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정부시스템 개혁’ 최종만 지음, 나남, 528쪽, 3만원
일본을 연구했던 그가 영국은 어떻게 분석했을까? 일본과 영국, 두 나라 비교에도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 제10권에서 로마에 관한 수많은 문헌이 있지만 그중에 인프라를 다룬 책은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인프라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 주제를 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인프라 연구가 어려운 이유
“인프라 연구는 도로·항만·신전·경기장·수도 등의 하드웨어와 국방·치안·조세·교육·통화 등 소프트웨어적인 것까지 종합적으로 다루지 않으면 안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공간적·시간적으로 광범한 범위를 자유자재로 헤엄쳐 다닐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그런데 현대의 학문은 전문화와 세분화를 특징으로 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행위는 비학문적인 행위로 단정될 수 있고, 이를 무릅쓰고 도전한 경우에도 주제가 너무 광범위하여 결과적으로 수박 겉핥기에 그쳐버릴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시오노의 이러한 지적은 이 책 ‘영국의 정부시스템 개혁’에도 적용되는 얘기다. 저자가 통합체제론적 관점(integrated systems perspective)에서 얻어낸 연구 성과가 학문적으로 어떻게 평가될지는 자신할 수 없다. 그러나 가지가 아닌 숲을 보아야 근원적인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는 취지와, 고위공직자로서 국가 개혁 과제를 도출할 때 일조하고 싶다는 희망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무엇보다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조사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한 노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책의 구성방식은 지난번 일본 관련 저서보다 진일보했다. ‘일본의 자치체 개혁’에서는 행정 분야별로 나열하는 비교적 단순한 기술 방식을 취했으나, 이번에 발간된 저서에서는 영국의 정부시스템을 ‘누가, 무엇을, 어떻게’라는 관점에서 ‘통치시스템·업무시스템·계획시스템’으로 구분하고, 부문별로 대표적인 제도나 정책을 선정해 설명하는 등 기술(記述)의 잡다함을 최대한 피했다.
예를 들어 업무시스템 중 업무역량 향상 시스템의 경우, 중앙부처 차원의 미래 도전과제 해결 역량은 CR(Capability Review), 기관 단위의 인력개발 노력은 IiP(Investors in People), 개인별 기술·경험 양성은 PSG(Professional Skills for Government)만 갖고 분석했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각 부문의 대표를 설명함으로써 전체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마지막 장에서 이러한 영국의 정부시스템에 대해 종합적인 평가를 내린 것 또한 거시적 접근만이 누릴 수 있는 장점이다.
행정시스템에 대한 재고찰
이 책에서 저자가 가장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바로 “정치·행정의 기본 틀이 잘 되어 있지 못하면 성장 발전에 한계가 오게 마련이니, 우리나라도 한 단계 더 비약하기 위해서는 기본 틀에 대한 근원적인 재고찰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정치인이나 공직자가 무능·부패하고, 시민의 의식수준이 낮아 문제’라는 말을 곧잘 한다. 반면 저자는 그 원인을 개인이나 집단이 아닌, 이를 둘러싼 기본 구조나 체제에서 찾는다. “개혁정책이 연속성 없이 단발에 그치며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에 착수하지 못하는 것도, 의회와 행정부를 장악한 집권당이 정부개혁을 장기 구상 아래 차근차근 추진해 나갈 수 있는 정치구조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편 저자가 분석한 영국 정부 시스템은 “여당 의원의 절반가량인 110여 명이 행정부에 각료로 진출하여 핵심적인 개혁 과제들을 구상·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의회에서의 논의도 실제적일 수밖에 없다. 총리도 매주 한 번은 의회에 나와 야당 당수와 정책 토론을 해야 한다. 이런 시스템은 지방정부에도 적용되어 지방의원들이 집행부의 리더나 내각의 멤버 등을 맡고 있다. 민주적으로 뽑힌 대표들이 행정을 직접 수행하면서 전문성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접하고, 개혁을 이끌게 하는 시스템이 바로 영국 거버넌스의 기본”이다. 또한 “위로부터의 성과관리에만 치중하는 개혁이어서는 곤란하고, 고객인 시민의 선택권 보장, 행정서비스에 경쟁원리 도입, 정부기관 및 공직자의 역량 발전 프로그램이 동시에 결합된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계속적인 자율 개혁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영국의 사례들을 세부 영역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근원적인 문제의식을 갖도록 자극한다. 결국 영국은 “통풍이 잘 되는 사회”, 즉 기존 굴레에 얽매여 사회 전체가 안주하지 않는 시스템을 갖춘 저력이 있는 나라로 평가받을 만하다는 얘기다.
다음으로 저자는 “영국이 각종 개혁프로그램, 나아가 발전계획들을 얼마나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수립해 추진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개혁과 미래 발전을 주도하는 조직과 기구들을 ‘작은 정부’나 ‘대 부처주의’ 등의 단순 잣대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종합기획부처를 2~3개 부처로 집중시킨 반면, 이를 정책으로 구체화하는 과업은 다양한 성격의 1000여 개 기구에 맡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기구 중엔 정말 독특한 것이 많으며, 우리 정부의 개혁프로그램 추진에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을 만한 내용도 적잖아 보인다.
또한 저자는 “장기 미래 전망과 이에 따른 도전에 대응할 기본 방향이 내각사무처 주도로 정해지면, 이를 기초로 각 부처에서 해당 분야의 장기 전략을 마련한 다음 재무부와 함께 3년간의 우선전략과제 및 예산절감 목표 달성을 위한 중기 계획을 수립하고, 이와 연관하여 산하 기관이나 법인은 물론이고 지역 단위에 이르기까지 업무 성과를 높이기 위한 행정 내부의 개혁 목표와 주민생활과 직결되는 발전계획들을 수립한다”고 소개했다.
지방자치의 또 다른 활주로
그 한 예로 지역부(DCLG)의 예산절감 목표를 보면, “향후 3년간 400가지 기능을 삭감하고, 상용직 240개 자리를 런던 외곽 지역으로 이전하는 방법 등을 통해 성과 추가목표 달성에 필요한 예산의 약 절반(약 6조원)을 확보”하고자 하는 등 계획들이 매우 구체적이다. 이처럼 정책 과제들이 구체적이고 그 평가결과가 공개되기 때문에, 정부 개혁 프로그램에 대한 국민적 체감효과도 높다.
끝으로 영국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중 어느 한 쪽의 권한이 일방적으로 많거나 적다고 하기보다는 그 특성과 여건에 맞게 제 할 일을 할 수 있도록 상호 협력·지원하는 관계에 있다고 진단했다. 즉 중앙정부는 자치이념의 도그마 앞에 무기력해지지 않으며, 지방정부가 개혁에 적극 나서도록 정책과 기법을 개발 보급하고 그 성과를 정밀히 측정한다. 어느 지방정부가 다른 지방정부에 비해 어느 정도 수준에 와 있는지를 주민이 알 수 있도록 상세하게 공개한다. 이런 방법은 일방적이거나 하향적이지 않으며 또한 ‘지방과의 협약’ 형식을 띤다. 따라서 지방도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연합조직 등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 공동으로 대처한다.
아울러 영국의 지방계층구조도 예전에는 2층제로 하느냐 1층제로 하느냐, 또는 이들을 적정 규모로 재조정하느냐가 주요 관심사였으나, 지금은 그런 법정 지방정부의 굴레를 벗어난 다양한 형태의 거버넌스 시스템을 구축 중이라고 한다.
“광역보다 넓은 개념인 준(準)연방제 성격의 권역, 즉 리전(Region)이 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 분권정부의 출범 및 유럽연합의 권역정책 등에 영향을 받아 이미 지방행정의 중요한 계층 단위로 부상했다. 그리고 기초자치단체보다 하위 개념인 패리시(Parish)가 법정 자치 단위로서의 고비용 구조를 피하면서 주민자치의 이상을 실현하는 시스템으로서 강화되고 있으며, 주민과 민간단체·기업 등이 참여하는 지역전략파트너십(LSP)이 지방정부들과 함께 지역을 대표하는 공행정의 주체가 되어, 중요한 의사결정을 수행함과 동시에 공공서비스의 일부를 직접 제공하는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이런 영국의 지방자치 방식은 일본과는 또 다른 활주로로서, 우리가 이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