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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꺼풀 벗겨본 미국 3

현실보다 재미있는 TV속 현실?

깎고 다듬고 짜깁고 ‘리얼(real)’ 없는 리얼리티 쇼

  • 김수경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사회학 kimsk@stanford.edu

현실보다 재미있는 TV속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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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유명인이나 재벌 2세들의 초호화 일상을 그린 리얼리티 쇼 ‘마이 슈퍼 스위트 식스틴(My Super Sweet 16)’이 국내에서 제작된다면 아마도 여론의 뭇매를 맞고 폐지될지 모른다. 미국에도 유명 연예인이 일반인처럼 살아가는 과정을 그린 리얼리티 쇼가 있긴 하지만, 초점은 다르다. 인간미보다는 이들이 얼마나 ‘무개념’인지를 비춘다.

가령, 힐튼가의 상속녀 패리스 힐튼의 농장 체험을 그린 리얼리티 쇼 ‘심플 라이프(The Simple Life)’에서 그녀는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고 말했을 정도다. 국내 시청자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발언이다. 그런데 미국 시청자의 반응은 “그냥 그런가 보다” 정도다. 어차피 다른 세계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식이다.

혹은 한때 최고였으나 지금은 쇠락한 스타들이 출연해 돈을 벌 수 있다면 아무리 남루한 일상이라도 공개하는 모습에서 재미를 느낀다. 헤비 메탈의 전설로 통하는 오지 오스본은 자신의 일상을 다룬 리얼리티 쇼 ‘오스본 가족(The Osbournes)’에서 버릇없는 아이들에게 절절매고 개와 고양이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정신없는 초라한 가장으로 그려진다.

사실 미국 TV에서 방영되는 리얼리티 쇼의 대부분은 일반인의 참여로 이뤄진다. 돈이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된 일반인의 모습이 미국 리얼리티 쇼의 관전 포인트다. 이미 시중에는 ‘리얼리티 쇼에 캐스팅되는 법’ ‘리얼리티 쇼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법’과 같은 책도 나와 있다. 책 한두 권을 읽는 것으론 부족하다. 출연자들은 쇼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미 수천달러를 소비한다.

현실보다  재미있는 TV속 현실?

헤비메탈의 전설로 통하는 오지 오스본의 일상을 그린 리얼리티 쇼 ‘오스본 가족’의 한 장면.

저비용 고수익의 유혹



언론에 소개된 몇 가지 사례를 보자. 뉴욕의 의상 디자이너 바리오씨는 ‘프로젝트 런웨이(project runway)’에 캐스팅되기 위해 자비 7500달러(한화 750만원)를 들여 샘플을 제작했다. 또 설리반씨는 ‘서바이버’에 출연하기 위해 자신을 홍보하는 비디오테이프를 제작 발송하는 데 지난 5년간 8000달러를 지출했다.

영국의 문화학자 아니타 비레씨, 헤더 넌은 저서 ‘리얼리티 TV’에서 “리얼리티 쇼를 통해 일반인이 유명세를 타고 거액의 상금을 거머쥐는 장면이 전국에 중계되는 것은 시청자에게 계층이동의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주장했다.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시청률로 이어진다는 것.

물론 이에 대한 비판적 견해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리얼리티 쇼는 각계각층의 미국인이 한데 모이는 거의 유일한 창구를 제시하지만 계층이동에는 무관심하고 온통 짝짓기에만 몰두한다”고 비판했다. 계층 갈등이 제시되고 종국에 해소되는 드라마나 시트콤과 달리 리얼리티 쇼는 갈등이 제시될 뿐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은 채 끝나버린다는 것이다.

리얼리티 쇼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시각차를 단순히 평등의식이나 계층이동의 가능성 같은 국민정서상의 문제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에는 미국 TV산업의 한 가지 특징이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다. 바로 스타들의 출연료다. 천문학적 액수의 출연료 때문에 유명 연예인을 쇼에 고정 출연시키기가 쉽지 않다.

탐 크루즈와 같은 A급 배우의 경우 영화 1편당 출연료가 2000만달러를 웃돈다. 시청률을 보장할 만큼의 스타급 연예인이 아니라면 차라리 일반인을 등장시킨 신데렐라 스토리가 제작비도 절감하고 시청률을 상승시킨다. ‘빅 브라더’의 성공이 이를 증명한 것이다.

드라마나 시트콤의 경우 편당 제작비가 적게는 200만달러에서 많게는 1000만달러 이상 드는데 그중 대부분은 스타들의 몸값으로 나간다. 2002년 시트콤 ‘프렌즈’의 경우, 편당 제작비가 700만달러였고 그중 600만달러가 주인공들의 출연료였다. 그러나 리얼리티 쇼는 편당 100만달러선에서 제작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가격차는 단순히 경제적 이슈를 넘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지난해 미 시나리오 작가협회의 파업 당시 제작사 및 방송 관계자들은 “(리얼리티 쇼와 같은) 대본 없는 프로그램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며 작가들의 요구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실제로 대부분의 공백이 리얼리티 쇼로 대체 편성됐다. NBC 엔터테인먼트 공동회장인 벤 실버맨은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본으로 진행되는 쇼의 시대는 갔다”고 말했다.

리얼리티 쇼의 성황으로 배우들의 설 자리도 좁아지고 있다. 드라마와 시트콤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일부 유명 연예인을 제외한 나머지 배우와 코미디언들의 출연 기회가 줄어든 것. 미 배우조합에 따르면 조합원의 3분의 2가 연간 1000달러도 못 되는 돈을 번다. 일을 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리얼리티 쇼로 인해 이 같은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TV의 민주화’

연예기획사와의 네트워크를 통해 캐스팅을 주선하던 캐스팅 디렉터의 역할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제작진은 전국에서 보내온 출연 희망자들의 비디오테이프를 직접 모니터하고 인터뷰해 캐스팅을 확정한다. 기획사에 속해 있지 않은 일반인을 출연시키기 때문에 ‘중간상인’에게 지출되는 비용이 절감되는 것이다.

현실보다  재미있는 TV속 현실?

경쟁을 통해 스타 디자이너를 길러내는 ‘프로젝트 런어웨이’.

물론 제작비 절감만으로 리얼리티 쇼의 붐을 설명하긴 어렵다. 공급이 용이하다고 해서 반드시 수요가 증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언론에서 리얼리티 쇼의 인기 요인을 분석했지만 일반인 출연자의 모습에서 시청자들이 더 큰 공감을 느낀다는 표피적 해석에 그쳤다. 리얼리티 쇼의 인기를 이해하는데 있어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는 바로 ‘세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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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경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사회학 kimsk@stanford.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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