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호

놀라워라, 생명의 의외성

옥수수 색깔도, 암세포와 HIV도 ‘전이인자’의 장난?

  • 이한음 과학평론가 lmgx@naver.com

    입력2008-01-07 16: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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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석연료 문제를 해결할 대체연료로 각광받던 옥수수가 뜻밖에도 식량 문제를 일으키는 것처럼, 생명은 들여다볼수록 새롭고 오묘하며 의외의 모습을 보여준다. 염색체의 전이인자가 유전체에 다양한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인간이 그런 복잡성을 제대로 예측할 수 있을 만큼 진화하려면 더 강력한 전이인자의 자극과 도움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놀라워라, 생명의 의외성
    옥수수는 오랫동안 인류에게 식량과 뻥튀기라는 간식거리를 제공했고, 최근 들어 화석연료를 대체할 연료 공급원으로 각광 받고 있다. 그런데 환경주의자들에게 찬사를 받던 이 바이오 연료 때문에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바이오 연료인 에탄올용 옥수수 재배가 수익이 나자 식량으로 쓰일 옥수수가 줄어들었고, 콩 등 다른 작물을 재배하던 밭까지 연료용 옥수수 재배에 잠식되면서 각종 곡물 가격 상승에 한몫을 하고 있다. 게다가 옥수수 생산을 위해 비료와 물을 쏟아 붓고 있으니 환경친화적이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에 이르렀다.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옥수수는 또 다른 측면에서도 의외성을 보여준다. 수십년 전에 그 의외성에 주목한 과학자가 한 명 있었다. 바버라 매클린톡인데, 공교롭게도 그의 연구가 학계에서 인정을 받기까지 걸린 세월에서도 의외성이 엿보인다.

    그는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에 옥수수의 염색체를 염색하는 법 개발, 옥수수 염색체 지도 작성 등 새로운 세포유전학 연구 성과들을 잇달아 발표함으로써 학계에서 인정을 받아 미국 과학아카데미 회원으로 뽑히기도 했다. 하지만 1940~50년대에 걸쳐 좀 뜬금없다 싶은 색다른 연구 결과들을 내놓아 과학자들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보기에 그의 연구는 난해하고 복잡했다. DNA의 구조가 밝혀지기 전인데 논문이 주로 세포유전학 용어로 서술되어 있었기에 더 그렇게 느껴졌을 법도 하다. 어쨌든 그 결과 그는 자신의 연구 대상인 옥수수와 함께 학계의 변방으로 밀려났다.

    옥수수 실험



    옥수수 껍질을 벗기면 연노랑 낟알들이 드러난다. 그런데 간혹 자주색이나 보라색 등 색깔이 다른 낟알들이 섞여 있다. 바늘로 콕콕 찔러 넣은 듯이 색깔이 점점이 묻은 낟알도 있고, 거의 전체가 색깔을 띤 낟알도 있다.

    매클린톡은 오랜 세월 옥수수를 재배하면서 색깔이 나타나는 양상에 주목했다. 그 양상은 대단히 복잡했다. 그는 그것이 유전적으로 불안정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임을 간파했고, 초파리 같은 다른 생물에서도 본질적으로 똑같은 양상이 나타난다고 봤다.

    그는 옥수수를 자가교배시키면서 발생 초기의 배아세포 염색체를 현미경으로 살펴보는 등 다년간 실험을 계속했다. 너무나 다양한 변화가 나타났다. 관찰 결과가 워낙 방대해 그는 그 현상의 특성을 간단히 설명할 수 없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염색체 일부가 잘려서 다른 염색체에 붙기도 하고, 일부가 뒤집혀 붙기도 하고, 염색체의 양끝이 붙어서 고리 모양이 형성되기도 했다. 그는 그것이 염색체가 끊겼다가 붙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염색체의 특정 부위가 끊겼다가 잘못 붙곤 하면서 그런 복잡한 양상이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놀라워라, 생명의 의외성

    인간의 염색체 지도. 염색체는 전이인자에 의해 변이를 일으킨다.

    그는 끊겼다가 붙은 부위를 약 40개 찾아냈다. 그 부위를 ‘Ds’라고 불렀다. Ds는 그냥 끊겼다가 붙는 곳이 아니었다. Ds는 염색체에서 이리저리 옮겨다닐 수 있었다. 즉 Ds는 고정된 지점이 아니라 옮겨다닐 수 있는 DNA 조각이었다. 그는 Ds가 옮겨다니면서 다른 유전자의 활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았다. 특정한 유전자가 있는 곳에 삽입되면 그 유전자의 활성이 없어지거나 약화되는 식이었다. Ds가 일으키는 변화는 그것이 전부였지만, Ac라는 또 다른 조각이 있을 때는 상황이 달라졌다. Ac가 있으면 후속 변화가 일어나면서 옥수수의 잎이나 낟알의 색깔이나 무늬, 모양 등이 달라졌다.

    매클린톡은 Ds와 Ac의 행동에 규칙성이 있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했다. 그는 옥수수의 조직과 낟알의 색깔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를 선택했다. 유전자가 열성 조합일 때는 낟알이나 식물 조직에 색깔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열성 조합은 Ac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는 유전자가 우성 조합이고 염색체에 Ds와 Ac가 있는 옥수수들을 재배했다. 유전자가 열성 조합이고 Ac가 없는 옥수수들도 따로 재배했다. 그런 다음 열성 개체의 꽃가루로 우성 개체를 수정시켰다.

    이 교배로 만들어지는 옥수수 낟알들은 모두 유전형이 우열 조합이므로 색깔을 띠어야 했다. 만일 색깔이 일부 사라짐으로써 얼룩덜룩한 낟알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Ds가 그 유전자 자리에 삽입되어 유전자의 활성을 전부 또는 일부 억제하고, Ac가 후속 영향을 미침으로써 색깔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실험 결과 매클린톡의 예측이 들어맞았다. 얼룩덜룩한 낟알이 생긴 것이다.

    매클린톡은 Ds가 유전자 자리에 삽입되어 그 유전자의 활성에 변화를 일으키고, Ac는 Ds가 일으키는 변화를 통제하는 기능을 한다고 봤다. 그는 그 외에도 억제인자-돌연변이 유발인자 조절 체계도 제시했다.

    매클린톡의 이 연구 결과들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과학사가인 이블린 폭스 켈러는 매클린톡이 여성이기 때문에 무시당했다는 견해를 피력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제대로 설명이 안 된다. 매클린톡은 이미 혁혁한 연구 성과를 내놓았고 과학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는 등 상당한 명성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20년 앞선 이론

    그가 이런 연구 결과들을 내놓은 1950년대 초는 DNA 구조가 발견되고 유전암호 연구가 시작되려던 분자생물학의 태동기였다. 복잡한 생명현상을 단순한 개념과 요소로 설명하고자 하던 환원론적 열기가 분출하던 시기였다. 연구대상도 번식속도가 빠르고 실험결과를 금방 볼 수 있고 검증할 수 있는 세균이나 바이러스, 초파리 같은 것들이 선호되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매클린톡의 논문은 장황하고 난해했다. 이해하기 쉽도록 짧게 설명할 수 없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였다. 그것은 그가 연구하고 있던 내용이 시대를 앞서 나간 것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직 유전자, DNA, RNA의 기본 구조나 기능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시기였으니, 그가 관찰한 복잡한 현상을 쉽게 설명할 만한 용어나 체계가 있을 리 만무했다. 따라서 그는 Ds와 Ac가 이동할 수 있는 조절요소라는 주장을 실험 결과를 죽 나열하면서 설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약 10년 뒤인 1960년에 프랑수아 자코브와 자크 모노가 세균의 유전자 조절기작을 설명하는 오페론 가설을 내놓았다.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 앞에 조절하는 부위가 있어서, 거기에 다른 인자가 붙었다 떨어졌다 하면서 유전자의 활동을 조절한다는 개념이었다.

    이 획기적인 개념이 등장함으로써 유전자의 활동이 조절되는 양상이 어렴풋이 이해되기 시작했을 때 매클린톡은 오페론 체계와 자신의 억제자-돌연변이 유발인자 조절체계를 비교한 논문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오페론은 기본적인 조절체계였고, 매클린톡의 체계는 오페론체계를 토대로 더 많은 연구가 이뤄진 뒤에야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연구 성과는 1970년대 초가 돼서야 제대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진핵생물의 복잡한 유전자 조절기작이 서서히 밝혀지고 염색체를 옮겨다닐 수 있는 전이인자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였다. 매클린톡이 말한 Ds와 Ac는 전이인자였다. 즉 그는 분자생물학이 약 20년에 걸쳐 급속히 발전한 끝에 알게 된 내용을 그런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파악했던 것이다.

    1980년대 초에 Ac와 Ds의 염기 서열이 밝혀졌다. 전이인자는 자신을 분리시켜서 옮길 수 있는 트랜스포사아제라는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 Ac는 그 효소 유전자를 온전하게 지닌 반면, Ds는 그 유전자의 염기 서열이 일부 없어져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변이체였다. 그래서 Ds는 Ac가 없으면 제 기능을 못했던 것이다.

    매클린톡은 장수한 덕에 약 30년이 지난 뒤인 1983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DNA 대부분은 ‘잡동사니’

    전이인자는 도약 유전자, 트랜스포존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데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있던 곳에서 오려내어 다른 곳에 갖다 붙이는 식으로 이동하는 종류와, 원본은 그 자리에 있으면서 사본을 만들어 다른 곳에 끼워 넣는 종류가 있다. 전자는 DNA 트랜스포존이라고 하며, 인간 유전체의 약 3%를 차지한다. 매클린톡의 Ds와 Ac도 DNA 트랜스포존이었다. 후자는 레트로트랜스포존이라고 하며 RNA를 만든 뒤 그 RNA로 다시 DNA를 만들어 염색체에 끼워 넣는다. 레트로트랜스포존은 적어도 인간 유전체의 약 40%를 차지한다. 전이인자의 특성을 이용하면 원하는 유전자를 염색체에 끼워 넣을 수 있다. 즉 필요한 유전자를 전이인자에 삽입한 뒤 염색체에 통합시킴으로써, 연구와 유용한 물질생산 등에 쓰일 유전자 변형 생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전이인자는 또 다른 측면으로도 관심대상이다. 우리의 염색체에 전이인자가 있어서 여기저기 마구 옮겨다닌다면 어떻게 될까. 전이인자가 유전자 중간에 삽입되면 적어도 그 유전자의 기능에 이상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또 유전자를 조절하는 부위에 삽입되어 다양한 유전자에 동시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아니면 매클린톡이 관찰했듯이, 염색체 중간을 뚝 끊어서 다른 염색체에 갖다 붙이거나 뒤집어 붙일 수도 있다. 그러면 상당히 심각한 결과가 빚어지지 않을까? 실제로 전이인자는 혈우병, 포르피린증, 암 등 여러 질병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 전이인자는 유전체에 잡다한 흔적을 남긴다.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것들을 제외하고 복잡한 진핵생물의 유전체를 보면, 유전체 전체에서 유전자가 차지하는 부분은 얼마 되지 않는다. DNA 중 대부분은 제 기능을 하는 유전자가 아닌 잡동사니들이며, 그중에 상당수는 전이인자의 흔적이다. 특히 일정한 염기서열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부위가 그렇다.

    한 예로, 결함이 있어서 스스로 옮겨다니지 못하는 전이인자인 Alu라는 짧은 반복 서열은 인간의 유전체에서 사본이 100만개 이상 존재하며, 인간 유전체의 약 11%를 차지한다. 유전자처럼 제 기능을 하는 부위는 약 5%에 불과한 데 반해 말이다. 전이인자나 그 잔해들이 인간 유전체의 거의 45%, 생쥐 유전체의 약 38%, 개 유전체의 약 41%, 옥수수 유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것이 일찍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니 매클린톡의 개념이 일찍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의아스럽게 느껴질 법도 하다.

    난장판에서 살아남다

    전이인자는 유전체에 다양한 변화를 일으킨다. 유전자의 활동을 저해하거나 강화할 수도 있고, 염색체 조각을 이동시키거나 엉뚱한 재조합을 일으킬 수도 있다. 또 자신의 사본을 계속 만들어 염색체 곳곳에 끼워넣음으로써 유전체의 크기를 엄청나게 확대할 수 있다. 그런 변화가 생물의 진화에 영향을 미쳤을 것은 분명하다. 전이인자가 많은 생물들에서 유전체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니 그만큼 큰 영향을 미쳤을 법도 하다. 그 정도라면 유전체를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사례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현재의 생물들은 그런 난장판에서 살아남은 것들일지도 모른다.

    전이인자 자체도 진화한다. 전이인자의 진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한 생물계통에서 전이인자가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와 그렇지 않은 시기가 번갈아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냈다.

    전이인자가 유전체에 존재하는 일종의 기생체라고 보는 학자들이 있다. 특히 레트로트랜스포존은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 같은 RNA 바이러스와 비슷한 점이 많다. 바이러스의 유전체에서 껍데기를 만드는 유전자들을 없앤 것이 레트로트랜스포존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 시점에 새로운 전이인자가 생겨나면, 그것은 마치 기생체처럼 급격히 증식하면서 수천만년에 걸쳐 유전체 곳곳으로 퍼진다. 그러다가 자체 돌연변이가 생기고 세포 분열을 방해하는 등의 부정적인 영향이 심해지면서 활동이 억제되고 중단되는 단계에 들어선다. 이미 삽입된 전이인자들은 제거되지 않고 그대로 남는다. 기생체가 대체로 별 해를 끼치지 않고 몸속에서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어쩌다가 숙주에 해를 끼치기도 하지만 때로는 유익한 도움도 주면서 말이다.

    활동하지 않는 전이인자는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돌연변이를 거친다. 활동한 지 오래된 것일수록 돌연변이가 더 많이 쌓이므로, 어느 전이인자가 언제 들어와 왕성하게 활동했는지 대강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한 예로 인간의 레트로트랜스포존 중 하나인 Alu는 약 5000만년 전에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가 최근 들어 활동이 약해지고 있다. 또 인간의 DNA 트랜스포존도 영장류가 신대륙과 구대륙의 영장류로 갈라지는 등 급격히 팽창할 무렵에 왕성하게 활동했지만, 그 뒤 인류로 이어지는 영장류 계통에서는 적어도 지난 4000만년 동안 거의 활동하지 않았다.

    미국의 프레스콧 데이닝어와 마크 뱃저는 현재 100~200명에 1명꼴로 새로 삽입된 Alu를 갖고 태어난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전이인자 전체로 보면 추정값의 편차가 심하다. 3~30명에 1명꼴로 새로운 전이인자를 갖고 태어난다고 추정한 학자들도 있다. 이 비율이 높은 듯도 하지만, 전이인자가 인간 질병에 기여하는 비율은 다른 돌연변이들이 일으키는 비율에 비하면 낮다. 이렇게 인간의 유전체에서는 전이인자의 활동이 몹시 약해져 있지만, 그렇지 않은 동물들도 있다. 생쥐 유전체에서는 돌연변이 중 레트로트랜스포존의 삽입에서 비롯된 것이 10%에 달한다. 인간의 유전체에서는 0.2%에 불과하다. 따라서 생쥐의 유전체는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셈이다.

    유전체와 전이인자

    인간의 유전체 염기서열 전체를 파악하는 인간 유전체 계획이 시작됐을 때 전이인자의 특징인 반복 서열은 분석을 지체시키는 성가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처음에 10만개로 추정했던 인간의 유전자 수가 2만여 개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나고, 전이인자가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는 것이 드러나자, 전이인자가 무엇이기에 그렇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전이인자가 세세하게 다양한 방식으로 유전자 발현에 관여한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진화적인 측면에서도 연구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전이인자는 어떤 식으로 해롭거나 유익한 기능을 해왔을까. 현재 전이인자가 질병을 유발하는 해로운 돌연변이를 일으킨 사례가 10여 건 파악되어 있다. 한편 전이인자는 새로운 유전자나 의사유전자를 도입하거나 유전자 중복을 일으킨다. 또 비정상적인 염색체 재조합을 일으킴으로써 유전체를 재배열하는 구실도 한다. 앞서 말했듯이 염색체를 크게 끊어서 이리저리 옮기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방식으로 전이인자는 유전체의 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다.

    이렇게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측면을 열거할 수는 있지만, 유전자 수는 얼마 안 되는데 왜 유전체는 그렇게 큰가라는 수수께끼는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게다가 아메바, 도롱뇽, 갑각류, 속씨식물 중에는 인간보다 유전체가 훨씬 더 큰 것도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그들의 유전자 수는 인간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유전체가 클수록 유지하고 분열하는 데 에너지도 더 많이 들고 엉키는 등 성가신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더 커질 것은 분명하다. 그런 문제들에 시달리면서도 포유류를 비롯한 많은 생물이 전이인자로 가득한 큰 유전체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점보다 장점이 더 많다는 의미가 된다. 그 장점이 무엇일까.

    그쪽으로의 연구는 이제 겨우 시작된 단계다. 어쨌든 캐나다의 라이언 그레고리를 비롯한 여러 과학자가 지적하듯이, 전이인자는 유전체가 그냥 염기서열을 죽 나열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전이인자를 이기적 DNA나 기생체로 본다면, 유전체 자체는 하나의 생태계인 셈이다. 우리의 몸이 피부, 창자 등에 수많은 생물들이 기생하고 공생하는 하나의 생태계이고, 세포가 세포핵, 미토콘드리아, 리보솜 등 수많은 세포소기관이 활동하는 생태계이듯이, 유전체도 유전자, 조절부위, 조절인자, 전이인자, 바이러스의 DNA 등으로 이루어진 생태계인 셈이다.

    DNA 탈을 쓴 RNA

    생태계라면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반응할 것이다. 매클린톡은 스트레스가 이른바 조절요소를 활성화한다고 주장했으며, 일부 학자들은 초파리 등에서 스트레스에 전이인자가 활성을 띠는 사례를 찾아냈다. 아직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연구가 덜 돼 있긴 하다. 혹시 위기를 느낀 전이인자라는 기생체들이 달아나려고 시도하는 것은 아닐까.

    놀라워라, 생명의 의외성
    이한음

    1966년 서울 출생

    서울대 식물학과 졸업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과학평론가, 전문번역가

    저서 및 역서 : ‘신이 되고 싶은 컴퓨터’ ‘인간 본성에 대하여’ ‘조상 이야기’ ‘복제양 돌리’ ‘미리 보는 2050년 신세계’ ‘굿바이 프로이트’ ‘해변의 과학자들’ ‘만들어진 신’ 등


    전이인자가 기생체이고 RNA에서 DNA를 역전사하는 레트로트랜스포존이 주류라면, 색다른 이론도 제기될 수 있다. 지구에 생명이 발생하던 시기에 DNA 세계에 앞서 RNA 세계가 있었다고 보는 과학자들이 있다. 불안정한 RNA를 더 안정한 DNA가 대체한 뒤 현재의 생물 세계가 형성됐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유전체라는 생태계를 보면 아닌 듯도 하다. 여전히 RNA 기생체가 주류 아닌가. 이기적인 RNA가 DNA의 탈을 쓰고 번식함으로써 유전체 크기를 계속 늘린 것은 아닐까. 언젠가 인간의 유전체에도 더 강력한 새로운 RNA 기생체가 등장하지 않을까. 혹시 HIV나 조류독감바이러스 같은 RNA 바이러스는 그들의 척후병이 아닐까.

    이렇듯 생명은 들여다볼수록 새롭고 오묘하며 의외의 모습을 보여준다. 화석연료 문제의 해결책 같았던 옥수수가 식량 문제를 일으키는 것처럼. 어쩌면 인간은 그런 복잡성을 제대로 예측할 수 있을 만큼 진화하려면 더 강력한 기생체의 자극과 도움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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