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 공모전 7회 수상
- 단순 디자인 아닌 아이디어 상품 개발
- 10년 동안 하루 3시간 이상 자본 적 없어
- 디자인의 매력은 ‘나눔’
- “한국의 ‘디자인 철학’ 만들고 싶다”
세계적 권위의 디자인 공모전인 독일 ‘레드닷(Red Dot)’에서 대상을 차지한‘롤리-폴리 화분’.
디자인을 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한다는 이가 있다. 바로 카이스트(KAIST) 산업디자인학과 배상민(裵相旻·36) 교수다. 그가 이끄는 팀이 세계적 권위의 디자인 공모전인 독일 ‘레드닷(Red Dot)’에서 대상과 최우수상을 휩쓸었다.
독일 ‘IF’, 미국 ‘IDEA’와 함께 세계 3대 디자인 공모전으로 꼽히는 레드닷은 제품 디자인·커뮤니케이션 디자인·콘셉트 디자인 3개 부문으로 나누어 시상한다. 2007년엔 전세계 47개국에서 6000여 점의 작품이 출품돼 각축을 벌인 결과 106개 작품이 베스트로 선정됐고, 각 부문에서 1점씩 3개의 작품이 ‘Best of the best award(대상)’로 선정됐다. 배상민 교수팀은 콘셉트 부문에서 식물에 물을 주는 시기를 알려주는 ‘롤리-폴리 화분’으로 대상을, 옷의 재질이나 빨래 방법 등을 담은 ‘클로스태그(cloth TAG)’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하고 막 돌아온 그를 카이스트 연구실에서 만났다.
“11월30일 싱가포르에서 시상식이 열렸어요. 제품과 커뮤니케이션 부문은 독일에서, 콘셉트 부문은 싱가포르에서 시상식이 열려요. 싱가포르 레드닷 디자인 박물관에 수상작들을 전시하고요.”
수상 소감을 묻자 그는 “제품 디자인은 협업”이라면서 자신이 혼자 일군 성과가 아님을 강조했다. 그리고 열심히 참여해준 ‘ID+IM’ 디자인 연구실 연구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의 디자인연구실 이름이자 브랜드 이름인 ‘ID+IM’은 ‘I DESIGN, therefore I AM’의 약자다. 이 외에도 ‘ID’는 ‘Innovative Design(혁신적인 디자인)’, ‘Instinctive Design(직감적인 디자인’, ‘Interactive Design(상호적인 디자인)’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리고 ‘IM’은 디자인을 하는 그 자신, 즉 주체를 의미한다. 제품에 작가의 철학을 담아야 한다는 그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디자인 철학을 찾아보기 어려워요. 철학이 없으면 디자인을 한 주체는 사라지고 제품만 남죠. 작가정신이 깃든 디자인, 철학이 담긴 디자인을 만드는 데 우리 ‘ID+IM’이 앞장서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평생 받을 상 2년 동안 다 받아”
2006년에는 대만국제디자인공모전에서 금상과 장려상을 받기도 했다. 출품한 작품 3개 모두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 2007년 역시 대만디자인공모전에서 ‘와인텔러’라는 작품으로 장려상을 받았으며, 런던디자인공모전에서도 수상한 경력이 있다.
“2005년 9월에 카이스트로 온 이후 2년 동안 상을 7개나 받았어요. 흔치 않은 일이죠. 아마 평생 받을 상을 지난 2년 동안 다 받은 것 같아요. 겸손한 마음으로 더욱 열심히 해야죠.”
‘레드닷’에서 대상을 수상한 롤리-폴리 화분은 밑바닥이 오뚝이 아랫부분처럼 반원형으로 생겼다. 식물이 필요로 하는 물의 양을 설정하고 물을 주면 화분 내부의 무거운 부분과 물탱크 부분의 무게가 균형을 이뤄 처음에는 똑바로 서 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화분에 물이 줄어들면 물탱크 부분의 무게가 가벼워지면서 무게의 균형이 흐트러지고 화분이 기울게 된다. 식물을 키우는 사람은 그 화분의 기울기를 보고 물을 줘야 할 때를 판단할 수 있다. 이 작품에 대해 그는 “꽃을 의인화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롤리-폴리 화분의 꽃도 사람처럼 목이 마르면 쓰러지고, 물을 마시면 다시 일어나기 때문이다.
최우수상을 받은 클로스태그에는 세탁 방법, 다림질 방법, 색상, 사이즈, 재질, 색상 코드 등 옷의 특성에 관한 정보가 입력되어 있다. 기존의 옷 꼬리표처럼 그림으로 사용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게 디자인됐다.
“클로스태그에 입력된 옷에 대한 정보는 옷과 관련된 생활상의 각종 기기와 연동돼 사용자가 옷을 관리하는 데에 도움을 주죠. 예를 들면 세탁기나 다리미와 연동돼 옷의 정보를 읽은 다리미가 저절로 옷에 맞게 온도를 조절하거나 세탁기가 알아서 옷에 맞는 세탁을 해주는 식이죠. 클로스태그를 만드는 데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렸어요. 그만큼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대만국제디자인공모전에서 금상을 받은 ‘바텀업(bottomup)’이란 작품은 두 개의 빈 페트병 중간에 필터를 끼운 것이다. 한마디로 휴대 가능한 워터 필터다. 이것은 물을 구하기 힘든 여행지 같은 곳에서 강물 등 마시지 못하는 물을 즉석에서 음용수로 정화시켜준다. 물뿐 아니라 어떤 종류의 음료수라도 걸러 마실 수 있도록 설계했다.
장려상을 받은 ‘헬로 태그’는 추적과 잠금 기능이 있는 여행자용 전자태그다. 고유한 발신 전파를 내기 때문에 이 태그가 부착된 분실물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 ‘안테나’는 외국인과 실시간으로 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동 통역장치로, 기존 안테나의 상징성과 기능을 잘 살린 작품이다.
올해 대만국제디자인공모전에서 장려상을 받은 ‘와인텔러’는 한마디로 와인 정보를 알려주는 오프너다.
생활 속 아이디어
“와인을 무척 좋아해요. 그런데 한국에 오니까 뉴욕에서와는 달리 사람들이 와인을 공부하면서 마시더군요. 이상했어요. 공부하면서까지 와인을 마시기는 싫더라고요. 그래서 와인을 그냥 편하게 마시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 바로 와인텔러예요. 코르크에 칩을 끼운 다음 와인텔러로 코르크를 따면 와인에 대한 정보가 쭈욱 나오는 거죠.”
그는 아이디어는 멀리 있지 않고, 생활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와인텔러는 물론 롤리-폴리 화분도 그의 경험에서 나온 작품이다.
“혼자 오래 살다 보니 꽃을 많이 키웠어요. 그런데 제때 물을 안 주거나 물을 너무 많이 주는 바람에 참 많이 죽이기도 했죠. 결국 자꾸 죽일 바에야 아예 키우지 말자 싶어 안 키우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순 없을까 계속 생각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반짝하고 생각난 것이 롤리-폴리 화분입니다.”
롤리-폴리 화분은 아이디어를 그려내는 데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바텀업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그는 이 두 작품에 특별히 애정이 간다. 롤리-폴리 화분과 바텀업은 보는 순간 디자인이 이해되고 쉽게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진보할수록 사람들은 단순화를 추구하려 노력합니다. 따라서 아이디어도 내는 순간 끝이 보여야 성공할 수 있다고 봐요. 앞으로는 심플함, 그리고 거기에 따르는 공감을 전하는 디자인을 하고 싶어요.”
배 교수는 뉴욕의 디자인 명문인 파슨스디자인학교에서 제품 디자인을 전공했다. 고교 졸업 후 국내 대학의 영문학과에 합격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등록만 했다. 그리고 바로 군에 입대했다.
“고2 때부터 발레리노가 되고 싶었어요. 대학로에서 우연히 재즈댄스 공연을 보다 제가 춤에 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언어가 아닌 몸짓으로 나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고, 유명한 발레리나인 이모의 영향으로 발레리노를 꿈꾼 거죠. 그런데 집에서 워낙 반대하는 바람에 아버지의 뜻에 따라 영문과를 간 거예요. 그렇게 현실적으로 타협을 하고 입학은 했는데, 막상 다니려니 다닐 수가 없더라고요.”
“제품 디자인은 내 운명”
배 교수는 “아이디어는 생활 속에 있다”고 말한다. 휴대 가능한 워터필터 ‘바텀업(bottomup·맨 위)’, 무료로 디자인한 MP3 ‘나눔(가운데)’, 옷에 대한 정보를 담은 ‘클로스태그(colth TAG)’.
“어느 날, 나는 남자인데 왜 자꾸 이런 옷을 입히느냐고, 입기 싫다고 어머니에게 말했어요. 그랬더니 어머니는 바로 입지 말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딱 두 마디를 더하셨죠. ‘그걸 하나 소화 못하나, 인격 부족이네.’ 그 말을 듣는 순간 다시 입겠다고 했어요. 어린 마음에 자존심이 상했던 거죠(웃음). 그렇게 어릴 때부터 튀었고, 자연스레 무엇을 해도 다른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거예요.”
제대 후 그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사촌형의 권유로 그래픽 학원에 다녔다. 그곳에서 포토그래퍼들을 만나면서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래서 1993년 미국 유학을 떠날 당시엔 사진을 전공할 참이었다.
그런데 학부 시절 사진 관련 수업이 그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1학년을 마치고 전공을 선택할 때 그는 고민을 많이 했다. 그 무렵 그를 아끼던 입체 디자인 클래스 교수가 제품 디자인을 해보라고 권했다. 입체 디자인 클래스에서 올 A를 받은 그의 재능과 가능성을 알아본 것이다. 그 교수의 판단을 믿고 제품 디자인을 전공하게 됐는데, 막상 하고 나니 이것이 운명이구나 싶었다. 그는 다시 태어나도 디자인을 할 것 같다고 말한다.
“6개월 정도 지나니까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어요. 내가 이것을 하려고 그렇게 돌아 돌아 왔구나 싶더라고요. 그 다음부터는 물불 안 가리고 했어요. 13일 동안 밤을 새운 적도 있고, 너무 무리한 끝에 길거리에서 쓰러진 적도 있어요. 그렇게 노력한 3년 동안 10kg이 빠지더군요.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제품 디자인이 너무 좋았고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힘든 줄도 모르고 했죠. 덕분에 제품 디자인과에서 늘 1등을 했어요. 제 평생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죠.”
시대 뛰어넘는 디자인
1997년에는 미국 미술대 졸업반 학생들의 작품 경연대회에 학교 대표로 나가 1등을 했다. 덕분에 졸업 후 미대생들이 선망하는 최고의 디자인 회사인 뉴욕 스마트 디자인(Smart Design Inc.)에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 은사가 그에게 모교 강단에 설 것을 권유했다.
“1997년부터 직장을 다니면서 파슨스디자인학교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처음엔 교수님이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의무적으로 했는데, 점점 가르치는 것에 보람을 느끼게 됐죠. 지식과 아이디어라는 것이 나눌수록 커지더라고요. 그러다 1999년 가을 즈음 직장에 회의가 들더라고요. 제품을 팔기 위해 멀쩡한 디자인을 6개월마다 바꾸는 등 디자인이 대중의 ‘필요’가 아닌 ‘시장논리’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이 실망스러웠습니다. 디자인을 통해 대중에게 행복을 주고 싶었는데, 점점 디자인이 ‘행복’이 아닌 ‘비즈니스’가 되어가는 게 싫었어요.”
2000년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학교 옆에 오피스텔을 얻어 자신의 회사를 차렸다. 그리고 강의를 하면서 석사과정을 밟았다. 사업도 잘되고 교수로서도 인정받던 그는 2005년 9월 또 한 번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13년 뉴욕 생활을 정리하고 카이스트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뉴욕 파슨스에서 대전에 있는 카이스트로 간다니까 친구들이 다들 반대했어요. 물론 결정하기가 쉽진 않았죠. 그런데 10년 뒤 나는 무엇이 돼 있을까 생각해보니 뻔하더라고요. 내 옆에 있는 선배처럼 결혼도 못하고 일만 하면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그렇게 살겠더라고요. 그래서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사실 뉴욕에선 해볼 거 다 해본 상태였고, 카이스트에서는 작가정신으로 디자인에 열중할 수 있겠다 싶어 뉴욕에서 이룬 모든 것을 버리고 이곳으로 온 거예요.”
그는 카이스트에서 사람들에게 행복과 기쁨을 주는 디자인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6개월마다 바뀌는 디자인이 아니라 시대를 뛰어넘는 디자인(timeless design)을 하겠다는 것. 그래서 자신의 디자인에 사람들의 추억을 담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디자인은? 요리, 나눔, 행복…
그는 디자인을 요리에 비유한다. 둘 다 만드는 사람의 감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둘 다 ‘나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요리한 음식도 여럿이 함께 먹는 것이 좋고, 디자인한 제품도 여럿이 함께 사용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음식을 남들이 맛있다고 하면 행복해지듯, 자신이 만든 디자인을 남들이 좋다고 하면 행복해진다. 그래서 그는 디자인은 요리이고, 나눔이고, 행복이라고 말한다.
“저는 디자인은 행복을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행복을 더 많은 이와 나누는 것, 이것이 제가 디자인을 하는 이유인 동시에 학교에 몸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는 바로 그 ‘행복 나눔’을 위해 뜻 깊은 일에 동참했다. 지난 11월5일 월드비전이 주관하고 GS칼텍스에서 후원한 MP3가 출시됐는데, 판매 수익금 전액을 불우한 이웃을 돕는 데 사용한다고 한다. 그는 그 MP3를 무료로 디자인해줬다. ‘디자인 기부’를 한 것이다. 10년 동안 하루 3시간 이상 잠을 자본 적이 없을 만큼 바쁜 그가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 것은, 디자인은 나눔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실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여겼기 때문이다.
“좋은 일은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이 있잖아요. 디자인은 거기에 딱 맞아떨어지죠. 사람들은 디자인이 좋아도 그것을 누가 했는지는 잘 모르잖아요. 그래서 조용히 행복을 나누려고 한 일인데, 본의 아니게 사람들에게 너무 많이 알려졌어요.”
그는 앞으로 ‘ID+IM’ 브랜드를 걸고 세계 시장에 자신이 만든 상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지금도 열심히 제품 개발 중에 있고, 새해엔 그 계획을 실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한다. 더불어 한국의 디자인 위상을 높이는 데도 앞장서고 싶다.
“무엇보다 제가 디자인한 제품을 사용하는 전세계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는 것, 그것이야말로 제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바입니다. 디자이너는 대중에게 행복을 주어야 할 의무와 행복을 줄 수 있는 특권을 동시에 가진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