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첫 소설집 ‘불꽃 속의 나라’를 낸 박규원씨(朴圭媛·54)는 10년 전만 해도 평범한 전업주부였다. 그런데 갑자기 건강이 나빠지자 ‘이렇게 가만히 앉아 죽을 수는 없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리고 상하이로, 미국으로, 캐나다로, 작은외할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얻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갔다.
김필순(우리나라 최초의 양의사이자 독립운동가)의 셋째아들로 태어나 가난과 역경을 딛고 1930년대 중국 영화계 황제가 된 배우 김염이 바로 박씨의 작은외할아버지다. 집을 나설 땐 쓰러질 듯 병약했던 박씨가 상하이, 홍콩, 쿤밍, 샹그릴라 등 김염의 발자취를 따라 중국 대륙을 누비는 동안 건강을 회복했다니 신기한 일이다. 그는 치밀한 현장답사 끝에 완성한 김염의 일대기 ‘상하이 올드 데이스’로 2003년 민음사 주최 제1회 ‘올해의 논픽션’ 대상을 수상했다.
‘불꽃 속의 나라’는 박씨가 수년간 김염을 추적하면서 공부할 수밖에 없었던 중국 근현대사와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들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아편전쟁이 발발한 1843년부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될 때까지 100여 년 동안의 올드 상하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당시 상하이는 각기 다른 법이 존재하는 조계(租界) 때문에 하나의 도시 안에 여러 나라가 공존했지요. 과연 그런 세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신세계였던 상하이와 이면의 굴곡진 역사, 그리고 수많은 영혼이 빚어낸 기막힌 사연들을 글로 쓰지 않으면 못살 것 같았어요.”
생전의 피천득 선생과 교유한 그는 선생으로부터 “한 시대에만 읽히는 글을 쓰지 말라”는 가르침을 받았다며 “100년 전에 일어났고, 현재는 물론 100년 뒤에도 일어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이야기를 썼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