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2월 2010년 남아공월드컵 축구 아시아지역 3차 예선, 8월 베이징올림픽,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우리 선수들은 짧은 준비기간에 발군의 성과를 이뤄낼 수 있을까. 걸출한 스타가 탄생할 수 있을까. 필자는 이에 대한 답을 ‘정신근육’과 ‘멘털 훈련’에서 찾는다. 동아일보 김화성 스포츠 전문기자가 지난 11월28일 태릉선수촌에서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드림팀을 대상으로 한 강연 내용을 정리했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드림팀. 이들은 과연 ‘정신근육’을 키워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근육은 꿈을 먹고 산다. ‘난 할 수 있어’라고 맘먹으면 팽팽해진다. ‘그까짓것 왜 못해’라고 생각하면 우뚝우뚝 일어선다. 근육은 기억력이 뛰어나다. 하지만 근육에 기억을 새기는 데는 피눈물 나는 노력이 뒤따른다. 근육은 수천, 수만 번 되풀이해서 가르쳐줘야 비로소 기억한다. 운동기술을 처음 익힐 때는 왼쪽 뇌가 작용한다. 왼쪽 뇌는 동작을 이해하고 분석한 뒤 근육에 알게 모르게 그 기억을 저장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피나는 반복훈련이 필요하다. 이때 기본기를 잘못 배우면 큰일 난다. 나중에 고치려면 몇 배나 더 힘들기 때문이다. 아니 고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더디 가더라도 완벽하게 익혀야 한다. 근육은 한번 기억하면 평생 잊지 않는다.
정신근육의 승리
근육은 정신이 만든다. 정신이 한 계단 올라가면 근육도 한 단계 강해진다. 벽에 부딪힌 공은 그만큼 반사되어 튕겨난다. 최근 수년 동안 한국 마라톤에서 2시간10분 이내에 들어오는 선수는 이봉주말고는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세계최고기록이 2시간4분26초(에티오피아 게브르셀라시에)인데 2시간10분 내에도 들어오지 못하다니! 국제대회에서 한국 선수들은 15km 구간에서도 선두권을 따라가지 못한다.
현대 마라톤은 트랙게임이다. 41km 정도까지는 신경전을 하면서 나란히 달린다. 승부는 남은 1km에서 갈린다. 기본적으로 41km를 따라올 힘이 없다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선수들의 ‘정신근육’이 형편없다는 뜻이다. 몸이 아무리 좋아도 정신근육이 초등학생 수준이라면 ‘몸 큰 어린애’일 뿐이다. 2006 오사카 세계육상대회에서 한국 남자 마라톤이 단체 2위를 차지한 것은 바로 정신근육 승리의 좋은 예다. 기온 30℃, 습도 80% 가까운 날씨에 그 누군들 포기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한국의 젊은 세 선수는 포기하지 않고 달렸다.
피스토리우스(20·남아공)라는 육상 단거리 선수가 있다. 그는 두 다리가 없다. 태어날 때부터 양다리에 종아리뼈가 없다. 할 수 없이 양 무릎 아래쪽을 다 잘라내고 탄소섬유(카본) 의족을 신는다. 달리기용 의족은 진짜 다리 모양의 걷기용 의족과 다르다. 달릴 때마다 걷기용 의족을 벗고 갈아 신어야 한다. 생김새가 갈고리와 비슷하다. 갈고리 끝 날에 몸무게가 실리면, 그 압력으로 튕겨나가면서 달리게 된다. 당연히 무릎의 힘을 100% 사용할 수 없다. 달리기 리듬을 찾으려면 최소한 30m는 달려가야 한다. 게다가 비가 내려 트랙이 물기에 젖으면 미끄러져 레인을 벗어나면서 실격당한다.
2007년 한국시리즈 우승 후 환호하는 팬들에게 답례하는 김성근 감독.
그의 꿈은 베이징올림픽 400m 경기에 출전하는 것이다. 훈련도 늘 일반선수들과 똑같이 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육상연맹은 아직 그의 올림픽 출전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로 ‘스프링 바퀴 또는 기타 장치를 활용한 기술적 장비가 기록향상에 영향을 미친다면 이를 용인할 수 없다’는 규정을 들고 있다. 국제육상연맹은 그의 레이스를 담은 비디오를 분석해 과연 그의 의족이 기록향상에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하고 있다. 그 결과에 따라 그가 베이징올림픽에 나갈 수 있을지가 결정된다. 물론 올림픽 출전 B기준 기록인 45초95보다 좋은 기록도 내야 한다. 피스토리우스의 좌우명은 “가진 능력을 발휘하면 불가능은 없다” 이다.
초등생 수준의 정신근육
한국 스포츠계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오는 2월부터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 축구 아시아지역 3차 예선이 펼쳐진다. 8월엔 베이징올림픽이 있다. 그리고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3년여밖에 남지 않았다. 날은 저무는데 갈 길은 멀고, 보는 눈은 높은데 손발이 말을 듣지 않는다.
대한육상경기연맹은 남녀 마라톤, 남녀 경보 20km, 남자 400m 릴레이, 남자 창던지기, 남자 세단뛰기, 여자 멀리뛰기, 여자 장대높이뛰기 등을 유망종목으로 선정해 집중육성하기로 했다. 과연 성공할까. 계획대로 메달권이나 최소 톱10에 들 수 있을까.
결론은 그 어느 종목이든 지금과 같은 ‘정신근육’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이다. 선수들이 운동을 몸으로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 자신이 가진 최고기록조차 낼 수 없다. 2006년 아시안컵 축구에서 경기를 앞두고 새벽까지 술을 마신 행동이나, 네덜란드 페예노르트에 진출한 이천수가 두 달 만에 “적응하기 힘들다”며 돌연 귀국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요즘 한국 선수들의 정신근육은 초등학생 수준에 불과하다. 조금만 아파도 못하겠다고 나자빠진다. 툭하면 힘들다며 칭얼댄다. 자기 스스로 한계를 정해놓고 그 한계를 조금이라도 넘으면 지레 포기해버린다. 남자 100m 한국기록(1979년 서말구 10초34)이 왜 29년 동안이나 깨지지 않고 있는가. 그것을 하나의 벽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계 육상무대에서 10초 벽이 깨진 게 언제인데 아직까지 우리 선수들의 정신근육은 그 벽에 맴돌고 있을까.
1954년 이전만 해도 ‘인간이 1마일(약 1609m)을 4분 이내에 달린다’는 것은 불가능으로 여겨졌다. 당시 생리학자들은 ‘인간이 1마일을 4분 이내에 달린다면 곧 심장과 허파가 파열돼 죽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뼈 구조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1마일을 6번이나 4분3초에 달린 호주의 존 랜디 선수는 “그것은 벽돌 장벽이다. 다시는 도전하지 않겠다”며 진저리를 칠 정도였다.
1954년 5월6일 영국 옥스퍼드대학 의대생 로저 배니스터(1929~ )는 3분59초4로 1마일 결승선을 끊었다. 그리고 극심한 고통으로 의식을 잃었다.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던 4분 벽을 세계에서 맨 처음으로 깬 것이다. 그는 연습할 때 늘 “4분 벽은 내가 깰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코치는 “네 최고기록은 4분6초다. 그게 너의 한계다. 난 네가 그 4분 벽을 깰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학적 수치에 입각해 보더라도 4분 장벽은 영원히 깨질 수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의 담당 의사는 한술 더 떴다. “당신이 1마일을 4분 이내에 달린다면 심장이 터져버릴 것이다. 절대 그렇게 달릴 수 없다”며 배니스터의 무모한 시도를 말렸다.
배니스터는 그런 말들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매일 훈련이 끝난 뒤 한 시간씩 ‘상상연습’을 했다. 1마일을 4분 이내에 달리는 자신의 모습을 생생하고 강렬하게 머릿속에 그렸다.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수많은 관중의 환호성도 귓속에 심었다. 심지어 4분 벽을 깬 뒤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인터뷰하는 광경까지 그의 온몸 세포 깊숙이 새기고 또 새겼다. 연습할 때 그의 머릿속은 이미 4분 벽을 깬 선수로서 기쁨을 맘껏 만끽하고 있었다.
그는 골인 뒤 인터뷰에서 “지금 이런 나의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다. 나는 머릿속으로 이런 모습을 수도 없이 그려봤다. 나의 즐거운 꿈이 지금의 나를 즐겁게 만든 것이다. 인간의 몸은 생리학자들보다 수백년 앞서 있다. 생리학이 비록 호흡기와 심혈관계의 육체적 한계를 알려줄지는 모르지만, 승리냐 패배냐 경계사선은 생리학 지식 밖의 정신적 요인들이 결정한다. 그것은 또 운동선수가 절대한계까지 갈 수 있느냐 없느냐를 좌우한다”라고 말했다. 4분 벽을 깼을 때조차 그는 연습할 때 꾼 꿈같이 느꼈던 것이다.
배니스터가 1마일 4분 장벽을 깬 지 6주 후인 1954년 6월21일, “4분 벽은 벽돌 장벽이다. 다시는 도전하지 않겠다”던 존 랜디가 3분58초로 1마일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그뿐인가. 배니스터 신기록 이후 두 달도 안 돼 전세계에서 10명이 4분 벽에 진입했다. 그 숫자는 1년 후엔 27명, 2년 뒤엔 300명으로 늘었다. 현재 1마일 세계기록은 1999년 모로코의 히참 엘 구에로가 세운 3분43초. 17초나 빨라졌지만 심장이 파열된 경우는 없었다. 최근엔 37세의 노장 선수가 4분 벽을 넘어 화제가 된 경우도 있다. 배니스터는 은퇴한 뒤 신경과의사를 거쳐 옥스퍼드대학 칼리지 학장을 지냈다.
김성근 감독의 정신 야구
프로야구 SK와이번스 김성근(66) 감독은 선수의 정신근육을 키우는 미다스의 손이다. 그는 24시간 야구만 생각한다. 꿈을 꿔도 야구 꿈만 꾼다. 그는 거의 평생을 야구장에서 살았다. 쌍방울 감독 때는 1년에 딱 3번 집에 들어갔다. 당연히 자식들(1남2녀) 입학식이나 졸업식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그는 한국시리즈 우승 다음날(2007년 10월30일)도 “올 시즌은 어제로 끝났다. 오늘부터는 내년 시즌을 준비해야 한다. 내 재주가 어디 야구밖에 더 있나”라며 2군 훈련장에 나가 선수들 몸놀림을 지켜봤다.
2003년부터 SK 전력분석팀장을 맡고 있는 그의 아들 김정준씨는 “아버지는 한 가지 이론이 아니라 수십 가지 이론을 머릿속에 넣고 다닌다. 일본에서 야구 책이 가장 많다는 후쿠오카의 준쿠도 서점에 꽂혀 있는 책보다 아버지 집과 우리집에 있는 야구 책이 더 많다. 700~800권 될까. 그러나 아직 모자라다. 요즘엔 미국 야구 책들을 사 모으고 있는 중이다”라고 말한다.
김성근 감독은 휴식일 전날을 빼곤 매일 저녁 선수들과 미팅을 갖는다. 그는 그 미팅시간을 통해 지겹도록 ‘세뇌교육’을 한다. 선수들에게 ‘어떻게’가 아닌 ‘왜’를 가르친다. ‘왜 야구를 해야 하는가’ ‘왜 땀을 많이 흘려야 하는가’에 대해 귀가 닳도록 이야기한다. 일부에선 이런 김 감독에 대해 ‘명색이 아이들도 아니고 성인 프로선수인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뭐 있느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지만 김 감독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생각이 너무 많아 생기는 입스 증후군. 야구에선 이를 ‘스티브 블래스 병’이라 한다.
야구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거의 모든 선수가 ‘나의 모든 것’이라고 말한다. 김 감독은 그 말을 선수들이 감독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 아니라, 선수 스스로에게 다짐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말한다.
“좋다. 너희들이 야구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면, 당연히 너희가 가진 모든 것을 거기에 던져야 하지 않겠는가. 감독은 방향을 설정해주는 사람이지 끌고 가는 사람이 아니다. 기회는 내가 주는 것이 아니고 너희가 잡는 것이다.”
2000년 LG 2군 감독 시절, 김 감독은 2군 선수들을 데리고 제주도 전지훈련을 갔다. 첫날 미팅 때 그는 칠판에 ‘일구이무(一球二無)’라고 썼다. 그리고 말했다.
“너희들이 1군에 올라가서 어쩌다 대타로 나가게 됐다고 치자. 아마도 많은 관중 앞에서 떨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때 못 해내면 끝이다. 또 2군으로 내려오는 거다. 또 언제 올라가게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안타를 치느냐 못 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그 순간 이것저것 생각해서 움직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 반응해야 한다. 하루에도 수천 번씩 스윙을 하며 익혀둬야 그럴 때 좋은 결과를 낼 확률이 높아진다. 잘 맞은 순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배트를 휘둘러야 한다. 뇌와 근육에 스윙 폼을 기억시켜야 진정한 자신의 것이 된다. 평생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인데 그걸 허무하게 날려버릴 수야 없잖은가.”
한계치는 없다, 목숨을 걸어라
김 감독이 SK 감독으로 부임해 제일 먼저 한 것 역시 ‘세뇌교육’이었다. 그는 SK 선수들에게 “생각을 바꿔라.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성격, 운명, 인생이 모두 바뀐다. 우선 생각부터 바꿔라”라고 말했다. 제주에서 첫 미팅을 할 때는 노트에 적는 선수, 가만히 있는 선수, 잡담하는 선수 등 제각각이었다. 그런데 사흘째가 되자 모두 진지해졌다.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는 한국시리즈에서 SK 선수들에게 4가지를 당부했다. ‘1. 플레이 하나하나에 신경 써라. 2. 다음 플레이를 빨리 하라. 3. 야구장에선 절대 고개 숙이지 말라. 4. 엔조이하라.’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선수들이 진짜 즐기면서 야구를 하는 게 눈에 보였다. 김 감독은 그때부터 ‘우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의 마음도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고참들은 보통 자기 한계를 설정해놓고 야구를 하는데, 한국시리즈에선 모두 그 한계를 뛰어넘었다. 김재현은 시즌 중 그렇게 충고해도 안 되더니 순식간에 전성기 스윙이 나왔다. 시즌 내내 헤매던 박재홍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살아났다.
김 감독은 늘 자신을 벼랑 끝에 세워놓는다. 그래야 절박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목숨을 걸고 해야 한다고 믿는다. 결국 그는 자신의 신장 하나를 떼어내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감독은 아프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프로는 아파도 모른 척 가만있는 게 사는 것”이라며 웃는다. 그는 선수들을 무한경쟁의 정글에 집어넣는다. 2007 시즌에는 1군 안에서만 피 말리는 경쟁이 벌어졌지만, 2008 시즌에는 1, 2군 가릴 것 없이 모든 선수가 서바이벌게임에서 살아남아야 할 것이라고 예고한다. 무섭다. SK는 2007 시즌 단 1명의 올스타도 없고, 개인 타이틀 수상자도 없다. 그런데도 매일 라인업이 달라지는 ‘벌떼 야구(토털야구)’로 우승했다.
1954년 세계 최초로 1마일 4분 벽을 깬 로저 배니스터.
김 감독은 자신을 야구 기술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야구는 선수들이 하는 것이다. 그는 다만 도와주는 사람, 이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은 아버지이고 선수들은 새끼다. 감독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선수들이 따라온다. 감독은 길이 있는 데로만 가면 정상에 설 수 없다. 항상 험한 길로 가야 한다. 장수는 병사들 앞에서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2005년 이승엽이 지바 롯데에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국내 복귀설이 흘러나왔다. 그때 김 감독은 이승엽을 1시간 반 동안 붙잡아놓고 혼냈다.
“한국 복귀는 도망가는 거다. 도망가는 걸 먼저 생각해서야 어디 성공할 수 있겠느냐. 그렇다면 넌 승부 속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인간은 변명하게 마련이다. 절벽 끝에 서봐라. 해명이나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살아야 한다. ‘일본 투수들의 공이 좋다. 볼 끝이 한국 투수가 던진 것과 다르다’는 말들은 모두 변명에 불과하다. 시행착오가 많은 사람이 성공한다. 넌 남의 시행착오 속에 살고 있다. 너무 남에게 의지한다. 나에게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변명은 약한 자나 하는 거다. 이겨내는 자만이 성공할 수 있다. 난 정신과 의사지 정형외과 의사가 아니다.”
김 감독은 요즘도 요미우리 김기태 코치에게 “승엽이가 힘들어 하더라도 절대 안아주지 마라. 혼자 설 수 있게 하라”고 당부한다. 스스로 한계치를 만들고 그 안에서만 움직이면 더 이상 발전이 없다는 것이다.
정신력이 만든 기적들
미국의 글렌 커닝엄(1909~1988)은 일곱 살 때 다리에 큰 화상을 입었다. 의사는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고 선고했다. 하지만 커닝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의사는 “그렇게 되면 평생 휠체어에 의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커닝엄은 어느 날 스스로 휠체어에서 땅바닥으로 나뒹굴었다. 하지만 몸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그는 아기처럼 배밀이로 조금씩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기면서 두 다리로 서는 연습을 했다. 결국 그는 땅 위에 우뚝 두 다리를 세울 수 있었다. 가족들은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기적’이라며 기뻐했다.
커닝엄은 곧바로 걸음마를 시작했다.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온몸이 상처투성이로 변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뚜벅뚜벅 다른 사람들과 같이 걸을 수 있었다. 그러자 이번엔 달리기 연습에 들어갔다. 처음엔 걷기나 달리기나 똑같았다. 자신은 죽을힘을 다해 달렸지만, 남이 보기엔 걷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결국 커닝엄은 13세 때 육상선수가 됐다. 그뿐만 아니다. 야구 미식축구 복싱 레슬링 등 못하는 게 없었다. 1934년 커닝엄은 남자 육상 1500m에서 세계신기록(4분6초7)을 세웠다. 곧이어 1936년 베를린올림픽 1500m에선 3분48초4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윌마 루돌프는 2kg의 미숙아로 태어나 네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렸다. 왼쪽다리가 안쪽으로 굽은 채 마비돼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 얼마 후엔 성홍열과 양쪽 폐렴까지 겹쳤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집안에 늘 혼자 남겨져 누워 있어야만 했다. 사람들은 그를 ‘병신’이라고 놀렸다. 그는 여성에다 흑인이었다. 게다가 그가 사는 지방은 1950년대 인종차별이 심한 미국 남부였다.
루돌프는 피나는 걷기연습 끝에 아홉 살 때 처음으로 지팡이 없이 걸었다. 열두 살 땐 그 지긋지긋한 지팡이를 던져버렸다. 고등학교 때는 농구와 육상선수로 펄펄 날기 시작했다. 마침내 열여섯 살인 1956년 호주 멜버른 올림픽 미국대표팀에 뽑혀 여자 400m 릴레이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4년 뒤 1960년 로마올림픽 땐 100m에서 11.0초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또 200m(24.0초), 400m 릴레이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겨우 스무 살 때 올림픽에서 3개의 금메달을 따낸 첫 미국 여성이 됐다.
루돌프는 1960년 AP통신 선정 ‘올해의 여자운동선수’, 1961, 1962년 미국 최고 아마추어선수상, 1962년 미국 최고 여자운동선수로 ‘베이브 디드릭슨 상’을 받았으며 1963년 미국올림픽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그는 말한다.
“나는 외롭고 처참했던 어린 시절을 단 한순간도 잊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때조차도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나는 달릴 때면 언제나 한 마리 자유로운 나비가 된다.”
생각을 버려라!
축구 야구 농구 배구 등 그 어느 종목이든 그 기술을 완전히 익히는 데 최소 10년은 걸린다. 그래서 무슨 스포츠든 일찍 시작할수록 좋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는 세 살 때부터 훈련을 시작했고 여섯 살 때 토너먼트 경기에 출전했다. 15세 무렵엔 주니어 아마추어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다. 토너먼트 출전에서부터 첫 우승을 차지할 때까지 10년이 걸렸다.
그렇다면 세계 1인자가 되려면 얼마나 걸릴까. 기술을 완전히 익힌 뒤 적어도 10년은 돼야 한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촉망받는 스타였던 마이클 조던은 1991년 시카고 불스에서 NBA 우승 때까지 10년이 걸렸다. 결국 운동을 시작해 20년쯤 돼야 세계 1인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우즈는 21세 때 세계 랭킹 1위가 됐는데 세 살 때 골프채를 쥔 이후 19년 만이었다. 베이브 루스 19년(7세 시작~26세 홈런왕), 펠레 20년(5세 첫 경기~25세 최고선수), 랜스 암스트롱 18년(10세 첫 우승~28세 투르 드 프랑스 우승) 등도 비슷하다.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세계 최고 스포츠 스타들은 평균 8세 때 운동을 시작해 17세 무렵 기술을 완성한 뒤, 25세 때쯤 세계 최고가 된다’고 말한다.
기술을 완전히 익히면 이젠 생각을 버려야 한다. 생각이 개입되면 근육에 익혀놓은 기술이 자꾸 흐트러진다. 강을 다 건너면 배(생각)를 버려야 하는 것과 똑같다. 스포츠 스타 중에는 훈련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기량이 더 떨어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의식과잉이 근육에 저장된 무의식 본능과 부딪치기 때문이다. 생각이 본능을 뛰어넘은 것이다. 너무 많이 노력하면 자신의 뜻과 반대되는 결과를 부르게 된다.
‘입스(YIPS)’라는 게 있다.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이 갑자기 움직이지 않은 데서 유래했다. 어제까지 연주하는 데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돌연 손가락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몸에 무슨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근육이나 관절 등 신체적으로는 멀쩡하다. 엑스레이나 MRI 등 온갖 검사를 다 해봐도 이상을 발견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손가락은 얼어붙은 듯 전혀 움직일 수가 없다. 황당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의학적으로 온갖 설이 있지만 아직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
입스는 이제 스포츠 분야에서 더욱 유명하다. 골프의 ‘퍼팅 입스’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프로골퍼가 홀컵 50cm 앞까지 바짝 붙이는 데 성공하고도 그 다음 퍼팅이 안 되는 것이다. 천하의 프로골퍼가 그 정도의 퍼팅을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러기는커녕 퍼팅을 했다 하면 되레 홀컵에서 훨씬 뒤로 벗어나기 일쑤라면 그걸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하지만 잘나가던 프로골퍼 중엔 이 망할 놈의 퍼팅 입스 때문에 꿈을 접은 사람도 있다.
야구에선 이를 흔히 ‘스티브 블래스 병(病)’이라고 한다. 스티브 블래스 병이란 ‘잘 던지던 투수가 갑자기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고 헤매는’ 것을 말한다. 스티브 블래스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투수였다. 1968년 18승부터 1972년 19승까지 5년 연속 두 자리 승수(8년 통산 100승)를 기록한 대단한 투수였다. 하지만 그는 1973년 시즌(3승9패 평균자책 9.85)부터 갑자기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1974년 한 경기에 등판, 5이닝 동안 7개 볼넷을 내주며 8실점한 뒤 32세 나이로 은퇴하고 말았다.
척 노블락이라는 아메리칸리그 최고의 2루수도 스티브 블래스 병으로 그라운드를 떠났다. 척 노블락은 1991년 미네소타에서 데뷔해 공격·수비·주루 삼박자를 갖춘 최고의 2루수로 각광 받았다. 뉴욕 양키스가 그런 스타를 가만히 놓아둘 리 없었다. 1998년 큰돈을 들여 그를 모셔가다시피 했다. 하지만 그는 2000 시즌부터 스티브 블래스 병에 걸렸다. 평범한 2루 땅볼도 1루로 송구하는 게 아니라, 아예 상대 덕아웃이나 관중석으로 던져댔다. 그는 결국 2002년 33세로 옷을 벗어야만 했다.
‘마음의 병’ 입스
2000년 빅리그에 데뷔한 왼손투수 엔키엘(28·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도 마찬가지다. 그는 데뷔하자마자 최고시속 155㎞의 불같은 강속구와 낙차 큰 커브를 앞세워 첫해 11승7패(175이닝에 194개 탈삼진), 평균자책점 3.50을 기록하며 단숨에 에이스로 발돋움했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향후 10년 동안 내셔널리그를 주름잡을 것”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그해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디비전시리즈에 등판한 엔키엘은 갑작스럽게 제구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2⅔이닝 동안 볼넷 6개와 폭투 5개를 기록하고 마운드에서 쫓겨난 것이다. 그가 기록한 ‘1이닝 폭투 5개’는 아직도 메이저리그 기록이다. 무엇 때문에 앞길이 창창하던 특급 신인투수가 갑작스럽게 제구력을 잃어버렸을까. 이후 엔키엘은 재기를 노렸지만 2001년 1승2패를 기록한 뒤 마이너리그로 내려갔고 2004년에 잠시 빅리그에 올랐다가 1승만을 거둔 뒤 팔꿈치 수술을 받고 투수 생활을 완전히 접었다.
한국 프로야구 기아의 강속구 투수 김진우도 그런 경우. 한때 한국 프로야구를 짊어질 유망주로 기대를 한몸에 받았지만 스트라이크를 잘 던지지 못하는 ‘입스’에 걸려 임의탈퇴로 선수생활을 접었다. 축구에선 페널티킥을 못 차는 선수가 의외로 많다. 보통 징크스로 얼버무려지지만 정확하게 말한다면 이것도 입스의 일종이다. 차범근 감독도 현역 시절에 페널티킥을 차라면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차 감독이 넣은 골은 모두 98골. 놀랍게도 이 98골 모두 필드골이다. 단 1골도 페널티킥으로 얻은 골이 없다. 차 감독이 단 한 번도 페널티킥을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입스란 의식과잉으로 엉뚱한 움직임이 나오는 것을 말한다. 생각이 많아 근육에 저장된 무의식 본능이 발휘되지 못하는 것이다. 견제구를 던지지 못하는 투수, 투수한테 공을 못 던지는 포수, 평범한 땅볼을 잡고도 1루에 던지지 못하는 3루수 등이 바로 그렇다. 심지어 걷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도 있다. 오른발을 내디디면서 오른손을 올리는 게 바로 그렇다. 군대에선 그런 사람을 흔히 ‘고문관’이라고 부른다.
일본 인기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는 바로 입스를 주제로 한 소설이다. 칼이나 젓가락, 유리조각 등 뾰족한 것만 보면 온몸이 굳고 진땀을 비적비적 흘리는 야쿠자, 평범한 공중그네 타기에서조차 자꾸 떨어지는 곡예사, 장인의 가발을 벗기고 싶은 충동에 휩싸여 비지땀을 흘리는 의사, 1루에 공을 던지기만 하면 폭투가 되는 프로야구 3루수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작가의 결론은 간단하다. ‘마음의 병’이라는 것이다. ‘생각이 너무 많아 걸린 병’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아기가 뱀을 무서워하지 않는 이유는 용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게 뭔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까지 말한다.
“투수의 제구력이라는 게 머릿속으로 그린 이미지를 따라가느냐, 못 따라가느냐의 문제 아닌가. 오히려 영감(靈感)에 가까운 것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은 자기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질 않아. 그러니까 일단 톱니바퀴가 한번 어긋나기 시작하면 고치기가 어렵지…투구 폼은 완벽한데 제구력 난조를 보이는 투수도 있잖아. 그런가 하면 아무렇게나 던져도 훌륭하게 코너에 꽂는 투수도 있고. 도대체 그런 걸 어떻게 이해해야 되냐고…야구를 한 지 20년은 거뜬히 넘었을 거 아냐? 머리는 한순간 잊는다 해도 몸은 확실히 기억하니까 걱정마라. 너는 머리가 앞서서 몸 움직임을 가로막는 거라고.”
무의식 본능과 멘털 리허설
그렇다. 몸은 알고 있다. 생각을 멈추면 몸이 알아서 한다. 최고스타들은 ‘아무 생각 없이도 플레이 할 수 있을 때’까지 운동기술을 몸에 익힌다. 그들은 ‘무의식 본능’으로 플레이를 펼친다. 오른쪽 뇌를 쓴다. 오른쪽 뇌는 근육에 기억된 기술을 직감적으로 자연스럽게 펼친다. 그 순간 몸짓은 정말 아름답다.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다. 받아들이고 반응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무의식 본능에서 이뤄진다.
펠레는 수많은 연습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 본능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무의식 본능으로 공을 찼다. 본능이 생각에서 벗어나 자유자재로 발휘됐다. 한마디로 무의식 본능(무아지경, 완전몰입, 집중)은 더 이상 의식이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 경지다. 그들의 집중력은 무시무시하다. 우즈는 “내 옆에서 폭탄이 떨어져도 모를 것이다. 난 그 정도로 집중한다”고 말한다. 스포츠과학자 로버트 올스턴은 “뛰어난 기량은 무의식 중에 또 다른 정신이 자신을 지배하고, 아무런 의문을 갖지 않고, 어떠한 의식적인 명령도 요구하지 않는 그런 상태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최고 스타들은 경기를 하기도 전에 이미 경기를 한 듯한 느낌으로 나온다”고 단언한다.
스타들은 본능적으로 멘털 리허설(mental rehearsal)을 끝내고 경기를 시작한다. 멘털 리허설이란 ‘예상되는 현실 장면을 미리 이미지로 그려보고 마음속으로 연습하는 것’이다. ‘이미지 트레이닝’과도 비슷하지만 멘털 리허설은 이보다 훨씬 범위가 넓다. 1954년 세계 최초로 1마일 4분 벽을 깬 영국의 배니스터가 우승 후 “이런 장면이 전혀 낯설지 않다”고 말한 것도 그 때문이다.
세계 최고 스포츠 스타들은 대부분 성격이 비슷하다. 일단 그들은 어릴 때부터 자기 자신에 한계를 두지 않는다. ‘난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 글렌 커닝엄이나 윌마 루돌프는 남들이 ‘병신’이라고 놀렸지만 자리를 털고 일어나 세계최고의 육상 선수가 되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한가. 어떻게 불가능한 일이 가능한 것으로 바뀔 수 있는가.
그것은 정신근육이 몸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정신이 포기하지 않는 한 몸의 한계란 없다. 거꾸로 ‘이게 내 한계야’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순간 그 선수 생명은 끝이 난다. 모든 제약은 자신의 마음과 가슴에서 나온다. 몸은 그 마음과 가슴의 아들일 뿐이다. 결국 스포츠 스타들의 최대 라이벌은 자기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스타들은 기술을 배울 때도 독특하다. 감독이 가르쳐준다고 다소곳이 배우지 않는다. 베이브 루스는 피칭 연습을 하라고 하면 배팅 연습을 했고, 1루 수비를 연습할 땐 외야까지 달려나가 공을 잡았다. 한마디로 반항아가 많다. 그들은 자신의 넘치는 창조성과 끼를 주체하지 못한다. 그들은 모험도 즐긴다. 그러다 크게 실패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실패를 통해 금세 훌쩍 한 단계 뛰어오른다. 그만큼 경기를 즐긴다. 주눅 들거나 움츠러들지 않는다. 자신감, 뜨거운 열정, 강한 승부욕, 무서운 집중력….
최고 선수의 조건
한국 선수들은 육체근육 단련엔 지나친 부분이 있는 반면에 정신근육 단련에는 무지하다. 젊은 선수들이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설정하고 그걸 너무 의식한다. 그런 의미에서 29년째 꿈쩍 않고 있는 한국 남자 100m 기록(10초34)도 한번 깨지기만 하면 우르르 벽을 넘는 선수들이 줄을 이을 것이다.
모든 육체근육은 늘 정신근육에게 속삭인다. 자꾸만 “그만두자”라고 유혹한다. 그런데도 “안 된다”하고 계속하는 게 바로 정신근육이다. 이런 선수가 세계 최고가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육체근육을 업그레이드 시킨다. 진짜 선수는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예 존경하는 스타가 없다. 그것조차 또 다른 한계 설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