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선 지분 노린 계파투쟁 필연, 정동영 2선 후퇴가 변수
- 당대표 합의 추대, 최고위원은 계파 간 나눠 먹기
- ‘이명박 신당’ 탄생하면 일부 세력 이탈
- 창조한국당, 총선 때 신당과 연대…민주당은 독자생존 불투명
대선 이후 범여권 진로의 열쇠를 쥐고 있는 정동영 후보. 2008년 1월 전당대회에서 대리인을 내세워 당권을 장악한 뒤 복귀할 가능성이 있다.
비록 대선에서는 패했지만, 4개월여 뒤에 18대 총선이라는 또 한 번의 승부를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범여권은 곧바로 체제 정비를 통해 총선 준비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신당의 한 초선의원은 “대선이 정치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아니다”라며 “대선은 패했지만, 18대 총선이라는 또 한 번의 승부가 남아 있다. 남은 기간 전열을 정비해 총선에서 어떤 성적을 거두느냐가 다음 대선에서 정권을 되찾을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와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 민주당 이인제 후보 등 범여권 후보로 분류돼온 세 사람은 대선 기간 내내 끊임없이 단일화 요구를 받아왔다. 그럼에도 단일화가 끝내 불발된 데는 지지율 격차가 워낙 커 단일화 효과로 대선 판세를 뒤집기 어려웠다는 점이 일차적 요인으로 꼽힌다. 후발주자이던 문국현 후보나 이인제 후보의 경우 자칫 아까운 후보 자리만 내주고 대선 패배라는 멍에를 함께 져야 하는 상황을 피하려 했다는 것.
특히 혈혈단신으로 창조한국당을 창당한 문국현 후보는 대선 완주를 통해 ‘가능성’을 확인한 뒤 대선 이후 범여권 분화를 염두에 두고 세(勢) 확대를 꾀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았다. 정치컨설팅업체 폴컴의 윤경주 대표는 “문국현 후보의 대선 완주는 내년 총선을 위한 포석의 의미가 강하다”며 “민주개혁세력의 대선 패배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음으로써 18대 총선에서 자생력을 확보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비록 대선은 끝났지만, 범여권의 이전투구는 계속될 듯싶다. 총선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에 곧바로 돌입할 것이기 때문이다.
“신당은 아직 건설 중”
대선에서 패배한 대통합민주신당은 곧바로 전당대회 준비에 착수, 대선 패배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전당대회를 통해 당의 면모를 새롭게 할 것으로 보인다. 2007년 8월5일 창당된 신당은 대통령 선거일을 불과 4개월여 앞두고 급조돼 아직 정당의 완전한 형태를 갖췄다고 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래서 당의 정체성도 제대로 확립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일반 국민 속에 모세혈관처럼 뻗어 있어야 할 당의 하부조직도 취약한 상태다.
신당의 한 재선의원은 “신당은 창당 이후 지난 4개월 동안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국민경선을 치르고, 이후 선대위 체제로 전환돼 대통령선거를 치른 것 외에 정당으로서 면모를 갖출 시간적 여유가 거의 없었다”고 했다. 이 때문에 대선 이후 불과 4개월여 만에 또다시 전국 단위의 총선을 치러야 하는 신당은 1월말 전당대회(이하 전대)를 통해 새 지도부를 선출하고 이를 계기로 당의 하부조직을 튼튼하게 건설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신당의 한 중진의원도 “당은 아직 건설 중에 있다”며 “대선을 치르는 동안 당이 제 모습을 갖추지 못한 한계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16개 시도당은 물론 전국 243개 지역위원회 등도 촘촘히 꾸려지지 못한 상황에서 대선을 치르다 보니 선거를 치러내는 데 한계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통합민주신당에선 대선 이후 ‘정동영 대 비(非)정동영 연합’ 구도로 당권 경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익명을 요구한 신당의 초선의원은 “대선 패배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후보로 나섰던 정동영 후보가 져야 한다. 그렇지만 정동영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덮어씌울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번 대선에 나타난 민의(民意)가 ‘정동영이 싫다’였다기보다는 ‘참여정부 등 범여권이 더 싫다’였다는 점에서다. 위 의원은 “대선에 나타난 유권자의 표심이 미래에 대한 선택에 방점이 찍혀 있기보다는 참여정부에 대한 심판적 성격이 강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이 같은 인식은 신당 내 친(親)정동영계 인사들뿐 아니라 중도 성향의 인사들 사이에서도 적잖이 감지된다. 2004년 총선 당시 PK지역에서 출마한 모 인사도 “대선 이후,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정동영 후보에 대한 동정여론이 일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다. 그는 “정 후보가 대선 이후 일정기간 2선으로 물러나 있으면서 전대에서 대리인을 내세워 당권을 다시 장악한 뒤 총선에 즈음해 복귀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정동영 대 非정동영 연합구도
‘이명박 특검법’이 국회에서 통과돼 대선 이후 특검 수사가 시작돼 정 후보가 대선전에 강조한 ‘부패 대 반(反)부패’ 전선이 대선 이후까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도 정동영 후보의 완전한 2선 후퇴 가능성을 막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1월 전대에서 선출되는 새 지도부가 4월 총선 공천권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총선 출마를 준비해온 친(親)정동영계 인사들마저 당권이 넘어가는 상황을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비록 정동영 후보가 ‘2선 후퇴’를 선언한다 하더라도 당 대표를 선출하는 1월 전대에 어떤 형태로든 대리인을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많다.
정 후보가 전대에 대리인을 내세운다면 1월 전대는 대선후보 경선의 연장선에서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 자연스레 대선후보를 거머쥐었던 정동영 후보 대 비(非)정동영 연합 구도로 대진표가 짜일 것으로 보인다.
대통합민주신당의 인적 구성은 대통령후보를 배출한 친정동영계 인사들을 비롯해 선진평화연대를 기반으로 한 손학규 전 지사 그룹, 재야 운동권 출신 인사들로 구성된 친김근태 그룹, 중도 성향의 열린우리당 중진그룹, 민주당 출신 그룹과 시민사회단체 인사 그룹, 여기에 친노 성향 인사 등 7개 그룹이 한데 묶여 있다.
이 같은 인적 구성의 특수성에 비춰볼 때 대선후보 경선에서 승리하며 당내 최대 계파로 부상한 정동영 후보측에서 대리인을 당대표에 출마시킬 경우 다른 정파들의 견제 심리가 일제히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친김근태계 인사는 “경선 이후 경쟁자들이 모두 선대위원장을 맡는 등 경선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자력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를 보인 만큼 정 후보가 대선 패배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대선에 패배했음에도 대리인을 내세워 또다시 당권을 거머쥐려 한다면 반대파들의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 후보가 대리인을 내세운다면 결국 비정동영 연합을 통해 세 대결을 벌이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치인이 추구하는 권력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일반 국민의 선택으로 결정되는 ‘대통령 권력’, 즉 대권이다. 대선에서 당선되면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5년 동안 정부와 산하단체 등에 대해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대권 쟁취를 위해 5년에 한 번씩 정당들은 사활을 걸고 경쟁을 벌인다.
대권에 버금가는 또 다른 권력은 당원들의 선택으로 결정되는 ‘당의 권력’, 즉 당권이다. 당권은 평상시 당의 재정과 인사를 관장할 뿐 아니라 총선과 지방선거, 각종 재보궐선거 등에 ‘공직후보자 추천권’(이하 공천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대권을 놓친 신당에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2008년 4월의 총선 공천권 때문인 셈이다.
정 후보측이 내세울 가능성이 있는 당권 후보로는 정대철 전 의원이나 김한길 의원 등 정 후보와 가까운 인사들이 꼽힌다. 그러나 당내 기반이 취약한 손학규 전 지사와 당내 세력이 가장 큰 정동영 후보가 전략적 제휴를 통해 당권 장악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 손 전 지사의 경우 경선에서 2위로 패한 이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줄곧 정 후보와 함께 전국을 돌며 선거운동에 앞장선 바 있다.
김한길 의원의 경우 대선후보 경선 직전 ‘당권 거래설’ 등이 불거져 당내 중진들의 거센 반발을 산 바 있어 정 후보측에서도 부담스러워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정 후보측 핵심인사는 “대선 패배 이후 당권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며 “한동안 정치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고민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2007년 초 참여정부평가포럼 등을 만들며 독자 행보를 계속해온 신당 내 친노 진영 인사들의 경우 대선 이후 ‘정당 개혁’을 명분으로 독자 행보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실제로 한 친노 원외인사는 “열린우리당도 제대로 된 정당개혁을 못해 실패했는데, 신당은 더욱 후퇴한 면이 있다”며 “돈 주는 총재만 없을 뿐 돈으로 정치하는 과거 민주당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라고 말했다.
‘안배형’ 지도부
그러나 대선 이후 독자 행보 가능성이 커 보였던 친노 진영은 대선이 진행되면서 급속히 당에 착근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특검법 통과 등을 계기로 친노 성향 현역 의원들의 경우 친노라는 범주로 한데 묶기 어려울 만큼 뒤섞인 면이 있다. 지역구를 가진 의원들의 경우 친노로 묶일 경우 자칫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크게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친노 진영 인사들은 대선 이후 참평포럼을 해체하는 대신 사단법인 연구소 형태의 ‘광장’을 출범시킬 예정이다. ‘광장’은 열린우리당 시절 중도 성향 중진들의 모임이었을 뿐 아니라 신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에는 이해찬 후보를 지지했던 모임 이름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중도 중진그룹과 친노 그룹이 ‘광장’에서 하나로 합쳐졌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1월 전대에서 ‘광장’은 한명숙 전 총리 등을 대표 주자로 내세울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편 신당 내 일부에서는 모든 정파 간 합의를 통해 추대 형식으로 당대표를 결정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7개 정파의 수장들이 중립 성향의 당 대표를 합의 추대한 뒤, 최고위원 등에 자파 인사들을 한 명씩 앉히는 ‘안배형’ 지도부를 구성하자는 것이다.
대선 패배 이후 또다시 전대에서 세 대결을 벌일 경우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더 크게 작용해 어려워진 총선 구도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전대 이후 총선까지 두 달여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점도 이 같은 합의추대론에 힘을 싣고 있다. 계파별 안배를 통해 지도부를 구성할 경우 현역 의원들이 프리미엄을 앞세워 공천권을 확보하기 쉽다는 점도 합의추대론의 배경이 되고 있다.
신당 관계자는 “현역 의원들이 계파에 상관없이 특검법 통과에 나선 것은 여전히 국회에서 ‘현역 의원들이 할 일이 많다’는 점을 대내외에 과시한 면이 있다”며 “현역 기득권을 더욱 굳히는 방향으로 전대 기류가 흐를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명박 신당’의 출현?
신당 등이 전대 등을 통해 대선 패배 후유증을 극복하고 새로운 지도부를 출범시켜 순항할 가능성도 있지만, 정계개편 회오리에 빠져들어 일부 이탈세력이 출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명박 당선자가 대선 기간 내내 ‘탈(脫)여의도 정치’를 공언해왔다는 점에서 새로운 기치를 내걸고 여야를 아우르는 새로운 정당 창당을 서두를 경우 범여권에서 일부 이탈하는 세력이 출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선 막바지 민주당 일각에서 ‘동서화합’ 등을 명분으로 한나라당과의 연대 주장이 제기됐던 것도 이 같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한다. 그뿐 아니라 ‘중도 보수’ 성향 의원들은 2008년 총선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판단될 경우 새로운 활로를 찾아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많다.
폴컴 윤경주 대표는 “대선용으로 급조된 신당이 대선에 패함으로써 총선 전망은 더욱 불투명해진 면이 있다”며 “신당의 주요 지지기반인 호남 출신을 제외하고 수도권과 충청권 일부 의원들의 경우 새로운 정치세력이 출현할 경우 몸을 실을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이명박 당선자가 주도하는 정계개편은 아무리 빨라도 특검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이뤄지기는 어렵다는 게 정치권 인사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오히려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신당 창당을 서두른다면 신당 내에서 입지를 굳히지 못한 일부 충청권 출신 인사들이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한편 문국현 후보가 주도하는 창조한국당이 총선을 맞아 정치권에 안착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대선 국면에서는 대선 후보 1인을 중심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다는 점에서 문 후보가 끝까지 단일화를 거부하고 대선 레이스에서 완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총선은 전국 223개 지역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선거의 성격 자체가 다르다.
대선 직전 창당된 창조한국당의 경우 지역 하부 조직이 거의 전무하다는 점에서 총선을 치르기에는 무리라며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다만 수도권 등에서 나름대로 득표력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최소한 신당 등과 연합공천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범여권에서 一與多野
민주당에 대해서는 대선 막판 탈당사태로 정치세력으로서의 의미를 거의 상실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한때 지역구 의원이 8명까지 있었지만, 지금은 이인제·최인기 두 의원이 남아 있을 뿐이다. 대부분 신당으로 옮겨간 상태다. 최인기 의원은 당적만 유지했을 뿐 ‘정동영 후보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다. 전국구 의원 4명도 당적 이탈은 곧 의원직 상실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당에 잔류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민주당이 대선 이후 재기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민주당 핵심 당직자도 “민주당의 운명은 나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12월19일 대통령선거를 기점으로 범여권이라는 용어는 유효하지 않다. 2008년 2월25일이 되면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로 재편된다. ‘무능’이란 꼬리표를 단 채 국민의 심판을 받고 다시 ‘들판’으로 내몰린 ‘범여권’에 앞으로 5년은 여당의 호칭을 되찾을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간이 될 것이다. 대중에게 ‘무능보다 부패가 더 낫다’는 비상식적 인식을 심어준 범여권이 앞으로 어떤 노력으로 ‘무능’을 극복할지 지켜볼 일이다.
당장 4월 총선은 ‘여’에서 ‘야’로 처지가 바뀐 ‘범여권’이 흩어진 민심을 다시 모을 수 있는지를 가늠할 첫 관문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