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일. 오전 9시 넘어 꾸바행 비행기는 토론토 공항을 이륙했다. 출국장은 라틴계 직원이 많아 아연 활기차다. 몸동작, 목소리가 앵글로색슨계보다 크다. 여행자들에게 농담도 건네며 여유 있는 모습. 4시간30분 정도 날았을까. 들판에 쥐불을 놓았는지 여기저기 연기가 피어오른다. 꾸바 섬 상공에 접어든 것. 호세 마르띠 공항은 비수기 제주공항마냥 한가롭다. 섭씨 30도 안팎, 한국의 7,8월 날씨다. 하지만 그늘에 들어가면 금세 시원해진다. 공항 환전창구에서 캐나다 달러를 cuc(쎄우쎄·꾸바의 태환화폐)로 바꿨다. 1cuc는 1.1489C$. 환전금액의 10%는 꾸바 정부가 수수료로 뗀다(미국 달러는 20%).
첫 여행지인 산띠아고 데 꾸바행 비행기를 타러 국내선 공항으로 갔다. 버스 터미널 같은 청사에서 6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대합실의 꾸바인들이 ‘치노(중국남자)’라 부르며 수군댄다. 동양인이 낯설어서인지, 흘깃거릴 뿐 말을 거는 사람도 없다. 배낭을 맡기고 화장실에 가려고 옆자리 아주머니에게 말을 붙이려는데, 그녀가 황급히 자리를 옮긴다. 서로 안 보는 척, 조면을 하며 흘낏흘낏 구경하는 ‘대략 난감’한 상황. 그런 와중에도 포옹을 하며 오른뺨을 맞대고 입으로 ‘쪽쪽’ 소리를 내는 쿠바식 인사가 정겨워 보인다. 이는 남자와 여자 또는 여자끼리의 인사법인데, 남자들끼리는 보통 악수를 한다.
돈 가방이 든 작은 배낭의 멜빵을 꼭 쥔 채 하염없이 밤 비행기를 기다렸다. 비행기 연발 소식을 듣고도 태평하던 승객들이 마침내 탑승 안내방송이 나오자 박수를 치며 휘파람을 분다. 붉게 녹슨 구 소련제 비행기가 떴다.
산띠아고 데 꾸바의 마세오 공항. 인천공항서 여기까지 비행시간만 약 20시간. 시차는 13시간(이곳 정오가 한국에선 다음날 새벽 1시). 짐을 찾아 청사 밖으로 나왔을 땐 밤 11시가 넘었다. 정해진 숙소는 없다. 구체적인 여행 경로도 없다. ‘꾸바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산띠아고 데 꾸바에서 아바나로’가 계획의 전부. 낯선 도시의 어둠이 깊고도 막막하다.
“바모스 아 우나 까사 빠띠꿀라르 데 쎈뜨로(시내 중심지의 민박으로 갑시다).”
택시비 흥정 후 칠이 벗겨진 올드 카를 타고 털털대며 시내 쪽으로 달렸다. 택시 운전사가 안내한 민박은 이미 만원(11~4월은 꾸바의 건기로 관광 성수기)이었다. 민박집 아주머니가 어딘가로 전화를 하더니 한 블록 떨어진 이웃 민박집에 데려다준다.
“한국인 손님은 처음이에요.”
50대로 보이는 노르베르또와 미그달리아 부부가 구석방을 보여줬다.
5m 정도의 높은 천장, 온통 흰색 벽과 체크무늬 바닥. 초록색 커튼 뒤에 정작 창문은 없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인가. 숙식비 확인 후 나흘 밤을 묵기로 했다. 뚜껑 없는 양변기, 수압 낮은 수도와 샤워기, 낡은 차들이 비명처럼 내지르는 폭발음…. 꾸바의 첫날밤, 더블베드는 폐교의 운동장처럼 넓고 썰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