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호

‘럭셔리 지표’

  • 김민경 동아일보 ‘The Weekend’ 팀장 ‘holden@donga.com’

    입력2008-01-07 10: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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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럭셔리 지표’
    경제지표라는 게 있다. 사전적으로는 ‘경제활동 상태를 알기 위해 특정 경제현상을 통계적 수치로 나타낸 것’을 의미한다. 예전엔 국민소득 정도가 일반인이 알아야 할 경제지표였는데, 요즘은 고용지수 물가지표 생산지수 물가상승률 등 수십 가지의 경제지표가 발표되기만 하면 뉴스 헤드라인으로 올라간다. 그뿐 아니라 미국 다우지수, 미국 기준금리, 월마트 4분기 수익률과 인도 주가도 우리가 알아야 할 경제지표란다. 다른 나라 금리가 동네 슈퍼마켓에서 파는 소시지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는 시대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세계적, 국가적 경제지표가 별 의미를 갖지 못하는 마켓이 럭셔리산업, 흔히 말하는 명품산업인 것 같다. 럭셔리 상품 소비자는 줄줄이 빨간불이 켜진 경제지표들보다 꽉 막힌 도산대로 위 자동차들의 빨간 후미등에 더 민감하기 때문이다(물론 이건 한 쇼퍼홀릭의 결론이다. 밀접한 경제적 상관관계가 왜 없겠는가!).

    그런데 럭셔리 마켓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빨간불’이 있다. 일종의 ‘럭셔리 지표’라고 불러야 할지 모를 이것들은 경제지표와 무관하나 그 효과는 초강력 태풍과도 같아서 고객을 매장 밖으로 몰아내고, 예약했던 아이템까지 취소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최근 럭셔리 지표에 빨간불이 들어온 사건은 삼성과 관련한 특검 가능성 발표였다.

    “연말이라 럭셔리 부티크로 보면 일종의 ‘대목’인데 특검설이 발표되자마자 매장에 손님들이 오질 않아요. 단골들은 서로 마주칠까 두려워하고요.”

    한 럭셔리 브랜드 플래그숍 매니저의 말이다. 직전에도 대통령후보 부인이 든 백과 시계 때문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대선후보들의 공보 담당자들이 ‘에르메스백’인지 ‘허미스’인지, ‘프랑켄슈타인’인지 ‘프랑크뮐러’인지를 어떤 사람들이 갖고 다니는 물건인가 알아보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전에는 물론 신정아씨 사건 때였다. 신정아씨 사건과 특검설 모두 재계, 미술계 인사들의 이름이 많이 거론된 탓에 이들과 관계도 깊고 고객도 많은 럭셔리 브랜드들이 울상을 지었다. 또 신세계 본점에 새로 입점한 에르메스 매장에서 이곳을 방문한 신세계 회장이 주문했다는 2억원짜리 백 때문에 한동안 에르메스가 홍보를 일절 중단한 일도 있다. 당시 에르메스는 언론에 켈리백과 버킨백의 사진이 나가지 않도록 엄청나게 신경을 썼다.

    하긴 에르메스 버킨백이나 프랑크뮐러 같은 고가 아이템을 소비하는 사람들 중에는 숍 매니저와 시간을 예약해서 매장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VVIP라면 매장 직원이 자택으로 상품을 들고 가기도 한다. 그쪽에 예약문화가 유달리 발달해서가 아니라 ‘내가 갈 테니,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게 하라’는 뜻이다. 아무도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비인기 연예인들이 동네 앞에 나갈 때도 모자와 시커먼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언제 남편이 출마할지 모르고 언제 들고 다니던 악어 가방이 찍힐지 모르니, 그럴 만도 한 것 같다.

    한 럭셔리 브랜드의 한국지사장은 “한국에 수천만원짜리 가방이나 억대 시계를 알아보고 당당히 ‘좋아서 사겠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딱 1000명 정도다”라고 말한다. 2007년의 ‘경고성 럭셔리 지표’들을 보니, 이것도 나름대로 한 해를 정리하는 사회적 지표가 될 듯하다. 또 각종 ‘설’이 터질 때마다 들고 다니던 가방, 입던 옷 넣어두고 중저가 내셔널 브랜드를 입고 다녀야 했던 얼굴들도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뭐 언젠가 ‘대통령은 프라다를 좋아해’ 같은 기사가 나오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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