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당선자는 내내 감격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는 “요즘 세상이 시끌시끌해서 많은 사람이 저에게 유세를 다니지 말라고 하는데, 포항은 고향이어서 왔다”고 했다. 그 무렵 발생한 강화도 군 총기 탈취사건으로 대선후보 신변보호에 비상이 걸렸고, 실제로 이 당선자는 포항 방문 다음날부터 외부 일정을 대폭 축소했다. 포항 시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을 외치며 환호했다.
포항은 이명박 당선자의 사실상의 고향이다.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그는 다섯 살 무렵 가족과 함께 부친의 고향인 포항으로 와서 동지상고(현 동지고교)를 마칠 때까지 살았다. 그는 대학(고려대) 진학을 위해 서울로 떠난 후에는 포항에서 사업을 하거나 정치를 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이 당선자에 대한 포항 시민들의 애정은 대단하다. 이 당선자 역시 박근혜 전 대표와 맞붙은 대선후보 경선, 그리고 대선 본선에서 고향 사람들이 자신을 전폭적으로 밀어준 것을 잊지 않고 있다.
▼ 1 포항 인맥

이상득, 이춘식, 박창달(왼쪽부터 차례로)
2008년 2월25일 출범할 ‘이명박 정권’에선 ‘포항 인맥’이 뜰 것이란 얘기가 여의도 정가에서 일찌감치 나돌고 있다.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은 포항 인맥의 구심점이다. 이 부의장은 한나라당 경선 때 당내에 기반이 없던 이 당선자에게 사람을 모아주는 역할을 맡은 바 있다. 그는 포항의 국회의원 선거구 두 곳 가운데 포항 남-울릉에서 13대 국회 이후 내리 5선(選)을 했다. 동생인 이 당선자가 현대건설에서 샐러리맨 신화를 일궈냈다면, 이 부의장도 코오롱에 평사원으로 취직한 뒤 CEO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렇다고 이 부의장이 새 정부에서 요직에 앉아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나이(1935년생)도 있지만, 평소 성격으로 볼 때 대통령 자리에 앉을 동생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평이 많다. 4월 총선 불출마설도 나돈다. 다만 이 부의장은 막후에서 이 당선자의 포항 인맥뿐 아니라 정치권 전반에 걸쳐 인적자원을 관리해나갈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