숨도 안 멕히고…. 이래 팔을 빨리 휘저으믄, 다리도 빨라지미. 다리가 빨라지믄 팔은 더 빨라지미. 땅이 막 뒤로 지나가미…. 난 참 빨라. 뱀이 나와. 여 누워 있지 마라. 뱀 이거 깨물믄 마이 아파. 우터 그래 아픈지….”

    리수화 일행은 여일이 사는 마을로 가서 잠깐 휴식을 취하기로 하고 길을 따라 나선다.

    한편 한강다리 폭파 임무 수행으로 많은 이의 목숨을 앗았다는 괴로움에 부대를 탈영한 국군 소위 표현철(신하균 분)은 권총 자살을 기도하던 중 다른 부대에서 탈영한 국군 위생병 문상상(서재경 분)의 만류로 자살을 포기하고, 약초 캐러 나온 마을 사람을 따라 동막골 촌장(정재진 분) 집에 도착한다. 이곳에선 스미스가 동네 주민들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고 있지만, 아무리 돌아갈 방법을 물어도 영어를 알아듣는 사람이 없으니 미칠 지경이다.

    국군과 인민군의 만남

    동막골 주민들은 전쟁이 난 줄도 모르고 있다. 문상상은 동막골 주민에게 전쟁이 난 사실을 알려준다. 이때 여일을 따라 인민군 리수화 일행이 마을로 들어오고 표현철과 문상상은 깜짝 놀라 총을 집어든다. 평화로운 마을 한가운데서 불과 몇 미터 거리를 두고 총부리를 겨눈 국군과 인민군.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하지만 세상 물정과 담을 쌓아 총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도 모르는 동막골 주민들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심지어 여일은 서로 눈을 부라리고 총과 수류탄으로 위협하는 국군과 인민군의 닮은 모습을 보고 리수화에게 “근데 있잖어…쟈들하고 친구나?” 하고 묻는다.

    ‘웰컴 투 동막골’

    영화 ‘웰컴 투 동막골’ 포스터.

    밤을 꼬박 새우고 다음날 낮까지 계속되는 대치상황. 여일은 수건으로 서택기의 비 맞은 얼굴을 닦아주며 천진하게 웃는다. 그런데 아뿔싸. 서택기가 들고 있던 수류탄 안전핀을 가락지인 줄 알고 뽑아 냉큼 도망쳐버린 여일.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모두 어쩔 줄 모른다.

    시간은 흐르고 하품은 자꾸 나오고 결국 서택기가 졸음을 못 이겨 수류탄을 놓치고 만다. 급박한 순간 국군장교 표현철이 몸을 던져 수류탄을 감싸안는다. 다행히 수류탄은 불발탄이었다. 이를 본 리수화가 표현철이 들고 있는 수류탄도 불발탄이 아니냐고 빈정거리고 표현철은 수류탄을 곳간 쪽으로 굴려 던진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 눈이 동그레져 땅에 납작하게 엎드렸지만 1초, 2초 시간이 흘러도 폭발음은 들리지 않는다. 어찌된 영문인지 궁금해 고개를 드는 순간 하늘에선 눈송이 모양의 팝콘이 흩날린다. 수류탄이 겨울 양식을 모아둔 옥수수 창고에서 터진 것이다. 팝콘 눈송이라니…. 이 순간만큼은 모두 같은 곳, 하늘을 바라보며 동심(童心)에 젖는다.

    모두가 동막골 주민

    일단 서로 총을 겨누지 않기로 합의한 군인들은 동막골에서 불안한 동거를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이 곡물 창고가 폭발해 식량이 부족하다고 불만을 터트리자 리수화 일행은 식량을 채우기 위해 밭에 나가 감자 캐는 일을 돕는다.

    한편 스미스는 매일같이 추락한 정찰기에 올라가 고장난 무전기로 자신의 존재를 사령부에 알린다. 사령부는 이 교신을 감지하고 생존을 확인하지만 스미스에게는 사령부의 응답 내용이 전혀 들리지 않는다.

    남북한 장병들은 서로 티격태격하며 동막골 주민들의 농사도 돕고 놀이도 하며 잠시 전쟁에서 벗어난 삶을 즐긴다.

    어느 날 동네 꼬마와 스미스가 숲 속에서 멧돼지를 만나 혼비백산한다. 멧돼지가 방향을 바꿔 서택기를 향해 공격하자 표현철이 몸을 날려 구한다. 이때 다시금 표현철을 향해 돌진하는 멧돼지. 이 상황에서 리수화, 장영희, 문상상, 스미스가 힘을 합쳐 멧돼지를 잡아 바비큐를 만들어 함께 즐긴다. 오랜만에 고기를 포식한 이들은 한층 가까워진다. 리수화와 표현철은 메밀꽃이 점점이 박힌 들판에 앉아 변을 보면서 서로 통성명을 하고 긴장의 끈을 놓아버린다. 멧돼지 사건을 계기로 서로에 대한 벽을 허물며 이들은 점차 ‘동막골’ 주민으로 변해간다.

    연합군 사령부에서는 스미스의 마지막 교신점인 동막골을 두고 설전이 한창이다. 미군측은 동막골에 인민군 기지가 있는 것으로 추측하고 폭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한국군 대령은 불확실한 정보를 토대로 위험을 감행할 수 없다고 말한다. 결국 미군의 주장대로 스미스 구출 작전 준비에 들어가고, 작전 개시 24시간 후 폭격을 하기로 결정한다.

    동막골에서는 이러한 사실도 모른 채 남북한 장병과 스미스, 주민들이 어울려 들판에서 풀썰매도 타고 게임도 하며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연합군은 스미스를 구출하기 위해 폭격 작전을 개시하는데, 공중에서 낙하 잠입한 탓에 동막골 사람들이 불을 밝히고 노는 곳을 적진으로 오인한다. 동막골 사람들이 놀고 있는 곳에 총을 겨누고 접근하는 작전 군인들. 하필 이때 스미스 대위는 할머니를 집으로 데려다 주기 위해 자리를 비운 상태다. 순박한 동막골 주민들이 인솔 미군 장교를 향해 인사하자 그는 “장난인 줄 아나! 빨갱이 새끼들이 내 인내력을 시험해?”라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연합군 작전팀의 위협이 계속되자 촌장이 나선다.

    “아니 왜 그래 부애가 많이 났소. 자 진정들 해요.”

    그러자 군인들은 촌장에게 사정없이 발길질을 하고 머리를 짓이기며 “빨갱이와 대공포를 본 사람은 나와!” 하고 위협한다. 나이 지긋한 촌장이 피를 물고 쓰러진 모습을 보고 울컥한 표현철과 리수화는 군인들에게 달려들어 총을 뺏고 작전 군인들을 사살한다. 잠시 불길한 정적이 흐르고. 저만치 떨어진 곳에 여일이 쓰러져 있다. 그는 총 맞은 배를 가리키며 “여가… 뜨구와… 마이 아파” 하며 숨을 거둔다.

    생포된 국군은 자신들은 스미스를 구출하기 위해 왔고 곧 마을을 폭격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동막골을 구하기로 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작전을 구상한다. 우선 추락한 수송기에 있던 무기와 화약을 이용해 동막골이 아닌 다른 곳에 대공포 기지를 만들어 그곳으로 폭격을 유도하기로 작전을 짠다.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동막골을 떠나는 여섯 군인과 동막골 주민들은 이별의 정을 나눈다. 주민들은 이들이 자신들을 위해 사지(死地)로 떠나는 줄도 모르고 또 오라며 몇 번이고 작별 인사를 건넨다.

    불꽃 속에 핀 인간애

    ‘웰컴 투 동막골’

    영화에서 주민들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 국군과 인민군.

    위장 대공포 진지에 도착한 스미스는 “나도 당신들과 함께 남겠소”라고 말하지만 생포된 작전 군인과 함께 사령부로 가서 동막골은 적군 기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기로 한다. 남북한 군인 다섯은 대공포 진지를 설치하고 폭격기가 날아오기를 기다린다. “우리 여기말고 다른 데서 만났으면 정말로 재미있었을 텐데… 안 그래요!”라고 비장한 표정으로 말하는 표현철. 동막골 지킴이를 자처하는 작은 연합군이 형성됐다.

    편대를 지어 날아오는 폭격기를 향해 대공포를 발사하자 폭격이 시작된다. 대응 사격하는 남북한 장병들. 폭격기 한 대가 격추되지만 수십 대의 폭격기에 대적하기에는 역부족. 장영희와 문상상이 목숨을 잃고 만다. 이내 수십 대의 폭격기가 위장 대공포 진지에 융단폭격을 시작하고, 표현철, 리수화, 서택기는 이 광경을 보고 동막골 구출 작전의 성공에 미소짓는다. 동막골 주민들은 마을을 위한 친구들의 희생도 모르고 산 너머에서 찬란히 흩어지는 불꽃의 아름다움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폭격의 잔해는 눈으로 덮이고, 영화 장면은 동막골에서 국군과 인민군이 처음 만나던 때를 비추며 끝난다.

    ‘웰컴 투 동막골’은 기획자인 장진이 연출한 동명의 히트 연극을 영화로 만든 작품으로 박광현 감독의 장편 영화 데뷔작이다. 블록버스터와 코믹한 요소를 조화롭게 연출해 6·25전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산골 마을의 목가적인 정경을 배경으로 전쟁 속에서 피어나는 순수함과 휴머니즘을 강조하면서 남북한의 화해와 남북한 문제 해결의 주요 당사자인 미국과 평화 무드를 조성해야 함을 시사한다.

    ‘영화 속 논술·구술 워밍업’

    전쟁이 왜 일어나는지 생각해보자.언어가 없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 것인지 상상해보자.

    ‘핵심 기본 논제 1’‘웰컴 투 동막골’은 전쟁을 소재로 하고 있다. 전쟁의 의미에 대하여 논술하시오.

    ‘예시 답안’전쟁은 하나의 집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조직된 무력을 사용하는 기술이다. 오늘날 전쟁이라는 용어는 냉전, 전면전쟁, 선전전쟁, 심리전쟁, 예방전쟁 등 여러 가지로 사용되고 있다. 전쟁의 개념은 광의로 승리에 목적을 둔 모든 분쟁 요소를 조정하는 조직의 기술이며, 협의로는 군사적인 견지에서 사용된다.

    전쟁의 근본 원인은 이해관계의 충돌이다. 즉 물질, 이념, 실질적인 이해, 전통적인 이해관계의 충돌로 발생한다. 전쟁은 정책의 계속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주요한 도구로써 종종 사용된다. 첫째, 외부의 무력에 대하여 자신을 방어하는 방어전에 쓰인다. 둘째, 한 나라가 무력 외의 다른 방법으로 타국의 권익을 침해했을 때 전쟁이 벌어진다. 피침해국이 무력을 쓰지 않고 최대한 방어해도 침해를 막기 힘들면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방법으로 상대국을 공격하는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 셋째, 박해받는 국가를 돕기 위해 국제적인 연맹 조직에 참가해 침략자를 응징하는 경우다.

    전쟁이 발발하는 원인과 요건은 다양하다.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 또한 여러 가지가 있다.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강한 군사력만이 자국의 평화와 안보를 도모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침공이나 자국내의 쿠데타 같은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강한 군사력밖에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 타국의 군사력이 증강될 때마다 위기를 느껴 더 강한 군대를 위해 군비(軍備)를 확대할 것이고 이런 사이클이 반복되면 군비 경쟁은 끝이 없다. 지금 세계는 평화라는 허울을 두르고 있지만 사실상 힘이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로 힘을 가누는 팽팽한 신경전을 펴며 자국의 이익을 쫓고 있다. 세력 균형, 즉 무력 위협을 동반한 균형은 평화의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세력 균형은 불확실성, 비현실성, 부적합성 같은 내재적 한계를 갖고 있어 국제사회의 안정적인 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

    이제는 인식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자국만을 생각하는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전세계를 기본 단위로 여겨야 한다.

    우리가 민족이나 국민국가를 넘어서서 인류 전체나 지구 전체로 인식의 지평을 확대한다면 전세계적 군사화는 자기 파멸의 가능성만 높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무장화, 군사화를 막아야 하며, 이러한 탈(脫)무장화, 탈군사화는 우리 시대 인류 전체에 절실히 요청되는 과제다. 분쟁의 소지를 없애고 파멸의 길로 일컬어지는 제3차 세계대전을 영원한 가설로 남겨두기 위해서는 이러한 인식 전환이 필수다.

    ‘웰컴 투 동막골’

    함께 동막골 주민들의 농사를 돕는 국군과 인민군.

    ‘핵심 기본 논제 2’‘웰컴 투 동막골’은 구수한 사투리가 영화의 재미를 살리고 있다. 언어의 기능에 대하여 논술해보시오.

    ‘예시 답안’언어는 사회 구성원 사이의 의사소통과 사고를 가능케 하는 도구이자 한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만약 언어가 없었다면 의사 표현에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몸짓이나 표정 등 언어를 대신할 의사표현 수단은 있지만 언어처럼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수단이 되지는 못한다. 또한 사물에 대하여 어떤 이름을 부여하지 못해 사물에 대한 인식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언어는 우리의 사고와 표상(表象) 방식, 그리고 세계관의 근본 틀을 형성하는 의사전달의 중요한 수단이다. 즉 언어는 ‘의사 전달의 도구적 성격’과 ‘문화적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로서 개인의 감정이나 사상을 표현한다. 인간이 공동 사회를 이뤄 더불어 살 수 있게 된 것은 언어라는 도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도구로서의 언어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기준과 규칙이 있기 때문에 소통된다. 이처럼 언어는 우리의 생각을 교환하는 도구로서 인간의 사고를 반영해 사물을 체계적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우리는 눈앞에 있는 사물의 명칭을 아는 순간 그것에 대한 정보와 인식을 갖게 된다. 즉 인간의 앎은 언어를 통한 인식이라 할 수 있다.

    언어에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세계관이 반영됐다는 점에서 언어의 또 다른 특성으로 사회성을 들 수 있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인 훔볼트는 한 민족의 언어란 단순한 의사소통 기능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보았다. 즉 한 민족의 고유한 언어는 그 민족의 세계관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각 나라가 서로 다른 모국어를 쓰는 것은 바로 상이한 세계관을 가졌음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언어에 내재된 또 다른 세계관을 갖게 된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일 수 있다. 따라서 흔히 ‘언어가 서로 다르다’는 말의 의미는 단순히 사물을 표시하는 기호가 서로 다르다는 뜻이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 즉 ‘언어적 세계관’이 다르다는 뜻이다.

    미래 사회의 언어는 현재와 차이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사회의 발전에 따라 언어의 기능이 다양해지는 것은 한편으로 문화가 다양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긍정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현재에도 나타나듯 언어는 인간의 감정과 정서, 생각을 정교하게 보여주기보다는 신속하고 정확하고 간편하게 보여주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 미래 사회가 다가올수록 언어의 정보 전달 기능이 지금보다 더 중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간 의식을 결정하는 기능, 그리고 나아가 사회와 사상의 변화를 일으키는 기능보다는 감정 표현과 의사소통의 도구로써 언어는 끊임없이 변용될 것이다.

    ‘핵심 기본 논제 3’‘웰컴 투 동막골’은 통일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통일은 민족의 숙원이지만 통일이 왜 필요한지, 통일 이후의 바람직한 사회상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불분명하다. ‘통일의 필연성과 바람직한 통일 한국의 모습’이라는 주제로 자신의 견해를 말하시오.

    ‘예시 답안’통일에 대하여 대다수 국민이 감상적이고 당위적인 차원에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통일 한국의 미래상에 대해서는 추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통일이 단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민족의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되기 위해서는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통일의 필연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민족은 오랫동안 단일 민족으로서 동일한 역사적 경험에 기반을 둔 강렬한 단일 민족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이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통일의 힘이다. 둘째,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기 위해서다. 남북이 서로 다른 국가로 남아 있는 한 전쟁의 위협은 항상 존재할 것이다. 셋째,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이산가족이 함께 살 권리는 천부적 인권이다. 넷째, 민족 역량의 낭비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남북 대립으로 인한 막대한 군사·외교·경제적 손실이 민족 전체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세계 인류 발전에 공헌하기 위해서다. 남북 통일은 세계 평화에 공헌하고 한국의 역량을 강화해 세계사의 발전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기회가 될 것이다.

    이처럼 통일의 필연성은 우리 민족이 분단으로 인해 받고 있는 현실적 고통에 기반을 두고 있다. 따라서 통일 한국의 미래상은 그러한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정치적으로는 사회 구성원들 간의 자율적 조정에 의해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넘어서는 복지국가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사회·문화적으로는 갈등을 통합하는 개방적 다원주의가 정착되도록 힘써야 한다.

    통일을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라고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분단 상황을 극복하고 민족의 새로운 도약을 이루어낼 민족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분단 이전 세대뿐 아니라 분단 이후 세대까지 통일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민족사적 과제로 인식할 것이다.

    관련 기출문제아래 제시문을 논거로 전쟁과 폭력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그 극복 방안에 대해 논술하시오. 1,600자(±100자) (경북대 2002 정시)

    제시문(가) 전쟁은 사회 집단이 지켜왔던 영토 금기라는 튼튼한 천이 폭력으로 찢겨 나가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호전적인 정책의 배후에 있는 힘은 대개 친족과 동료에 대한 개인의 비합리적으로 과장된 충성심, 즉 자민족 중심주의다. 일반적으로 원시인들은 세계를 두 가지 가시적인 영역으로, 즉 집, 마을, 친족, 유순한 동물, 무당 등 가까운 환경과 이웃 마을, 동맹 부족, 적, 야생 동물, 유령 등 그보다 멀리 있는 세계로 나눈다. 이 초보적인 지형학은 공격하고 살해해야 할 적과 그럴 수 없는 동료를 더 쉽게 구별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런 대비는 적을 끔찍한 존재로, 나아가 인간 이하의 존재로 격하함으로써 더 선명해진다.

    브라질의 문두루쿠족 인간 사냥꾼들은 이런 구별을 실천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적을, 말 그대로 사냥감으로 여겼다. …(중략)…인간의 머리를 전리품으로 가져온 자에게는 높은 지위가 주어졌다. 초자연적인 숲의 힘을 부여받은 특별한 사람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전쟁은 고급 예술로 승화되었고, 다른 부족은 특히 위험한 동물 무리로 간주되어 노련한 사냥꾼의 사냥감이 되었다.

    습격은 매우 신중한 계획하에 진행됐다. 문두루쿠족 사냥꾼들이 동트기 전의 어둠을 틈타 적 마을을 포위하자, 그들의 주술사가 소리도 없이 주민들을 깊은 잠에 빠뜨렸다. 공격은 새벽에 시작되었다. 공격자들은 이엉을 인 지붕에 불화살을 쏘아댄 다음, 괴성을 질러대면서 숲에서 뛰쳐나와, 마을로 달려가 주민들을 공터로 몰아내고는 남녀 가릴 것 없이 어른이면 닥치는 대로 목을 베었다. 마을 전체를 소멸하는 일은 어렵고 위험하기 때문에, 공격자들은 희생자들의 목을 갖고 즉시 철수했다. 그들은 가능한 한 멀리까지 행군하여 휴식을 취한 뒤, 집으로 회군(回軍)하거나 적이 있는 다음 마을로 향했다.

    -에드워드 윌슨, 「인간 본성에 대하여」

    (나) “계속되는 노역과 학대 때문에 이젠 누구나 윗사람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게 되었거든. 그 평의회 사람들 말야, 일은 고되지, 먹을 것은 모자라지, 게다가 병든 몸을 고칠 가망은커녕 무도한 채찍질로 상처만 날로 깊어가지…… 눈치 안 보고 배겨낼 장사 있나. 사람들이 모두 그 지경이 되어 있을 때 심판의 날이 오고 만 거야…….”

    다름아니라 주정수(일제 치하 소록도 나환자촌 4대 일본인 원장)는 마침내 그의 천국 건설의 장엄한 대미(大尾)를 자신의 동상으로 장식할 계획을 세운 것이었다. 마지막 배반극이 감행되기에 이른 것이다. …(중략)…

    사토가 그를 대신해 모든 일을 추진해 나갔다. 그리고 맨 처음 그 일을 제안하고 나섰던 이순구가 모금 운동에 앞장서 돌아다녔다. 모금 성적이 나쁜 부락 대표들에게는 갖가지 위협과 압력을 가했다. …(중략)…

    동상이 세워지고 나서 원생들에게는 또 한 가지 새로운 부담이 늘었다. 매월 20일을 새 ‘보은 감사일’로 정하고, 이날이 되면 병사 지대의 모든 원생들은 공원 광장에 도열해 서서 동상을 참배해야 했다. 한 달에 한 번 20일만 되면 원생들은 남녀노소나 병세의 경중을 가릴 것 없이 공원 광장으로 모여와 살아 있는 주정수와 그의 동상 앞에 경례를 바치고 훈시를 들어야 했다. …(중략)…

    그날도 마침 원생들은 주정수의 동상을 참배해야 하는 보은 감사일이었다. 원생들은 이날도 관례에 따라 아침부터 부락별로 열을 짓고 서서 이제나저제나 살아 있는 동상의 주인공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동안 시간이 흐르고 나서 직원 지대로부터 승용차를 타고 내려온 주정수 원장이 수행원들과 함께 천천히 자신의 동상을 향해 대열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 주정수가 막 중앙리 원생들의 대열 앞을 지나가고 있을 때 , 그때 대열 가운데서 한 청년이 벽력같은 소리를 지르며 갑자기 주정수 원장 앞으로 튀어나왔다. 청년은 비수를 감추고 있었다.

    주정수 원장은 청년의 비수에 정통으로 심장을 맞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도열해 있던 원생들이 소리를 듣고 머리를 들어보았을 때는 주정수를 쓰러뜨리고 난 청년이 두 번째 표적을 찾아 피 묻은 비수를 휘두르며, “사토, 사토 나오너라”고 미친 듯이 악을 써대고 있었다. 원장을 뒤따르던 수행원들조차 미처 손을 써볼 틈이 없었다.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다) 인간은 자유인으로 태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도처에서 질곡에 매여 신음한다. 개개인은 타인의 지배자로 자처하지만, 사실은 그 타인 못지않게 노예적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 변동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는 그것을 설명할 수가 없다. 왜 그것이 정당한 것처럼 되어 버렸을까? 이 문제에는 해답을 줄 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만일 내가 폭력과 또 그 폭력에 따르는 결과만을 고려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인민이 복종을 강요받은 대로 복종을 하고 있는 한, 그 인민은 현명하다. 그러나 그 인민이 그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힘이 생기자 곧 그 구속을 몸소 제거해버리고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면, 그 인민은 더욱 현명하다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민으로부터 자유를 빼앗아간 것과 바로 그 같은 권리로써 그도 또한 그 자유를 도로 찾은 것인 이상, 이렇게 해서 자유를 회복한 인간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보거나 그렇지 않으면 반대로 애초에 자유를 폭력으로 빼앗아간 그네들이 부정당했었다고 보거나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 질서라는 것은 다른 모든 질서의 기초가 되는 신성한 법이다. 하지만 이 법은 결코 자연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계약에 의해서 성립되는 것이다. …(중략)…

    올바르고 질서에 적합한 것은 또한 사물의 본성으로 보아도 그러한 것이며 인간 상호간의 약속 행위와는 무관하게 그러한 것이다. 모든 정의는 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신만이 정의의 원천이다. 그러나 이 정의를 그와 같이 높은 곳에서부터 우리들이 받아들일 줄을 알았던들 우리에게는 정부도 법률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이성에만 기반을 둔 보편적인 정의가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가 우리들 사이에서 인정 받으려면 상호적이어야 한다. 인간적인 견지에서만 사물을 판단한다면, 정의의 율법에는 자연의 상벌(賞罰)이 뒤따르지 않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유명 무실한 것이다. 그것은, 그것을 지켜 나가려는 이가 아무도 없음에도 선인만이 모든 사람에 대해서 그것을 지켜 나가려고 할 때, 악인에게는 이익을 주고 선인에게는 손실을 주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권리를 의무와 결합시키고 정의를 그 목적에 부합하게 하려면 협약이나 법률이 필요한 것이다.

    -장 자크 루소, 「사회계약론」

    (라) “도망친 놈이 안 잡혔다. 너희 유대인 중 10명이 저 아사 감방(餓死監房)에서 죽어야 한다. 다음 번에는 20명을 보낼 테다.” 강제수용소의 독일인 프리치 소장은 첫째 줄로 다가가더니 한 사람씩 얼굴을 들여다보며 무언가 생각하는 듯했다.…(중략)…

    “너, 너, 그리고 너!” 10명이 되었다. 10명이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대열에서 나오며 울부짖었다. “아, 불쌍한 마누라와 아이들을 이제 다시 못 보게 되었구나!” 대열 가운데 남은 사람들은 한숨을 돌렸다. 인간이 생명에 얼마나 무서운 집착을 갖는지 알고 싶으면 강제수용소에 한번 가보라. 게다가 이번 경우에 생명을 건졌다는 것은 가장 잔혹한 죽음을 모면했다는 뜻이다.…(중략)…

    갑자기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한 사람의 포로가 부들부들 떨고 있는 동료들을 헤치며 대열 밖으로 걸어 나오는 것이었다. 감히 그런 짓을 하다니! 머리가 약간 옆으로 기운 그 사람은 큰 눈으로 당황해하는 프리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물결 퍼지듯이 이 대열에서 저 대열로 전해졌다.

    “막시밀리안 신부다! 콜베 신부다!” 소장은 권총을 쥐더니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외쳤다. “정지! 무슨 일이야? 이 폴란드 돼지 새끼야!” 막시밀리안 신부는 소장 앞에 섰다. 아주 침착했다. 미소까지 띤 것 같았다. 신부는 바로 옆 사람에게만 겨우 들릴 것 같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저 사형수 중의 한 사람 대신에 내가 죽겠소.” 프리치는 망연히 신부를 바라봤다. 꿈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뜻밖의 소리를 들은 것이다.

    -마리아 비노프스카, 「막시밀리안 콜베」

    ‘문제 해결을 위한 Tip’제시문 (가)는 인간 본성인 폭력성, 야만성에서 비롯되는 자민족 중심주의를 제시하고 있다. (나)는 일본인 원장과 한국인 나환자 사이에 전개된 억압과 배반의 순환 관계를 보여준다. (다)는 인간이 야만적 폭력과 전쟁이 난무하는 자연상태에서 상호 합의를 통한 평화적 질서 체계가 확립된 사회상태로 이행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성을 제시하고 있다. 또 인간이 이성적 양심을 가지지 못할 때 법체계가 불가피함을 제시하고 있다. (라)는 민족적 억압과 학살의 비극을 숭고한 희생으로 승화시키는 장면을 제시하고 있다.

    논술에서는 제시문을 활용해 전쟁과 폭력의 원인이 인간의 친족과 동료에 대한 비합리적으로 과장된 충성심, 즉 자민족 중심주의에 기인한다는 것과 폭력에 대응하기 위한 폭력은 보복적 폭력이라는 악순환을 일으킨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 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상호 합의와 희생적 사랑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분명하게 피력해야 한다.

    ‘예시 답안’전쟁은 자국의 이익이나 집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기술로 인간의 생명을 빼앗고 인류의 문명을 파괴하는 야만적이고 비인격적인 행위이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폭력으로 점철됐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 사이의 대립과 투쟁이 종식되지 않았다. 특히 핵무기 같은 대량 살상 무기의 발명으로 전쟁의 위험은 더욱 심각해졌다. 이러한 무기들로 인해 현대의 전쟁은 과거의 전쟁같이 몇몇이 다치거나 죽는 정도로 끝나지 않고, 많은 인명 사상(死傷)과 인류가 피땀 흘려 일궈놓은 경제와 문화의 파괴, 자연 파괴까지 가져오게 됐다.

    전쟁과 폭력은 제시문 (가)에서 주장한 것처럼 인간의 타고난 본성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고 문명의 소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합의를 도출할 다른 방법이 없을 때 중재자 역할을 한 것이 전쟁이나 폭력이었다는 것이다. 전쟁이나 폭력이 내린 판결은 정의보다 힘을 기초로 한다. 전쟁이나 폭력에 의한 목적 달성은 이에 대한 저항을 불러오게 마련이므로 (나)에서와 같이 전쟁과 폭력의 악순환이 되풀이될 뿐이다. 전쟁은 인류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건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건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흔(傷痕)을 남긴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을 비이성적 상태에서 평화의 질서 상태로 바꿀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고민해보아야 한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제시문 (다)에서 시사하는 상호 합의와 (라)에서 보여주는 희생적 사랑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극적 평화(Negative Peace)가 아닌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의 구현을 지향해야 한다. 적극적 평화란 ‘전쟁 없는 상태’에서 나아가 모든 종류의 ‘폭력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평화는 직접적이거나 물리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이나 차별과 같은 간접적이거나 구조적인 폭력까지 극복된 상태를 뜻한다. 최근 국가 안보보다 개인의 안전이 평화의 준거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개인의 안전에 대한 위협은 군사적 요인뿐 아니라 환경 파괴, 경제·사회적 상황 악화 등 광범위한 비군사적 요인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사실 정치 분쟁의 근원에는 경제적·문화적·인종적 불평등, 개발 등이 존재하므로 포괄적인 인간 안보의 확보 없이는 지속적인 평화 유지가 불가능하다.

    평화를 위태롭게 하는 갈등은 국가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국가 내부의 사회·경제적 박탈과 불균등의 형태로도 나타난다. 따라서 평화는 군사 문제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안전과도 관련 있다. 또한 국가 문제는 곧 세계 문제로 확대되므로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핵과 대량 살상 무기의 확산, 테러, 실업 문제, 환경 및 생태계 보전 등 전세계에 걸쳐 나타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 협력하려는 국제 사회의 의지와 평화를 실현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관련 기출문제‘가담가담, 여가리, 글토막…’ 등은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북한어이다. 남한과 북한이 분단된 이후 약 60년 동안 두 지역의 언어는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발전해왔다. 최근 통일의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남북한 언어의 이질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남북한의 언어가 의사소통에 장애를 줄 정도로 이질화된 원인과 통일 시대를 대비한 언어의 이질화 극복 방안에 대해 설명해보시오. (부산대 2003 수시2학기)

    ‘문제 해결을 위한 Tip’이 문제는 서울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이 문제를 출제했다. 언어 이질화에 대한 논증보다는 풍부한 사례와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답안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가담가담’은 가끔, ‘여가리’는 가장자리, ‘글토막’은 문장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언어생활의 차이는 남북한 주민의 행동양식과 의식구조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극복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예시 답안’북한에서는 주체사상이라는 명분으로 생활 언어에서 한자어와 외래어 사용을 금지하며 고유어를 다듬는 운동을 전개해왔다. 예를 들어 축구에서 ‘코너킥’을 ‘구석차기’로 ‘센터포워드’를 ‘가운데 몰이꾼’ 등으로 고쳐 부르는 식이다. 이런 어휘들은 외래어를 폭넓게 사용하는 남한에서는 생소할 수밖에 없다. 또한 북한에서는 “일 없습네다”라는 말이 “괜찮습니다”라는 뜻이지만 남한에서는 “별볼일 없습니다”라는 말로 해석되어 불쾌하게 들릴 수 있다.

    이러한 언어생활의 차이는 남북한 주민의 행동양식과 의식구조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언어의 이질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 남북한 학자들이 공동으로 한글 통일안 마련에 앞장서야 한다. 남북한의 이질적인 언어를 서로 이해하는 가운데 통일 시대를 대비할 언어 정책과 바람직한 모형을 마련해서 언어생활과 의사소통이 원만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웰컴 투 동막골’
    尹文遠
    ● 1953년 부산 출생
    ●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 KBS 라디오 사회교육방송 토론 프로그램 진행, 숙명여대·장안대 강사
    ● 現 이지딥 논술연구소장, (사)100인 영상작가위원장
    ● 저서 : ‘식구생각’ ‘이지딥 논술·구술 골격 제시문’ ‘영화 속 논술’ ‘애수에서 글래디에이터까지’ 등


    또한 민간 차원의 교류와 남북한 TV 방송의 개방 등을 통한 문화 교류를 통해 상호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 상호간 이해가 바탕이 될 때 문화적 동질성을 획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언어의 동질성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인위적인 고유어 쓰기를 지양해야 하며, 남한은 외래어의 무분별한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남북의 이질성이 접합점을 찾아 나가면 오히려 언어생활이 더욱 다양하고 풍부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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